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아깐 급해서 말을 못 했는데 지혜누나라는 사람, 집앞 차도에 바로 널브러져 있더라구. 안된 일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 집안에 바로 들어가서 얘기할까 했지만 우리쪽도 바빠서 말야."
-미치겠네. 나가기 싫어진다 야.
"너넨 거기 있어라 그럼. 우린 여기서 안전하게 컵라면같이 맛있는 거 먹고 있다가 구조받을테니까."
-강아지! 빨리 와라. 우린 준비 끝났으니까.
"오야. 배 채우고 금방 가마."
삑
나는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고 태완이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태완이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내게 말했다.
"뭐래?"
"뭘 뭐래.. 준비 끝났으니까 빨리 오란다. 피차 얼굴 본지 하룻밤밖에 안 된 사이들이니까 그 누나 죽었다고 해서 난리 칠 사람도 없고. 그 누나한텐 안 된 소리지만."
후루룩
나는 태완이에게 대답한 뒤 사발면을 한껏 들이켰다. 겨우 하루를 거르고 하는 제대로 된 식사(라면을 제대로 된 식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지만)지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입안에 있는 면발을 정신없이 씹어 삼키고 국물을 한번 들이킨 뒤 단무지를 입에 넣고 다시 면을 입에 우겨넣었다.
편의점 옥상에 도착한 우리는, 옥상 문이 잠겨있자 내가 아까 나와 수정형이 뛰어내린 건물의 옥상에 돌입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잠금쇠를 총으로 해결한 뒤 문고리를 깨고 안으로 들어왔다. 만약 위로 좀비들이 온다면 후회될 만한 행동이었지만 당장 급한 건 그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었다. 정면 유리를 깨고 들어오는 것보다야 백배 낫다.
편의점 안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깨고 들어간 문이 연결되어 있는 작은 방은 창고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쪽에 철문이 달려있어 여차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열고 들어가니 안은 사무실. 안에는 작은 TV와 사무용 컴퓨터 등 우리집에 폭격이 떨어졌을 때 잃어버린 중요한 정보수집용 비품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편의점 내부로 나가니 대부분의 물품들이 살아있었고 냉장고까지 가동되고 있었다. 다른쪽에 딸린 창고방 두 개 역시 식량 등 물품을 채운 채로 남아있었다. 하나는 냉장고와 연결되어 있는 상태라 굉장히 추워서 사람이 있기는 힘들어보였지만 뭐 그게 어디냐.
만약 이게 큰길가나 사람이 많은 곳에 있던 편의점이었더라면 우리같은 생존자들의 손에 의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겠지만 다행히도 이곳은 정말로 우리만을 위해 준비된 공간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훌륭한 새 보금자리에 들뜬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제일 먼저 음료수와 컵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밥을 먹으면서 허기가 좀 가시자, 그제야 나는 우리집쪽에 남기고 온 친구들과 연락을 할 생각이 들어 녀석들과 통화를 한 것이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두 팀의 짐을 체크하느라 쭈그리고 앉아서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총에 대한 생각이 나서 열심히 삼각김밥을 먹고 있는 수정형에게 말했다.
"형, 권총 탄약은 넉넉해요?"
"음.."
형은 가늠해보지 않았는지 삼각김밥을 한입 베어문 뒤 남은 삼각김밥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총가방을 들어 안을 뒤적거렸다. 안쪽에 손을 넣고 절그럭거리던 형은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야예 가방의 내용물들을 책상위에 죄다 쏟아내었다. 후두둑 하는 소리에 각자 열심히 HP를 채우고 있던 태완이와 아름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형은 탄창들을 손으로 죽 훑으며 체크한 뒤 총 안에 들어있던 탄창까지 빼내어 체크했다. 형은 한쪽 눈을 감고 빼낸 탄창을 물끄러미 보더니 다시 총에 넣어 장전하고 안전장치를 넣으며 말했다.
"12발들이 탄창이 4개, 그리고 지금 안에 남은 총알이 대략 여섯 개.. 50발 정도 남았다고 보면 돼."
"별로 없네요."
"이정도면 많은 거야. 그 할아버지 아들이라는 사람 대단하네. 일반적인 경관용 리볼버도 아니고 자동권총을 이렇게.."
"한 100발 쯤 있었다면 나도 사격연습 좀 해볼텐데."
내가 아쉬운듯이 말하자 수정형은 웃으면서 총을 정리했다. 형은 콜라를 들고 쪽쪽 마시고 있는 아름이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보다 우리 지금 타정총이라는 좋은 무기 하나를 놀리고 있잖아? 아름이가 쓸 수 있으면 되게 큰 전력이 될텐데 말이지. 진환이도 식칼창을 되찾을 수 있을테고."
아름이가 수정형의 말을 듣고 식칼창을 보더니 나를 미안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나는 됐다는 듯이 팔을 흔든 뒤 몸을 돌려 가방에서 타정총과 못, 화약이 든 봉지를 꺼냈다. 생각보다 묵직한게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두세 발 남은 못 탄창을 빼버린 뒤 새로 탄창을 갈며 아름이에게 말했다.
"쏴봐."
"네?"
"쏴보라고. 그리고 그 말할 때 마다 네 네 하면서 물어보는 것 좀 고치랬지?"
"아, 네. 죄송해요."
"사과하는 것도."
"네.. 네! 죄송해요."
"또 그런다.."
아름이가 계속 내게 꾸벅거리면서 쩔쩔매자 수정형이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 주었다. 타정총 연습을 할 곳은 형이 서 있었던 계산대의 뒤쪽 돌벽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계산대 너머로 넘어가서 벽쪽에 붙어있던 포스터들을 다 뜯어낸 뒤, 계산대에 널브러져 있던 펜들 중 하나를 집어 과녁을 그리고 말했다.
"사격장 같은 곳엘 가서 정식으로 연수를 받으면 뭐 발을 11자로 놓고 어깨높이가 어떻고 눈이 어떻고.. 그런 소리들을 하는데, 지금같은 경우엔 그저 생존수단이니까 그런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지. 편한대로 쏴 봐."
내가 계산대 밖으로 뛰어넘어오자 수정형이 음료수를 마시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 여기로 옮길 거 아냐? 아예 거기를 장거리무기 훈련하는 장소로 정해버리자."
"거 좋네요. 장거리무기래봤자 못총이나 단검정도겠지만."
"근데요.."
아름이가 못총을 쏘려다 말고 신나서 얘기하고 있는 우리 둘에게 말했다.
"여기서 한달만 버티고 있으면, 군대가 도우러 오는 거 아니예요? 그럼 그런 훈련같은 걸 할 필요가 없잖아요."
"네 말도 맞지만 만약의 사태라는 게 있으니까. 이 안에서 한달동안 낑기다가 그대로 구조된다면 그야말로 바랄 것도 없지."
수정형이 아름이에게 다가가서 여러가지 설명을 해주며 사격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동안 나는 간식거리를 찾으러 편의점을 빙빙 돌아다녔다.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를 챙기고 나니 어느샌가 사무실 앞으로 돌아와버린 나는 아무 생각없이 안을 쳐다보았다. 태완이가 어느샌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있었다.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뭐해? 쟤 총연습 조금 시킨 뒤에 출발해야지."
"어.."
태완이는 내 말에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 하며 검은색 구식 라디오를 만지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와 TV를 체크해본 뒤 말했다.
"야, 컴이나 티비가 돌아가는데 웬 라디오야?"
"아침에 군에서 준 보급품에 딸려나온 쪽지에, 저주파 군용 라디오를 사용해서 대피경보를 내렸었다는 말이 쓰여져 있었잖아? 혹시나 해서 지금 맞춰보는거야. AM쪽으로 돌리다 보면 뭐가 잡힐지도.."
[삐빅 삑.. ..regarding to ..'s information..]
"어 뭐 나온다."
"영어 아냐?"
어찌어찌 사흘동안 살아남기는 했지만 정말이지 오랜만에 접해보는 바깥정보다. 나는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잊고 태완이의 주파수를 돌리는 손놀림에만 집중했다. 지직거리는 소리뿐인 주파수가 계속되다 어느 순간 제대로 된 소리가 잡혔다.
[..에 따르면 현재 확인된 변종 괴물들은 3가지. Runner, Sniffer, Listener. 런너, 스니퍼, 리스너. Runners are the most popular irregular forms of zombies. Those things can run like hell, without of stamina limit. 런너들은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변종으로서, 체력의 제한 없이 엄청난 속도로 달릴 수 있다. You might barely see Sniffers on the road. 당신들은 길에서 스니퍼들을 적은 기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Normally, those things are really slow but..]
"뭐야, 이거.."
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혼잣말을 하자 태완이가 말했다.
"정보를 주는 거 아닐까? 좀비에 대한. 영문을 직역하는 거 보니까 미군측에서 준 정보같은데."
"우리나라 쪽에선 우리나라 스스로를 살펴볼만 한 위성도 없다는 건가 그럼?"
"나야 모르지."
태완이는 혹시나 주파수를 놓칠까 얼른 손을 라디오에서 떼었다. 대충 들어보니 영문으로 들어온 정보를 그대로 직역해서 들려주는 것 같았다. 마침 변종좀비들을 설명하는 순간에 딱 이것을 듣게 되었으니 우린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행여나 한 마디라도 놓칠까 온 몸의 신경을 라디오에 집중시켰다. 살아남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st, we have Listener. 마지막으로, 리스너라는 변종이 있다. Listeners are really few. 리스너들은 정말 조금밖에 없다. Even on our visual location, we spotted only 1 or 2. 우리가 본 바로도 지금까지 하나나 둘 정도 확인되었을 뿐이다. But we're sure there will be more of 'em. 하지만 우린 그보다 더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뭐야.. 변종이 더 있단 말인가?"
"조용히. 일단 듣자."
뛰는 놈, 냄새맡는 놈도 모자라 이젠 리스너(듣는 자)라..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라디오를 경청했다. 라디오에 신경을 집중시키기 직전 탁 하면서 못총을 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이내 잊어버렸다.
[We can say one thing for sure. They are extremely dangerous. 우리는 한 가지를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놈들은 엄청나게 위험하다. Unlike other monsters, these things can hear us.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이 녀석들은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미치겠네."
내 입에서 자동적으로 욕이 흘러나왔다.
[And their physical ability is even higher than sniffers. 그리고 놈들의 신체능력은 스니퍼들을 상회한다. They have long nails, and wide - opened ears. 놈들은 긴 손톱을 가지고 있고, 넓게 퍼진 귀를 가지고 있다. And all of their teeth are razor - sharp. 그리고 놈들의 이빨은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Thier speed is more faster than bicycle, and their strength is amazing. 놈들의 속도는 자전거보다도 빠르며, 힘 또한 대단하다. When we were doing our mission in In - Cheon, one of our squad was almost destroyed by just one Listener. 우리가 인천에서 작전수행을 하고 있었을 때, 한 소대가 단 한마리의 리스너 때문에 궤멸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소름끼치는군."
어느샌가 우리 옆으로 다가와 라디오를 훔쳐듣던 수정형이 내 옆에서 한마디를 내뱉자 나는 흠칫하며 형을 돌아보았다.
"정말이예요. 만약 저 놈을 우리가 만난다면 그야말로.."
"끝이겠군. 바이크같은 속도를 내는데다가 힘까지 센 놈을 우리가 어떻게 이겨? 기관총 든 미군 한 소대를 혼자서 박살낸 괴물인데.."
[..All these informations were collected and defined by real samples that we had earned in real battles with zombies. 이 모든 정보들은 우리가 실제로 전투에서 얻어낸 샘플에 의한 것이다. Beware, all citizens of Republic of Korea and please survive. 한국의 국민들은 위험을 자각하라. 꼭 살아남아주길 바란다.. 이상이 남한 북부에서 임무 수행중인 미군들에게서 들어온 정보입니다.]
미군에게서의 정보전달이 끝났는지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은 한국말로 다른 정보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가 동물에게도 바이러스가 감염될 염려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를 하고 있는데 태완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걸로 확실해졌어. 더이상 나돌아다니지 말고 안전한 데에 딱 붙어서 연합군이 쓸어버릴 때 까지 숨어있을 것."
"그게 낫겠지.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 해도 운이 좋았어."
[..이 방송을 듣고 계신 국민 여러분들, 특히 중부에 위치하신 분들. 바이러스의 근원지는 경상남도와 인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태는 폭격 후에도 여전히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경상남도에서부터의 북상 속도가 대단히 빠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좀비사태가 남한 중부에 모두 확산되기까지 걸릴 예상시간은 약 나흘입니다. 경상북도 외 서울 남부에 있는 시민 여러분들은 속히 피난을 떠나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방송은 앞으로 30분 후 다시 시작됩니다.]
치익-
"나.. 나흘?!"
수정형이 놀라서 외쳤다.
나흘이라니.. 나흘이면 여기서 휴전선까지 가는 것도 벅찬 시간이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태완이가 내게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좀비사태가 확산된다고 하는데, 이미 이곳에도 좀비들이 끓어넘치고 있는 건 마찬가지잖아. 난 의미를 잘 모르겠어."
"나도 마찬가지야."
수정형도 덩달아 내게 말했다. 뭐야, 나보고 뭘 어쩌라고..
"..뭐가 어쨌건, 저 라디오에서 말한 사람이 괜히 우리에게 피난하기를 추천한 건 아니라고 봐요. 뭔가 이유가 있겠죠.. 그리고 저번 폭격으로 우리 동네쪽의 좀비들이 많이 사라져서 우리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만약 다른 지역에서 좀비무리들이 이곳으로 쏟아져들어오기 시작한다면 인적없는 이곳이라고 좀비들이 언제까지나 없을 거라고는 장담 못 할걸요."
스스로 말해놓고 나도 놀랐다. 너무 정황에 맞는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틈에서 한달간을 생활해야 한다, 이거지?"
수정형이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태완이는 턱을 만지면서 곰곰히 생각하고 있더니 입을 열었다.
"차를 찾죠."
"뭐?"
내가 놀라서 묻자 태완이가 다시 말했다.
"나흘은 '퍼지기'까지의 시간.. 그러니까 완전히 잠식되기까진 시간이 더 걸릴거야.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남은 기간이 나흘이라는 거지. 나흘간 차를 찾아서, 휴전선으로 올라가자. 그게 제일 안전해. 그리고 차가 있어야 다른 생존자들의 가족들도 찾아볼 수 있지 않겠어."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거야. 그저 믿는다고 능사가 아니란 건 이 지옥에서 버텨온 네가 더 잘 알거야. 그곳은 이미 이 동네 최악의 지옥이고, 우리집은 그 가운데에 있어. 거기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만약 그랬다 한들 우리 부모님을 찾기 위해 너희들을 모두 끌어들이고 가는 건 너무도 이기적인 짓이야."
"하지만 나라면!"
내가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고 더 말하려는데 태완이가 나를 붙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혀를 한 번 차고 형의 얼굴을 보니, 형도 힘껏 감정을 참고 있는지 이빨을 꽉 물때 불거지는 볼 옆의 세로줄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제 대충 괜찮을 것 같아요. 아직 조금 무겁지만.."
아름이가 총을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형은 언제 심각했냐는 듯 얼굴을 펴고 아름이를 칭찬해 주었다. 아마 아름이에게 사무실 안의 공기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기야 저 녀석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게 될 지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거운 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태완이가 갑자기 말하자 나를 포함한 다른 셋이 녀석을 쳐다보았다.
"공구점이나 문방구같은데에 들러서, 길고 튼튼한.. 그래, 자 같은게 좋겠다. 그런 걸 옆에 대서 개머리판으로 하는 거지."
"개머리판..?"
"그거 좋은 생각이다!"
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름이와는 상반된 반응이 나와 수정형에게서 튀어나왔다. 확실히 그렇게 지지대를 만들어서 어깨춤에 대고 총을 쏜다면 훨씬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다. 명중률은 말할 것도 없다.
"뭐 그건 그거고. 아름이 훈련도 대충 됐겠다 슬슬 가자구. 진환이네 집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쓸 무기는 진환이 일행이 잔뜩 구비해 뒀었으니까 우리가 챙길 거 없지."
[루카] (좀비물) 살기위해 뛰어라! (15) 재정비
-죽었다구?
핸드폰 저편에서 윤호가 외쳤다. 나는 단무지를 하나 집어먹으면서 말했다.
"그래.. 아깐 급해서 말을 못 했는데 지혜누나라는 사람, 집앞 차도에 바로 널브러져 있더라구. 안된 일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 집안에 바로 들어가서 얘기할까 했지만 우리쪽도 바빠서 말야."
-미치겠네. 나가기 싫어진다 야.
"너넨 거기 있어라 그럼. 우린 여기서 안전하게 컵라면같이 맛있는 거 먹고 있다가 구조받을테니까."
-강아지! 빨리 와라. 우린 준비 끝났으니까.
"오야. 배 채우고 금방 가마."
삑
나는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고 태완이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태완이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내게 말했다.
"뭐래?"
"뭘 뭐래.. 준비 끝났으니까 빨리 오란다. 피차 얼굴 본지 하룻밤밖에 안 된 사이들이니까 그 누나 죽었다고 해서 난리 칠 사람도 없고. 그 누나한텐 안 된 소리지만."
후루룩
나는 태완이에게 대답한 뒤 사발면을 한껏 들이켰다. 겨우 하루를 거르고 하는 제대로 된 식사(라면을 제대로 된 식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지만)지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입안에 있는 면발을 정신없이 씹어 삼키고 국물을 한번 들이킨 뒤 단무지를 입에 넣고 다시 면을 입에 우겨넣었다.
편의점 옥상에 도착한 우리는, 옥상 문이 잠겨있자 내가 아까 나와 수정형이 뛰어내린 건물의 옥상에 돌입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잠금쇠를 총으로 해결한 뒤 문고리를 깨고 안으로 들어왔다. 만약 위로 좀비들이 온다면 후회될 만한 행동이었지만 당장 급한 건 그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었다. 정면 유리를 깨고 들어오는 것보다야 백배 낫다.
편의점 안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깨고 들어간 문이 연결되어 있는 작은 방은 창고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쪽에 철문이 달려있어 여차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열고 들어가니 안은 사무실. 안에는 작은 TV와 사무용 컴퓨터 등 우리집에 폭격이 떨어졌을 때 잃어버린 중요한 정보수집용 비품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편의점 내부로 나가니 대부분의 물품들이 살아있었고 냉장고까지 가동되고 있었다. 다른쪽에 딸린 창고방 두 개 역시 식량 등 물품을 채운 채로 남아있었다. 하나는 냉장고와 연결되어 있는 상태라 굉장히 추워서 사람이 있기는 힘들어보였지만 뭐 그게 어디냐.
만약 이게 큰길가나 사람이 많은 곳에 있던 편의점이었더라면 우리같은 생존자들의 손에 의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겠지만 다행히도 이곳은 정말로 우리만을 위해 준비된 공간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훌륭한 새 보금자리에 들뜬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제일 먼저 음료수와 컵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밥을 먹으면서 허기가 좀 가시자, 그제야 나는 우리집쪽에 남기고 온 친구들과 연락을 할 생각이 들어 녀석들과 통화를 한 것이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두 팀의 짐을 체크하느라 쭈그리고 앉아서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총에 대한 생각이 나서 열심히 삼각김밥을 먹고 있는 수정형에게 말했다.
"형, 권총 탄약은 넉넉해요?"
"음.."
형은 가늠해보지 않았는지 삼각김밥을 한입 베어문 뒤 남은 삼각김밥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총가방을 들어 안을 뒤적거렸다. 안쪽에 손을 넣고 절그럭거리던 형은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야예 가방의 내용물들을 책상위에 죄다 쏟아내었다. 후두둑 하는 소리에 각자 열심히 HP를 채우고 있던 태완이와 아름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형은 탄창들을 손으로 죽 훑으며 체크한 뒤 총 안에 들어있던 탄창까지 빼내어 체크했다. 형은 한쪽 눈을 감고 빼낸 탄창을 물끄러미 보더니 다시 총에 넣어 장전하고 안전장치를 넣으며 말했다.
"12발들이 탄창이 4개, 그리고 지금 안에 남은 총알이 대략 여섯 개.. 50발 정도 남았다고 보면 돼."
"별로 없네요."
"이정도면 많은 거야. 그 할아버지 아들이라는 사람 대단하네. 일반적인 경관용 리볼버도 아니고 자동권총을 이렇게.."
"한 100발 쯤 있었다면 나도 사격연습 좀 해볼텐데."
내가 아쉬운듯이 말하자 수정형은 웃으면서 총을 정리했다. 형은 콜라를 들고 쪽쪽 마시고 있는 아름이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보다 우리 지금 타정총이라는 좋은 무기 하나를 놀리고 있잖아? 아름이가 쓸 수 있으면 되게 큰 전력이 될텐데 말이지. 진환이도 식칼창을 되찾을 수 있을테고."
아름이가 수정형의 말을 듣고 식칼창을 보더니 나를 미안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나는 됐다는 듯이 팔을 흔든 뒤 몸을 돌려 가방에서 타정총과 못, 화약이 든 봉지를 꺼냈다. 생각보다 묵직한게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두세 발 남은 못 탄창을 빼버린 뒤 새로 탄창을 갈며 아름이에게 말했다.
"쏴봐."
"네?"
"쏴보라고. 그리고 그 말할 때 마다 네 네 하면서 물어보는 것 좀 고치랬지?"
"아, 네. 죄송해요."
"사과하는 것도."
"네.. 네! 죄송해요."
"또 그런다.."
아름이가 계속 내게 꾸벅거리면서 쩔쩔매자 수정형이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 주었다. 타정총 연습을 할 곳은 형이 서 있었던 계산대의 뒤쪽 돌벽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계산대 너머로 넘어가서 벽쪽에 붙어있던 포스터들을 다 뜯어낸 뒤, 계산대에 널브러져 있던 펜들 중 하나를 집어 과녁을 그리고 말했다.
"사격장 같은 곳엘 가서 정식으로 연수를 받으면 뭐 발을 11자로 놓고 어깨높이가 어떻고 눈이 어떻고.. 그런 소리들을 하는데, 지금같은 경우엔 그저 생존수단이니까 그런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지. 편한대로 쏴 봐."
내가 계산대 밖으로 뛰어넘어오자 수정형이 음료수를 마시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 여기로 옮길 거 아냐? 아예 거기를 장거리무기 훈련하는 장소로 정해버리자."
"거 좋네요. 장거리무기래봤자 못총이나 단검정도겠지만."
"근데요.."
아름이가 못총을 쏘려다 말고 신나서 얘기하고 있는 우리 둘에게 말했다.
"여기서 한달만 버티고 있으면, 군대가 도우러 오는 거 아니예요? 그럼 그런 훈련같은 걸 할 필요가 없잖아요."
"네 말도 맞지만 만약의 사태라는 게 있으니까. 이 안에서 한달동안 낑기다가 그대로 구조된다면 그야말로 바랄 것도 없지."
수정형이 아름이에게 다가가서 여러가지 설명을 해주며 사격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동안 나는 간식거리를 찾으러 편의점을 빙빙 돌아다녔다.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를 챙기고 나니 어느샌가 사무실 앞으로 돌아와버린 나는 아무 생각없이 안을 쳐다보았다. 태완이가 어느샌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있었다.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뭐해? 쟤 총연습 조금 시킨 뒤에 출발해야지."
"어.."
태완이는 내 말에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 하며 검은색 구식 라디오를 만지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와 TV를 체크해본 뒤 말했다.
"야, 컴이나 티비가 돌아가는데 웬 라디오야?"
"아침에 군에서 준 보급품에 딸려나온 쪽지에, 저주파 군용 라디오를 사용해서 대피경보를 내렸었다는 말이 쓰여져 있었잖아? 혹시나 해서 지금 맞춰보는거야. AM쪽으로 돌리다 보면 뭐가 잡힐지도.."
[삐빅 삑.. ..regarding to ..'s information..]
"어 뭐 나온다."
"영어 아냐?"
어찌어찌 사흘동안 살아남기는 했지만 정말이지 오랜만에 접해보는 바깥정보다. 나는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잊고 태완이의 주파수를 돌리는 손놀림에만 집중했다. 지직거리는 소리뿐인 주파수가 계속되다 어느 순간 제대로 된 소리가 잡혔다.
[..에 따르면 현재 확인된 변종 괴물들은 3가지. Runner, Sniffer, Listener. 런너, 스니퍼, 리스너. Runners are the most popular irregular forms of zombies. Those things can run like hell, without of stamina limit. 런너들은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변종으로서, 체력의 제한 없이 엄청난 속도로 달릴 수 있다. You might barely see Sniffers on the road. 당신들은 길에서 스니퍼들을 적은 기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Normally, those things are really slow but..]
"뭐야, 이거.."
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혼잣말을 하자 태완이가 말했다.
"정보를 주는 거 아닐까? 좀비에 대한. 영문을 직역하는 거 보니까 미군측에서 준 정보같은데."
"우리나라 쪽에선 우리나라 스스로를 살펴볼만 한 위성도 없다는 건가 그럼?"
"나야 모르지."
태완이는 혹시나 주파수를 놓칠까 얼른 손을 라디오에서 떼었다. 대충 들어보니 영문으로 들어온 정보를 그대로 직역해서 들려주는 것 같았다. 마침 변종좀비들을 설명하는 순간에 딱 이것을 듣게 되었으니 우린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행여나 한 마디라도 놓칠까 온 몸의 신경을 라디오에 집중시켰다. 살아남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st, we have Listener. 마지막으로, 리스너라는 변종이 있다. Listeners are really few. 리스너들은 정말 조금밖에 없다. Even on our visual location, we spotted only 1 or 2. 우리가 본 바로도 지금까지 하나나 둘 정도 확인되었을 뿐이다. But we're sure there will be more of 'em. 하지만 우린 그보다 더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뭐야.. 변종이 더 있단 말인가?"
"조용히. 일단 듣자."
뛰는 놈, 냄새맡는 놈도 모자라 이젠 리스너(듣는 자)라..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라디오를 경청했다. 라디오에 신경을 집중시키기 직전 탁 하면서 못총을 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이내 잊어버렸다.
[We can say one thing for sure. They are extremely dangerous. 우리는 한 가지를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놈들은 엄청나게 위험하다. Unlike other monsters, these things can hear us.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이 녀석들은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미치겠네."
내 입에서 자동적으로 욕이 흘러나왔다.
[And their physical ability is even higher than sniffers. 그리고 놈들의 신체능력은 스니퍼들을 상회한다. They have long nails, and wide - opened ears. 놈들은 긴 손톱을 가지고 있고, 넓게 퍼진 귀를 가지고 있다. And all of their teeth are razor - sharp. 그리고 놈들의 이빨은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Thier speed is more faster than bicycle, and their strength is amazing. 놈들의 속도는 자전거보다도 빠르며, 힘 또한 대단하다. When we were doing our mission in In - Cheon, one of our squad was almost destroyed by just one Listener. 우리가 인천에서 작전수행을 하고 있었을 때, 한 소대가 단 한마리의 리스너 때문에 궤멸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소름끼치는군."
어느샌가 우리 옆으로 다가와 라디오를 훔쳐듣던 수정형이 내 옆에서 한마디를 내뱉자 나는 흠칫하며 형을 돌아보았다.
"정말이예요. 만약 저 놈을 우리가 만난다면 그야말로.."
"끝이겠군. 바이크같은 속도를 내는데다가 힘까지 센 놈을 우리가 어떻게 이겨? 기관총 든 미군 한 소대를 혼자서 박살낸 괴물인데.."
[..All these informations were collected and defined by real samples that we had earned in real battles with zombies. 이 모든 정보들은 우리가 실제로 전투에서 얻어낸 샘플에 의한 것이다. Beware, all citizens of Republic of Korea and please survive. 한국의 국민들은 위험을 자각하라. 꼭 살아남아주길 바란다.. 이상이 남한 북부에서 임무 수행중인 미군들에게서 들어온 정보입니다.]
미군에게서의 정보전달이 끝났는지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은 한국말로 다른 정보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가 동물에게도 바이러스가 감염될 염려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를 하고 있는데 태완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걸로 확실해졌어. 더이상 나돌아다니지 말고 안전한 데에 딱 붙어서 연합군이 쓸어버릴 때 까지 숨어있을 것."
"그게 낫겠지.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 해도 운이 좋았어."
[..이 방송을 듣고 계신 국민 여러분들, 특히 중부에 위치하신 분들. 바이러스의 근원지는 경상남도와 인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태는 폭격 후에도 여전히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경상남도에서부터의 북상 속도가 대단히 빠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좀비사태가 남한 중부에 모두 확산되기까지 걸릴 예상시간은 약 나흘입니다. 경상북도 외 서울 남부에 있는 시민 여러분들은 속히 피난을 떠나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방송은 앞으로 30분 후 다시 시작됩니다.]
치익-
"나.. 나흘?!"
수정형이 놀라서 외쳤다.
나흘이라니.. 나흘이면 여기서 휴전선까지 가는 것도 벅찬 시간이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태완이가 내게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좀비사태가 확산된다고 하는데, 이미 이곳에도 좀비들이 끓어넘치고 있는 건 마찬가지잖아. 난 의미를 잘 모르겠어."
"나도 마찬가지야."
수정형도 덩달아 내게 말했다. 뭐야, 나보고 뭘 어쩌라고..
"..뭐가 어쨌건, 저 라디오에서 말한 사람이 괜히 우리에게 피난하기를 추천한 건 아니라고 봐요. 뭔가 이유가 있겠죠.. 그리고 저번 폭격으로 우리 동네쪽의 좀비들이 많이 사라져서 우리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만약 다른 지역에서 좀비무리들이 이곳으로 쏟아져들어오기 시작한다면 인적없는 이곳이라고 좀비들이 언제까지나 없을 거라고는 장담 못 할걸요."
스스로 말해놓고 나도 놀랐다. 너무 정황에 맞는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틈에서 한달간을 생활해야 한다, 이거지?"
수정형이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태완이는 턱을 만지면서 곰곰히 생각하고 있더니 입을 열었다.
"차를 찾죠."
"뭐?"
내가 놀라서 묻자 태완이가 다시 말했다.
"나흘은 '퍼지기'까지의 시간.. 그러니까 완전히 잠식되기까진 시간이 더 걸릴거야.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남은 기간이 나흘이라는 거지. 나흘간 차를 찾아서, 휴전선으로 올라가자. 그게 제일 안전해. 그리고 차가 있어야 다른 생존자들의 가족들도 찾아볼 수 있지 않겠어."
"아 그러고보니 형 부모님은.."
"으응.. 난 괜찮아."
내가 형 부모님의 상태에 관해 물으려 하자 형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 그게? 괜찮다니."
"연락도 안 받고.. 우리집은 대학로 가까이에 있어. 이미 늦었을 거야. 슬프지만.."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래도 찾아봐야지! 애초에.."
"진환아."
내가 발끈해서 외치는데 형이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제지했다.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거야. 그저 믿는다고 능사가 아니란 건 이 지옥에서 버텨온 네가 더 잘 알거야. 그곳은 이미 이 동네 최악의 지옥이고, 우리집은 그 가운데에 있어. 거기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만약 그랬다 한들 우리 부모님을 찾기 위해 너희들을 모두 끌어들이고 가는 건 너무도 이기적인 짓이야."
"하지만 나라면!"
내가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고 더 말하려는데 태완이가 나를 붙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혀를 한 번 차고 형의 얼굴을 보니, 형도 힘껏 감정을 참고 있는지 이빨을 꽉 물때 불거지는 볼 옆의 세로줄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제 대충 괜찮을 것 같아요. 아직 조금 무겁지만.."
아름이가 총을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형은 언제 심각했냐는 듯 얼굴을 펴고 아름이를 칭찬해 주었다. 아마 아름이에게 사무실 안의 공기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기야 저 녀석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게 될 지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거운 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태완이가 갑자기 말하자 나를 포함한 다른 셋이 녀석을 쳐다보았다.
"공구점이나 문방구같은데에 들러서, 길고 튼튼한.. 그래, 자 같은게 좋겠다. 그런 걸 옆에 대서 개머리판으로 하는 거지."
"개머리판..?"
"그거 좋은 생각이다!"
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름이와는 상반된 반응이 나와 수정형에게서 튀어나왔다. 확실히 그렇게 지지대를 만들어서 어깨춤에 대고 총을 쏜다면 훨씬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다. 명중률은 말할 것도 없다.
"뭐 그건 그거고. 아름이 훈련도 대충 됐겠다 슬슬 가자구. 진환이네 집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쓸 무기는 진환이 일행이 잔뜩 구비해 뒀었으니까 우리가 챙길 거 없지."
수정형이 배낭 쪽으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나는 아직 휴전선 쪽으로 옮겨간다는 말엔 동의하지 못하겠어."
내가 나지막하게 말하자 아름이가 놀라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휴전선으로 올라간다니.."
"나중에 설명해줄게. 지금은 가만히 있어봐."
나는 아름이를 조용히 시킨 뒤 태완이와 수정형을 보며 말했다.
"이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다 모이면 그 후에 정하자.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머리들을 대고 생각해보면 더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잖아."
"그래."
"그럼 지금 우리한테 남은 과제는 안전한 이사 뿐이군."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을 챙겼다. 수정형이 총가방에 있던 내용물들을 가방에 쑤셔넣는 걸 보고 내가 말했다.
"뭐해요? 총 안써요?"
"어.. 아껴두려고. 아까 그 리스너라는 괴물급 좀비가 있다는 걸 듣고, 위급상황에 대비해 아껴두는게 어떻까 해서. 무기는 네 보조무기 그거 쓰지 뭐."
형이 내 쇠파이프를 가리기며 말했다.
"뭐 아무래도 좋지만.. 좀 불안한데요. 하하."
"타정총이 하나 더 있으면 좋을텐데."
"그럴바에야 총이 하나 더 있는게 좋겠지."
우리는 낄낄거리면서 이제 옮기게 될 아지트 안에서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었다. 마치 지나치게 긴장한 사람들이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듯이.
점점 더 불안해지기만 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더 큰 갈림길에 봉착한 것이다.
최후의 생존까지, 아직 30일-
..혹은,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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