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남북분단시켰다는 주장에 대하여...

개독시러200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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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와 남북이 분단되게 된 것은 김현갑님이 알고 계시는 거하고는 실제 많이 다릅니다...물론 몇개는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광복이전의 활동으론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통합되기 전에 우리민족에겐 대표적으로 3개의 정부가 있었습니다...

 

상하이임시정부, 대한 국민 의회, 한성정부 이렇게 3개였죠...

 

여기서 이승만대통령께선 3곳 모두에서 요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연해주에 있는 대한국민의회에서는 서열2위자리(지위 이름을 까먹음)를 하고 있었고... 상하이의 상하이정부에서 국무총리(서열1위) 역시 하고 있었고...

서울의 한성정부에서 집정관총재(서열1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말은 즉... 당시 최고의 활동량을 자랑하였다는거죠...

이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하면서 꾸준히 활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력과 배경으로 인해 1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었었는데 당시 선거방식이 국회의원에 의한 간접선거 방식이었습니다. 

 

초대 대통령이 되었던 제1대 대통령 선거 방식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야 당선되는 국회에서 국회의원에 의한 간접선거 방식을 채택하였습니다. 후보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이승만, 무소속의 김구·안재홍3 명이 출마하였고 선거 결과는 국회 재적의원 198명 중 197명이 출석해(투표율 99%) 이승만이 92.3%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김현갑님이 이승만이 신탁통치반대사건 일으켜 교회쟁이들 사냥개로 앞세워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시기입니다만...이승만이 초대대통령 된 것과 신탁통치 반대사건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물론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주도하였던 정치깡패들이 김구가 대통령이 되는데에 방해하였다고 추정되고 개독폭력조직인 서북청년단들이 그가 대통령으로 지지를 얻는데에 힘을 실어 주었을 거라고는 생각됩니다.

여기서 미국의 지원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있었다면 김현갑님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그 과정에서 미국이 개입하여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근거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후  이승만의 독주와 1950년 5 ·30일 선거 결과 야당이 압승하고 의원들의 반대 분위기로 대통령재선이 사실상 어렵게 되자 이승만은 직선제를 선택합니다.

 

이승만은 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제2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야당세력이 우세한 국회에서 자신의 대통령재선이 어렵게 되자, 자유당을 창당하고 계엄령을 선포, 반대파 국회의원을 감금하는 등 변칙적 방법을 동원하여 헌법을 대통령 직선제로 개정하고 대통령에 재당선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는 당시 1950년대의 민도(民度)를 알아야 합니다.당시우리나라의  문맹율이 78퍼센트인 나라였습니다.우리나라 오천년역사에서 민주주의를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초대 대통령이 하늘이 낸 조선시대의 임금으로 생각 했습니다.

그분만이 우리나라를 통치한 걸 보고 그 분만이 통치 해야만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후에 직선제로 갔을대 이승만에게 우리 할 수 밖에 없었던 좋은 선거제도였습니다. 그래서 몇번이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 미국의 개입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이 부족했던 당시에 그의 수족이 되었던 것은 폭력조직들인데 다음과 같습니다.

 

종로파 = 김두환 = 대한 청년단

동대문파 = 이정재 = 화랑 동지회

명동파 = 이화룡 = 서북 청년단

 

이 서북청년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일제시대때 지금의 이북지역에서 기독교인들로 해방후 지주에 예수쟁이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워 남하해서 이승만정권의 수족이 되는 거지요.

나머지 종로파 동대문파 는 기독교파나 단체와는 관계가 없는 조직입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되기가지...된 후에 저질렀던 만행은 이승만대통령이 주도하였다기보단 부통령이였던 이기붕이 대부분 주도했습니다...

물론 이승만의 지시로 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여기서 이들 정치깡패들이 활약을 했고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재당선 되는데 기여를 많이 했습니다.

 

뉴또라이들이 개입한 이번 새 역사교과서에 이승만이 친일 청산을 위해 노력을 했다 라고 나오는데 그 부분만 사실입니다. 그래서 벌려논 일들이 많이있었죠.

 

하지만 당시 사정을 보면 친일청산을 하기에는 국력이 너무 미약했기 때문에 청산을 중단하고 친일파를 포섭하는 정책으로 변경... 친일관료들을 등용했습니다.

- 하지만 결과적으로 청산을 내세우고 면죄부를 줬기 때문에 친일청산을 시도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쁜 결과가 나왔죠..

 

이런내용까지는 실려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승만과 김구가 갈라지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대국의 회담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됩니다.

이때 김구선생과 이승만박사는 모두 신탁통치에 반대합니다.

김구선생 이승만박사는 모두 우파였습니다...

그들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할때부터 동지였지요..


그러나 그들이 결별하게 된 것은 건국방식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이승만은 반공을 중요시 했으며 친미였으며
김구는 공산주의자들까지 포용해서 미국의 간섭없는 하나의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거였지요...
그러나 김구의 정책은 냉전시대인만큼 불가능 했었습니다.

김구는 결국 이승만의 충복들에 의해 제거되지요.

 

이승만이 미국과 손잡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과 손잡거나 해서 신탁통치 반대운동 사건을 일으키지는 않았으며


김구가 신탁통치 반대하였지만 김구는 자주적인 정부를 주장하면서 반대운동을 했습니다.

김구는 공산주의자들까지 포용하고 힘을 합치자고 했지 공산주의를 지지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북의 좌파역시 처음에는 신탁통치를 반대했으나 김일성을 따르는 그들이었던 만큼 김일성이 자신이 정권을 세울수 있도록 해주면 소련에게 잘 따르겠다면서 소련과 거래하면서 김일성의 지시아래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결국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남한이 미국의 보호아래 단독정부를 수립하게 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도 독자적으로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는 겁니다.

 

김구와 이승만이 대립했던 것은 남북분단이 되는 결정적이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원인은 이승만이 미국과 결탁해서 반대운동 일으켜서 대통령되고 그것때문에 김구랑 갈라져서 김구파가 북한으로 넘어가서 남북이 갈라진 것이 아니라...

 

같은 우파인 이승만이 김구와 힘을 합치지 못하고 갈라졌던 것과 북측의 김일성이 소련과 결탁한 것 때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