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집의 그녀(펌)

다람이200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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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집의 그녀

 

초봄 저녁의 날씨가 차다.

재개발 붐으로 이십여 년을 살던 집에서 밀려 나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사를 온 동네가 이곳 xxx동이였다.
공단을 끼고 있는 동네여서 가난하고 집 없던 사람들이

일명 쪽방이라는 거주형태로 밀집되어 살던 동내였고,

한번의 화재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간 걸로 유명한 동내이기도 했다.

그런 이 곳도 내가 이사 가기 전부터 한참 개발이 시작되어

아주 오래전에 같은 회사가 지었을것같은 모양의

우중충한 빈집들이 블록 단위로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 빈 집들의 보수(保手)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채

방치 된지 오래된 듯 한 낡은 벽에는 붉은 스프레이 페인트로

' 철거 '라든지 ' 빈집 '이라고 게걸스럽게 쓰여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 생존권을 보장하라 ' 라는

초라한 현수막이 한쪽의 올이 풀린 채 널브러져 있었다.

이 동내에서 내가 이사 간 곳은 큰길로부터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 새롭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였다.

그날은 낮은 지붕들 위로 드물게 보이는 노을의 붉은기운이

 어둠에 잠기기 직전의 퇴근길이었다
붉은 저녁노을의 색과 젖어드는 어둠으로 무겁게 내려앉아

불분명한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 단층 건물들 사이에

드물게 있는 비워진지 오래된 듯한 이층건물 군락을 지나가고 있었다.

황량한 죽은 거리에 바람이 분다.

버려져 썩은 넝쿨들과 함께 죽어가는 그 집의 모든 것들이

소름끼치는 호기심으로 내 발길을 멈추게 했다.

검은 창문 너머로 비가 샜는지 검은 얼룩이

페인트를 손으로 뿌린 것처럼 얼룩이 져 있었고,

오래된 먼지가 거미줄에 엉켜 산발한 여인의 머리카락처럼

창가에서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그녀를 보았다.

어둠에 잠긴 집 내부에서 처음에는

아릿한 흰 형상으로 내 눈을 의심하게 하더니
잠시 후 에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창가에 선 그녀의 모습에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티 없는 하얀피부,

긴 생머리가 휘감고 있는 시원한 목덜미,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있는 깊은 눈,

갸름한 얼굴에 약간은 얇아보이는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

연약한 팔뚝.....

나는 아주 잠시 창문에 기대는 듯 하더니

안쪽을 사라져 버린 그녀의 모습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반해 버리고 말았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껴 본적이 있었던가...

아름다움에 소름끼치는 사랑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 석양이 지는 그날 나에게 일어났다.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한때 날 미치게 했던

클림트의 그림속 여자들의 이미지가

방금 살아 움직이며 내 눈앞에 있었다.

“저기요!! 거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

여자를 불러본다.
왜 그런 버려진 집에 있는지... 따위는 궁금하지 않고

다만 그녀를 불러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만을 한다.

한층 어둠이 내려앉은 어두운 창 뒤쪽에

그녀의 흰 원피스가 어둡게 보이고...
그리고 날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를 느낀다.

“저....거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

순간 그녀의 하얀 손이 창턱을 탁하고 치더니 안쪽으로 사라진다.

내 말에 반응하는 건가?

“거기 위험해 보이는데요...”

대답이 없다.


깨진 창 안쪽에서 반쯤 가려진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만 서있는 그녀 때문에 나는 안달이 난다.
난 문득 이 어두운 버려진 집에 혼자 서있는 그녀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잠시 만요, 제가 들어가도 될까요? ”

움찔.. 잠시 그녀가 몸을 뒤틀어 보인다.

좋다는 말인가?

난 출입금지가 쓰여진 채 판자로 막혀있는 현관문을 포기하고

담을 넘어 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담 위쪽에 흉하게 박혀 있는 유리병 조각들이

들쑥날쑥한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조심해야지 하며 손에 힘을 주어 다리를 걸치려 하다

균형을 잃고 담 안쪽으로 넘어진다.

날카롭게 날이 선 흰 유리조각에 넙적다리 안쪽이 길게 찢어진다.

“으악!! ”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붉은 피가 송골송골 베어져 나온다.
느낌보다 심하게 다친 듯 허벅지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앉아 있는 정원 흙을 흥건히 적신다.

금세 현기증이 온다.
등 뒤 담쪽으로 몸을 기댄다.
축축한 썩은 쓰레기가 내 몸무게에 못 이겨

등 뒤에서 무너져 숨이 죽는 것이 느껴진다.

“읍.....”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썩은 냄새에 피 묻은 손으로 코를 움켜쥔다.
끈적끈적 한 무언가가 등 뒤의 티셔츠에 묻어나는 게 느껴진다.
손을 등 뒤로 돌려 등에 묻어 있는 것을 훌터내 본다.

끈적끈적한 점액질에 엉켜 있는 털?

통증을 참으며 돌아본 담쪽에는

수많은 고양이와 개들이 갈가리 찢겨진체

한겨울을 보내고 한참 해동이 되어 썩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구더기가 꿈틀거리는 퀭한 눈두덩이의 머리들이

무슨 의식이라도 하는 듯 한쪽에 모여진 체 갑자기

집안에 침입 한 내게 호기심을 느끼는 듯

약간 갸우뚱하게 기울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야속의 그 얼굴들이 핑글 돌면서 옆으로 쓰러진다.
내 피가 떨어진 곳으로 흰 구더기가 꾸물꾸물 모여들더니

게걸스럽게 피를 빨아 먹는 듯 붉은 피를 온몸에 묻히며 몸부림친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현관문에 대어놓은 판자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이층 창가에서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린 그녀가

무서운 눈동자로 날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의식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었다.
응급실에서 허벅지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있는 내 모습을

한심스럽게 쳐다보던 엄마가 퇴원 수속을 하는 동안에도

그리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은 그 버려진 집에 있던 그녀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하루 이틀...상처가 덧나서 겨우겨우 병원에만 다니는

자유롭지 못한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녀를 향한 비이성적인 소유욕이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 집을 나와 다른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
아니 당연히 그 버려진 집에 살고 있는 게 아니니 그 집을 떠나겠지...
그럼 그녀를 어디서 또 만날 수 있겠는가....
아니지, 그녀는 그 집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왜 그때...

그 죽은 동물들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일지 않았던 걸까?
그녀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왜 궁금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그날부터 절뚝거리며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될 정도로

상처가 아문 것은 일주일 정도 지난 후였다.
억지를 부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중간에서 내린 나는

통증을 참아가며 그 버려진 집을 향해 성급한 걸음을 옮긴다.
그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그녀가 그곳을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조금씩 그 집 쪽으로 절뚝거리며 걸어간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그 집의 조각난 듯한 벽면이

다른 집들보다 어두워 보이는 것은 그 집을 감싼 넝쿨 때문일까?
부서진 현관문의 판자들이 흉하게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게 멀리 보인다.
그녀를 본 그날처럼..

초저녁의 내 그림자가 길어 질대로 길어져

그 집 담에 먼저 닿는다.

아직은 남아 있는 저물어가는 햇살이

그녀가 서있던 그 창문안쪽을 비추고 있다.
좀더 선명해 보이는 집안의 얼룩과 거미줄...

깨져 있는 유리창이 시들어가는 햇살을 반사해 눈이 부시다.

순간 요 몇 일간 나를 사로잡고 있던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쳐 오른다.

“ 계세요? ”

“아무도 안계세요?.....”

대답이 있을 리가 없다.


이 버려진 폐허에 그녀가 있었다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이집은 썩어 있었고 죽어 있었다.
썩은 냄새가 풀 풀 풍기는 이 구역질나는 집에

그녀가 아직도 머물고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절망감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무엇이 이렇게 그녀를 사랑하게 한것일까...
그녀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때 그녀가 서있던 창가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
눈물에 어른거리는 눈가를 훔쳐내고

그림자가 뚜렷한 그 창가를 응시한다.

손...

하얀 손이 창턱을 잡고 있는 게 보인다.
그녀의 가녀린 손...

그녀가 아직 저 집에 있다.

“여기요!! 잠시 만요!! 저는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잠시 만요!!! ”

아무리 불러도 그녀는 손만을 내놓은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제가 들어갈게요! 거기 계세요!! ”

문을 막고 있던 판자들이 부서진 게 기억나

 대문 쪽으로 절뚝이며 걸어간다.

젠장,

요번에는 판자가 아닌 두꺼운 쇠사슬로 감겨 자물쇠로 잠겨져 있다.
이런 버려진 집에 무얼 훔쳐갈게 있어서 대문에 자물쇠를 걸어 놓은 것이지?
젠장...대문에서 물러나 다시 창가를 바라본다.

아...
그녀 손 옆으로 검은 머리가 보인다.
조금씩 조금씩 그녀가 머리를 들어올려 눈썹이 보이고

그리고 눈이 보인다.
그녀가 나를 내려다본다.

조용한 시선..
조용한 검은 눈동자..

“여기 문이 잠겨 있어서 못 들어 갈거 같아요... ”

대답이 없다.

어두워지는 창턱에서 살짝 눈만 내민 체

나를 훔쳐보는 그녀를 보며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녀는 왜 이 더러운 곳에 있는 것일까?
도와주고 싶다...

그녀를 갖고 싶다....

“저 다리를 다쳐서 담을 넘을 수 없어요,

당신은 거기 어떻게 들어간 거예요?

잠시만 나와 주시면 안 될까요 ? "

점점 낮게 깔리는 어두운 그림자에

그녀를 구분하기 힘들어지자 초조해진다.

“잠시만...얼굴을 보여 주세.......”

순간 그녀가 움직이기 힘들다는 듯

왼쪽 어깨를 힘겹게 창턱에 걸쳐 올린다.
그쪽으로 힘을 주어 힘없는 몸을 일으켜 창틀에 기댄다.
가름한 얼굴에 검은 생머리가 찰랑거리며 부드럽게 흐른다.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미소...

저 얼굴을 보고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듯한 미소를 보고

어떻게 제정신일수 있을까...

그녀가 가녀린 팔을 들어 나에게 손짓을 한다.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아...그녀가 나에게 손짓을 한다...

“들어 갈수가 없어요, 자물쇠를 부술 연장도 없고...

어쩌지,잠시 만요,기다려요,어떻게든 문을 열 테니깐... ”

어둠이 점점 짙어져감에 따라 내 초조함도 극에 달한다
젠장....젠장...다리만 멀쩡했어도 담을 넘어 들어가는건데....
의외로 굵은 체인에 감겨있는 자물쇠는 쉽게 부숴 지지도 않는다.

젠장..

주면에 널브러져 있는 벽돌로 자물쇠를 부셔보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아 그녀가 날 기다리는데...


“이것 봐 뭐하는 거야!! ”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철거 관리인인 듯 한쪽에 관리라고 쓴 완장을 찬 남자가 등 뒤에 서있다.

“뭐야 몇 일전 그 친구 아냐? ”

“예? ”

“자네 여기서 사고 났던 그 친구 아냐? ”

“아...예... ”

“여기서 또 뭐하는 거야, 이런 집에 무슨 볼일이 있다고? ”

남자가 더러운 담배 진이 묻어 있는 손으로

입 주변에 말라붙어 있는 허연 침을 닦아 낸다.
이런 남자에게 그녀에 대한 말을 한다는 건

그녀를 더럽히는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입을 다문다.

“상처는 좀 괜찮아 졌는가? 그래도 내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

“아...예...감사합니다... ”

“그때 자네든가 우리가 빨랐으면 그 여자 안 죽었을 텐데 말이야...”

“예?”

“그때 자네 그 여자 보고 뛰어 든거 아니였어?”

“아...예...그렇기는 한데......?”

“그여자 그미친여자, 이 동내 개고 고양이고 다 잡아다 죽이더니

결국 그날 목매달고 죽었잖아”

“무슨 소리 하시는 거에요?”

남자가 눈치체지 못하게 슬쩍 위를 올려다본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런데 이 남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자네 몰랐나? 그날 자네가 지르는 비명 듣고

우리가 이 집에 들어갔었는데,장난 아니더구먼...

자네도 봤지? 그 고양이하고 개 도륙내 놓은 거...

그 미친년이...밤에 이상한 동물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만

여기서 죽인 거였어...치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아참,

그 여자 자네 실어내고 그 시체들 치우다가 나중에 발견된 거야...

자네가 우리한테 말만 해줬어도 그 여자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어휴 그 몰골하고는, 아직도 꿈에 나올까 무섭다니깐...”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여기서 여자가 죽었어요?”

“뭐야 자네 모르고 들어간 거였어? 그때 자네 실어내고

얼마있다 그 여자 목매단 걸 발견했는데...끌어 내릴 때만 해도 뜨

끈뜨끈하더라고...금방 목매달은 거든데...

우린 자네가 알고 들어갔는지 알았지.....”

“어...어디서 여자가 죽어있었는데요...? ”

“이층 저 창문가에서....”

남자가 손을 들어 그녀가 서 있는 곳을 가리킨다.

“얼마나 흉한 몰골을 하고 죽었는지 흰 옷을 입었었는데,

똥칠에다 피범벅을 해가지고는 뭔 원한이 그렇게 많았는지

눈알을 히번득하게 내려 깔고 죽었더라고....

죽기 전에 각혈을 했는지 입에 한가득 피를 물고 으..

방안은 또 어떻고 개들을 저 방에서 죽어서 내장을 뿌려 놨더라고

내장이구 뭐고 다 썩어서, 아직도 코에서 그 냄새가 나는 거 같아”

남자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동안에도 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남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그녀는 저기 저렇게 서 있는데,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지 않는가..

어둠에 짙게 내려 앉아 검은 그림자로 윤곽 만 보이지만

저기서 저렇게 손짓을 하고 있지 않는가...

“아저씨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이 집에서 여자가 죽었다니요...

그날 있던 여자는 저기 서 있잖아요....”

그녀 쪽을 가리키며 내가 손짓하자

관리인이 시력 나쁜 눈을 찡그려 이층 창가를 올려다본다.

“있기는 누가 있다고 그래 아무도 없구먼...”

“무슨 소리에요...저기 서 있잖아요!!”

관리인의 옷깃을 잡아끌어 창가로 다가간다.

“저기 보세요.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서 있잖아요!!! ”

“이친구가 미쳤나 누가 있다고 그래 기분 나쁘게...이거 놔!!”

“껌껌해서 잘 안보이셔서 그래요 잘 보세요. 저기 서 있잖아요. "

분명히 어두운 창 넘어 그녀가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그럼 그날

저 창가에서 죽은 여자는 누구란 말이지....

그럼 저 여자는 뭐란 말이지?

순간 좁은 골목으로 승용차 한대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에 승용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갑자기 엄습해 오면서 아주 잠깐 그녀가 서있는 창가를 밝힌다.

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창가의 그녀를 바라본다.

입가에서 흘러내린 피가 흰 원피스를 검붉게 물들이고
헝클어진 머리칼이 피 묻은 얼굴에 말라붙어 있었다.
앙다문 이빨사이로 피가 배어져 나와 붉게 물들은

이빨 하나하나가 선명해져 있었고
흰자만 보이는 눈가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통과 악의에 일그러진 얼굴...
창문을 올려다 본체 바닥에 철썩 주저 않아 얼어붙은 나에게

공포가 옮아갔는지 관리인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을 움켜쥐고 있는 나의 손을 쥐어 뜯는다.

“아니 이사람이.. 뭐가 있다고 이러는 거야...이거 못 놔!! ”

다시 어두워진 창가의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움찔 움직이는 게 보인다.

창밖으로 손을 뻗어 창턱 바로 밑 턱을 잡는다.
그대로 몸을 내밀어 중심을 밖으로 옮긴 후 창턱으로 다리를 걸쳐 올린다.
다른 한손으로 창을 잡고 몸을 완전히 창밖으로 내밀어

마치 거미가 벽에 붙어 있듯 그렇게 집 벽에 달라붙는다.

나오고 있다......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나를 찾아 집밖으로 나오고 있다...
뿌드득 뿌드득..이빨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뿌드득 뿌드득..붉은 벽돌에 손톱이 갈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피의 끈적임이 바로 귀 옆에서 질척질척한 소리를 내는 듯하다...

“아아아아아악!!!”







그녀가 바닥을 기어온다.

방바닥에 그녀의 손자국이 붉은 피로 남는다.

침대 시트에 숨긴 내 발목을 찾아낸 그녀의 손이 너무 차다.

발목에 파고드는 그녀의 손톱이 너무 날카롭다.

제발...

입에서 흐르는 피가 내 머리카락을 적신다.

제발...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힘들 들어가지 않는다.

제발...

몸을 감싸오는 그녀의 차가운 썩은 몸뚱이에서 벗어 날수가 없다.

제발...


그녀의 고통에 일그러진 썩은 눈동자가 내 눈동자를 바라본다.

그녀의 손톱이 내 목을 파고든다...

“아아아아아아악....”

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구석으로 도망친다.

또 다시 그녀의 악몽이다..

 

그날 이후 나에게 매일 밤 그녀의 악몽이 찾아온다.
벌써 한달도 더 지났는데...


그녀를 본 그 마지막 날 내가 보인 모든 행동은

다리가 곪은 덕에 몸에 열이 나서 헛것을 본 것뿐이라고 치부되었다.

아름답던 그녀도 벽을 타고 내려오던 그 혐오스러운 그녀도

모두 헛것이라고....


그렇게 나의 열병 같은 사랑이 끝나 버렸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에게 매일 밤 찾아오는 그녀의 악몽은

점점 더 혐오스럽게 그리고 점점 더 공포스럽게

내 오장육부를 쥐여 짜며 고통을 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집안이 망하고

실연 까지 한 그 여자가 미쳐서 그 집에 숨어 있다가

뱃속에 있는 아이를 유산하고 동네에 살아 움직이는걸 모조리 잡아다

도륙해 그 살점들을 먹고 살다가 그날

내가 보는 앞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한 것이란다.

그녀를 본 그날 창가에서의 그녀의 움직임이

목 매단후의 몸부림 이었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게 나였고...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움직임이

살려달라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에 공포감을 느낀다..


두 번째 그녀를 봤을 때,

정말 그것이 그냥 단순한 헛것을 본게 맞을까?
그렇게 뚜렷하게...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 손짓을 하고 그리고

벽을 타고 내려오고..



오늘 잠을 자기는 다 틀린 것 같다.
담배를 빼들고 악몽 후에 오는 오한에 떨며

창가에 서서 밖을 내려다본다.
9층 높이의 아찔함이 속을 뒤집는다.
한밤중의 어둠 속에 가로등만이 밝은 빛을 뿌리고 있다.

이렇게 어두운 밤 그녀는 그 집에서 공포에 떠는 개를 죽이고 ..

또 절망에 쌓여 죽음을 생각했겠지...?


두렵다...

어둠 속에 서있던 그녀의 그 고통과

절망과 혐오에 휩싸인 그 얼굴이.....



문득 시야에 뭔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
아파트 단지 밖에 있는 가로등의 불빛 밑을

뭔가가 빠르게 지나가는 게 보인다.

뭐지?

몸에 피가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낀다.
심장이 밑으로 잡아 체이는 듯한 고통이 엄습한다.

뭐지? 저 흰 물체는?

가로등의 불빛이 비치는 부분을 또다시 뭔가가 휙 지나가는 게 보인다.

잘은 보이지 않지만,

네 다리로 기고 있는 그것은


흰 원피스를 입은 그녀 이다...


뭔가 분주히 찾고 있는 듯....


뭐를?
뭐를 찾는 거야?
아직 악몽을 꾸고 있는 건가?

창을 닫고 침대로 돌아와 눕는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그녀처럼 나도 미치는 건가....
아니면 그녀가 정말로 날 찾아다니고 있는 건가...


억지로 잠을 청한다.
이번에는 악몽에서 깨기 위해...




...그녀가 또 날 찾고 있다.
퇴근길에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내 눈에 그녀가 보인다.
악몽이 아니었어....

 



아파트 단지 저쪽에서 마치 냄새 맞는 개처럼

바닥에 엎드려 그 혐오스러운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는

침과 피가 엉긴 끈적이는 액체를 입에서 줄줄 흘리며 나는 찾는다.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손가락의 마디가 뚝뚝 부러지듯

콘크리트 바닥을 긁어 댄다.
번뜩이는 허연 눈동자가 나를 찾아 빙글 빙글 돌아간다.

그 회전에 맞춰 피가 줄줄 흐르는 머리가 등 쪽으로

획 하니 회전을 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녀의 썩은 냄새가 아파트 단지에 진동을 하는데...

 

내 눈에만 보이는 건가? 내 코에만 느껴지는 건가?

어제는 아파트 밖이었는데,

오늘은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와 있다.....
점점 더 나한테 가까워지고 있어....
나를 찾고 있어.......

 


방광이 터진 듯 나도 모르게 오줌이 줄줄 흘러내린다.
난 그녀가 당장이라도 날 눈치 챌까봐

떨려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아파트 출입구 쪽을 바라본다...


아냐,

저쪽으로 나가다가는 그녀한테 들킬게 뻔하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갑자기 그녀의 회전하던 눈동자가

이쪽으로 고정되는 듯 움직임이 멈춘다.

날 발견한건가?

도망가야 한다..

잡히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 간다.
마침 열려 있던 엘리베이터에 올라가 미친 듯이 버튼을 누른다.
그녀가 쫓아오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잡을 듯해서
천정에서 그녀가 내려다보고 있을 듯해서
멈춘 엘리베이터 문 앞에 그녀가 버티고 서 있을거 같아서

피가 마른다...울음이 터져 나온다...

 


“엄마!!! 엄마!!!”

“왜 무슨 일이야!!!”

 

“엄마 형한테 나 좀 데리러 오라구해...

빨리!!! 으흐흑.. 나 좀데리러 오라고 해 ...”


“애가 왜이래 정말...”

“빨리!!!!!”

당황한 엄마가 형한테 전화 하는걸 들으며

나는 현관문에 기대 앉아 혹시 라도 그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는지 감시한다.

아파트 계단을 올라오고 있을지도 몰라

그 피 섞인 침을 질질 흘리며 팔다리로

기어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 거친 숨소리와 숨넘어가는 울음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형이 오면 이 곳을 형과 엄마와 함께 빠져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쫓아오고 있는 듯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날 못 본건가?
날 못 본거야....

지금 어디 있는 거지...?
공포에 입안이 바짝 마른다.....


날 따라 올라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1층에서 날 찾고 있는 건가?

“엄마 형 언제 온데?”

“지금 금방 온데 너 왜 그러니...”

“엄마 현관문 잠그고 형 올때까지 누가 와도 열어 주지 마

꼭 지키고 서 있어야해..어디 가지 말고...엄마 제발...

현관문에서 눈 떼지 말고 꼭 지켜보고 있어야해

뭐가 들어오는지.....”

영문을 몰라 당황해 하는 엄마를 끌어다 현관 문 쪽에 세워놓고

방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창을 연다.
열린 창을 통해서 그녀의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렇게 지독하게....

밖으로 내민 얼굴을 그녀가 알아 볼까봐 슬쩍 밑을 내려다본다.

아파트 단지 어디에도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 지금 이곳으로 올라오는 중인가?
계단.. 아니면 엘리베이터?
어두운 계단을 기어 올라오는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져 소름이 끼친다.



삐거덕거리는 몸뚱이를 질질 끌면서...


돌아갔나?

좀더 몸을 내밀어 밖을 내다본다.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함...





문득 내민 머리 바로 옆에서


뿌드득 뿌드득...이빨 가는 소리가 들린다...


뿌드득 뿌드득...붉은 벽에 손톱이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피의 끈적임이 바로 귀 옆에서 질척질척한 소리를 낸다...


그녀의 썩은 손가락이 내 옆얼굴을 간지른다....


난 .......돌아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