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똥 비' [Ⅱ]

소라쿤200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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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비 [Ⅱ]









- 쾅 쾅 쾅



“......”




- 쾅 쾅 쾅



온통 갈색으로 뒤덮인 지영이 쉴 새 없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 쾅 쾅 쾅



세호는 덜덜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지영이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세호의 머릿속에 지영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물에 불어 잔뜩 부은 얼굴, 붉게 충혈된 눈, 피와 오물로 범벅된 입술, 그리고 손톱에 끼인 살점까지.

세호가 사랑했던 지영은 이제 없었다.

단지 자신을 습격하기 위해, 날카로운 손톱을 번뜩이며 창문을 두드리는 불청객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 쾅 쾅 쾅



얇은 이중창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찾아오는 지영의 주먹을 잘도 견뎌내고 있었다.



“자, 장난치지마!”



세호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소리쳤다.

하지만 새찬 빗줄기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 그 때 손을 놓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다시 되돌아갔어야 했다.

세호의 늦은 후회와 한탄이 고요하게 울려 펴지기 시작했다.



......



......



6514번 버스는 이용객들의 수에 비해 운행량이 너무 적다는 게 문제였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도 짜증나지만,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의 보람찬 땀 냄새를 맡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세호는 갈아타는 게 귀찮아도 웬만하면 지하철을 이용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의 버스는 너무나 쾌적했다.

처음 탈 때만 해도 사람들에 치여서 정신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세호의 영역이 넓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노량진 역에서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이 내렸나?’



세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웬걸,

사람들은 여전히 빽빽했다.

오히려 세호가 확보한 영역만큼, 사람들은 더욱 비좁아진 자신들의 영역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거기에 세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세호에게 원망 섞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세호는 대체 무슨 일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불현듯 자신의 냄새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앞 의자에 앉아있는 할머니가 코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거의 확실한 추측인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 추측을 증명해주는 상황이 펼쳐졌다.



“엄마. 저 아저씨 냄새나.”



“쉬잇!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화들짝 놀란 세호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아앙. 똥냄새나.”



“희수야. 쉿!”



아이의 말을 시작으로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세호는 어찌나 민망한지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냥 지영의 말을 들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그 후회도 오래 가진 않았다.



- 일기예보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뉴스에서 일기예보 순서가 되자 기사가 음량을 키웠다.



- 현재 서울 몇 몇 지역에서 국지적인 호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상청에 의하면 동작구 노량진본동, 강

북구 미아4동, 성북구 안암동 2가, 강동구 천호1동 등이라고 하며, 일시적인 소나기가 될 전망이라고 합니

다. 우산 안 챙기신 분 들은 잠시 건물 안으로 피해 있으시고요, 외출 준비 중이신 분들은 꼭 우산을 챙기

셔야겠네요. 내일은 빨래 말리시기 딱 좋은 날입니다. 오전부터 쾌적한 날씨가 이어질 전망이고요.......



세호는 일시적인 소나기 치고는 빗방울이 꽤 크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일기예보에 의하면 세호가 사는 곳에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국지성 호우니까 말이다.






버스는 대림역 고가를 넘어 신도림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버스가 멈추고, 서고를 반복할 때마다 빗줄기는 조금씩 가늘어지고 있었다.

세호는 이제 자신 있게 고개를 들고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예의 그 모녀가 내려서 수근 거리는 소리도 잠잠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전히 세호의 주위로는 아무도 다가가려 하진 않았다.

버스가 신도림역 부근에 다다르자, 세호는 지영이 생각에 핸드폰을 들었다.

통화 버튼을 누른 후 세 번 정도 신호를 기다리자, 여보세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지영아, 선배야.”



- 와~ 선배. 진짜 어떻게 그냥 가냐.



“아. 미안하다 정말. 버스 탔어?”



- 몰라요. 저 지금 택시에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다 젖었다고요.



“그래? 택시 아저씨가 냄새난다고 뭐라고 안 하디?”



- 지금 향수 한 통을 거의 다 뿌렸어요.



“그래도. 그 비에 쫄딱 젖었으면 향수고 뭐고 안 통할 텐데.”



- 아직도 비 때문에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응?”



- 선배가 틀렸어요. 얼굴 말고는 냄새가 안 나네요.



“어? 정말?”



- 그렇다니까요. 선배 정말 그런 핑계로 절 버릴 줄은 몰랐어요.



“아, 아니야. 버리려고 한 게 아니야. 나도 버스에서 얼마나 쪽팔렸다고.”



- 됐어요 선배. 내일 얘들한테 다 말 할거야.



“아아~ 지영아 한 번만 봐주라. 내가 맛있는 거 사준다니까.”



- 몰라요. 선배 끊을게요.



- 딸칵.



세호가 통화가 끝난 핸드폰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괜한 기우 때문에 지영이를 버려둔 것이라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악취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고약한 냄새가 갑자기 왜 베었단 말인가.

후회하는 동안 버스는 어느새 영등포 로타리까지 다다라 있었다.

세호가 내리는 양남시장 역은 앞으로 세 정거장이 남았다.






유난히 밤문화가 발달한 영등포의 밤거리는 술 취한 사람들로 득실 거렸다.

불 꺼진 백화점 앞 에서는 웬 노숙자 한 명이 멀쑥한 정장차람의 남자와 멱살 싸움을 하고 있었고,

거기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는 치마인지 팬티인지 구분이 안 되는 하의를 걸친 여자가 팔짱을 낀 채,

늙수레한 남자 여럿과 모종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위 2차를 위한 협상 중인 모양이다.

세호의 눈에는 결코 달갑지 않은 광경들이었다.



-드르르르르르



세호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는 미희였다.



“어 미희야.”



- 쏴아아아아. #@$@!!



빗소리에 묻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어? 잘 안 들려! 크게 말 해!”



- 쏴아아아아. 선배!! 큰$%#@#$@!!



비가 어지간히도 오는 모양이다.

목소리로 봐서는 뭔가 다급함이 느껴졌다.



“미희야. 비 때문에 잘 안들리거든? 또박, 또박 얘기 해 봐.”



- 쏴아아아아. 아이 참! 큰. 일. 났. 다. 고. 요!



“뭐? 무슨 일인데!?”



- 쏴아아아아. 윤희, 윤희가 %$#$#에$##% 하고 $%#@떨%$#@$ 미%#@$어요!!



윤희가 뭐 어떻게 됐다는 것 같은데, 정황으로 보아, 말투로 보아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긴 모양이다.



“미희야 지금 너무 안 들려. 건물 안이라도 들어가서 말 해봐.”



잠시 돌아오는 말이 없었다.

곧 있어 끼익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가득했던 빗소리도 줄어들었다.

건물 안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 들려요?



똑똑히 들렸다.



“어 들려. 윤희가 어땠다고?”



- 윤희 지금 토하고 난리 났어요!



“어? 윤희가 그렇게 많이 마셨던가? 등 좀 잘 두드려줘.”



미희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대답했다.



-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요! 막 발작 같은 것도 하고, 막 눈동자도 뒤집고, 막, 막 아무튼 그래요!



“그게 무슨 말이야? 주사 부린다는 거 아니야?”



- 그게 아니라고요! 주사 정도의 수준이 아니에요 선배!



세호는 도저히 미희의 말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대체 무슨 말이야 그게......”



- 그것 뿐만이 아니에요. 윤희한테 지금 막, 막, 그러니까, 막 화장실 냄새 같은 거 난다고요!



그 순간 세호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라고? 윤희한테 지금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 이상한 정도가 아니에요!



“윤희 혹시 비 맞았니?”



- 예? 그렇긴 한데, 그건 왜요?



“상황 좀 자세히 얘기 해 봐.”



- 윤희가 답답하다면서 그냥 우산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어차피 맞은 거 그냥 흠뻑 맞아보자면서 앞으로 뛰

더라고요. 그러다 갑자기 픽 쓰러졌어요. 저는 발을 헛디딘 줄 알았는데 다가가서 보니까 이지경이더라고

요. 쓰러질 때 머리를 잘못 부딪치기라도 한 걸까요?



세호가 애써 지워냈던 불안감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연관을 맺지 않으려 해도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 그래서. 윤희는 지금 어디에 뒀어?”



- 윤희는 여전히 바깥에 누워 있죠. 지금 일단 저만 건물에 들어왔어요. 어떡하죠?



“뭘 어떡해. 발작까지 한다면서. 일단 119라도 불러야지. 전화 끊을 테니까 119에 전화하고 다시 나한테

전화해 알았지?”



- 예...... 알았어요. 그, 응? 어!?



미희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어? 무슨 일이야?”



- 윤희가 사라졌어요. 어떻게 된 거지?



“무슨 말이야. 사라지다니?”



- 발작 하면서 몸을 움직였나...... 선배 저 일단 끊을게요.



“어? 어, 어. 그래 119 전화하고 바로 전화해 알았지?”



- 알았어요. 고마워요 선배.



전화를 끊고 얼마 안 있어 버스가 세호가 내리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영등포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빗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맑은 날씨였다.

이런 식의 국지성 호우는 듣도 보도 못 한 터였다.

세호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잠시 멀뚱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정말 세상이 어떻게 되기라도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세호는 황급히 도리질을 치며 걸음을 떼었다.






청과물 시장 맞음 편,

큰 길 따라 쭉 들어가면 보이는, 커다란 보신탕집 바로 옆에 있는 낡은 건물이 세호가 사는 원룸이었다.

일곱 평 남짓 되는 좁은 곳이었지만, 세호 혼자 지내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거기에 워낙 간소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방 안을 크게 차지하는 짐들도 별로 없었다.

방 한 쪽 구석에 붙여 놓은 컴퓨터 책상과,

삐죽이 튀어나온 낡은 행거가 그나마 가장 공간을 차지하는 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세호는 허물을 벗듯 옷을 집어던지고, 부랴부랴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무려 스무 번 가까이나 세수를 하고서야 화장실에서 나왔다.

세안제의 반 정도는 쓴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 찝찝했다.

스킨과 로션을 손바닥 가득히 묻혀서 얼굴에 버무린 다음에야 세호는 안심한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삐딱하게 서서 이런 생각을 한다.



‘과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해야겠다.’



왠지 모를 피곤함이 밀려와 과제는 일단 제쳐두기로 한 것이다.

개지 않은 채 두었던 이불 안으로 들어가 목까지 당겨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혹시 미희, 아니면 지영에게 전화가 올까봐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이내 세호의 눈은 스르륵 감기고, 오늘의 일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지영이가 많이 화났을까.

미희 녀석은 왜 전화를 안 하는 걸까.

내일 수업은 지겨운 북유럽시간이구나.

그리고, 그리고......

점점 몸이 나른해지고, 정신이 아늑해진다.

그렇게 수마는 세호를 강렬한 무의식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