고2초부터 미술을 하겠다고 얼마나 부모님과 싸웠는지.. 한달동안 대화한게 정말 10마디도 안됐을거에요.
그렇게 공부를 못하는게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기대를 하고 계셨나봐요
엄마께서는 더더욱이 영어학원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더 그랬을 지도 모르죠
항상 '미술' 때문에 싸우고 탈많고.. 저는 항상 화만내고 부모님은 이해를 못하셨죠
그리고 그렇게 수능 D-100일이 됐어요
100일 당일에는 미술학원에서 작게 100일 파티를 했고,
▼ 파티 사진
평소에 9시쯤 일어났던게 7시에 일어났더니
엄마께서 아침일찍 독서실가는 줄 아시고
"수능 100일 됐더니 드디어 정신을 차렸나보네~ 바로 그거야!" 라고 하시는거에요
좀 찔렸지만.. 그냥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ㅠㅠ 미쳤죠 아주..
그리고 그 날밤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책상에 노트 한권이 있더군요
영어학원의 (엄마가 계신 영어학원을 다니는중이에요) 책이랑 모양이 똑같아서
'아.. 또 새책나왔구나ㅠㅠ 휴...'라고 생각했던 저,
표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한장 넘기고, 깜짝 놀람에 더불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에.. 몇번을 읽으면서 계속 혼자 울었습니다
다음은 그 장의 편지내용이에요
사랑하는 딸에게
x아, 벌써 100일이 남았다니 가슴이 철렁거린다,
반면 마치 축제일을 맞이한 냥 들떠 보이기도 한 너를 보니 희한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100일이라고 아침 일찍 머리감고 나오는 너를 보니 마음이 달라지기는 한가보다 하는 안도감과 더불어 측은한 생각이 들더구나.
그런게 부모 마음이란다. 밖으로는 혼내면서 속으로는 앓아야하는 마음. 나도 철들고 나서야 그런걸 알았단다. 너를 키우면서 내가 너만 할 때 나의 모습과 우리엄마 - 외할머니 생각을 많이 한단다. 후회도 하고 무한한 감사도 하면서...
너의 진로를 정하면서 무던히도 힘들게 했던게 늘 가슴 아프다. 그리고 큰 응원 못해주고 항상 못마땅해 했던 엄마가 미안해. 너에게 네가 할 수 있는 것 보다 항상 더 크게 하기를 바라는게 엄마인가봐. 딸을 가진 엄마들의 욕심이지. 이젠 엄마 욕심보다는 니가 할 수 있는 만큼 잘 하도록, 그러면서 더 잘 되게끔 빌어야 하는데 아직도 미련이 많아 엄마는 늘 너를 바라보며 다른 모습을 그리나봐. 이제는 파이팅을 함께 외쳐주어야지. 어쩌면 너는 행운아일거야. 공부만 한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을 가졌으니 어디에서 일을 하든, 무슨 직업을 선택하든 무한한 이점이 있을 거야. 그걸 니가 잘 살리길 바란다.
100일~ 마음을 바짝 조이고서 마지막 정리를 해야 할 때지. 어쩌면 지금부터가 승부수를 던져야할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너 자신을 믿고서 무한한 도전을 해 보길 바란다. 지나고 보니 수능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는 가장 큰 사건이고 어떤 시기보다도 중요한 변환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끝까지 영향을 미치는 게 대학의 선택이었던것 같다. 차라리 사회의 첫 출발인 직장은 다니나 싫으면 바꾸기라도 하지만 대학과 학과 선택은 평생 사회생활에서 진로를 선택할 때 영향을 끼치고 가끔씩은 막대한 족쇄 역할까지 하니 얼마나 중요한 거겠니?
엄마는 K대 국문학과에서 낙방하고 후기대인 D대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어, 큰오빠 - 너의 큰 외삼촌이 만류했단다. 사회에 나와서 할 일이 없다나? Y대병원부속인 Y이공대 간호학과가 아주 유망하니 (저희 엄마는 원래 이비인후과 수간호사셨어요) 그리로 진로를 선택하라고 권하고 부모님도 그리 권하셨지. 그럴 것 같았어. 의학은 지금 사는데는 참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다만.. 내 인생에 도움은 주지 못했단다. 처음 간호 실습을 하는데 한 쪽 청력이 떨어지는 내게 청진기가 들리지 않으니 앞이 깜깜했어. 그게 평생 내 발목을 잡았단다. 그리고 수술실에서 잘 안들리는 귀 쪽에서 뭐라고 하면 들리지 않으니 제대로 수술도구를 챙겨 주지 못하니 낭패를 당했다는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고 슬프구나.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늘 실패한 인생이라는 우울증과 열등감으로 빠져야 했어.
그 공포는 대학 병원 서류면접에서 떨어질 때 극에 달했지. 그리고 그 못난 사고에서 아직도 내가 자유롭지를 못하단다. 그냥 국문학을 공부했으면 (저희 엄마의 장래희망은 작가셨어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지금도 사색에 빠지면 하게 된단다. 전기대에 떨어지고 안동댐제방을 찬 바람맞으며 울고 2시간이나 걸었을ㅇ 때보다 그 못난 사고는 내 인생을 갉아 먹는 차디찬 평생이었단다.
이젠 커서 엄마의 못난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구나. 넌 엄마같은 인생을 살지는 마. 더 열심히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해.
그리고 패배속에서 살지는 마. 항상 승리가 너의 것이기를 바라며 남은 100일이 너의 온전한 것이기를 100일 동안 기도해 줄게. 사랑한다.
엄마께 받은 최고의 수능 D-100 선물 (사진有)
안녕하세요~
일단 저는 대구사는 고3입니다
지금 한창 공부를 해야될 시간이지만 엄마께 받은 최고의 선물을 자랑하고 싶어서
이렇게 톡에 글을 쓰게 됐어요
저는 국민대 공업디자인과를 꿈구는 미대입시생입니다
고2초부터 미술을 하겠다고 얼마나 부모님과 싸웠는지.. 한달동안 대화한게 정말 10마디도 안됐을거에요.
그렇게 공부를 못하는게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기대를 하고 계셨나봐요
엄마께서는 더더욱이 영어학원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더 그랬을 지도 모르죠
항상 '미술' 때문에 싸우고 탈많고.. 저는 항상 화만내고 부모님은 이해를 못하셨죠
그리고 그렇게 수능 D-100일이 됐어요
100일 당일에는 미술학원에서 작게 100일 파티를 했고,
▼ 파티 사진
평소에 9시쯤 일어났던게 7시에 일어났더니
엄마께서 아침일찍 독서실가는 줄 아시고
"수능 100일 됐더니 드디어 정신을 차렸나보네~ 바로 그거야!" 라고 하시는거에요
좀 찔렸지만.. 그냥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ㅠㅠ 미쳤죠 아주..
그리고 그 날밤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책상에 노트 한권이 있더군요
영어학원의 (엄마가 계신 영어학원을 다니는중이에요) 책이랑 모양이 똑같아서
'아.. 또 새책나왔구나ㅠㅠ 휴...'라고 생각했던 저,
표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한장 넘기고, 깜짝 놀람에 더불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에.. 몇번을 읽으면서 계속 혼자 울었습니다
다음은 그 장의 편지내용이에요
사랑하는 딸에게
x아, 벌써 100일이 남았다니 가슴이 철렁거린다,
반면 마치 축제일을 맞이한 냥 들떠 보이기도 한 너를 보니 희한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100일이라고 아침 일찍 머리감고 나오는 너를 보니 마음이 달라지기는 한가보다 하는 안도감과 더불어 측은한 생각이 들더구나.
그런게 부모 마음이란다. 밖으로는 혼내면서 속으로는 앓아야하는 마음. 나도 철들고 나서야 그런걸 알았단다. 너를 키우면서 내가 너만 할 때 나의 모습과 우리엄마 - 외할머니 생각을 많이 한단다. 후회도 하고 무한한 감사도 하면서...
너의 진로를 정하면서 무던히도 힘들게 했던게 늘 가슴 아프다. 그리고 큰 응원 못해주고 항상 못마땅해 했던 엄마가 미안해. 너에게 네가 할 수 있는 것 보다 항상 더 크게 하기를 바라는게 엄마인가봐. 딸을 가진 엄마들의 욕심이지. 이젠 엄마 욕심보다는 니가 할 수 있는 만큼 잘 하도록, 그러면서 더 잘 되게끔 빌어야 하는데 아직도 미련이 많아 엄마는 늘 너를 바라보며 다른 모습을 그리나봐. 이제는 파이팅을 함께 외쳐주어야지. 어쩌면 너는 행운아일거야. 공부만 한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을 가졌으니 어디에서 일을 하든, 무슨 직업을 선택하든 무한한 이점이 있을 거야. 그걸 니가 잘 살리길 바란다.
100일~ 마음을 바짝 조이고서 마지막 정리를 해야 할 때지. 어쩌면 지금부터가 승부수를 던져야할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너 자신을 믿고서 무한한 도전을 해 보길 바란다. 지나고 보니 수능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는 가장 큰 사건이고 어떤 시기보다도 중요한 변환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끝까지 영향을 미치는 게 대학의 선택이었던것 같다. 차라리 사회의 첫 출발인 직장은 다니나 싫으면 바꾸기라도 하지만 대학과 학과 선택은 평생 사회생활에서 진로를 선택할 때 영향을 끼치고 가끔씩은 막대한 족쇄 역할까지 하니 얼마나 중요한 거겠니?
엄마는 K대 국문학과에서 낙방하고 후기대인 D대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어, 큰오빠 - 너의 큰 외삼촌이 만류했단다. 사회에 나와서 할 일이 없다나? Y대병원부속인 Y이공대 간호학과가 아주 유망하니 (저희 엄마는 원래 이비인후과 수간호사셨어요) 그리로 진로를 선택하라고 권하고 부모님도 그리 권하셨지. 그럴 것 같았어. 의학은 지금 사는데는 참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다만.. 내 인생에 도움은 주지 못했단다. 처음 간호 실습을 하는데 한 쪽 청력이 떨어지는 내게 청진기가 들리지 않으니 앞이 깜깜했어. 그게 평생 내 발목을 잡았단다. 그리고 수술실에서 잘 안들리는 귀 쪽에서 뭐라고 하면 들리지 않으니 제대로 수술도구를 챙겨 주지 못하니 낭패를 당했다는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고 슬프구나.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늘 실패한 인생이라는 우울증과 열등감으로 빠져야 했어.
그 공포는 대학 병원 서류면접에서 떨어질 때 극에 달했지. 그리고 그 못난 사고에서 아직도 내가 자유롭지를 못하단다. 그냥 국문학을 공부했으면 (저희 엄마의 장래희망은 작가셨어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지금도 사색에 빠지면 하게 된단다. 전기대에 떨어지고 안동댐제방을 찬 바람맞으며 울고 2시간이나 걸었을ㅇ 때보다 그 못난 사고는 내 인생을 갉아 먹는 차디찬 평생이었단다.
이젠 커서 엄마의 못난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구나. 넌 엄마같은 인생을 살지는 마. 더 열심히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해.
그리고 패배속에서 살지는 마. 항상 승리가 너의 것이기를 바라며 남은 100일이 너의 온전한 것이기를 100일 동안 기도해 줄게. 사랑한다.
이 글을 엄마께서 보지 않으시겠지만..
엄마, 정말 많이 죄송하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