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 수록 할머니와 삼촌은 저희를 못마땅하게 여기시고 이유없이 혼내시기도 하더군요. 하루는 아침밥을 안먹었다고 낫을 가지고 목을 잘라버리니 머니 하시면서 역정을 내시질 않나. 삼촌은 하나만 잘못해도 바로 손찌검을 하시더군요.
정말 한달에 한번 찾아오는 아버지가 유일한 쉼터였습니다.
아버지가 찾아오셨을 때엔 저희에게 엄청 잘해주시고 하지만 아버지가 올라가시면
다시 돌변하여 우리를 괴롭히셨습니다.
시골에서 지낸지 2년반만에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찾아 이혼을 하신다고 하더라구요.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가 그저 좋아서 어머니랑 살고싶다고 아버지께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우리심정을 이해하셨는지 어머니에게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살게된 우리 남매와 어머니는 도마뱀과 바퀴벌레가 나오는 반지하에서도 그저 행복했습니다.
어머니는 저희를 먹여살리기위해 새벽마다 식당에 나가서 일을 하셨고 전 어머니께서 돌아오실 떄까지 잠을 안자고 기다렸습니다. 예전처럼 사라질까봐 불안했었죠.
서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싶었던 저와 누나는 날이 갈 수록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점점 심해지고 횟수가 늘어가니 어머니는 우리를 아버지에게 다시보냈습니다.
왠걸... 우리가 돌아갔을 땐 아버지께선 재혼을 하셨더라구요.
자신보다 몇살이 높은 아주머니와 그 자식들과 같이 살고 계시더라구요
그래도 잘해주시던 아주머니와 그 누나와형들이 저희를 잘대해줘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것도 오래가질 않고.. 아주머니는 아버지가 회사에 나가시면 우리에게 TV를 못보게 하고 컴퓨터도 어느날 갖다 버리시고. 자기 손녀만 챙기시더라구요.
식탁에 감자맛탕을 해놨길래 먹었는데 자기 손녀줄꺼였다면서 저를 때리시더라구요
그 후로 고기반찬을 먹어본적이없고 용돈이란걸 받아본적도없고 학교갔다가 늦게오면
저녁을 주지않고 계란후라이는 몰래 숨겨놨다가 자기 아들딸 놀러왔을 때 해주고..
남들이 보기엔 사소한거지만 저희는 정말 서러웠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누나는 어머니하고 연락이 닿앗나보더라구요
어느 날 학교에서 꾀병을 부리고 막 하더니 아버지와 아줌마가 누나학교를 찾아갔더라구요. 갔다 오시더니 저희보고 어머니한테 보낸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거기서 벗어난 저와 누나는 어머니에게 갔지만 어머니 또한 재혼을 하셨더군요.
거기선 아무일 없이 그저 조용히 지냈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인성교육이란걸 받아본적도없고 한성질 하던 저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이 찍혔었고 사고만 치고다녔지만 어머니에게 올라간 후엔 정신을 차리고
정말 착실하게 생활했습니다. 고등학교도 비록 공고였지만 우등생으로 다녔었고
시청에서 주는 장학금 또한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첫 취업을 나갔습니다.
회사에서 뒤쳐지기 싫어 굉장히 노력했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나날히 보람찬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여느 때 처럼 일을 하는도중 순간 기계이상으로 폭발에 휩싸였습니다.
메틸알콜을 뒤집어쓰고 불이 붙었던 저는 가까스로 불을 껏지만 이미 손과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건물안에 10분정도 갇혀있다가 기적적으로 나왔습니다.
전신 25%의 3도화상을 입고 대전을지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저를 보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실신하셨다고 하더라구요. 화상이 생각보다 심해 응급처치도 제대로 못하고 바로 강남 베스X안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거기서 양아버지와 계신 어머니를 보고
눈물이 솟아오르는걸 이를 악물고 참으며 괜찮다고 안아프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병원 생활을 하는 도중 양아버지는 저를 찾아왔지만 저에 상태에대해 한마디도 묻지않으시고 그저 공부 이야기만 하시더라구요.
병상에 누워서 절망에 빠져있는데 위로한마디는 커녕 공부이야기만 꺼내는걸 보고선
갑자기 서럽더라구요. 만약 친아버지가 계셨더라면 나에게 뭐라했을까 하구요.
그리고선 누나에게 아버지를 찾아달라고했습니다.
몇달 후 누나는 아버지를 찾았고 아버지는 저에게 바로 올라오셨습니다. 물론 양어머니와 함께요. 아버지는 반가웠지만 양어머니껜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더라구요.
하지만 양어머니는 전날을 기억 못하는 듯 저에게 잘해주시더라구요.
여차저차 이야기를 나눠 변호사를 선임하고 회사에 소송도 내고 산재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화상은 보상이 너무 적었습니다. 왼손을 거의 못쓰는 상황인데도 9급장해진단과 지체장애인 4급을 받았습니다. 회사에도 소송을 냈지만 회사 역시 보험을 들어놓지않아 화재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저희에게 보상을 별로 못해주더라구요. 잘 지내고 저에게 잘해주시던 분들이라 전 왠지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아버지집에서 1년정도 살았습니다.
산골에 사니까 행복하기는 했으나 장래를 생각하니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또 다시 독립을 하게되었는데 누나도 마침 방이 계약만기가 되어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같이 살다보니 이러쿵 저러쿵 일도 많았고 둘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전 싸우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점점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고
1년동안 집에만 쳐박혀서 생활했습니다. 누나는 점점 저에게 짜증부리는 횟수가 늘어났고 저는 점점 우울해졌습니다.
그러던 도중 제가 결심을 하고 일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파리XXX라는 빵집에 알바로 들어가게되었고 3개월 수습기간후 정직원 채용이였습니다. 그리고선 다니고있는데 거기서 또 차별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만 못되게 구시는 여자사원이 계셨는데 정말 미웠습니다.
다른사람이 같이 실수를하면 웃어넘기지만 제가 같은 실수를 하면 저에게 비꼬는듯한 말투로 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우울하게 만들더라구요. 점점 차별은 심해지고
저는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일이 즐겁고 그 사람한명만 빼고 회사사람들이 너무좋은 사람들이라 참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몇일 전부터 저희 누나는 저에게 화를 냅니다.
괜히 짜증을 부리기도하고 화도 냅니다. 전 정말 싸우기 싫다고 누나에게 몇번이고 말하지만 다음 날이면 또 다시 저에게 화를내더라구요.
기댈 곳도 없고 우울함은 극에 달하고 그래서 짜증을 냈습니다. 그리고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회사를 무단결근하고 몇시간동안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 계속 노력하면 할 수록 왜 시련만 생기는걸까..
정말 살고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죽고싶었습니다. 비닐봉지를 쓰고 부탄가스를 봉지안에 분사했습니다. 기분이 묘해지더니 갑자기 바닷가 생각이 나더라구요.
전 그저 잘 살고 싶습니다.
이제 23살 먹은 청년입니다
제 이야기를 해볼 생각입니다.
전 배운 것도 없고 글 솜씨도 없어서 좀 서툴겠지만 이해해주세요..
87년 11월 부산 범일동 문화병원에서 저는 태어났습니다.
기술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와 보험회사를 다니는 어머니. 그리고 저보다 2살많은
누나 밑에서 자랐습니다.
군포로 이사와서 조그만 빌라에 그저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제가 유치원을 졸업하고나서 1학년에 입학하고 서너달 쯤 지났을 때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이 힘드신지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실 때가 많았고
어머니와 싸우기도 하셨습니다.
단단히 잠긴 방문 사이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언성이 높아질수록 저와
누나의 마주잡은 손은 땀에 젖었죠.
어릴 때에는 아무 것도 몰라서 그저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그리고 1학년 여름방학전 어머니는 집을 나가셨습니다.
강원도 산골에 계신 할머니댁으로 우리 남매는 보내졌고
한두달이면 어머니를 찾아오시겠다던 아버지를 기다리며
할머니와 오손도손 살았죠.
그러나 그 것도 잠시. 식품회사에 다니던 셋째 삼촌이 할머니댁에 들어와 같이 살게
된 후 행복은 차차깨어져갔죠.
삼촌은 할머니와 농사를 지으시고 저희도 고사리같은 손으로 농사를 배우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날이 갈 수록 할머니와 삼촌은 저희를 못마땅하게 여기시고 이유없이 혼내시기도 하더군요. 하루는 아침밥을 안먹었다고 낫을 가지고 목을 잘라버리니 머니 하시면서 역정을 내시질 않나. 삼촌은 하나만 잘못해도 바로 손찌검을 하시더군요.
정말 한달에 한번 찾아오는 아버지가 유일한 쉼터였습니다.
아버지가 찾아오셨을 때엔 저희에게 엄청 잘해주시고 하지만 아버지가 올라가시면
다시 돌변하여 우리를 괴롭히셨습니다.
시골에서 지낸지 2년반만에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찾아 이혼을 하신다고 하더라구요.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가 그저 좋아서 어머니랑 살고싶다고 아버지께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우리심정을 이해하셨는지 어머니에게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살게된 우리 남매와 어머니는 도마뱀과 바퀴벌레가 나오는 반지하에서도 그저 행복했습니다.
어머니는 저희를 먹여살리기위해 새벽마다 식당에 나가서 일을 하셨고 전 어머니께서 돌아오실 떄까지 잠을 안자고 기다렸습니다. 예전처럼 사라질까봐 불안했었죠.
서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싶었던 저와 누나는 날이 갈 수록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점점 심해지고 횟수가 늘어가니 어머니는 우리를 아버지에게 다시보냈습니다.
왠걸... 우리가 돌아갔을 땐 아버지께선 재혼을 하셨더라구요.
자신보다 몇살이 높은 아주머니와 그 자식들과 같이 살고 계시더라구요
그래도 잘해주시던 아주머니와 그 누나와형들이 저희를 잘대해줘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것도 오래가질 않고.. 아주머니는 아버지가 회사에 나가시면 우리에게 TV를 못보게 하고 컴퓨터도 어느날 갖다 버리시고. 자기 손녀만 챙기시더라구요.
식탁에 감자맛탕을 해놨길래 먹었는데 자기 손녀줄꺼였다면서 저를 때리시더라구요
그 후로 고기반찬을 먹어본적이없고 용돈이란걸 받아본적도없고 학교갔다가 늦게오면
저녁을 주지않고 계란후라이는 몰래 숨겨놨다가 자기 아들딸 놀러왔을 때 해주고..
남들이 보기엔 사소한거지만 저희는 정말 서러웠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누나는 어머니하고 연락이 닿앗나보더라구요
어느 날 학교에서 꾀병을 부리고 막 하더니 아버지와 아줌마가 누나학교를 찾아갔더라구요. 갔다 오시더니 저희보고 어머니한테 보낸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거기서 벗어난 저와 누나는 어머니에게 갔지만 어머니 또한 재혼을 하셨더군요.
거기선 아무일 없이 그저 조용히 지냈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인성교육이란걸 받아본적도없고 한성질 하던 저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이 찍혔었고 사고만 치고다녔지만 어머니에게 올라간 후엔 정신을 차리고
정말 착실하게 생활했습니다. 고등학교도 비록 공고였지만 우등생으로 다녔었고
시청에서 주는 장학금 또한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첫 취업을 나갔습니다.
회사에서 뒤쳐지기 싫어 굉장히 노력했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나날히 보람찬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여느 때 처럼 일을 하는도중 순간 기계이상으로 폭발에 휩싸였습니다.
메틸알콜을 뒤집어쓰고 불이 붙었던 저는 가까스로 불을 껏지만 이미 손과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건물안에 10분정도 갇혀있다가 기적적으로 나왔습니다.
전신 25%의 3도화상을 입고 대전을지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저를 보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실신하셨다고 하더라구요. 화상이 생각보다 심해 응급처치도 제대로 못하고 바로 강남 베스X안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거기서 양아버지와 계신 어머니를 보고
눈물이 솟아오르는걸 이를 악물고 참으며 괜찮다고 안아프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병원 생활을 하는 도중 양아버지는 저를 찾아왔지만 저에 상태에대해 한마디도 묻지않으시고 그저 공부 이야기만 하시더라구요.
병상에 누워서 절망에 빠져있는데 위로한마디는 커녕 공부이야기만 꺼내는걸 보고선
갑자기 서럽더라구요. 만약 친아버지가 계셨더라면 나에게 뭐라했을까 하구요.
그리고선 누나에게 아버지를 찾아달라고했습니다.
몇달 후 누나는 아버지를 찾았고 아버지는 저에게 바로 올라오셨습니다. 물론 양어머니와 함께요. 아버지는 반가웠지만 양어머니껜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더라구요.
하지만 양어머니는 전날을 기억 못하는 듯 저에게 잘해주시더라구요.
여차저차 이야기를 나눠 변호사를 선임하고 회사에 소송도 내고 산재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화상은 보상이 너무 적었습니다. 왼손을 거의 못쓰는 상황인데도 9급장해진단과 지체장애인 4급을 받았습니다. 회사에도 소송을 냈지만 회사 역시 보험을 들어놓지않아 화재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저희에게 보상을 별로 못해주더라구요. 잘 지내고 저에게 잘해주시던 분들이라 전 왠지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아버지집에서 1년정도 살았습니다.
산골에 사니까 행복하기는 했으나 장래를 생각하니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또 다시 독립을 하게되었는데 누나도 마침 방이 계약만기가 되어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같이 살다보니 이러쿵 저러쿵 일도 많았고 둘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전 싸우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점점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고
1년동안 집에만 쳐박혀서 생활했습니다. 누나는 점점 저에게 짜증부리는 횟수가 늘어났고 저는 점점 우울해졌습니다.
그러던 도중 제가 결심을 하고 일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파리XXX라는 빵집에 알바로 들어가게되었고 3개월 수습기간후 정직원 채용이였습니다. 그리고선 다니고있는데 거기서 또 차별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만 못되게 구시는 여자사원이 계셨는데 정말 미웠습니다.
다른사람이 같이 실수를하면 웃어넘기지만 제가 같은 실수를 하면 저에게 비꼬는듯한 말투로 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우울하게 만들더라구요. 점점 차별은 심해지고
저는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일이 즐겁고 그 사람한명만 빼고 회사사람들이 너무좋은 사람들이라 참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몇일 전부터 저희 누나는 저에게 화를 냅니다.
괜히 짜증을 부리기도하고 화도 냅니다. 전 정말 싸우기 싫다고 누나에게 몇번이고 말하지만 다음 날이면 또 다시 저에게 화를내더라구요.
기댈 곳도 없고 우울함은 극에 달하고 그래서 짜증을 냈습니다. 그리고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회사를 무단결근하고 몇시간동안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 계속 노력하면 할 수록 왜 시련만 생기는걸까..
정말 살고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죽고싶었습니다. 비닐봉지를 쓰고 부탄가스를 봉지안에 분사했습니다. 기분이 묘해지더니 갑자기 바닷가 생각이 나더라구요.
왠지 바닷바람좀 쐬면 기분이 나아질까 생각했습니다.
20년동안 부어야할 적금을 깨고 잠시 생각을 하기위한 여행좀 갔다와야될것 같았습니다.
정말 남들 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불행의 연속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마음으로도 너무힘들고 내 옆엔 아무도 없는 것 같고.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 조차
기댈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