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좀비물) 살기위해 뛰어라! (8) 구출

Ruka2009.08.07
조회1,097

 

 

 

 

 

좀비가 나오는 게임이나 영화를 보면 정말 좀비들이 끝없이 쏟아진다.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도망가고 도망가고 도망가도, 고개를 한 번만 돌리면 좀비들은 항상 바글바글. 아주 끓어 넘친다.


글쎄, 보통 인구가 우리나라보다 배는 많은 서양에서 좀비물이 소재가 되서 그렇게 묘사를 하는건지는 몰라도, 지금 우리가 있는 거리에 있는 좀비들은 끽해야 50마리가 넘을까 말까.. 물론 당장 시야에 보이는 놈만 치면 말이다.


"후하하하! 헉! 헉!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 헉! 헉.."


..아아, 저 놈이 끌고다니는 놈들도 까먹으면 안 되지.


전화를 다섯 번은 걸었을까? 나는 입 속으로 세상에 해 본적도 없는 쌍욕을 수백번 수천번 씹어가며 정말 참담한 기분으로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그동안 태완이가 죽인 좀비만 6마리, 내가 죽인 좀비가 4마리. 우리 둘이 이렇게 저렇게 해서 행동불능으로 만든 놈은 자그마치 열한 마리. 그런데도 놈들은 아직도 꼬물꼬물 우리에게 압박을 해 오고 있었다. 그나마 저 뒤부터 무리를 지어 오는 놈들을 윤호가 잘 유인해주고 있어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우린 진작에 무기를 버리고 꽁무니를 뺐을 것이다.


"태완아!"


"어?"


내가 식칼창을 휘두르며 급히 말하자 태완이는 그새 많이 익숙해졌는지 앞에서 기어오고 있는 좀비의 마빡 한가운데에 정확히 못을 박아넣으며 대답했다.


"이게 일곱번째 전환데, 안 받으면 돌아간다! 이대론 절대 못 버텨! 우리가 무슨 샷건같은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태완이는 잠시 주춤하더니 아까 이마에 못을 박아넣은 놈이 다시 일어나려 하자 얼른 달려가 얼굴을 걷어찬 뒤 다시 못을 박아넣으면서 씁쓸하게 말했다.


"..알았어."


"결정난 거다!"


나는 태완이의 대답을 듣자마자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까부터 식칼창으로 계속 밀어냈는데도 끈질기게 내 앞에서 비척대는 한 좀비를 식칼창 자루로 콱 밀어낸 뒤 손도끼로 머리를 박살내 버렸다. 나는 얼굴에 튄 피인지 뭔지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마지막의 마지막이 될 전화를 걸었다.


뚜- 뚜-


"제발 받아라 미친 복어새꺄.."


나는 다리를 동동 구르면서 태완이 쪽을 쳐다보았다. 우리 근처에 쓰러진 수많은 좀비들이 바리케이트 아닌 바리케이트 역할을 해 주고 있어서 태완이는 손쉽게 타정총으로 놈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좀비놈들은 발 근처에 아주 작은 홈이나 돌만 있어도 걸리기만 하면 그냥 쓰러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누워있는 놈들 중 어떤놈은 자기 근처에 다른 좀비가 자빠지면 그 놈의 위에 올라타 뜯어먹는 초 일급 함정의 일을 손수 해 주고 있었다.


찰칵


-여보세요?


드디어 받았다! 나는 기쁨과 분노가 반씩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재복아! 이 미친놈아 왜 안 받고 사람을 열불 터지게 만들어? 우리 지금 니 구하러 왔다가 타이밍 안 맞아서 도로 돌아가려고 했단 말야! 너네 안에 바리케이트 쳐놨지? 거기 문 앞에 좀비들은 내가 치워놨으니까 얼른 열어 병신아! 힘들어 죽겠어!"


-정말이냐? 너네 진짜 대단하다. 아깐 사정이 있어서..


"잡소리 말고 얼른 열으라고! 태완이도 나도 윤호도 죽을 맛, 아니, 죽기 직전이니까! 여러가지 의미에서!"


-알았어. 지금 열게.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태완이에게 외쳤다.


"재복이가 받았어! 금방 사람들 이끌고 올테니까 잘 버텨!"


태완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못을 장전하는 데에 열중했다. 녀석이 내 말을 들었든 안 들었든 한시라도 빨리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게 모두에게 이로울 터. 나는 무기를 든 채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문은 닫혀있었지만 안쪽에서 덜컹덜컹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뒤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들어가서 안을 휘 둘러보니 서점 안은 대단히 깨끗했다. 아마 좀비들이 침입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내 옆에는 바리케이트를 치우는데 손을 거든 듯한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내가 그에게 괜찮냐고 묻는데 오랜만에 보는 재복이가 달려와 내 어깨를 탁 쳤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정말 우릴 구하러 온 거야 너?"


"너가 아니라 너네지. 밖에 태완이랑 윤호가 지랄 똥 싸고 있으니까 0.5초내로 준비하고 튀어나와. 그리고 당신들도 빨리 준비해요. 나갑시다."


나는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서점의 안에는 재복이와 모르는 남자가 둘, 여자가 둘 있었다. 한 명은 물론 재복이의 여자친구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사람들은 각자 무언가를 무기로 들고 있는데다 내 말을 들었는데도 당장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열받아서 외쳤다.


"이 인간들이 진짜! 빨리 준비하고 튀어나오라고! 당신들 때문에 내 친구들이 죽으면 책임질꺼야!"


내가 어깨에 지고 있던 식칼창을 고쳐잡으며 사람들을 재촉하려고 안쪽으로 한 걸음 뛰어들어가는데 내 발치에 미처 보지 못한 사람 한 명이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둘. 한 남자가 어딘가를 다친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누워있었고 다른 한명은 그의 애인인지 그에게 무릎베게를 해 주고 있었다. 나는 찡그렸던 인상을 펴며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디 다쳤어요?"


"그 사람들 때문에 당장 움직일 수가 없는거야. 그 남자분이 크게 다쳤어. 아까 전화 못 한 것도 이 사람 치료하느라 다들 난리여서.."


내가 식칼창을 내려놓으며 누워있는 남자를 살피려는데 재복이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나는 무릎베게를 해주고 있는 여자에게 눈짓을 한 뒤 남자를 잘 살펴보았다.


"..나 이런 빌어먹을!"


그를 살피다가 내 입에서 욕이 터져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일 예상하고 싶지 않던 상황. 남자의 상처는 목과 어깨 사이 부근에 나 있었고, 물론 그것은 좀비에게 물린 자국이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서 살짝 떨어져 식칼창을 잡으며 말했다.


"물린거야? 이 사람.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떤 술취한 아저씨한테 물린 상처라면 좋겠는데 말이지."


"무.. 무슨 소리야?"


재복이가 묻는데 상처남의 애인이 내게 말했다.


"이 사람, 우리가 들어오기 직전에 나를 구해주려다가 밖의 저것들에게 물렸어요! 피가 너무 많이 나와서.. 그래서.."


"신발!"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봐요! 당신 의식 있어요? 있으면 대답해봐요!"


이미 상처에서의 피는 멈춘 상황. 저렇게 큰 상처가 났는데 피가 나오지 않는다면 답은 하나. 이미 피가 나올대로 나왔다는 소리다. 그렇게까지 출혈을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 남자의 상처부근을 둘러싸고 있는 붕대는 하얀 부분을 찾아볼 수 없을만큼 젖어 있었고, 그를 간호하고 있는 여자의 옆엔 피에 물든 휴지와 붕대가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는 '아직' 죽지 않았는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이를 꽉 물고 한숨을 쉰 뒤 그에게 말했다.


"잘 들어요 아저씨. 밖에 저 놈들에게 물린 시점에서 당신은 감염됐어요. 그리고 이제 당신이 죽으면.."


"아냐! 동철씨는 안 죽엇! 절대로!"


내 말을 끊으며 그의 애인이 절규했다. 나는 잠깐 말을 멈추었지만 눈을 꽉 감고 그녀를 무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죽으면 당신은 그 즉시 밖의 저 놈들처럼 변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당신에게 묻겠어요. 내가 당신을 죽여주기를 원합니까?"


"뭐.. 무슨! 당신 갑자기 쳐들어와서 무슨 헛소리야! 동철씨를 죽이면 내가 널 죽일거야!"


미치기 일보직전이던 그의 애인이 소리를 꽥꽥 지르며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밖의 지옥을 어느정도 경험했기에 지금 해야 할 일의 제 1순위를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 사람을 죽인 적은 없지만 사람과 똑같이 생긴 움직이는 시체들의 머리를 몇수십이나 부숴온 터라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상처남의 떨리는 눈길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재복이가 말했다.


"야 김진환, 갑자기 무슨.. 니가 무슨 영화 주인공이냐? 뭔 소리야 임마?"


"닥치고 넌 빨리 위로 올라가 임마! 태완이랑 윤호가 죽게 생겼다고!"


"그래도.."


"..죽여 줘, 그래.."


내가 재복이를 바라보며 외치고 있는데 뒤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고개를 확 돌려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게 말했다.


"..이대로.. 저런 꼴이 될 거면.. 죽여줘.. 그게.. 낫겠지.."


"무슨 소리야 동철씨! 말도 안 돼는 소리마! 동철씨가 죽을거면 나도 죽을거야!"


"바보.. 같은.. 소리.. 마.. 수영씨.."


"싫어! 싫어! 싫다고! 으아아아앙..!"


수영이라는 이름누나는 상처남 동철형의 얼굴을 붇잡고 절규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후회 안하죠?"


"지금 상황에.. 무슨.. 후회야.. 하하.."


그는 쿨럭거리며 마지막이 될 숨을 들이쉰 뒤 힘겹게 말했다.


"네.. 이름을.. 들려줄래? 죽기전 선물로.."


"..김진환임다."


내가 말하자 그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진.. 환아.. 수영씨를.. 좀.. 지켜줄.. 수 있겠어..? 내가.. 죽고.. 나서.."


"무슨 소리야 동철씨! 나는 아무데도 안 가!!"


수영 누나의 절규를 들으며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 해 볼게요."


"다행이다.. 이제.. 편해질.. 수 있을.. 크헉!"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동철형의 입에서 가느다란 피 몇줄기가 팍 뿜어져나왔다. 그에겐 이미 시간이 없다. 나는 각오를 굳히고 재복이를 밀어내면서 말했다.


"재복아 비켜. 여긴 나한테 맡기고 빨리 나가."


"야 김진환! 너 진짜.."


"빨리 가라고! 동철형 갑니다."


난 재복이를 향해 소리를 친 뒤 식칼창을 꽉 줘고 동철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수영 누나가 동철형의 위에 엎드려 누우며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안 돼애애애!! 동철씨를 죽이려면 나도 죽여!!"


"이 언니가 진짜.. 빨리 나와요!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거 아니예요!"


"싫어! 싫어어!! 나도 죽여! 나도.. 앗! 꺄아아아아악!!"


"우아앗!"


그녀가 동철형의 몸 위에서 고개를 마구 흔들며 몸부림치고 있는데 갑자기 사색이 되어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자 나 역시 그녀의 팔을 쳐다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동철형.. 아니, 이젠 좀비가 된 남자가 그녀의 팔을 깨물고 있었다. 나는 식칼창을 내려놓고 도끼를 잡으며 외쳤다.


"미친 아줌마야! 그러게 내가 나오랬잖아! 어깨 치워요 한방에 끝내게!"


"아.. 안돼! 동철씨는.. 카학!"


"안돼! 씨바알!!"


수영 누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팔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좀비를 끌어안다가 결국 목을 물리고 말았다. 나는 욕을 내뱉으면서 놈을 죽이기 위해 옆으로 돌아갔다. 목을 저렇게 물렸으면 방법이 없다. 이 좀비를 처리한 뒤 곧바로 수영누나의 목을 쳐야겠지, 빌어먹을!


수영 누나가 목을 물리는 순간 한순간에 근처 책과 진열장에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오자 재복이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 근처에 있던 여자 한 명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책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보지는 못했지만 재복이의 여친이었는지 재복이가 소리를 지르며 그 여자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녀석을 따라 다른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깨물고 있던 입술을 놓으며 소리쳤다.


"나무아미타불!"


퍼걱


이미 익숙해진 뒤통수의 소뇌 부근, 좀비의 약점에 내 손도끼가 꽃혔다. 한차례 크게 진동한 뒤 벌벌 떨던 몸을 멈춘 좀비의 뒤통수에서 도끼를 뽑아내면서 나는 다시 수영 누나의 머리를 칠 준비를 했다. 순간 내 눈에 그녀의 얼굴이 비춰졌다. 누나는 엄청난 고통에 이미 눈이 돌아가 침을 흘리며 온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바로 사랑하던 그녀의 애인에게 목이 물어뜯겨서.


나는 휘두르려던 팔을 멈췄다. 정말로 팔이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날아가려는 이성을 억누르고 있자니 깨물고 있는 내 입술에서 피가 배어져나왔다. 정말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인데, 숨이 끊어진 듯 한 수영 누나의 몸이 내 앞에서 한순간 움찔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도끼를 휘둘렀다.


"큭!"


콰직


나도 모르게 나가 힘 조절이 안 된 스윙은 수영 누나의 관자놀이를 뚫고들어가 머리통의 한 부분을 뜯어내 날려버리며 두 사람의 시체를 같은 자리에 넘어지게 했다.


"하악! 하악.. 하악.."


순간적으로 어딘가로 날아갔다가 돌아온 듯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갑자기 턱에 찬 숨을 몰아쉬었다.


이곳은 지옥이다.


나는 손도끼를 휘두른 동작 그대로 멈춰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내가 방금 처리한 두 사람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사이좋은 예전의 상태로 돌아온 듯 서로 팔을 포개고 누워있었다. 나는 손도끼를 바닥에 집어던진 후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주저앉아 소리쳤다.


"젠장.. 젠장! 젠장!"


사람을 죽인건지, 좀비를 죽인건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방금 전까지 내 눈앞에서 울고 있던 사람의 머리를, 내가 이 손으로, 손도끼로, 부숴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나와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가빠졌던 숨이 어느정도 진정되자, 내팽겨쳤던 도끼를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상은 나중이다. 일단은 위에 있는 친구들이 걱정이다. 일어난 채 내가 방금 죽인 그들을 바라보니 그들의 상태가 더욱 눈에 잘 들어왔다. 나는 목례를 하듯 둘의 시체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입구쪽으로 내달았다.


"..뭐지 이건."


서점에서 나가려는 순간 내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흰색의 가방이었다. 퍼뜩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어 잘 생각해보니 이건 재복이의 가방이었다. 나는 우울한 얼굴로 가방을 짊어매고 다시 달려나갔다. 금새 빌딩 밖으로 나온 내 눈에 펼쳐진 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아 김진환! 뭐하느라 이제 와! 빨리 가자!"


태완이가 나를 향해 달려오며 말했다. 태완이의 뒤를 따라 재복이와 녀석의 여친이 달려왔다. 나는 녀석들과 함께 서점에 있었던 남녀를 생각하며 물었다.


"뒤따라 나간 여자랑 남자는 어딨어?"


"그 사람들, 겁먹어서 막 소리치더니 도망갔어. 여자는 모르겠는데, 남자는.."


태완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찻길 반대편의 망원역 입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을 바라본 나는 얼른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남자는 쓰러진 채, 수많은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온몸을 뜯어먹히고 있었다. 내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말하려는데 윤호가 금방 넘어갈 것만 같이 숨을 몰아쉬며 내 옆으로 와 자전거에서 구르듯 내려왔다.


"헉.. 헉.. 더는 못 해.. 헉.. 헉.. 니가 해라 지랄.. 헉.. 헉.."


고딩때 내 별명은 지랄이었다(진환을 빠르게 부르면 지랄). 이제야 멤버가 다 모이자 나는 우리가 왔던 편의점이 있는 길목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빨리 가자. 더 이상은 정말 힘들어."


"그래!"


"헉 헉.. 좀만.. 쉬었다 가면 안돼냐 씨댕들아.. 헉.."


성급히 발걸음을 옮기며 윤호가 달려온 곳을 보자 좀비 십수 마리가 비척비척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막 잰걸음을 하고 있는데 재복이가 내게 말했다.


"야 너네 정말 이 동네를 뚫고 우리한테까지 온거야? 징하다."


"뭐 징해? 이 강아지가 구해주니까 가볍게 막말을 하네? 새꺄 고맙다고 만세삼창을 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 그게 뭐야?"


"진환아, 말이 심하잖아. 왜 그래?"


내가 발끈해서 소리치자 태완이가 나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재복이와 녀석의 여친이 놀라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걸 보며 나는 혀를 한번 차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녀석들은 서점 안에서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한다. 이 녀석들도 커플, 내가 죽인 두 사람도 커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씩씩거리며 걷는 내게 윤호가 비틀비틀 다가와 말했다.


"야.. 헉.. 헉.. 고맙다는 말은 나한테 해야지, 김지랄."


"어 그래. 고마웠어. 진짜 생각보다 잘해줬다."


내가 윤호를 보면서 말하는데 갑자기 눈 앞에 밝은 빛이 쏟아졌다. 얼굴 앞을 팔로 가리면서 쳐다보니 봉고차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우와아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그 차가 우리 앞에서 속력을 줄이고 옆으로 틀면서 멈추었다. 그리고 운전석이 열리더니 사람이 한 명 나왔다. 집에서 안 나오겠다고 했던 수정 형이었다!


"아아, 너희들 정말로 해냈구나!"


"수정형? 여긴 어떻게.."


태완이가 얼이 빠져 말하는데 수정형이 우리 뒤를 쳐다보더니 얼굴을 찡그리면서 뒤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기다란 병에 심지같은 게 꽂혀있는 기묘한 물건이었다.


"처먹어, 좀비새끼들!"


그가 욕설을 외치며 우리 뒤를 향해 그걸 던지자 우리는 깜짝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우리 뒤엔 윤호가 끌고 온 좀비무리들이 있었다. 그 병이 빙글빙글 돌아 놈들 앞에 떨어지자 푸화악 하는 소리가 나더니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 물건은 다름아닌 화염병이었다!


"자, 이틈에 빨리! 설명은 나중에 하고!"


"수정형, 형 진짜.."


"꺄아아아악! 얘들아 저기!"


우리가 막 차 문을 열려는데 수정형이 온 길 쪽에서 무언가가 마구 뛰어오는 게 보였다. 좀비들이었다. 필시 수정형이 몰고 온 차의 기척에 끌려 따라온 것이겠지. 어디를 어떻게 해서 왔는지 뛰는 좀비가 다섯마리나 붙어있었다. 수정형은 화염병을 하나 더 꺼내면서 말했다.


"자, 빨리 타! 빨리 가자구! 빨리빨리!"


"으아아, 저새끼들 끄떡도 안해!"


재복이가 내 뒤를 가리키며 외치자 나는 뒤를 쳐다보았다. 아까 수정형이 던진 화염병 때문에 온 몸에 불이 붙었는데도 불구하고, 윤호가 끌고왔던 그 한 무리의 좀비는 한 덩어리의 불인형이 되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신발, 이러나저러나 대가리를 깨빡쳐야 뒈진다고 저 새끼들은!"


말투가 거칠어진 나는 마구 욕을 내뱉으면서 차에 올라탔다. 차에 하나 둘 친구들이 올라타고 이윽고 재복이가 마지막으로 올라타며 뒷문을 닫자, 운전석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정형은 화염병의 심지에 불을 붙힌 후 달려오는 좀비들에게 그걸 던지며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에는 시동이 걸려 있었기에 수정형은 별 무리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끼기기기기긱


심하게 엑셀을 밟으며 출발한 차는 타이어에서 엄청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출발했다. 수정형은 핸들을 마구 돌려 몸에 불이 붙은 채 그새 여기까지 달려온 좀비들을 빙 돌아 지나갔다. 창가쪽에 앉아있던 나는 창가에서 고개를 빼 뒤를 쳐다보았다. 달리는 좀비들은 주저없이 방향을 돌려 우리 쪽으로 마구 달려왔고, 아까 윤호가 달리던 구역에서 조금 떨어지자 어딘가의 골목에서 멀쩡한 뛰는 좀비 한놈이 따라붙었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수정형 저새끼들 막 쫒아와요!"


"제길, 나도 몰라! 어떻게 좀 해봐!"


나는 차 안에 앉아있는 친구놈들을 쳐다보았다. 재복이와 여친은 모르겠다는 식으로 고개를 저으며 나를 쳐다보았고, 윤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상태. 태완이는 나를 마주보더니 빙긋 웃으며 타정총을 꺼내들었다. 그래, 저게 있었지.


태완이에게만 저격을 맡길 수는 없다. 장거리 무기가 뭐 없나 하고 살피던 나는 내가 집에서 무장할 때 가져왔던 비도를 기억해냈다. 나는 품속을 뒤져 비도를 하나 꺼내며 말했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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