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모가 발가벗기고 물을 뿌려서 찰지게 만든 뒤 채찍으로 마구 팼다. (초등학교 2학년때)
이유는 학원을 엄청 많이 다닌다고 부모가 거짓말했는데 교회집사님이 물어보시기에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2. 안면기형으로 귀가 없다. 한쪽귀만 들린다.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때까지 노골적으로 교내에서 아이들에게 따돌림당하고 맞고 조롱거리가 되었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나는 사람이었으나 생긴 것이 인격이 없는 동물취급을 당했다.
3. 고등학교 때는 왕따가 사회적 문제가 되어서 직접적인 괴롭힘은 없었으나, 사회에서 그런다고 우리가 쟤랑 놀아줄 거 같으냐는 듯 철저히 나를 피했다. 요즘은 괴물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이 트렌드일 지는 모르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4.부모님들은 양쪽다 의사다 서울의대, 이화의대 나왔다.
5.교회집사까지 한다. 유니세프 무슨 신애라 차인표가 하는 그 돈 몇만원씩 보내주는 것도 한다.
6. 아버지는 어릴때부터 항상 밤 10시에 칼같이 들어왔고, 오면 뭔가 트집거리를 잡는다. 내가 쓴 글씨체가 좋지 않다든가. 뭐 이상한 이유를 들어 - 지금 20대 되어서 생각해보면 서울대생들 특유의 꼬투리잡기가 있다 딱 그거였다 그걸 유치원생한테 트집잡았다 - 내 팔뚝만한 각목으로 미친듯이 팼다. 한대때리면서 이렇게 잔인하게 때리는 이유는 정당하다고 강조했다.(교육상 야단치는거면 대체 뭐가 정당하다는건지?) 그런데 때릴 때마다 스트레스푸는 듯한 소리를 냈다. 변태같았다.
7.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130cm 20kg 중반대였고, 후에 150cm 30kg 중학교 올라가서는 160~175cm 40키로를 유지했다.
8. 학교안에서는 괴롭힘이 줄어들었다. 왕따가 사회적 이슈라서 그랬던 거 같다. 고등학교 올라가서 내신 등수가 반에서 상위권에 들었는지라 괴롭힘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교내는 철저히 계급사회였다. 1등하는 애는 노는 애들이 건들지를 못했다. 애가 아우라가 있으니까. 하지만 나처럼 어리버리한데 공부를 못하니 사람취급을 안했다다. 공부잘하는 애들은 기피하고 깡패애들은 노예처럼 취급하고 선생님들은 쳐맞든 뜯기든 방관했다. 선생님들에게는 공부잘하는 애들, 혹은 촌지를 내는 애들의 인권만을 생각했기때문에. '집단 괴롭힘'에서 구해줄 애들은 걔네들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최종적으로 177cm 50kg)
9. 고3때 고려대학교 수시1차에 붙었다. 그런데 수능을 못봐서 떨어졌다.
10. 수능 30일 전 아버지가 어떤 트집을 잡으면서 흉기로 겁을 줬다. 내가 더 이상 괴롭히면 가만있지 않겠다 했다.
11. '그래?'하며 119에 전화를 하더니 나를 강압적으로 억지로 데려갔다. 내가 이렇게 끌려가는게 처음이라 울고불고 했다.
12. 수능 30일전에 그렇게 야산의 (정확히 어딘지 모른다) 정신병원에 끌려가서 거기서 의사가 말도 안되는 소리로 나를 온갖 겁을 줬다. 해명하려 하면 그건 망상이라며 어처구니없는 소리로 해명할 기회조차 주질 않았다. 아니 맞아서 멍이 시퍼렇게 있는데, 망상?? 기회를 한번 더 줄테니 '바람직한 대답'을 하라며 아버지를 때렸냐고 물었다. 말도 안된다고 했다. 몸집을 보시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사 아버지가 다 뒤에서 조정한 거 같다. 일반인같으면 그렇게 편파적으로 그것도 바로 그러질 못할 것이다. 판단하 시간을 두고 지켜보겠지. 훗날 내가 상담하게된 의사에게 들은 거 같다.
13. 결국 울면서 무조건 잘못했으니 살려달라고 해서 나갔다. 정말 치욕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억울하면서 오히려 수능때문에 참기로 했다. 이게 내 화병의 시초가 되었다. 대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야하는지 억울하고 한이 맺힌다.
14. 하지만 그 해 수능은 완전히 망쳤다. 수시는 결국 떨어진다.
15. 아버지는 상계동 모 대학병원 부원장이다. 모 대학 의대교수다. 분당 모 교회 집사다. 그 곳 고등부 교사로도 일한다고 한다.
어머니는 경기도 성남시 죽전에서 모 통증클리닉 겸 노인요양센터를 운영한다. 거기 사람들에게 평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런 걸 보면서 내가 보기엔 어머니는 경악스러울 정도의 이중인격이라는 거다.
16. 아버지는 참 차갑다. 나한테말고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고 무뚝뚝한 거라고 한다. 무뚝뚝하고 틱틱대는데 뭔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기대한다. 참으로 우스울 따름이다. 얼마나 비열하고 비겁한 인간인데... 일단 겉으로 보면 설경구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속은 더 차갑고 비열하다. 그리고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는지
17. 중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티비보다가 뭐가 뒤틀렸는지 리모콘을 던져서 난초가 산산조각이 났다. 깜짝놀라 가만히 있었는데 그러더니 나에게 뭐라고 트집을 또 잡더니 - 꼭 군대에서 각이 안잡혔다고 트집잡는 느낌으로 -
발가벗기고 나를 아파트 문 밖으로 내던졌다.그리고 문을 잠갔다 여름이라 그렇게 춥지는 않았지만, 슬픈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옆집에 살던 같은 중학교 누나가 있었는데, 친구들과 우루루 나왔다. 나를 보고 다들 소리지르면 도망가는데 정말 비참했다. 굴욕적이었고,, 이 인간은 진짜 변태다.
18. 어머니는 예전엔 시댁 식구들을 우회적으로 욕하곤 했다. 그러면서 외가를 칭찬하며 최씨 성을 붙이라 마라 이러는 얘기도 했다. 하루는 참다못해 '내가 '그러면 안된다고 그러면 어머니의 격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방금 전까지도 이영애같던 사람이 갑자기 광분하더니 거품물며 욕하면서 냉장고에서 생계란을 가져오더니 10살채 안된 아이 얼굴에 정통으로 던졌다. 정말 충격과 공포였다. 그 후 둘만 있으면 입에 담을 수 없는 독설을 퍼붓다는지 아버지에게 거짓말하여 나를 혼내도록하곤 했다.(1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 외가집인간들도 가관이다. 특히 '최영장군'이라 불리우는 외삼촌이란 인간이 있는데. 아주 김구라 2001년 당시 인터넷방송할 시 딱 그 스타일이었다. 2003년 고3때 집안에 돈문제로 뭔가가 일이 터진 적이 있다. 나느 잘 모르겠는데 자꾸 엄마를 찾는 거였다. 고3인 나한테 와서 온갖 독설 퍼부으며 엄마 어딨냐고 ㅈㅣ랄ㅈㅣ랄했었는데 정말 인간이 아니었다. 고3짜리한테. 지금 공부하고 있어야할 애한테. 그런 파렴치한. 외삼촌이 대체 얼마나 가깝다고. 그 인간이 전까지는 내게 뻐꾸기(화려한 말빨)를 많이 날리면서 친근하게 대하길래 잠시 속아넘어갔었다.
20.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언젠가 어머니가 퇴근하고 들어오자마자 바베큐포크를 들고 나를 찌르려고 했다. 아직도 멘트가 기억날랑한다 대충 '거기 그대로 서있어어어어어어어어~~~!'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살인미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하고 죽이려는 의도로 공격을 가하여 결과적으로 죽었을 때' 살인죄가 성립된다고 한다. 헐레벌떡 도망가서 문을 잠갔는데 그 바베큐포크로 문을 막 뿌시면서 들어오려고 했다. 정말 무서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며 포크를 어디론가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21. 고등학교 때도 사실상 왕따였는데 이상하게 반장 등 몇명 '럭셔리한' 애들이 나에게 동등한 관계로써의 호의적인 표시를 자주 보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되었는데, 어머니의 힘이었다. 어머니가 학부모 대의원회인가 그런 데를 들었다. 거기서 사람들을 어떻게 휘어잡는지, 겉으로 보면 어머니는 조조, 유비같은 느낌을 줬다. 요즘 들어 티비에서 비슷한 인물을 찾았는데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이다. 생긴 것도 비슷하다. 곱상하면서도 그 싸이코같은 인상. 솔직히 미실은 그나마 낫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나 나에 대해서 끔찍하게 아들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 럭셔리한 애들이 나에게 말할 정도다. 부럽다고. 나참 부러워?
22. 맞고 학대받은 것이 엄청 많은데 기억이 나는 건 몇가지밖에 없다. 더 충격적인 것도 많은데 기억이 안난다. 거의 몇십일동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적도 있다. 아! 장작불 정리하는 쇠꼬챙이? 우산? 으로 쓰러져있는 나를 마구 찔렀던 기억이 있다. 흉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23. 글씨체가 올바르지 못하다고(정조와 박지원의 문체반정이 생각났다 어처구니가 없다) 골프체로 무방비상태로 갈비벼 다리 머리통 온몸을수없이 맞은 기억도 있다. 조금 과장해서 천여회 맞은 듯 싶다. 그 때 생각하면 아쉽다. 당시 미국에 있을 적이었는데 신고했으면 잡혀갔을 수도 있었는데...진짜 천재일우를 놓쳤다. 정말 아쉽다...그 때 확실한 전적을 만들어놨어야 현재 이 지경이 되었을 때 증거자료로 내놓을 수 있었는데..
24. 극심한 학대받은 이유 중에 이런 것도 있다. '해골같은 얼굴로 거지처럼 돌아다닌 죄' . 중학교 3학년 말에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돌아다니곤 했다. 점심시간만 되면 학교 깡패놈들이 애들 괴롭히러 다니기때문에 특히 나는 유명한 '동네북 장애인'이었기때문에 도망쳐야만 했다. 그렇게 무단으로 학교 밖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부모가 다니는 분당 모 교회 집사님이 날 봤나보다. 애가 엄청 말랐다고, 뭐 좀 먹여야할 것 같다고 얘기를 하셨다고 한다. 최집사님(어머니)이 그렇게 교회에서 언플을 많이 했는데, 실상 그 끔찍히 여기는 아들이 그렇게 거지꼴로 다니는 것이 밝혀지니까 그 화살이 나에게 쏟아진 것이다.
그 후 깡패를 불러와 마구 팼던 사건이나,
여동생의 "쟤 끌려가서 죽으면 상속분 내꺼야?ㅋㅋ" 사건이나,
여동생은 88년생으로 지금 미술 입시생인데 지 아버지와 판박이다. 잔인하고 겉과 속이 다르다.
어머니를 닮은 점은 거짓말을 술술술술술술술술술 내뱉는다는 것과 거짓임에도 드러나도 적반하장의 대범함?
여동생은 부모와 달리 겉으로도 전적이 좀 있다. 교내에서 따돌림받는 아이 노래방으로 끌고가서 개처럼 패고 둔기로 머리를 구타한 혐의로 전학처분당했다. 다른 일당들은 퇴학처분을 받았는데, 아버지 빽으로 근처 중학교로 전학갔다가 1년만에 서현중으로 돌아왔다. 중학시절 타인에게도 온갖 악행을 일삼았으나 현재 럭셔리 미술입시생으로 주변에 껄떡대는 늑대들이 있나보다. 뭐 끼리끼리 모이는 거겠지만.
어머니가 나와 싸우면서 내가 했던 말을 부풀리거나 전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면서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한다고 무수히 협박했던 사건들,
과장안하고 1000번은 했던거 같다 몇년 동안 매일같이.. 환청도 들리고 꿈에서도 나오곤 했다.
(실화)나도 누구처럼 풋풋한 사랑을 하고 싶었다
나도 누구처럼 소녀시대 쫓아다니며 유치한 팬노릇도 해보고 싶었고
나도 누구처럼 풋풋한 사랑에 도전하고 싶었고
나도 누구처럼 무식한 소릴해대도 해맑은 여유를 가지고 싶었고
나에게 남은 건 실수를 허용치 않는, - 넘어지면 죽어 -
한치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 - 그녀는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독사를 내뱉어 -
몹쓸 의심병, 끊임없는 완벽주의
나도 누구처럼 듬직한 청년이 되고 싶었고
나도 누구처럼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해 영웅이 되고 싶었고
나도 누구처럼 학문의 길을 걸어 세상사람들을 이롭게 해주고 싶었다.
나에게 남은 건 생존의식과 증오심.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신념같이 여겼던 시절이 있기에
이런 내 자신의 삶 자체가 나에겐 치욕으로 다가왔다.
의심을 안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 실체 있는 피해의식
안쓰러운 상처와 약점을 미친듯이 후벼파는 악마새끼들.
북한사회보다 더 얼음빙판길이다. 오히려 북한이 낫다
북한사회는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추구하지만,
이 곳은 내가 실수할 때를 목놓아 기다린다. 쥐도새도 모르게 처리하기 위해..
승냥이같이...이들은 날 항상 감시한다. 매일 남을 통해 정오에 체크한다.
그들에게도 한가지 허점이 있으니,
나는 그 호기를 놓칠 수 없었다
바로 인터넷이다
나는 지금 헤벌레 웃고 있다. 그래야 의심을 안한다
나는 이 호기를 놓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곧 알게 되겠지
나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행복한 순간이 영원하지는 않겠지
내가 반기를 들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종말을 맞이하겠지
나를 향한 항성은 이미 가려졌고
그 아래 제왕처럼 군림하는 저 악마들에게 도전하는 나.
도전하는 나...
등불에 달려드는 불나방같이..
정말 행복하다.
이 겸손한 작은 행복감도 내 곁을 떠나겠지
이 것은 최선책이 아닌 헛된 선택일 지도 모른다
내 자신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지금부터 미련을 버려야한다.
기대를 버려야한다.
사랑을 버려야한다. 유신아 미안해
만약을 버려야한다.
희망을 버려야한다.
체념도 버려야한다.
어렵게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한가지 더 부탁의 손길을 내밀고 싶습니다.
밑의 글은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실상의 1/10 밖에 안됩니다. 읽어도 잘 모르십니다)
부탁드리건데 밑에 글을 퍼뜨려주십시오..
그들이 내 마음에 뿌리깊게 심어놓은 의심병으로 인해 이 부탁마저 의심이 되지만,
이 글을 읽는 1000명중 딱 한분만이라도 제 손길을 잡아주시길..
곧 조만간 그들이 있을 곳이 아닌.. 성역(聖域) 앞에서 1인시위를 할 생각입니다.
신체는 자유로우니까요...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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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모가 발가벗기고 물을 뿌려서 찰지게 만든 뒤 채찍으로 마구 팼다. (초등학교 2학년때)
이유는 학원을 엄청 많이 다닌다고 부모가 거짓말했는데 교회집사님이 물어보시기에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2. 안면기형으로 귀가 없다. 한쪽귀만 들린다.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때까지 노골적으로 교내에서 아이들에게 따돌림당하고 맞고 조롱거리가 되었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나는 사람이었으나 생긴 것이 인격이 없는 동물취급을 당했다.
3. 고등학교 때는 왕따가 사회적 문제가 되어서 직접적인 괴롭힘은 없었으나, 사회에서 그런다고 우리가 쟤랑 놀아줄 거 같으냐는 듯 철저히 나를 피했다. 요즘은 괴물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이 트렌드일 지는 모르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4.부모님들은 양쪽다 의사다 서울의대, 이화의대 나왔다.
5.교회집사까지 한다. 유니세프 무슨 신애라 차인표가 하는 그 돈 몇만원씩 보내주는 것도 한다.
6. 아버지는 어릴때부터 항상 밤 10시에 칼같이 들어왔고, 오면 뭔가 트집거리를 잡는다. 내가 쓴 글씨체가 좋지 않다든가. 뭐 이상한 이유를 들어 - 지금 20대 되어서 생각해보면 서울대생들 특유의 꼬투리잡기가 있다 딱 그거였다 그걸 유치원생한테 트집잡았다 - 내 팔뚝만한 각목으로 미친듯이 팼다. 한대때리면서 이렇게 잔인하게 때리는 이유는 정당하다고 강조했다.(교육상 야단치는거면 대체 뭐가 정당하다는건지?) 그런데 때릴 때마다 스트레스푸는 듯한 소리를 냈다. 변태같았다.
7.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130cm 20kg 중반대였고, 후에 150cm 30kg 중학교 올라가서는 160~175cm 40키로를 유지했다.
8. 학교안에서는 괴롭힘이 줄어들었다. 왕따가 사회적 이슈라서 그랬던 거 같다. 고등학교 올라가서 내신 등수가 반에서 상위권에 들었는지라 괴롭힘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교내는 철저히 계급사회였다. 1등하는 애는 노는 애들이 건들지를 못했다. 애가 아우라가 있으니까. 하지만 나처럼 어리버리한데 공부를 못하니 사람취급을 안했다다. 공부잘하는 애들은 기피하고 깡패애들은 노예처럼 취급하고 선생님들은 쳐맞든 뜯기든 방관했다. 선생님들에게는 공부잘하는 애들, 혹은 촌지를 내는 애들의 인권만을 생각했기때문에. '집단 괴롭힘'에서 구해줄 애들은 걔네들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최종적으로 177cm 50kg)
9. 고3때 고려대학교 수시1차에 붙었다. 그런데 수능을 못봐서 떨어졌다.
10. 수능 30일 전 아버지가 어떤 트집을 잡으면서 흉기로 겁을 줬다. 내가 더 이상 괴롭히면 가만있지 않겠다 했다.
11. '그래?'하며 119에 전화를 하더니 나를 강압적으로 억지로 데려갔다. 내가 이렇게 끌려가는게 처음이라 울고불고 했다.
12. 수능 30일전에 그렇게 야산의 (정확히 어딘지 모른다) 정신병원에 끌려가서 거기서 의사가 말도 안되는 소리로 나를 온갖 겁을 줬다. 해명하려 하면 그건 망상이라며 어처구니없는 소리로 해명할 기회조차 주질 않았다. 아니 맞아서 멍이 시퍼렇게 있는데, 망상?? 기회를 한번 더 줄테니 '바람직한 대답'을 하라며 아버지를 때렸냐고 물었다. 말도 안된다고 했다. 몸집을 보시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사 아버지가 다 뒤에서 조정한 거 같다. 일반인같으면 그렇게 편파적으로 그것도 바로 그러질 못할 것이다. 판단하 시간을 두고 지켜보겠지. 훗날 내가 상담하게된 의사에게 들은 거 같다.
13. 결국 울면서 무조건 잘못했으니 살려달라고 해서 나갔다. 정말 치욕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억울하면서 오히려 수능때문에 참기로 했다. 이게 내 화병의 시초가 되었다. 대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야하는지 억울하고 한이 맺힌다.
14. 하지만 그 해 수능은 완전히 망쳤다. 수시는 결국 떨어진다.
15. 아버지는 상계동 모 대학병원 부원장이다. 모 대학 의대교수다. 분당 모 교회 집사다. 그 곳 고등부 교사로도 일한다고 한다.
어머니는 경기도 성남시 죽전에서 모 통증클리닉 겸 노인요양센터를 운영한다. 거기 사람들에게 평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런 걸 보면서 내가 보기엔 어머니는 경악스러울 정도의 이중인격이라는 거다.
16. 아버지는 참 차갑다. 나한테말고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고 무뚝뚝한 거라고 한다. 무뚝뚝하고 틱틱대는데 뭔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기대한다. 참으로 우스울 따름이다. 얼마나 비열하고 비겁한 인간인데... 일단 겉으로 보면 설경구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속은 더 차갑고 비열하다. 그리고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는지
17. 중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티비보다가 뭐가 뒤틀렸는지 리모콘을 던져서 난초가 산산조각이 났다. 깜짝놀라 가만히 있었는데 그러더니 나에게 뭐라고 트집을 또 잡더니 - 꼭 군대에서 각이 안잡혔다고 트집잡는 느낌으로 -
발가벗기고 나를 아파트 문 밖으로 내던졌다.그리고 문을 잠갔다 여름이라 그렇게 춥지는 않았지만, 슬픈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옆집에 살던 같은 중학교 누나가 있었는데, 친구들과 우루루 나왔다. 나를 보고 다들 소리지르면 도망가는데 정말 비참했다. 굴욕적이었고,, 이 인간은 진짜 변태다.
18. 어머니는 예전엔 시댁 식구들을 우회적으로 욕하곤 했다. 그러면서 외가를 칭찬하며 최씨 성을 붙이라 마라 이러는 얘기도 했다. 하루는 참다못해 '내가 '그러면 안된다고 그러면 어머니의 격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방금 전까지도 이영애같던 사람이 갑자기 광분하더니 거품물며 욕하면서 냉장고에서 생계란을 가져오더니 10살채 안된 아이 얼굴에 정통으로 던졌다. 정말 충격과 공포였다. 그 후 둘만 있으면 입에 담을 수 없는 독설을 퍼붓다는지 아버지에게 거짓말하여 나를 혼내도록하곤 했다.(1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 외가집인간들도 가관이다. 특히 '최영장군'이라 불리우는 외삼촌이란 인간이 있는데. 아주 김구라 2001년 당시 인터넷방송할 시 딱 그 스타일이었다. 2003년 고3때 집안에 돈문제로 뭔가가 일이 터진 적이 있다. 나느 잘 모르겠는데 자꾸 엄마를 찾는 거였다. 고3인 나한테 와서 온갖 독설 퍼부으며 엄마 어딨냐고 ㅈㅣ랄ㅈㅣ랄했었는데 정말 인간이 아니었다. 고3짜리한테. 지금 공부하고 있어야할 애한테. 그런 파렴치한. 외삼촌이 대체 얼마나 가깝다고. 그 인간이 전까지는 내게 뻐꾸기(화려한 말빨)를 많이 날리면서 친근하게 대하길래 잠시 속아넘어갔었다.
20.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언젠가 어머니가 퇴근하고 들어오자마자 바베큐포크를 들고 나를 찌르려고 했다. 아직도 멘트가 기억날랑한다 대충 '거기 그대로 서있어어어어어어어어~~~!'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살인미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하고 죽이려는 의도로 공격을 가하여 결과적으로 죽었을 때' 살인죄가 성립된다고 한다. 헐레벌떡 도망가서 문을 잠갔는데 그 바베큐포크로 문을 막 뿌시면서 들어오려고 했다. 정말 무서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며 포크를 어디론가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21. 고등학교 때도 사실상 왕따였는데 이상하게 반장 등 몇명 '럭셔리한' 애들이 나에게 동등한 관계로써의 호의적인 표시를 자주 보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되었는데, 어머니의 힘이었다. 어머니가 학부모 대의원회인가 그런 데를 들었다. 거기서 사람들을 어떻게 휘어잡는지, 겉으로 보면 어머니는 조조, 유비같은 느낌을 줬다. 요즘 들어 티비에서 비슷한 인물을 찾았는데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이다. 생긴 것도 비슷하다. 곱상하면서도 그 싸이코같은 인상. 솔직히 미실은 그나마 낫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나 나에 대해서 끔찍하게 아들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 럭셔리한 애들이 나에게 말할 정도다. 부럽다고. 나참 부러워?
22. 맞고 학대받은 것이 엄청 많은데 기억이 나는 건 몇가지밖에 없다. 더 충격적인 것도 많은데 기억이 안난다. 거의 몇십일동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적도 있다. 아! 장작불 정리하는 쇠꼬챙이? 우산? 으로 쓰러져있는 나를 마구 찔렀던 기억이 있다. 흉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23. 글씨체가 올바르지 못하다고(정조와 박지원의 문체반정이 생각났다 어처구니가 없다) 골프체로 무방비상태로 갈비벼 다리 머리통 온몸을수없이 맞은 기억도 있다. 조금 과장해서 천여회 맞은 듯 싶다. 그 때 생각하면 아쉽다. 당시 미국에 있을 적이었는데 신고했으면 잡혀갔을 수도 있었는데...진짜 천재일우를 놓쳤다. 정말 아쉽다...그 때 확실한 전적을 만들어놨어야 현재 이 지경이 되었을 때 증거자료로 내놓을 수 있었는데..
24. 극심한 학대받은 이유 중에 이런 것도 있다. '해골같은 얼굴로 거지처럼 돌아다닌 죄' . 중학교 3학년 말에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돌아다니곤 했다. 점심시간만 되면 학교 깡패놈들이 애들 괴롭히러 다니기때문에 특히 나는 유명한 '동네북 장애인'이었기때문에 도망쳐야만 했다. 그렇게 무단으로 학교 밖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부모가 다니는 분당 모 교회 집사님이 날 봤나보다. 애가 엄청 말랐다고, 뭐 좀 먹여야할 것 같다고 얘기를 하셨다고 한다. 최집사님(어머니)이 그렇게 교회에서 언플을 많이 했는데, 실상 그 끔찍히 여기는 아들이 그렇게 거지꼴로 다니는 것이 밝혀지니까 그 화살이 나에게 쏟아진 것이다.
그 후 깡패를 불러와 마구 팼던 사건이나,
여동생의 "쟤 끌려가서 죽으면 상속분 내꺼야?ㅋㅋ" 사건이나,
여동생은 88년생으로 지금 미술 입시생인데 지 아버지와 판박이다. 잔인하고 겉과 속이 다르다.
어머니를 닮은 점은 거짓말을 술술술술술술술술술 내뱉는다는 것과 거짓임에도 드러나도 적반하장의 대범함?
여동생은 부모와 달리 겉으로도 전적이 좀 있다. 교내에서 따돌림받는 아이 노래방으로 끌고가서 개처럼 패고 둔기로 머리를 구타한 혐의로 전학처분당했다. 다른 일당들은 퇴학처분을 받았는데, 아버지 빽으로 근처 중학교로 전학갔다가 1년만에 서현중으로 돌아왔다. 중학시절 타인에게도 온갖 악행을 일삼았으나 현재 럭셔리 미술입시생으로 주변에 껄떡대는 늑대들이 있나보다. 뭐 끼리끼리 모이는 거겠지만.
어머니가 나와 싸우면서 내가 했던 말을 부풀리거나 전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면서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한다고 무수히 협박했던 사건들,
과장안하고 1000번은 했던거 같다 몇년 동안 매일같이.. 환청도 들리고 꿈에서도 나오곤 했다.
꿈에서는 바베큐 포크도 들고 쫓아왔다.
불륜 논란,
그와 함께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 속에서 나를 회유하고 협박하던 사건들,
교회집사신분으로써 아니 최소한 기독교인으로써 절대해서는 안될 신성모독 논란,
서현동의 삶의 비망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