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전력으로 달리고 있던 나는 골목을 돌아서는 순간 보인 좀비에게 온 힘을 다해 앞차기를 내질렀다. 어깨춤에 내 발차기를 맞은 그 놈은 내게 팔을 뻗다가 그대로 날아가 자빠지며 두 바퀴를 굴렀다. 이 놈들을 한 마리라도 더 없애야 이 동네에 남은 생존자들에게 득이 될 터.. 하지만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빨리와 김아름!"
"헉.. 헉.. 네!"
나는 식칼창을 꼬나들고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하루에 한번씩은 꼭 로드웍을 하는데다 격투기로 단련된 나를 평범한 여고생이 따라오는 건 굉장히 힘들 테지. 하지만 아름이는 잘 따라와주었다. 나는 속으로 은근히 감탄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수정형과 태완이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돌아가려면 이대로 주욱 유턴을 해야 한다.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니 그닥 거리껴질 것은 없지만 우리들의 안전수위를 낮추는 것이 또 하나 생겼으니.. 바로 아까 만났던 냄새맡은 변종 좀비. 우리가 정신없이 싸우는데 그런 놈이 몇 마리나 나타난다면 진짜 방법이 없다. 그나마 놈들은 평소엔 네 발로 기어다니는 것 같으니 길을 가다 만난다면 그럭저럭 판별이 되겠지만, 뭐 판별한다고 해서 별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미치겠군.."
나는 이를 갈며 다시 골목을 돌았다. 놈들은 확실히 위험하지만 지금 무엇보다 급한 건 할아버지의 생명이다. 나는 입에서 피를 흘리시며 나에게 총가방을 건네주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동료들을 이끌고 돌아가야 한다. 만약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그 할아버지 근처에 좀비들이 나타난다면..
나는 할아버지가 좀비들에게 뜯어먹히는 상상을 하다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지금! 이런 상황에서 불길한 상상을 하면 거의 99프로 실현된다는 걸 아직도 모르고 있는거냐! 정신차려 김진환!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마치 몇 시간동안 달려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마지막 골목을 돌았다. 쭉 펴진 길이 내 눈앞에 보이는 순간 저만치서 좀비 한 마리가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엔 타정총을 든 수정형과 검을 뽑아들고 있는 태완이가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며 외쳤다.
"어이!"
"진환아! 무사했구나!"
수정형이 손을 흔들며 내 쪽으로 뛰어왔다. 나는 달리던 발을 멈추고 아름이를 살폈다. 녀석은 심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 해 보였다. 나는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안에서 물을 꺼내 아름이에게 건넸다. 아름이는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생수통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몇 모금을 마신 아름이에게서 물통을 받아드는데 뒤에서 수정형이 다가왔다.
"우리 쪽 길목에 편의점이 있었어! 편의점은 무사해! 너희들은 별일 없었어? 앗 진환이 너 귀가.."
수정형이 뜯어진 내 오른쪽 귀를 보며 깜짝 놀라 말했다. 나는 물병을 입에서 떼고 아직 피가 멈추지 않은 귀를 손으로 누르면서 말했다.
"..쿨럭! 별거 아니예요. 안에 좀비들은요?"
"아, 응. 없었어. 근데 문이 잠겨있어서.. 유리를 깨고 들어간다면 보강하는데 손이 많이 갈 거야."
내가 입가를 닦은 뒤 다시 물을 들이키는데 태완이가 다가와 말했다.
"사다리같은 게 있어야 할 거야. 옥상으로 올라가서 거기 출입구로 들어가면 될 테니까. 높은데 있는 출입구야 부숴도 상관없고. 그나저나 너 귀는 어떻게 된 거야?"
태완이가 말을 마치고 내가 물을 다 마실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아름이가 말했다.
"저기요,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위험해요!"
"응? 무슨 소리야?"
"우리가 갔던 쪽에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우리한테 총도 주시고.. 그런데, 그런데 이상한 좀비가 와서 우리가 할아버지를 거기에 놓고..!"
"내가 말할게. 넌 물이나 더 마셔."
내가 기침을 한 번 하며 입가를 다시금 닦고 아름이에게 물을 건넸다. 정리를 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던 아름이는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 내가 녀석을 바라보며 물통을 까딱까딱 흔들자 한숨을 쉬고는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다친 오른쪽 귀를 손으로 누르면서 말했다.
"저쪽에 생존자 할아버지가 한 분 있어. 지금 구하러 가야 해. 아 그리고 붕대좀 줘."
"좀비는?"
태완이가 자기 가방을 열고 응급치료 물품을 꺼내며 물었다.
"얼마 없어. 아 그리고 두 가지 소식이 있어. 좋은 것과 나쁜 것. 뭐부터 들을래?"
수정형과 태완이는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윽고 수정형이 말했다.
"좋은 것."
"그 분이 우리한테 총을 주셨어."
"총?"
"진짜 총? 어떻게?"
수정형이 태완이에게서 붕대를 건네받고 내게 주면서 말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뭉친 붕대로 귀를 누르며 말했다.
"나도 몰라요. 하지만 내 눈 앞에서 발포하는 걸 봤으니까 진짜 총인건 확실해요.. 내가 죽을뻔한 상황에서 날 구해준 고마운 녀석이니까. 그리고 지금 여기에 가지고 있어요."
나는 다른 쪽 어깨에 매고 있던 작은 검은색 가방을 탁 쳤다. 수정형이 손을 뻗자 나는 수정형에게 총가방을 건넸다. 형이 총가방의 지퍼를 여는데 태완이가 말했다.
"죽을뻔한 상황이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그게 나쁜 소식이지.. 다른 변종 좀비를 확인했어."
"어떤?"
"네 발로 기어다니는데.. 냄새를 맡고 반응해. 무쟈게 빠르고, 세. 이 상처도 그 새끼한테 당한거야."
"잠깐 환부좀 보자."
태완이가 내 손을 치우며 말했다. 내 상처를 요리조리 살펴보던 태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물어뜯긴 건 아니지? 이빨흔적 같지는 않아."
"나도 모르겠어. 그 새끼가 어찌나 빠른지, 옆으로 홱 지나갔는데 귀에서 피가 팍~ 하더라. 그리고 정신 못차려서 헤롱거리는 나한테 그 새끼가 달려드는 순간에 할아버지가 총으로 탕탕탕!"
나는 짐짓 손으로 방아쇠 모양을 만들어 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오빠. 이제 거기 치료좀 해요. 물 뿌려드릴까요?"
아름이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을 제지하며 말했다.
"아냐. 그건 식수야. 나중에 수도가 콸콸 나오는데서 씻으면서 해도 안 늦어. 지금은 약이나 바르고 붕대 붙혀놓으면 돼."
글쎄, 곱게 자란 놈들이야 모르겠지만 나는 생으로 팔이 부러져본 적도 있고.. 머리통에 발길질 당하거나 배가 시퍼렇게 될 정도로 주먹에 맞는 건 일상다반사다. 맨날 몸에 멍을 달고 다니는지라 이렇게 다쳤어도 그럭저럭 참을 만 했다.
나는 왁시근거리는, 반쪽밖에 남지 않은 귀를 만지작거리며 태완이에게 약을 달라고 했다. 마데카솔을 들고 안 보이는 곳에 약을 바르며 씨부렁거리는 나를 보던 수정형이 아예 내 옆에 주저앉아 나를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대충 하고 빨리 출발하죠. 그 분 상당히 위독한 상태예요. 걷지도 못하셔서 만약 그 분 근처에 좀비들이라도 나타난다면.."
"심정은 알겠지만 치료는 굉장히 중요해 진환아. 네가 만약 좀비를 죽이느라 얼굴에 피가 튀었는데 그게 귀로 들어가봐.. 감염된다구."
그러고보니 그랬다. 놈들의 피는 감염성이 있지.. 나는 재복이를 구하다가 내가 죽여버린 좀비로 변한 그 커플들을 생각하며 입술을 꽉 물었다.
"붕대 꽉 조여서 붙일테니까 참아."
"걱정마요."
형이 붕대를 둘둘 감으며 점점 환부가 조여들어오자 욱신거리던 귀의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이윽고 거의 귀를 다 가릴 정도로 붕대를 감은 뒤 형이 말했다.
"자 이제 가자. 그리고 그 총, 내가 써도 될까?"
"그러는 게 좋겠어요. 나도 사격장에는 가 봤었지만 형보다는 못할 테니까.. 타정총은 누가 쥐죠?"
"아름이가 드는 게 좋겠지만.. 어때?"
"총은 한 번도 쏴본 적 없어요."
아름이가 말했다. 태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검의 손잡이를 쥐며 말했다.
"그럼 그냥 두는게 낫겠어. 장거리 무기를 미숙자가 드는 것처럼 위험한 일도 없으니.. 가방에 넣자구."
"무거운데.."
"이것도 훌륭한 무기야. 버리면 안 돼."
"누가 버린대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내 말은 사실이었다. 타정총은 대략 3킬로 정도의 무게로, 일반 권총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의 무게였다. 더군다나 부피는 더 커서 손이 작은 여자들은 쓰기가 힘들 정도다. 수정형은 타정총을 태완이의 가방에 넣고 자기가 그것을 짊어들었다.
"근데 그거 진짜 총인데.. 어디 쓸 수 있겠어요?"
"잠깐 쏴볼게."
철컥
형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탄창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살핀 뒤 뭔가를 중얼거리며 총에 장전했다.
"베레타.. 12발인가. 꽤 무거운걸. 사격장의 총이랑은 달라."
타앙-
총알은 골목의 오른쪽 벽에 박혔다. 파악 하면서 벽이 패이고 돌가루가 튀는게 굉장히 위력적으로 보였다. 나는 아직도 한쪽 눈을 감고 있는 형에게 물었다.
"어때요?"
"괜찮을 것 같아. 타정총보다 다루기 힘들지만 익숙해지면 든든해지겠지. 너도 쏴 볼래? 사격 해 봤다며."
"나야 뭐.."
나는 중얼거리면서도 살짝 들떠 총을 집어들었다. 실탄이 든 자동권총을 한국시내 한복판에서 쏴 볼 기회는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살짝 들떠서 형이 아까 총을 쏘았던 벽 쪽에 조준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면서 형에게 총을 돌려주었다.
"왜?"
"할아버지를 구해야 해요. 병신같이 들떠서 잊고 있었어요. 빨리. 시범사격은 나중에 해도 안 늦으니까."
"아 그랬지! 얘들아, 빨리 가자!"
수정형도 그제서야 생각이 났는지 자기 머리를 탁 친 뒤 태완이와 아름이를 재촉했다. 나는 가방을 고쳐매고 아까 우리가 갔던 길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 나와 아름이가 밀치면서 지나갔던 골목에 있던 너댓마리의 좀비들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하다가 할아버지를 구출하는 순간 집이 무너지는 걸 감지한 좀비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었던 것을 기억해내며 말했다.
"여기 좀비들이 있었는데, 저 앞쪽에 있는 무너진 집 앞에 몰려있을 거예요."
"드디어 이 녀석을 쓸 때가 왔구나!"
수정형이 화염병을 꺼내들며 말했다. 태완이가 형을 보고 말했다.
"글쎄.. 별로 소용없어 보이던데요. 저번에 봤을 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 애초에 대량살상 무기는 내 화염병밖에.."
"어?"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아름이가 갑자기 외쳤다. 내가 아름이에게 물었다.
"왜 그래?"
"좀비들이 없어요!"
"뭐?"
우리는 동시에 외치며 달음박질을 멈추고 앞을 쳐다보았다. 아름이의 말대로 집이 무너진 흔적은 있는데 좀비들은 보이질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났으니까 여기저기로 흩어졌겠지 뭐."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위험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내 뒤로 다른 셋이 황급히 따라붙으며 말했다.
"뭐야, 왜 그래 진환아?"
"아이고 힘도 좋지.."
수정형이 투덜거렸지만 나는 아랑곳않고 계속 달렸다.
"제기랄.. 제기랄.. 그럴 리가 없어.."
"왜 그래요 오빠?"
우리가 할아버지를 두고 왔던 곳은 여기서 멀지 않다. 기껏해야 1~2분 거리. 만약 흩어진 좀비놈들이 그 할아버지의 근처로 갔다면..
다친 할아버지를 업고도 금방 도달했던 거리다. 전력으로 달린 나는 어렵지 않게 할아버지를 두고 왔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 불이다!"
불?
확실히 화끈거리는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변종놈과 싸웠던 거리까지 다가가 옆으로 돌아 우리가 몸을 숨겼던 벽 쪽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으.."
할아버지가 누워있었던 곳에 있는 그을린 시체.. 그리고 그 일대와 함께 불에 타고 있는 좀비들을 볼 수 있었다.
"으으아아아아아!!"
나는 다음 순간 눈이 뒤집어져 손도끼를 빼들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내 뒤에서 수정형이 달려들어 나를 붙잡으며 외쳤다.
"진정해 진환아! 태완아 도와줘!"
"으아아아!! 신발 강아지들!! 죽여버릴거야!! 으아아아!!"
마구 괴성을 지르며 수정형와 태완이에게 붙잡혀 몸부림치고 있는 내 옆에서 아름이가 바들바들 떨면서 말했다.
"어.. 어째서 불이? 그리고 할아버지는.. 도.. 돌아가신 거예요?"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또! 또 죽었어! 또 죽었다고 신발!! 으아아아아!!"
"진환아 진정하라고!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좀 해 봐!"
형이 나를 겨우 제지하고 있는데 태완이가 외쳤다.
"형! 저놈들이 와요!"
내가 몸무림치며 난리를 치는 바람에, 불에 타고 있는데도 멀쩡한 좀비놈들이 우리의 기척을 알아채고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구하려 했던 사람의 시체는 까맣게 그을려져 뒤쪽에서 연기를 내고 있고, 우리 앞으로는 불이 붙은채 비척비척 걸어오고 있는 살아있는 시체들..
여기는 지옥이다.
"처음이지만 별수 없지.. 아름아, 태완아! 진환이 끌고 일단 후퇴하자! 빨리!"
철컥
아직도 몸을 뻗대며 끅끅거리고 있는 나를 밀치며 수정형이 총을 쏴 좀비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태완이는 나를 급히 말리느라 땅에 내려놓았던 검을 집어넣은 뒤 아름이와 함께 나를 붙잡고 질질 끌다시피 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난리치는 나를 붙잡고 이동한 우리 일행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애초의 목적지였던 편의점 앞까지 와 있었다. 반쯤 패닉상태에 빠져있던 나는 그동안 누워있었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늘이 보였다. 나는 머리를 잡으며 몸을 일으키고 계단에 걸터앉았다.
"좀 진정이 돼?"
수정형이 내게 물을 건네며 말했다. 나는 생수통을 받아든 채 마시지 않고 멍하지 바닥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이니까 더욱이 그런거야. 넌 최선을 다했고, 난 그걸 알아. 앞으로 그런 일이 없길 바래야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딱히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나는 대뜸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형은 가볍게 웃을 따름이었다.
"이제 피난지도 확보했으니 전화나 해 볼까. 이쪽은 좀비들도 없겠다.. 아예 휴전선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겠는데 그래? 여기로 이사한 다음에, 한 번만 더 모험을 해서 그 생존자 박스를 확보하는거야. 그래서 전원 팔찌를 갖게 되면 군대가 남하할 때 모두 특별구호조치인가 뭔가를 받을 수 있는거지."
태완이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편의점 옆에 붙어있는 건물들을 쳐다보았다. 두 빌라 다 편의점보다 높았는데, 왼쪽 건물은 옥상에서 편의점 옥상으로 뛰어내릴 만 해 보였고, 오른쪽 건물은 키가 굉장히 컸지만 편의점 옥상으로 난입할만한 적당한 높이에 창문이 하나 달려있는 게 보였다.
[루카] (좀비물) 살기위해 뛰어라! (13) 다시 한번
안녕하세요, 루카입니다 ^-^
많이 기다리셨을련지... ㅎ 연재 시작합니다 ^-^
출처 : 웃대 ^-^
=================================================================
"우오오오! 비켜!"
퍼어억
반 전력으로 달리고 있던 나는 골목을 돌아서는 순간 보인 좀비에게 온 힘을 다해 앞차기를 내질렀다. 어깨춤에 내 발차기를 맞은 그 놈은 내게 팔을 뻗다가 그대로 날아가 자빠지며 두 바퀴를 굴렀다. 이 놈들을 한 마리라도 더 없애야 이 동네에 남은 생존자들에게 득이 될 터..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빨리와 김아름!"
"헉.. 헉.. 네!"
나는 식칼창을 꼬나들고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하루에 한번씩은 꼭 로드웍을 하는데다 격투기로 단련된 나를 평범한 여고생이 따라오는 건 굉장히 힘들 테지. 하지만 아름이는 잘 따라와주었다. 나는 속으로 은근히 감탄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수정형과 태완이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돌아가려면 이대로 주욱 유턴을 해야 한다.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니 그닥 거리껴질 것은 없지만 우리들의 안전수위를 낮추는 것이 또 하나 생겼으니.. 바로 아까 만났던 냄새맡은 변종 좀비. 우리가 정신없이 싸우는데 그런 놈이 몇 마리나 나타난다면 진짜 방법이 없다. 그나마 놈들은 평소엔 네 발로 기어다니는 것 같으니 길을 가다 만난다면 그럭저럭 판별이 되겠지만, 뭐 판별한다고 해서 별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미치겠군.."
나는 이를 갈며 다시 골목을 돌았다. 놈들은 확실히 위험하지만 지금 무엇보다 급한 건 할아버지의 생명이다. 나는 입에서 피를 흘리시며 나에게 총가방을 건네주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동료들을 이끌고 돌아가야 한다. 만약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그 할아버지 근처에 좀비들이 나타난다면..
나는 할아버지가 좀비들에게 뜯어먹히는 상상을 하다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지금! 이런 상황에서 불길한 상상을 하면 거의 99프로 실현된다는 걸 아직도 모르고 있는거냐! 정신차려 김진환!
"헉.. 헉.. 아직 멀었어요 오빠..? 헉.."
"다 왔어! 바로 이 앞이야!"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마치 몇 시간동안 달려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마지막 골목을 돌았다. 쭉 펴진 길이 내 눈앞에 보이는 순간 저만치서 좀비 한 마리가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엔 타정총을 든 수정형과 검을 뽑아들고 있는 태완이가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며 외쳤다.
"어이!"
"진환아! 무사했구나!"
수정형이 손을 흔들며 내 쪽으로 뛰어왔다. 나는 달리던 발을 멈추고 아름이를 살폈다. 녀석은 심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 해 보였다. 나는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안에서 물을 꺼내 아름이에게 건넸다. 아름이는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생수통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몇 모금을 마신 아름이에게서 물통을 받아드는데 뒤에서 수정형이 다가왔다.
"우리 쪽 길목에 편의점이 있었어! 편의점은 무사해! 너희들은 별일 없었어? 앗 진환이 너 귀가.."
수정형이 뜯어진 내 오른쪽 귀를 보며 깜짝 놀라 말했다. 나는 물병을 입에서 떼고 아직 피가 멈추지 않은 귀를 손으로 누르면서 말했다.
"..쿨럭! 별거 아니예요. 안에 좀비들은요?"
"아, 응. 없었어. 근데 문이 잠겨있어서.. 유리를 깨고 들어간다면 보강하는데 손이 많이 갈 거야."
내가 입가를 닦은 뒤 다시 물을 들이키는데 태완이가 다가와 말했다.
"사다리같은 게 있어야 할 거야. 옥상으로 올라가서 거기 출입구로 들어가면 될 테니까. 높은데 있는 출입구야 부숴도 상관없고. 그나저나 너 귀는 어떻게 된 거야?"
태완이가 말을 마치고 내가 물을 다 마실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아름이가 말했다.
"저기요,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위험해요!"
"응? 무슨 소리야?"
"우리가 갔던 쪽에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우리한테 총도 주시고.. 그런데, 그런데 이상한 좀비가 와서 우리가 할아버지를 거기에 놓고..!"
"내가 말할게. 넌 물이나 더 마셔."
내가 기침을 한 번 하며 입가를 다시금 닦고 아름이에게 물을 건넸다. 정리를 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던 아름이는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 내가 녀석을 바라보며 물통을 까딱까딱 흔들자 한숨을 쉬고는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다친 오른쪽 귀를 손으로 누르면서 말했다.
"저쪽에 생존자 할아버지가 한 분 있어. 지금 구하러 가야 해. 아 그리고 붕대좀 줘."
"좀비는?"
태완이가 자기 가방을 열고 응급치료 물품을 꺼내며 물었다.
"얼마 없어. 아 그리고 두 가지 소식이 있어. 좋은 것과 나쁜 것. 뭐부터 들을래?"
수정형과 태완이는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윽고 수정형이 말했다.
"좋은 것."
"그 분이 우리한테 총을 주셨어."
"총?"
"진짜 총? 어떻게?"
수정형이 태완이에게서 붕대를 건네받고 내게 주면서 말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뭉친 붕대로 귀를 누르며 말했다.
"나도 몰라요. 하지만 내 눈 앞에서 발포하는 걸 봤으니까 진짜 총인건 확실해요.. 내가 죽을뻔한 상황에서 날 구해준 고마운 녀석이니까. 그리고 지금 여기에 가지고 있어요."
나는 다른 쪽 어깨에 매고 있던 작은 검은색 가방을 탁 쳤다. 수정형이 손을 뻗자 나는 수정형에게 총가방을 건넸다. 형이 총가방의 지퍼를 여는데 태완이가 말했다.
"죽을뻔한 상황이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그게 나쁜 소식이지.. 다른 변종 좀비를 확인했어."
"어떤?"
"네 발로 기어다니는데.. 냄새를 맡고 반응해. 무쟈게 빠르고, 세. 이 상처도 그 새끼한테 당한거야."
"잠깐 환부좀 보자."
태완이가 내 손을 치우며 말했다. 내 상처를 요리조리 살펴보던 태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물어뜯긴 건 아니지? 이빨흔적 같지는 않아."
"나도 모르겠어. 그 새끼가 어찌나 빠른지, 옆으로 홱 지나갔는데 귀에서 피가 팍~ 하더라. 그리고 정신 못차려서 헤롱거리는 나한테 그 새끼가 달려드는 순간에 할아버지가 총으로 탕탕탕!"
나는 짐짓 손으로 방아쇠 모양을 만들어 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오빠. 이제 거기 치료좀 해요. 물 뿌려드릴까요?"
아름이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을 제지하며 말했다.
"아냐. 그건 식수야. 나중에 수도가 콸콸 나오는데서 씻으면서 해도 안 늦어. 지금은 약이나 바르고 붕대 붙혀놓으면 돼."
글쎄, 곱게 자란 놈들이야 모르겠지만 나는 생으로 팔이 부러져본 적도 있고.. 머리통에 발길질 당하거나 배가 시퍼렇게 될 정도로 주먹에 맞는 건 일상다반사다. 맨날 몸에 멍을 달고 다니는지라 이렇게 다쳤어도 그럭저럭 참을 만 했다.
나는 왁시근거리는, 반쪽밖에 남지 않은 귀를 만지작거리며 태완이에게 약을 달라고 했다. 마데카솔을 들고 안 보이는 곳에 약을 바르며 씨부렁거리는 나를 보던 수정형이 아예 내 옆에 주저앉아 나를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대충 하고 빨리 출발하죠. 그 분 상당히 위독한 상태예요. 걷지도 못하셔서 만약 그 분 근처에 좀비들이라도 나타난다면.."
"심정은 알겠지만 치료는 굉장히 중요해 진환아. 네가 만약 좀비를 죽이느라 얼굴에 피가 튀었는데 그게 귀로 들어가봐.. 감염된다구."
그러고보니 그랬다. 놈들의 피는 감염성이 있지.. 나는 재복이를 구하다가 내가 죽여버린 좀비로 변한 그 커플들을 생각하며 입술을 꽉 물었다.
"붕대 꽉 조여서 붙일테니까 참아."
"걱정마요."
형이 붕대를 둘둘 감으며 점점 환부가 조여들어오자 욱신거리던 귀의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이윽고 거의 귀를 다 가릴 정도로 붕대를 감은 뒤 형이 말했다.
"자 이제 가자. 그리고 그 총, 내가 써도 될까?"
"그러는 게 좋겠어요. 나도 사격장에는 가 봤었지만 형보다는 못할 테니까.. 타정총은 누가 쥐죠?"
"아름이가 드는 게 좋겠지만.. 어때?"
"총은 한 번도 쏴본 적 없어요."
아름이가 말했다. 태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검의 손잡이를 쥐며 말했다.
"그럼 그냥 두는게 낫겠어. 장거리 무기를 미숙자가 드는 것처럼 위험한 일도 없으니.. 가방에 넣자구."
"무거운데.."
"이것도 훌륭한 무기야. 버리면 안 돼."
"누가 버린대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내 말은 사실이었다. 타정총은 대략 3킬로 정도의 무게로, 일반 권총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의 무게였다. 더군다나 부피는 더 커서 손이 작은 여자들은 쓰기가 힘들 정도다. 수정형은 타정총을 태완이의 가방에 넣고 자기가 그것을 짊어들었다.
"근데 그거 진짜 총인데.. 어디 쓸 수 있겠어요?"
"잠깐 쏴볼게."
철컥
형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탄창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살핀 뒤 뭔가를 중얼거리며 총에 장전했다.
"베레타.. 12발인가. 꽤 무거운걸. 사격장의 총이랑은 달라."
타앙-
총알은 골목의 오른쪽 벽에 박혔다. 파악 하면서 벽이 패이고 돌가루가 튀는게 굉장히 위력적으로 보였다. 나는 아직도 한쪽 눈을 감고 있는 형에게 물었다.
"어때요?"
"괜찮을 것 같아. 타정총보다 다루기 힘들지만 익숙해지면 든든해지겠지. 너도 쏴 볼래? 사격 해 봤다며."
"나야 뭐.."
나는 중얼거리면서도 살짝 들떠 총을 집어들었다. 실탄이 든 자동권총을 한국시내 한복판에서 쏴 볼 기회는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살짝 들떠서 형이 아까 총을 쏘았던 벽 쪽에 조준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면서 형에게 총을 돌려주었다.
"왜?"
"할아버지를 구해야 해요. 병신같이 들떠서 잊고 있었어요. 빨리. 시범사격은 나중에 해도 안 늦으니까."
"아 그랬지! 얘들아, 빨리 가자!"
수정형도 그제서야 생각이 났는지 자기 머리를 탁 친 뒤 태완이와 아름이를 재촉했다. 나는 가방을 고쳐매고 아까 우리가 갔던 길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 나와 아름이가 밀치면서 지나갔던 골목에 있던 너댓마리의 좀비들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하다가 할아버지를 구출하는 순간 집이 무너지는 걸 감지한 좀비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었던 것을 기억해내며 말했다.
"여기 좀비들이 있었는데, 저 앞쪽에 있는 무너진 집 앞에 몰려있을 거예요."
"드디어 이 녀석을 쓸 때가 왔구나!"
수정형이 화염병을 꺼내들며 말했다. 태완이가 형을 보고 말했다.
"글쎄.. 별로 소용없어 보이던데요. 저번에 봤을 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 애초에 대량살상 무기는 내 화염병밖에.."
"어?"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아름이가 갑자기 외쳤다. 내가 아름이에게 물었다.
"왜 그래?"
"좀비들이 없어요!"
"뭐?"
우리는 동시에 외치며 달음박질을 멈추고 앞을 쳐다보았다. 아름이의 말대로 집이 무너진 흔적은 있는데 좀비들은 보이질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났으니까 여기저기로 흩어졌겠지 뭐."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위험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내 뒤로 다른 셋이 황급히 따라붙으며 말했다.
"뭐야, 왜 그래 진환아?"
"아이고 힘도 좋지.."
수정형이 투덜거렸지만 나는 아랑곳않고 계속 달렸다.
"제기랄.. 제기랄.. 그럴 리가 없어.."
"왜 그래요 오빠?"
우리가 할아버지를 두고 왔던 곳은 여기서 멀지 않다. 기껏해야 1~2분 거리. 만약 흩어진 좀비놈들이 그 할아버지의 근처로 갔다면..
다친 할아버지를 업고도 금방 도달했던 거리다. 전력으로 달린 나는 어렵지 않게 할아버지를 두고 왔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 불이다!"
불?
확실히 화끈거리는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변종놈과 싸웠던 거리까지 다가가 옆으로 돌아 우리가 몸을 숨겼던 벽 쪽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으.."
할아버지가 누워있었던 곳에 있는 그을린 시체.. 그리고 그 일대와 함께 불에 타고 있는 좀비들을 볼 수 있었다.
"으으아아아아아!!"
나는 다음 순간 눈이 뒤집어져 손도끼를 빼들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내 뒤에서 수정형이 달려들어 나를 붙잡으며 외쳤다.
"진정해 진환아! 태완아 도와줘!"
"으아아아!! 신발 강아지들!! 죽여버릴거야!! 으아아아!!"
마구 괴성을 지르며 수정형와 태완이에게 붙잡혀 몸부림치고 있는 내 옆에서 아름이가 바들바들 떨면서 말했다.
"어.. 어째서 불이? 그리고 할아버지는.. 도.. 돌아가신 거예요?"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또! 또 죽었어! 또 죽었다고 신발!! 으아아아아!!"
"진환아 진정하라고!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좀 해 봐!"
형이 나를 겨우 제지하고 있는데 태완이가 외쳤다.
"형! 저놈들이 와요!"
내가 몸무림치며 난리를 치는 바람에, 불에 타고 있는데도 멀쩡한 좀비놈들이 우리의 기척을 알아채고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구하려 했던 사람의 시체는 까맣게 그을려져 뒤쪽에서 연기를 내고 있고, 우리 앞으로는 불이 붙은채 비척비척 걸어오고 있는 살아있는 시체들..
여기는 지옥이다.
"처음이지만 별수 없지.. 아름아, 태완아! 진환이 끌고 일단 후퇴하자! 빨리!"
철컥
아직도 몸을 뻗대며 끅끅거리고 있는 나를 밀치며 수정형이 총을 쏴 좀비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태완이는 나를 급히 말리느라 땅에 내려놓았던 검을 집어넣은 뒤 아름이와 함께 나를 붙잡고 질질 끌다시피 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불에 타서 죽었다.
좀비들에게 둘러쌓여 죽었다.
다시.
사람이.
내 눈앞에서.
알고 있었는데.
----------------------------------------------------------------------------------------------------
"...."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난리치는 나를 붙잡고 이동한 우리 일행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애초의 목적지였던 편의점 앞까지 와 있었다. 반쯤 패닉상태에 빠져있던 나는 그동안 누워있었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늘이 보였다. 나는 머리를 잡으며 몸을 일으키고 계단에 걸터앉았다.
"좀 진정이 돼?"
수정형이 내게 물을 건네며 말했다. 나는 생수통을 받아든 채 마시지 않고 멍하지 바닥을 바라보았다.
결국 그 할아버지는 죽었다. 불에 타서. 혹은 놈들에게 둘러쌓인 뒤 물어뜯겨서.
..아니다.
나는 그 냄새맡는 놈을 유인할 때 쓰고 두고온 화염병을 기억해냈다.
그걸 쓰셨던 건가.. 좀비들이 다가오니까.
"죽기전의 선물이다 이건가."
나는 피식 웃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그 분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도. 재복이를 구하러 들어갔을 때도, 조금만 더 빨랐으면 그 누나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절대로 용납 못해.."
"응? 뭐라고 했어?"
수정형이 내게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다짐할 뿐이었다. 앞으로 더이상 내 눈앞에 나타난 생존자를 죽게 놔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태완이랑 아름이는요?"
"사다리 구하러 갔어. 이 골목 앞쪽에 운좋게도 철물점이 있더라구. 아예 올때 가져오려고 했지만 너 끌고오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하하."
"흉한 꼴을 보였네요."
"그보다 어떻게 된 거야? 왜 거기가 불에 타고 있었던 거지?"
나는 형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말을 들은 형은 눈을 감고 고개를 두어번 주억거린 뒤 말했다.
"좋은 분이 가셨구나."
"..그런가요."
머리가 비었다 라는 게 이런 말일까.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아까 본 광경과 그 서점에서 서로를 물어뜯던 커플들의 모습이 눈앞에 교차되어 나타날 뿐.
"너무 부담갖지 마."
수정형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하자 나는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형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이니까 더욱이 그런거야. 넌 최선을 다했고, 난 그걸 알아. 앞으로 그런 일이 없길 바래야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딱히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나는 대뜸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형은 가볍게 웃을 따름이었다.
"이제 피난지도 확보했으니 전화나 해 볼까. 이쪽은 좀비들도 없겠다.. 아예 휴전선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겠는데 그래? 여기로 이사한 다음에, 한 번만 더 모험을 해서 그 생존자 박스를 확보하는거야. 그래서 전원 팔찌를 갖게 되면 군대가 남하할 때 모두 특별구호조치인가 뭔가를 받을 수 있는거지."
수정형은 싱글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들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휴대폰에서 재복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건, 내가 알기론 수정형과 태완이, 재복이와 그 여친.. 그리고 그 다른 누나. 윤호는 집에 두고 왔고, 아름이는 학원에, 나는 없다. 하나 있는게 편할텐데.
"어, 이재복 군.. 이었나? 나 수정이 형이야."
-아 안녕하세요! 편의점은 찾았어요?
"응. 거긴 어때?"
-순조로워요. 저 뒤 구덩이에 좀비 한 마리가 빠지긴 했는데, 떨어진 다음에 안 움직이던데요. 뭐 대충 그런 상황이예요. 저희 지금 점심식사 하고 있는데 그쪽은 어때요?
"뭐, 우린 아지트 이동준비 하고 있지. 밥은 그 뒤에 먹어도 안 늦어."
"우리 왔어요!"
수정형이 재복이와 한참 대화를 하고 있는데 태완이와 아름이가 돌아왔다. 근데 빈손이었다.
"사다리는?"
"없더라구. 세상만사 다 이런 거 아니겠어, 하하."
태완이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럼 위로 갈 방법은 없는건가?
수정형이 태완이의 말을 듣더니 말했다.
"곤란한데.. 응 재복아. 이제 말 놓아도 되겠지? 응, 응. 그럼 조금있다 다시 전화할게. 모두들 준비하고 있으라고 해 줬으면 고맙겠어. 그럼."
수정형은 전화를 끊은 뒤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리를 뚫고 들어가는 건 보류야. 최악의 사태에 출입구가 뚫려 있다는 건 굉장히 클 테니까."
"다른 건물들 옥상으로 해서 들어가는 건 어때요?"
태완이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편의점 옆에 붙어있는 건물들을 쳐다보았다. 두 빌라 다 편의점보다 높았는데, 왼쪽 건물은 옥상에서 편의점 옥상으로 뛰어내릴 만 해 보였고, 오른쪽 건물은 키가 굉장히 컸지만 편의점 옥상으로 난입할만한 적당한 높이에 창문이 하나 달려있는 게 보였다.
"그럼 이것만 끝나고 우리도 돌아가자."
"이사준비 시작이네요."
나를 제외한 셋은 가볍게 웃으면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다른 이의 죽음과 변종 좀비들의 발견..
괜찮은 건가, 이거.
=================================================================
<살기위해 뛰어라>
1ȭ : http://pann.nate.com/b200004270
2ȭ : http://pann.nate.com/b200004281
3ȭ : http://pann.nate.com/b200004294
4ȭ : http://pann.nate.com/b200008195
5ȭ : http://pann.nate.com/b200008204
6ȭ : http://pann.nate.com/b200008220
7ȭ : http://pann.nate.com/b200012346
8ȭ : http://pann.nate.com/b200012362
9ȭ : http://pann.nate.com/b200012371
10ȭ : http://pann.nate.com/b200012387
11ȭ : http://pann.nate.com/b200012396
12ȭ : http://pann.nate.com/b200012404
14ȭ : http://pann.nate.com/b200015388
15ȭ : http://pann.nate.com/b200015395
16ȭ : http://pann.nate.com/b200015403
17ȭ : http://pann.nate.com/b200015410
외전 - 1화 : http://pann.nate.com/b200012428
외전 - 2화 : http://pann.nate.com/b200015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