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있던 골목엔 좀비들이 거의 없었단 얘기는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을 거다. 덕분에 우리는 출발에 대한 별 부담없이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었다. 기막힌 행운으로 우린 편의점 현관용 스페어 열쇠를 사무실에서 획득할수 있었는데, 무지능인 좀비들 상대로 문을 잠그는 것이 도움이 될 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린 그걸 정문을 곱게 열고 나오는 데에 쓸 수가 있었다.
현관을 망가뜨리는 것이 싫어서 안쪽까지 힘들게 들어왔는데 나갈때 현관을 부수고 나갈 정도로 우린 바보가 아니니까(그럴 정도의 저능아였더라면 우리들은 벌써 죽었을 거다).
우리 수색조가 우리 집에서 나오면서 챙긴 배낭은 둘.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내용물은 거의 같다. 비상식량, 식수통, 서바이벌 나이프(내가 체육관에서 가져온 것. 보조무기라던가 쓸데가 많다), 휴지, 의약품같은 필수품들. 우리는 편의점까지 오면서 사용했었던 배낭의 내용물들을 편의점 안에서 도로 보충할 수 있었다. 덤으로 간식이라는 사치품까지.
..아니, 사실 이런 극한상황에서 간식이란건 사치가 아니다. 어찌보면 필수라고도 할 수 있다. 장거리 등산같은 것을 할 때엔 단 음식을 꼭 가져가서 활력보충을 해주는데(초콜릿, 꿀에 절인 레몬 같은 걸 휴식중에 먹어주면 기력이 회복되는 걸 느낄 정도다) 내가 간식을 챙긴 것도 대충 그런 식으로 보면 될 것 같았다. 자기위로 비슷한 거지만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니까.
이건 우리가 편의점으로 오면서도 느낀 거지만.. 새삼스레 다시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바로 좀비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 적어도 어제 아침에 비하면 말이다.
편의점을 나오고 대충 우리 집까지의 거리의 반 정도를 걸어오며 우리가 죽인 좀비의 수는 자그마치 제로. 날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어서 우리가 빨리 이동한 것도 있지만 확실히 좀비의 수가 줄어든 것도 같았다.
"10억.. 아니 15억 4천짜리 우리 집을 날려먹었으니 그정도 값은 해야지.. 중얼중얼.."
"어? 뭐라고 했어?"
"아냐. 아무것도."
내가 등짝이 뜯어져 나간 우리 집의 뒷쪽을 상상하며 투덜거리고 있는데 태완이가 내게 묻자 나는 손을 흔들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내가 이 동네에서 '일반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때 이 거리를 자주 지나다녔는데, 그때 우리집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지표로 머릿속에 자주 그리던 큰 차도가 우리 눈앞에 들어왔다. 우리는 각자 무기를 쥐고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보이는 좀비는 오른쪽 아주 먼 곳에서 걸어다니는 녀석 한 마리뿐. 저 정도면 무시해도 된다.
나는 태완이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차가 있는지 살피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죄다 꽁무니를 빼느라 차들을 타고 어디론가 갔는지 이런 저런 차들로 넘쳐나던 도로엔 단 하나의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저편에 배를 보이고 자빠져 있는 고물 스쿠터가 하나 보였지만 저걸론 엿도 안 바꿔줄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흔들며 무시해 버렸다.
"왜이래, 수재 소리 듣는 놈이. 너는 감염된 택시기사가 자기 택시에 사람이 타면 직업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우어어~ 어디로 가실 건데요?' 그럴 것 같냐? 그냥 뜯어먹어버리지. 그건 철새같이 대륙간을 이동하는 동물들에게도 적용돼. 말인즉슨,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폭식성을 띄게 되면 그자리에서 먹이를 찾아다니지 자기네 습성대로 바람따라 세월따라 날아다니진 않을 거란 말씀이야."
태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나의 가정을 세운 것일 뿐이야. 아직 우리는 그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겨난 건지도 모르고, 또 내가 세운 가정들의 그 마지막 과정이 어떤 식으로 바뀌게 되어 해외로 바이러스가 유출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어."
"나는 다르게 생각해."
옆에서 수정형이 거들자 우리는 하나같이 수정형을 바라보았다.
"이미 10개국의 연합군이 달성되었다고 했잖아? 그 말은 그만큼 이 사태에 대해 해외에서의 관심이 크단 것과 같은 소리야. 그런데 그 똑똑한 해외의 헤드쿼터들이 우리 정도의 가정도 세우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치 않아."
"그것도 그렇네요."
태완이는 그제야 안심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나는 수정형을 거들듯 말했다.
"사실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요즘 세계의 군시설로 요 코딱지만한 나라의 제공권 하나 제어하는 건 일도 아닐걸?"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낄낄 웃었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리 편하지만도 않았다. 영화같은데서 보면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 인해서 거대한 사건이 발생되곤 하니까. 그런 현상을 나비효과라고 했었나?
뭐, 그런 일은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길 빌 수밖에 없다. 인생의 반도 안 살아온 우리들이 이러쿵저러쿵 토론해봤자 병아리들 짹짹대는 것 이상의 의미도 없으니까. 정말이지 우리들의 힘이 너무도 미약하다는 걸 너무도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가 뭐 무전기 한번으로 전투기를 부를 수 있기를 하나, 국방부 HQ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기를 하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살기위해 죽어라 발버둥치는 것일 뿐이다.
"어.. 차가 와요!"
"넌 또 뭔 소리야.."
아름이가 마치 일반적인 날에 무단횡단을 하다 달려오는 차를 발견했을 때 처럼 말하자 나는 한숨을 쉬며 아름이가 말한 쪽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로 버스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마구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마치 음주운전을 하듯 곡선을 그리며.
"차.. 차다. 진짜로. 아직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어!"
"근데 좀.. 위험해 보이지 않아?"
내가 반가워서 외치는데 태완이가 그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확실히 저 버스의 속도는 위험할 정도였다. 마구 곡선을 그리면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버스는 마치 음주운전을 하는 기사가 몰고 있는 버스처럼 보였다. 우리는 황급히 길을 건넌 뒤 가드레일에서 좀 떨어져 그 버스가 우리 근처로 오기까지를 기다렸다.
끼이익- 끼익-
버스가 가까워져오자, 도로변에서 한 번쯤 들었을 법한 고무 타이어가 아스팔트에 비벼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마구 흔들면서 우리 쪽으로 다가온 버스가 드디어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자 나는 혹시라도 말려들까봐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가방과 무기를 내려놔 몸을 가볍게 한 뒤 도로 쪽으로 다가가 가드레일에 몸을 기대고 외쳤다.
"어이! 사람이 있으면.."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버스의 앞유리창엔 피로 찍힌 무수한 손자국들과 온몸이 처참하게 물어뜯겨진 채 유리창 앞을 뚫고 나와있는 시체였다.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버스가 내 눈앞으로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그 안쪽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의 안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발버둥치며 좀비와 함께 뒹굴고 있는..
끼기이익- 끼익-
버스가 내 앞에서 방향을 돌리자 차체의 옆면이 보였다. 좀비에게 물어뜯겨 죽은 사람들의 손들이 버스의 수많은 옆창문들로 삐져나와 흡사 거대한 벌레의 다리처럼 보이는 기괴한 모습을 연출해내었다. 내가 버스가 이쪽으로 달려올까봐 주춤하는 사이 버스의 회전력은 최대에 달했고, 순간 와장창 하며 버스의 뒷창문을 뚫고 피투성이가 된 시체들이 밖으로 후두두둑 떨어져나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에 굴렀다.
나보다 비교적 뒤쪽에 있던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버스 뒤꽁무니에서 시체들이 쏟아져나오자 비명을 지르며 내 쪽으로 뛰어왔다.
"뭐.. 뭐야 저거!"
"진환아 뭐해! 빨리 뒤로 빼!"
콰과아아앙
내가 친구들의 말을 듣고 바깥쪽으로 떨어지기 무섭게 내 건너편 도로를 바라보고 회전을 하던 버스는 운전대를 쥐고 있던 사람인지 좀비인지가 떨어져나왔는지 더이상 방향을 틀지 못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건너편 건물의 벽을 들이박으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진환아 저거 뭐야? 사람들이.."
"버.. 버스가.. 버스 안쪽이.."
퍼어어엉
내가 어버버거리면서 머릿속에 남아있는 지옥열차의 풍경 때문에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순간 퍼어엉 하면서 버스에서 2차 폭발이 일어났다. 저녁노을에 어두워지고 있던 우리들의 근처가 한순간에 밝아지며 우리들이 있는 곳의 건너편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태완이가 손가락으로 버스의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태완이의 손가락을 따라가보자 아까 시체들이 튀어나왔던 버스 뒷창의 구멍에서 불에 타고 있는 좀비들이 꾸역꾸역 기어나오고 있었다.
"히이익!"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아름이의 비명과 함께 우리 넷은 마치 앞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화염에 홀린 듯 길 건너의 난장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정형에게 어깨를 붙들린 채 멍하니 저쪽을 쳐다보고 있던 나는, 시야의 바깥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걸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아까 버스 뒤쪽으로 튀어나왔던 시체들 중 몇몇이 자리에서 비척비척 일어나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수정형의 손을 어깨에서 뗀 뒤 태완이와 아름이의 머리를 한번 툭 치고, 아까 내가 내려놓은 짐 쪽으로 달려가 짐을 챙기며 말했다.
"빨리 뜨죠. 여기 있어봤자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어, 응."
수정형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떼었다. 일렁거리는 불꽃을 등에 지고 우리는 반 전력으로 예전 아지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오멘(Omen)인가.. 정말로 기분나쁜 일이다. 나는 뛰어가면서 버스 안에서 있었을 일을 상상했다. 아마 저 버스는 어떤 생존자 그룹의 이동수단이었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도중 안에 있던 부상자가 감염자였겠지. 그 자가 죽으면서 좀비가 되고.. 다음은..
얼마쯤 달렸을까, 그 거리에서 상당히 떨어진 우리는 헉헉거리면서 걸음을 늦췄다. 이제 우리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뭘까, 아까 차는."
수정형이 말하자 태완이가 뒤를 흘낏 돌아보며 말했다.
"내 생각엔, 차를 구해서 위쪽으로 피난가려던 사람들중에 감염자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아까부터 계속 안에서 있었을 일을 생각하고 있다가 태완이의 말을 듣자 나는 내 상상에 대해 확신을 하며, 다음 순간 재복이를 구할 때의 일이 생각나 얼굴을 찡그렸다. 멍청한 인간들! 필시 하잘데기 없는 동정심으로 가망없는 인간을 억지를 부려 태운 뒤에 저렇게 된 거겠지.
내가 눈을 치켜뜨며 앞으로 걸어나가자 세 사람은 영문모를 내 행동에 어깨를 으쓱하며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빠른걸음을 하면서 그 냄새맡는 변종좀비.. 그러니까 라디오에서 말한 '스니퍼'에게 뜯겨나간 귀를 만지작거렸다. 설마 이 상처로 내가 감염된 건 아니겠지.
알고 있었던 사람이 내 눈앞에서 다시 죽어간다면 난 정말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허나 내 눈앞에서 친구가 좀비로 변한다면 나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얼마 걷지 않아 우리들은 우리 집에 도달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앞에 서서 쳐다보니, 마당 안쪽에서 가느다란 연기 한 줄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보는 순간 내 코에 고기 굽는 냄새가 느껴졌다. 아니, 걸지게 고기를 굽는 냄새라기보단.. 뭐랄까, 고기는 고긴데 말린 고기를 굽는.. 그런 냄새.
나는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다가 문득 스니퍼가 생각나 얼른 집으로 뛰쳐들어갔다. 이 멍청한 새끼들이 냄새맡는 좀비가 있는데 아지트 마당에서 육포를 구워먹고 앉았어!
"야! 문열어!"
내가 쾅쾅거리면서 대문을 두드리자 문이 얼른 열렸다. 문을 연건 재복이었다.
"여어! 어땠.."
나는 재복이의 말을 듣지도 않고 안으로 달려들어가, 내 예상대로 육포를 굽고 있는 작은 모닥불에 다가가 마구 발로 흙을 뿌렸다. 바로 옆에서 육포를 굽고 있던 윤호가 기겁하며 내가 뿌리는 흙에서 육포를 치우며 외쳤다.
"뭐해 병신아! 고기 굽는거 안보여? 너네 맛있는거 먹여줄려고 이 형님이.."
"너야말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짓 하지 마!"
"뭐?"
윤호가 뭔소리 하냐는 듯 나를 쳐다보자 나는 사그라든 불을 발로 바구 밟으며 말했다.
"냄새를 맡는 변종좀비가 있단 말이다, 돼지야. 그놈들이 어디 있을지 알아서 이런 짓을 해?"
"뭐, 진짜?"
재복이 옆에 서 있던 서영이가 외쳤다. 내가 한숨을 쉬면서 짐을 내려놓자 열린 문으로 다른 셋이 들어왔다. 재복이는 우리들이 모두 들어온 걸 확인한 뒤 대문 밖으로 고개를 빼 이리저리 살펴본 뒤 문을 조용히 닫고 빗장을 걸었다.
나는 뒤따라 들어온 셋을 확인한 뒤 짐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윤호에게 손을 뻗었다.
"이왕 구운거 먹자구. 내놔봐."
"자. 니가 흙 뿌린거다."
윤호가 킬킬거리면서 내게 구운 육포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코를 찡그린 뒤 육포를 집어들고 훅훅 불어서 위에 앉은 흙먼지를 털어낸 뒤 입에 집어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입에서 자연스레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육포가 생각보다 쉽게 끊어지지 않자 나는 육포를 입에서 끄집어내고 흘러내린 침을 닦으면서 말했다.
"이재복, 그리고 서영이랑 에.. 나영누님. 윤호한테서 여러가지 들었어요?"
"어 뭐."
재복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호는 남은 육포들을 태완이, 수정형, 아름이에게 나눠주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얘기보다 너네 얘기부터 해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리고 그.. 냄새맡는 좀비? 그건 뭐야?"
"아 그렇지.. 그게 낫겠다."
"냄새맡는 놈 뿐만이 아냐. 듣는 놈도 있어."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육포를 다시 입에 집어넣자 태완이가 윤호 앞으로 불쑥 나서며 말했다. 나는 육포를 큼지막하게 떼어먹은 뒤 우리가 겪인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혜누나가 죽은 것부터 시작해 총을 얻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고개를 넘어가기 직전의 주홍빛 햇살이 한가닥 마당으로 내려와 내 눈을 찔렀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손바닥으로 커튼을 만들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루카] (좀비물) 살기위해 뛰어라! (16) 돌아오다
우리가 있던 골목엔 좀비들이 거의 없었단 얘기는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을 거다. 덕분에 우리는 출발에 대한 별 부담없이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었다. 기막힌 행운으로 우린 편의점 현관용 스페어 열쇠를 사무실에서 획득할수 있었는데, 무지능인 좀비들 상대로 문을 잠그는 것이 도움이 될 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린 그걸 정문을 곱게 열고 나오는 데에 쓸 수가 있었다.
현관을 망가뜨리는 것이 싫어서 안쪽까지 힘들게 들어왔는데 나갈때 현관을 부수고 나갈 정도로 우린 바보가 아니니까(그럴 정도의 저능아였더라면 우리들은 벌써 죽었을 거다).
우리 수색조가 우리 집에서 나오면서 챙긴 배낭은 둘.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내용물은 거의 같다. 비상식량, 식수통, 서바이벌 나이프(내가 체육관에서 가져온 것. 보조무기라던가 쓸데가 많다), 휴지, 의약품같은 필수품들. 우리는 편의점까지 오면서 사용했었던 배낭의 내용물들을 편의점 안에서 도로 보충할 수 있었다. 덤으로 간식이라는 사치품까지.
..아니, 사실 이런 극한상황에서 간식이란건 사치가 아니다. 어찌보면 필수라고도 할 수 있다. 장거리 등산같은 것을 할 때엔 단 음식을 꼭 가져가서 활력보충을 해주는데(초콜릿, 꿀에 절인 레몬 같은 걸 휴식중에 먹어주면 기력이 회복되는 걸 느낄 정도다) 내가 간식을 챙긴 것도 대충 그런 식으로 보면 될 것 같았다. 자기위로 비슷한 거지만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니까.
이건 우리가 편의점으로 오면서도 느낀 거지만.. 새삼스레 다시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바로 좀비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 적어도 어제 아침에 비하면 말이다.
편의점을 나오고 대충 우리 집까지의 거리의 반 정도를 걸어오며 우리가 죽인 좀비의 수는 자그마치 제로. 날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어서 우리가 빨리 이동한 것도 있지만 확실히 좀비의 수가 줄어든 것도 같았다.
"10억.. 아니 15억 4천짜리 우리 집을 날려먹었으니 그정도 값은 해야지.. 중얼중얼.."
"어? 뭐라고 했어?"
"아냐. 아무것도."
내가 등짝이 뜯어져 나간 우리 집의 뒷쪽을 상상하며 투덜거리고 있는데 태완이가 내게 묻자 나는 손을 흔들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내가 이 동네에서 '일반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때 이 거리를 자주 지나다녔는데, 그때 우리집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지표로 머릿속에 자주 그리던 큰 차도가 우리 눈앞에 들어왔다. 우리는 각자 무기를 쥐고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보이는 좀비는 오른쪽 아주 먼 곳에서 걸어다니는 녀석 한 마리뿐. 저 정도면 무시해도 된다.
"사태가 커질 수도 있겠어."
태완이가 한마디를 툭 던지며 길을 건너기 시작하자 내가 따라붙으면서 물었다.
"뭔 소리야? 대한민국이 좀비민국이 됐는데 뭐가 더 커져?"
나는 태완이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차가 있는지 살피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죄다 꽁무니를 빼느라 차들을 타고 어디론가 갔는지 이런 저런 차들로 넘쳐나던 도로엔 단 하나의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저편에 배를 보이고 자빠져 있는 고물 스쿠터가 하나 보였지만 저걸론 엿도 안 바꿔줄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흔들며 무시해 버렸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단 거야."
태완이가 내게 대답하자 아름이가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좀비들이 수영을 해서 가거나 하진 않을 거 아녜요?"
"동물들에게도 감염된다고 했었잖아? 만의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이런 가정을 해 보자구."
태완이는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예를 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좀비가 된다. 그 좀비가 죽고, 그 시체를 떠돌이 개가 뜯어먹는다. 그 개는 좀비가 되고, 그 좀비견이 어떤 이유로 인해 죽는다. 그리고 그 시체를 새들이 파먹는다."
"그건 아까전에 했었던 말 아니야?"
수정형이 묻자 태완이가 수정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 새들이 철새였다."
"아!"
아름이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왜이래, 수재 소리 듣는 놈이. 너는 감염된 택시기사가 자기 택시에 사람이 타면 직업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우어어~ 어디로 가실 건데요?' 그럴 것 같냐? 그냥 뜯어먹어버리지. 그건 철새같이 대륙간을 이동하는 동물들에게도 적용돼. 말인즉슨,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폭식성을 띄게 되면 그자리에서 먹이를 찾아다니지 자기네 습성대로 바람따라 세월따라 날아다니진 않을 거란 말씀이야."
태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나의 가정을 세운 것일 뿐이야. 아직 우리는 그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겨난 건지도 모르고, 또 내가 세운 가정들의 그 마지막 과정이 어떤 식으로 바뀌게 되어 해외로 바이러스가 유출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어."
"나는 다르게 생각해."
옆에서 수정형이 거들자 우리는 하나같이 수정형을 바라보았다.
"이미 10개국의 연합군이 달성되었다고 했잖아? 그 말은 그만큼 이 사태에 대해 해외에서의 관심이 크단 것과 같은 소리야. 그런데 그 똑똑한 해외의 헤드쿼터들이 우리 정도의 가정도 세우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치 않아."
"그것도 그렇네요."
태완이는 그제야 안심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나는 수정형을 거들듯 말했다.
"사실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요즘 세계의 군시설로 요 코딱지만한 나라의 제공권 하나 제어하는 건 일도 아닐걸?"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낄낄 웃었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리 편하지만도 않았다. 영화같은데서 보면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 인해서 거대한 사건이 발생되곤 하니까. 그런 현상을 나비효과라고 했었나?
뭐, 그런 일은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길 빌 수밖에 없다. 인생의 반도 안 살아온 우리들이 이러쿵저러쿵 토론해봤자 병아리들 짹짹대는 것 이상의 의미도 없으니까. 정말이지 우리들의 힘이 너무도 미약하다는 걸 너무도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가 뭐 무전기 한번으로 전투기를 부를 수 있기를 하나, 국방부 HQ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기를 하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살기위해 죽어라 발버둥치는 것일 뿐이다.
"어.. 차가 와요!"
"넌 또 뭔 소리야.."
아름이가 마치 일반적인 날에 무단횡단을 하다 달려오는 차를 발견했을 때 처럼 말하자 나는 한숨을 쉬며 아름이가 말한 쪽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로 버스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마구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마치 음주운전을 하듯 곡선을 그리며.
"차.. 차다. 진짜로. 아직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어!"
"근데 좀.. 위험해 보이지 않아?"
내가 반가워서 외치는데 태완이가 그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확실히 저 버스의 속도는 위험할 정도였다. 마구 곡선을 그리면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버스는 마치 음주운전을 하는 기사가 몰고 있는 버스처럼 보였다. 우리는 황급히 길을 건넌 뒤 가드레일에서 좀 떨어져 그 버스가 우리 근처로 오기까지를 기다렸다.
끼이익- 끼익-
버스가 가까워져오자, 도로변에서 한 번쯤 들었을 법한 고무 타이어가 아스팔트에 비벼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마구 흔들면서 우리 쪽으로 다가온 버스가 드디어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자 나는 혹시라도 말려들까봐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가방과 무기를 내려놔 몸을 가볍게 한 뒤 도로 쪽으로 다가가 가드레일에 몸을 기대고 외쳤다.
"어이! 사람이 있으면.."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버스의 앞유리창엔 피로 찍힌 무수한 손자국들과 온몸이 처참하게 물어뜯겨진 채 유리창 앞을 뚫고 나와있는 시체였다.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버스가 내 눈앞으로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그 안쪽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의 안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발버둥치며 좀비와 함께 뒹굴고 있는..
끼기이익- 끼익-
버스가 내 앞에서 방향을 돌리자 차체의 옆면이 보였다. 좀비에게 물어뜯겨 죽은 사람들의 손들이 버스의 수많은 옆창문들로 삐져나와 흡사 거대한 벌레의 다리처럼 보이는 기괴한 모습을 연출해내었다. 내가 버스가 이쪽으로 달려올까봐 주춤하는 사이 버스의 회전력은 최대에 달했고, 순간 와장창 하며 버스의 뒷창문을 뚫고 피투성이가 된 시체들이 밖으로 후두두둑 떨어져나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에 굴렀다.
나보다 비교적 뒤쪽에 있던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버스 뒤꽁무니에서 시체들이 쏟아져나오자 비명을 지르며 내 쪽으로 뛰어왔다.
"뭐.. 뭐야 저거!"
"진환아 뭐해! 빨리 뒤로 빼!"
콰과아아앙
내가 친구들의 말을 듣고 바깥쪽으로 떨어지기 무섭게 내 건너편 도로를 바라보고 회전을 하던 버스는 운전대를 쥐고 있던 사람인지 좀비인지가 떨어져나왔는지 더이상 방향을 틀지 못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건너편 건물의 벽을 들이박으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진환아 저거 뭐야? 사람들이.."
"버.. 버스가.. 버스 안쪽이.."
퍼어어엉
내가 어버버거리면서 머릿속에 남아있는 지옥열차의 풍경 때문에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순간 퍼어엉 하면서 버스에서 2차 폭발이 일어났다. 저녁노을에 어두워지고 있던 우리들의 근처가 한순간에 밝아지며 우리들이 있는 곳의 건너편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뭐.. 뭐야 저 차?"
수정형이 어이없는 얼굴로 폭발한 버스를 바라보고 있자 내가 말했다.
"안에서.. 사람들이랑 좀비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어요."
"나도 이제 알겠어."
태완이가 손가락으로 버스의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태완이의 손가락을 따라가보자 아까 시체들이 튀어나왔던 버스 뒷창의 구멍에서 불에 타고 있는 좀비들이 꾸역꾸역 기어나오고 있었다.
"히이익!"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아름이의 비명과 함께 우리 넷은 마치 앞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화염에 홀린 듯 길 건너의 난장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정형에게 어깨를 붙들린 채 멍하니 저쪽을 쳐다보고 있던 나는, 시야의 바깥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걸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아까 버스 뒤쪽으로 튀어나왔던 시체들 중 몇몇이 자리에서 비척비척 일어나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수정형의 손을 어깨에서 뗀 뒤 태완이와 아름이의 머리를 한번 툭 치고, 아까 내가 내려놓은 짐 쪽으로 달려가 짐을 챙기며 말했다.
"빨리 뜨죠. 여기 있어봤자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어, 응."
수정형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떼었다. 일렁거리는 불꽃을 등에 지고 우리는 반 전력으로 예전 아지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오멘(Omen)인가.. 정말로 기분나쁜 일이다. 나는 뛰어가면서 버스 안에서 있었을 일을 상상했다. 아마 저 버스는 어떤 생존자 그룹의 이동수단이었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도중 안에 있던 부상자가 감염자였겠지. 그 자가 죽으면서 좀비가 되고.. 다음은..
얼마쯤 달렸을까, 그 거리에서 상당히 떨어진 우리는 헉헉거리면서 걸음을 늦췄다. 이제 우리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뭘까, 아까 차는."
수정형이 말하자 태완이가 뒤를 흘낏 돌아보며 말했다.
"내 생각엔, 차를 구해서 위쪽으로 피난가려던 사람들중에 감염자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아까부터 계속 안에서 있었을 일을 생각하고 있다가 태완이의 말을 듣자 나는 내 상상에 대해 확신을 하며, 다음 순간 재복이를 구할 때의 일이 생각나 얼굴을 찡그렸다. 멍청한 인간들! 필시 하잘데기 없는 동정심으로 가망없는 인간을 억지를 부려 태운 뒤에 저렇게 된 거겠지.
"병신같은 새끼들.. 그냥 죽여버리란 말야, 감염자는!"
내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중얼거리자 수정형이 말했다.
"진환아, 그 말은 심하잖아."
"맞아요 오빠. 그 사람들도 이유가 있었을 텐데.."
"시끄러!"
내가 전에없이 소리를 지르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뒤로 한발짝 물러났다.
"둘 다 잘 들어요.. 앞으로 우리 그룹에서 감염자가 생기면 난 그자리에서 죽여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물론 내가 감염된다면 난 즉시 자살할거야."
"김진환! 갑자기 왜 그래!"
태완이가 외치자 나는 손가락을 쳐들고 씩씩거리다가 입술을 깨물고 잠깐 숨을 돌린 뒤 나지막하게 말했다.
"넌 사람을 안 죽여봐서 몰라."
"뭐?"
그때 나와 두 사람 말고는 서점을 죄다 뛰쳐나갔었다. 물론 태완이는 밖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으니 내가 안에서 무슨 짓을 했었는지 모르겠지.
"이런 상황에서.. 동정하고 주저하는 건 죽음을 재촉할 뿐이야."
내가 눈을 치켜뜨며 앞으로 걸어나가자 세 사람은 영문모를 내 행동에 어깨를 으쓱하며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빠른걸음을 하면서 그 냄새맡는 변종좀비.. 그러니까 라디오에서 말한 '스니퍼'에게 뜯겨나간 귀를 만지작거렸다. 설마 이 상처로 내가 감염된 건 아니겠지.
알고 있었던 사람이 내 눈앞에서 다시 죽어간다면 난 정말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허나 내 눈앞에서 친구가 좀비로 변한다면 나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얼마 걷지 않아 우리들은 우리 집에 도달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앞에 서서 쳐다보니, 마당 안쪽에서 가느다란 연기 한 줄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보는 순간 내 코에 고기 굽는 냄새가 느껴졌다. 아니, 걸지게 고기를 굽는 냄새라기보단.. 뭐랄까, 고기는 고긴데 말린 고기를 굽는.. 그런 냄새.
나는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다가 문득 스니퍼가 생각나 얼른 집으로 뛰쳐들어갔다. 이 멍청한 새끼들이 냄새맡는 좀비가 있는데 아지트 마당에서 육포를 구워먹고 앉았어!
"야! 문열어!"
내가 쾅쾅거리면서 대문을 두드리자 문이 얼른 열렸다. 문을 연건 재복이었다.
"여어! 어땠.."
나는 재복이의 말을 듣지도 않고 안으로 달려들어가, 내 예상대로 육포를 굽고 있는 작은 모닥불에 다가가 마구 발로 흙을 뿌렸다. 바로 옆에서 육포를 굽고 있던 윤호가 기겁하며 내가 뿌리는 흙에서 육포를 치우며 외쳤다.
"뭐해 병신아! 고기 굽는거 안보여? 너네 맛있는거 먹여줄려고 이 형님이.."
"너야말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짓 하지 마!"
"뭐?"
윤호가 뭔소리 하냐는 듯 나를 쳐다보자 나는 사그라든 불을 발로 바구 밟으며 말했다.
"냄새를 맡는 변종좀비가 있단 말이다, 돼지야. 그놈들이 어디 있을지 알아서 이런 짓을 해?"
"뭐, 진짜?"
재복이 옆에 서 있던 서영이가 외쳤다. 내가 한숨을 쉬면서 짐을 내려놓자 열린 문으로 다른 셋이 들어왔다. 재복이는 우리들이 모두 들어온 걸 확인한 뒤 대문 밖으로 고개를 빼 이리저리 살펴본 뒤 문을 조용히 닫고 빗장을 걸었다.
나는 뒤따라 들어온 셋을 확인한 뒤 짐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윤호에게 손을 뻗었다.
"이왕 구운거 먹자구. 내놔봐."
"자. 니가 흙 뿌린거다."
윤호가 킬킬거리면서 내게 구운 육포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코를 찡그린 뒤 육포를 집어들고 훅훅 불어서 위에 앉은 흙먼지를 털어낸 뒤 입에 집어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입에서 자연스레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육포가 생각보다 쉽게 끊어지지 않자 나는 육포를 입에서 끄집어내고 흘러내린 침을 닦으면서 말했다.
"이재복, 그리고 서영이랑 에.. 나영누님. 윤호한테서 여러가지 들었어요?"
"어 뭐."
재복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호는 남은 육포들을 태완이, 수정형, 아름이에게 나눠주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얘기보다 너네 얘기부터 해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리고 그.. 냄새맡는 좀비? 그건 뭐야?"
"아 그렇지.. 그게 낫겠다."
"냄새맡는 놈 뿐만이 아냐. 듣는 놈도 있어."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육포를 다시 입에 집어넣자 태완이가 윤호 앞으로 불쑥 나서며 말했다. 나는 육포를 큼지막하게 떼어먹은 뒤 우리가 겪인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혜누나가 죽은 것부터 시작해 총을 얻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고개를 넘어가기 직전의 주홍빛 햇살이 한가닥 마당으로 내려와 내 눈을 찔렀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손바닥으로 커튼을 만들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길, 이사할 생각을 하니 깜깜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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