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세상을 웬만큼 알겠다 싶고 내가 사는 세상을 잘 알지 못하면 '사회적 문맹'이 된다는 나름의 생각이 갖추어진 스물여덟..
갓 스물이 되었을 때 즈음의 나는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이 무작정 무섭고 싫었다.
순수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닳아버린 느낌이랄까.
내가 왜 벌써 이런 것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억울한 느낌이랄까.
하나의 기억은 아버지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아버지 직업란을 채울 때면 엄마에게 꼭 물어봐야 알았던 만큼 아버지 직업은 자주 바꼈다. 자주 바뀌는 직업만큼 수입도, 집안 분위기도 안정적이지 못했다. 섬유공장의 원사나르는 일부터, 장돌뱅이처럼 전국각지를 돌며 목장갑, 작업용품 등을 팔던 일, 조경업, 다단계판매, 그리고 지금의 구두닦는 일까지...안해본 일이 없으시던 아버지가 트럭으로 공장의 원사를 나르는 일을 하실 때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셔서 밥을 드시며 무심히 하시는 말씀.
" 오늘 00 휴게소에서 밥을 먹으려고 내렸는데 말이야. 김서방(나에게 고모부)이 거기 있더라고. 너무 반가워서 인사하려고 갔는데 나를 본 것 같은데 사람들이랑 같이 지나치더라..분명히 본것 같은데 "
아버지는 무심히 얘기하셨지만 그 얘기를 듣던 어머니와 나는 알았다. 삼성 고위직이던 고모부가 회사사람들에게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트럭을 몰고 다니는 그 사람을 아내의 오빠라고 소개하고 싶지 않았음을... 아버지에게 '기생충'이라고 낙인을 찍던 의사, 교수, 교사, 삼성맨으로 불리는 혈현들이 그 당황스러운 순간에 본능적으로, 일관성있게 행동했을 테지만 그것은 너무 큰 상처였고 너무나 가슴 먹먹해지는 세상의 단면이었다.
또 다른 기억은 주유소다.
시급 2350원. 주유소 총잡이로 하루에 9시간, 때로는 18시간..아침 6시에 나가 밤 12시에 들어오며 밥값이 아까워 밥도 거르며 닥치는대로 돈을 벌던 스무살.
어느 날 "만땅이요!" 라며 기름 가득 넣어드린 손님이(금액도 기억난다. 6만 8천원) 기름을 넣자마자 내빼버린 그 날. 그 돈이 내 월급에서 고스란히 깎여버린 그 날 그 늦은 밤 주유소에서 집까지 엉엉 울며 걸어갔던 기억.
세상에 저런 사람이 다 있냐 싶은 배신감과 억울함. 그리고 그저 좋은 것만 보고, 행복하고 싶었던 스무살의 내가 왜 벌써 이런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서러움이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기억이 바로 학자금 대출이다.
친척들 돈을 빌려 입학한 대학에 등록금 만큼은 내 돈으로 해야겠다 싶어 시작한 학자금 대출. 대학 졸업하고 빨리 취업해서 갚으면 된다는 생각에 한학기 두 학기 그렇게 받은 대출금액만 2000여만원이 된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매학기 바뀌는 대출요강을 꼼꼼히 살펴야만 했다. 대출을 받아야 할 시기가 되면 화면 빽빽한 대출요강을 행간 놓치지 않고 읽고, 몇번씩 은행에 전화를 하고 왔다갔다, 그래도 서툴러 신청시기를 놓치면 은행창구와 학교직원들에게 사정사정을 했어야 했던....
그래서 매학기 대출요강을 읽을 때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 가슴 졸여야 했던 시기...그저 학교를 다니고 싶을 뿐인데 나의 힘으로 헤쳐나가며 정면으로 부닥친 세상은 또 그렇게 살벌했고 온기가 없었다.
내 주변에 나와 같이 대학을 다니며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보아온 지도 벌써 수 년...
칼졸업, 칼취업을 외치던 나는 아직도 부분등록으로 학점을 채우며 근근히 학교를 다니고
학자금 원리금 상환이 돌아와 신용불량자의 압박을 느끼며 사는 우울한 20대가 되었다. 이십대 초반 그 어려운 대출요강을 공부해가며 눈물 흘렸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하면 갚을 수 있어"라며 가졌던 희망은 오래 걸리지 않고 다가온 이십대 후반의 미래에 졸업도, 취업도 기대하기 어려워 빚에 허덕이는 절망으로 닥쳐왔다.
그러던 얼마전 정말 놀랍게도 MB는 '취업 후 상환 대출제도' '학자금안심대출제도'라는 것을 발표했다.
일정 소득이 생기면 상환하는 학자금 제도라니...이자와 원금상환, 신용불량자의 당장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일말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그 많은 국민들의 고통과 눈물과 시름에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당당히 대한민국 최고권력자로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는 시대가 아닌가. 그리고 나 또한 더 이상 '세상을 알고 싶지 않아 울며 도망다니던 나'가 아니지 않은가.
대체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제도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MB가 만들면 의심부터 하고 봐야 한다" 사회적 학습이 무섭지 않은가. 근거없는 의구심이 아니다. MB가 끊임없이 학습시켜준 최고의 학습효과. 바로 사회에 대한 통찰력이다.
정부를 비롯한 교과부, 시민사회단체 입장서, 블로거들의 글을 섭렵하고 내린
결론 몇가지.
1. 수천만원 빚잔치가 일단 취업 후로 유예되는구나! 그러나 유예시켜주는 만큼
대출이자는 켜켜이 쌓이고 총액은 원금의 약 25%정도 추가로 붙은 이자까지 계
산된다. (만약 8학기 모두 400만원씩 대출받은 사람은 3200만원 원금에 880만원 정도
의 이자가 붙는다. 최장 25년간 상환이라고 하니 25년 후에는 원금의 약 두배가 된다.)
2. 전체 대학생의 90프로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기준소
득 1500만원 이상의 사람에게 대출상환이 돌아온다는 것은 한달 월급 110여만원-매달
학자금 상환액 26만원으로 완벽한 88만원 세대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구나
3. 저소득층이 무상으로 다니던 장학금지원을 없애거나 절반으로 줄이고 그렇게 마련
한 재원을 나머지 소득층들에게 털어넣는 기발한 묘수를 발휘했구나.
4. 어차피 취업 후 갚는 대출금이니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에 날개를 달아주겠구나.
5. 어차피 취업 후 갚을 먼 미래의 돈에, 0하나 더 붙건 덜 붙건 무감할 수 밖에 없는 대
학생들과 그 부모들을 상대로(내가 그랬으니 말이다) 지금보다 더 오랜기간, 더 안정
적으로 이자놀이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발명하셨구나.
6. 이 제도에 근거하면 집에 자산이 수십억은 있어 대학은 대출받아 다니고 굳이 취업
하지 않아도 부모님이 벌어주신 돈으로 평생 먹고 살만한 자제분들에게는 상환의
무가 없으니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무상교육'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구나.
라는 이상 6가지 결론이다.
당장 덮쳐오는 파도가 지나간다. 내가 처음 등록금이 없어 헤맬 때 '학자금 대출 제도'라는 것을 발견해서 기뻤던 그 때처럼 말이다. '대학졸업'이 이 사회에서 그나마 '인간'으로 취급되는 마지노선이라는 압박과 족쇄는 나를 자연스럽게 학자금 대출로 몰아갔다. 불확실한 미래라 할지라도 TV 국정홍보처 광고가 나에게 심어준 '당신이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가능성'이라는 메시지는 '일단 내가 열심히 대학 다니면 바로 취업할텐데...' 라는 희망찬 생각으로 안내해줬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나에게 펼쳐 준 미래는 100만 실업자 시대와 100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시대이다.
다시 한번 숨이 넘어가기 직전 MB는 근본적 치료없이 나와 같은 대학생들과 그 부모들에게 취업후 상환이라는'인공호흡기'를 부착해주었다. 인공적으로 숨은 쉴 수 있고 우리의 수명은 얼마간 연장되었지만 숨을 할딱 거리고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도, 기쁘고 보람있게 사는 것도 아님을 나는 안다. 지난 7년여의 대학생활이 그러했듯 말이다.
세상을 알고 싶지 않았던 그 때에는 절망적 상황에 원망하고 울 수 밖에 없었던 내가
세상을 알아가면서 이 절망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누가 만들고 기획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좀더 나은 삶을 살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선택'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새로운 안목과 선택을 가져다 준 가장 큰 공을 MB에게 돌리며
MB에게 요구한다.
'고액 등록금 폭탄의 시한을 늦출 생각만 하지 말고 폭탄 자체를 제거하라. 그러기 위해서 등록금 상한제를 함께 실시하라'
'정말 등록금 걱정없는 대학을 정책기조로 잡았다면 등록금 걱정이 가장 심각한 저소득층 장학금을 유지 확대하라'
'학생들과 부모를 상대로 이자놀이 할 생각하지 말고 무이자 또는 제로금리를 적용하라'
'대출상환이 시작되는 기준소득을 최저생계비 1500만원이 아닌 평균생계비로 책정하라'
'미래에 대량 미상환 사태를 맞아 신용불량 국가가 되고 싶지 않다면 청년실업문제부터 해결하라'
학자금 대출 1800만원 빚진 내가 본 [MB식 학자금안심대출제도]
뜬금없는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이제는 세상을 웬만큼 알겠다 싶고 내가 사는 세상을 잘 알지 못하면 '사회적 문맹'이 된다는 나름의 생각이 갖추어진 스물여덟..
갓 스물이 되었을 때 즈음의 나는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이 무작정 무섭고 싫었다.
순수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닳아버린 느낌이랄까.
내가 왜 벌써 이런 것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억울한 느낌이랄까.
하나의 기억은 아버지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아버지 직업란을 채울 때면 엄마에게 꼭 물어봐야 알았던 만큼 아버지 직업은 자주 바꼈다. 자주 바뀌는 직업만큼 수입도, 집안 분위기도 안정적이지 못했다. 섬유공장의 원사나르는 일부터, 장돌뱅이처럼 전국각지를 돌며 목장갑, 작업용품 등을 팔던 일, 조경업, 다단계판매, 그리고 지금의 구두닦는 일까지...안해본 일이 없으시던 아버지가 트럭으로 공장의 원사를 나르는 일을 하실 때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셔서 밥을 드시며 무심히 하시는 말씀.
" 오늘 00 휴게소에서 밥을 먹으려고 내렸는데 말이야. 김서방(나에게 고모부)이 거기 있더라고. 너무 반가워서 인사하려고 갔는데 나를 본 것 같은데 사람들이랑 같이 지나치더라..분명히 본것 같은데 "
아버지는 무심히 얘기하셨지만 그 얘기를 듣던 어머니와 나는 알았다. 삼성 고위직이던 고모부가 회사사람들에게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트럭을 몰고 다니는 그 사람을 아내의 오빠라고 소개하고 싶지 않았음을... 아버지에게 '기생충'이라고 낙인을 찍던 의사, 교수, 교사, 삼성맨으로 불리는 혈현들이 그 당황스러운 순간에 본능적으로, 일관성있게 행동했을 테지만 그것은 너무 큰 상처였고 너무나 가슴 먹먹해지는 세상의 단면이었다.
또 다른 기억은 주유소다.
시급 2350원. 주유소 총잡이로 하루에 9시간, 때로는 18시간..아침 6시에 나가 밤 12시에 들어오며 밥값이 아까워 밥도 거르며 닥치는대로 돈을 벌던 스무살.
어느 날 "만땅이요!" 라며 기름 가득 넣어드린 손님이(금액도 기억난다. 6만 8천원) 기름을 넣자마자 내빼버린 그 날. 그 돈이 내 월급에서 고스란히 깎여버린 그 날 그 늦은 밤 주유소에서 집까지 엉엉 울며 걸어갔던 기억.
세상에 저런 사람이 다 있냐 싶은 배신감과 억울함. 그리고 그저 좋은 것만 보고, 행복하고 싶었던 스무살의 내가 왜 벌써 이런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서러움이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기억이 바로 학자금 대출이다.
친척들 돈을 빌려 입학한 대학에 등록금 만큼은 내 돈으로 해야겠다 싶어 시작한 학자금 대출. 대학 졸업하고 빨리 취업해서 갚으면 된다는 생각에 한학기 두 학기 그렇게 받은 대출금액만 2000여만원이 된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매학기 바뀌는 대출요강을 꼼꼼히 살펴야만 했다. 대출을 받아야 할 시기가 되면 화면 빽빽한 대출요강을 행간 놓치지 않고 읽고, 몇번씩 은행에 전화를 하고 왔다갔다, 그래도 서툴러 신청시기를 놓치면 은행창구와 학교직원들에게 사정사정을 했어야 했던....
그래서 매학기 대출요강을 읽을 때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 가슴 졸여야 했던 시기...그저 학교를 다니고 싶을 뿐인데 나의 힘으로 헤쳐나가며 정면으로 부닥친 세상은 또 그렇게 살벌했고 온기가 없었다.
내 주변에 나와 같이 대학을 다니며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보아온 지도 벌써 수 년...
칼졸업, 칼취업을 외치던 나는 아직도 부분등록으로 학점을 채우며 근근히 학교를 다니고
학자금 원리금 상환이 돌아와 신용불량자의 압박을 느끼며 사는 우울한 20대가 되었다. 이십대 초반 그 어려운 대출요강을 공부해가며 눈물 흘렸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하면 갚을 수 있어"라며 가졌던 희망은 오래 걸리지 않고 다가온 이십대 후반의 미래에 졸업도, 취업도 기대하기 어려워 빚에 허덕이는 절망으로 닥쳐왔다.
그러던 얼마전 정말 놀랍게도 MB는 '취업 후 상환 대출제도' '학자금안심대출제도'라는 것을 발표했다.
일정 소득이 생기면 상환하는 학자금 제도라니...이자와 원금상환, 신용불량자의 당장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일말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그 많은 국민들의 고통과 눈물과 시름에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당당히 대한민국 최고권력자로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는 시대가 아닌가. 그리고 나 또한 더 이상 '세상을 알고 싶지 않아 울며 도망다니던 나'가 아니지 않은가.
대체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제도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MB가 만들면 의심부터 하고 봐야 한다" 사회적 학습이 무섭지 않은가. 근거없는 의구심이 아니다. MB가 끊임없이 학습시켜준 최고의 학습효과. 바로 사회에 대한 통찰력이다.
정부를 비롯한 교과부, 시민사회단체 입장서, 블로거들의 글을 섭렵하고 내린
결론 몇가지.
1. 수천만원 빚잔치가 일단 취업 후로 유예되는구나! 그러나 유예시켜주는 만큼
대출이자는 켜켜이 쌓이고 총액은 원금의 약 25%정도 추가로 붙은 이자까지 계
산된다. (만약 8학기 모두 400만원씩 대출받은 사람은 3200만원 원금에 880만원 정도
의 이자가 붙는다. 최장 25년간 상환이라고 하니 25년 후에는 원금의 약 두배가 된다.)
2. 전체 대학생의 90프로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기준소
득 1500만원 이상의 사람에게 대출상환이 돌아온다는 것은 한달 월급 110여만원-매달
학자금 상환액 26만원으로 완벽한 88만원 세대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구나
3. 저소득층이 무상으로 다니던 장학금지원을 없애거나 절반으로 줄이고 그렇게 마련
한 재원을 나머지 소득층들에게 털어넣는 기발한 묘수를 발휘했구나.
4. 어차피 취업 후 갚는 대출금이니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에 날개를 달아주겠구나.
5. 어차피 취업 후 갚을 먼 미래의 돈에, 0하나 더 붙건 덜 붙건 무감할 수 밖에 없는 대
학생들과 그 부모들을 상대로(내가 그랬으니 말이다) 지금보다 더 오랜기간, 더 안정
적으로 이자놀이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발명하셨구나.
6. 이 제도에 근거하면 집에 자산이 수십억은 있어 대학은 대출받아 다니고 굳이 취업
하지 않아도 부모님이 벌어주신 돈으로 평생 먹고 살만한 자제분들에게는 상환의
무가 없으니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무상교육'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구나.
라는 이상 6가지 결론이다.
당장 덮쳐오는 파도가 지나간다. 내가 처음 등록금이 없어 헤맬 때 '학자금 대출 제도'라는 것을 발견해서 기뻤던 그 때처럼 말이다. '대학졸업'이 이 사회에서 그나마 '인간'으로 취급되는 마지노선이라는 압박과 족쇄는 나를 자연스럽게 학자금 대출로 몰아갔다. 불확실한 미래라 할지라도 TV 국정홍보처 광고가 나에게 심어준 '당신이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가능성'이라는 메시지는 '일단 내가 열심히 대학 다니면 바로 취업할텐데...' 라는 희망찬 생각으로 안내해줬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나에게 펼쳐 준 미래는 100만 실업자 시대와 100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시대이다.
다시 한번 숨이 넘어가기 직전 MB는 근본적 치료없이 나와 같은 대학생들과 그 부모들에게 취업후 상환이라는'인공호흡기'를 부착해주었다. 인공적으로 숨은 쉴 수 있고 우리의 수명은 얼마간 연장되었지만 숨을 할딱 거리고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도, 기쁘고 보람있게 사는 것도 아님을 나는 안다. 지난 7년여의 대학생활이 그러했듯 말이다.
세상을 알고 싶지 않았던 그 때에는 절망적 상황에 원망하고 울 수 밖에 없었던 내가
세상을 알아가면서 이 절망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누가 만들고 기획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좀더 나은 삶을 살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선택'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새로운 안목과 선택을 가져다 준 가장 큰 공을 MB에게 돌리며
MB에게 요구한다.
'고액 등록금 폭탄의 시한을 늦출 생각만 하지 말고 폭탄 자체를 제거하라. 그러기 위해서 등록금 상한제를 함께 실시하라'
'정말 등록금 걱정없는 대학을 정책기조로 잡았다면 등록금 걱정이 가장 심각한 저소득층 장학금을 유지 확대하라'
'학생들과 부모를 상대로 이자놀이 할 생각하지 말고 무이자 또는 제로금리를 적용하라'
'대출상환이 시작되는 기준소득을 최저생계비 1500만원이 아닌 평균생계비로 책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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