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에는 보리밥을 맛있게 한다길래 한참 동안 안갔던 식당에 들렀다. 작년까지는 괜찮은 인테리어에 중국 손님들까지 많이 찾는 한국 식당이라 비싼 가격에 비해 맛도 떨어지고, 서비스도 별로라서 잘 찾지않던 식당이었더랬다. 오늘 가보니 손님도 많이 줄었고, 사장이 직접 서빙을 하면서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는 순서까지 안내하며, 질 좋은 서비스를 보이려는 '달라진 상황'이 역력했다.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으며, 사람과 사회도 큰 어려움과 고난을 당해봐야 이제까지 살던 방식과 패러다임을 바꾸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올해는 민주화와 저항의 상징이었던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들이 우리곁을 떠나셨고, 남은 자들에게는 '민주화' 세대 이후의 희망과 꿈을 구체화시켜야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 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을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더 이상 나은 사회로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결국 나의 몫이다."라는 노암 촘스키의 말과 김대중 선생의 "행동하는 양심", 노무현의 "바보정신"을 되새기며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한 소회를 풀어보고자 한다.
'제러미 리프킨'이 지은 <유러피언 드림>.삶을 추구할 가치가 있게 해주는 세련되고, 좀 구체적인 꿈을 찾는 이에게 더 없이 좋은 책같다. 저자는 미국 사람이며, 20여년간 미국과 유럽을 왕래하며,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와 그 한계를 넘어 유럽 사람들만의 꿈이 아닌 '유러피언 드림'을 제시한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생전에 읽으셨다는 책으로 알려져 많이 읽히고 있다고 하며, 내게는 <수소 혁명>, <소유의 종말>에 이어 세번째로 만났던 리프킨 씨의 책이다. 본문만 약 500쪽에 달해 끈기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저자가 파악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18세기 유럽의 합리주의 계몽 운동의 무한한 물질적 진보에 대한 비전과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사회에서 개인이 속박당하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것을 강조하며, 개인의 사리사욕에 대한 추구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동선이 증진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기독교적 선민의식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과 자원, 그리고 개척자 정신이 기저를 이룬다.
그런데, "개인 구매자와 판매자가 자신의 재산권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하는 속박 없는 시장이 아메리칸 드림을 실천하는 주된 무대"인, 자유롭고 정의로운 미국의 현실은 점점 삭막해져 가고 있다. 소득 불평등 및 빈곤층 지수가 선진국중 꼴찌 수준에 교도소에 수감된 인구만 200만을 넘는다. 의료보험에 가입 못하는 사람이 5,000만명에 육박하고 악마의 실제 존재를 믿는 사람이 68%(2003년쯤 기준)인 좀 기묘한 곳이다. "1990년대 말의 소위 '미국 경제 기적'은 허상인 것으로 판명되었고, 경기 팽창을 이끈 것은 비즈니스 통찰력이라기보다는 미국인들의 방만한 지출을 부추긴 신용카드, 할부 등 '소비자 신용'의 무절제한 확대"였다. 아마도 지금의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 및 경제 위기의 시발점은 여기에 있을 터이다.
경쟁과 효율의 극대화, 개인 책임, '개인의 자선'이라는 기독교적 개념에 기대는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인류가 추구할 만한 꿈이 아님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치면서, 현재 EU(유럽연합)가 추구하는 비전을 '유러피안 드림'으로 체계화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주요 흐름이다. 세계 1,2차 대전의 잿더미와 피비린내를 경험했던 유럽은 뿌리깊은 증오와 반목,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적 합의를 추진해 왔으며, EU는 공동체의 복지에 대한 '집단 책임'이라는 사회주의적 개념에 바탕을 두고, "균형잡힌 경제성장에 기초한.....지속 가능한 개발",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 "환경의 질적 향상과 보호"를 목표로 하며, 평화증진,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철폐, 남녀 평등, 세대간의 결속, 어린이 권리 보 호 등의 증진에서 꾸준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근대와 함께 태동한 근대적 의미의 민족국가는 국가의 주권을 신성시하고, 국가는 국가적 단위로 시장을 통합하여, 개인이 합법적으로 재산을 늘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여전히 배타적으로 행사되는 영토 범주의 주권은 각 국가들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만, EU는 경제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27개국 5억명의 사람들이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방대한 영역에 걸쳐 일정 정도 주권을 희생하면서 '공존과 공생', '삶의 질', 환경과 조화를 이룬 개발, 평화와 조화에 초점을 맞춘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한 여정에 참여하고 있는 거대한 '과정'이다. 따라서, '유러피언 드림'은 지역적인 유럽의 영토적 경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미치는 공동 위협에 협력적으로 대응하고, 글로벌화되고 있는 세계에서 방향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류가 '정의로운 전환'을 모색하는 데 강력한 비전이 될 만한 인류 공동의 꿈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새로운 여정에 필히 수반되는 폭풍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개인적 책임 의식이 강하지 않다면 '유러피언 드림'은 좌초하고 말 것이며, 어쩌면 더욱 극적이고 큰 재난을 가져오는 사건들이 발생해야만 지구상의 대다수 사람들이 도덕적 행위에 시스템적 사고방식을 도입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인류의 글로벌 의식과 집단지성으로 '보편적 인권'과 '생물권 보호',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하는 새로운 거대 담론이 절실한 시점이다.
얼마전 대만과 중국 남부를 강타했던 모라꼿 태풍은 당시 대만 주변의 해수 온도가 약 2도 가량 높아져있어 태풍이 머금은 수증기의 양이 많아진 것에 그 파괴력과 피해가 더 커졌고, 태풍을 많이 당해 본 대만 정부조차 예측할 수 없는 범위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동해안에 출몰하기 시작한 식인 상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 온도가 상승한 것에 원인이 있으며, 그리스의 대형 산불, 먹거리의 오염 등은 인류에게 닥칠 환경/기후/자연 재해가 더욱 거세질 것을 예고한다. 그에 더해, 신종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확산, 테러, 대량 기아, 세계적인 공황 등의 재앙이 오히려 인류를 고립, 외국 혐오증, 도덕성 붕괴, 그리고 모든 종류의 희생양에 대한 공격 등을 불러 현 문명의 더욱 야만적인 퇴조를 불러 올 수도 있다. 따라서,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보다는 증폭될 세계에서 살게 될 우리에게 '유러피언 드림'은 아직 달성된 현실은 아닌 것이다.
나에게 '유러피언 드림'은 '통합과 화합의 꿈'으로 읽히며, 개인이 감당할 만한 수준에서의 부단한 '실천'과 '타인의 고난에 대한 '공감'을 요구한다. '내가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도덕률을 생태계에까지 확장한다면, 모든 선하고, 좋은 실천들은 인류의 '공공선'을 확충하고, 더 나은 '삶의 질'과 '건강한 사회'를 추구하기 위한 통합적 비전이 되고, 우리의 조그마한 실천이라도 가치있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윤 아닌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 착한 소비, 생태적 귀농, 신재생 에너지 및 재활용, 친환경, 프로보노(pro bono) 운동, 풀뿌리 자치 공동체, 시민사회 기구에 대한 참여, 1% 나눔운동, 기부문화 확산, 어려운 이웃에 대한 배려 등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널려있으며, 그러한 개인이 많아진다면, 한국이 산업화, 민주화를 압축하여 달성했듯이 '조화로운 사회'도 압축하여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의 정부와 통치 행태는 민주화에 역행하며, 과거퇴행적이지만,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조화로운 사회'를 낳기 위한 産苦의 과정이며, 거대한 학습의 장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여전히 '선택'과 '행동'은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겠다. 그리고 우리의 실천은 "Better Than Nothing"이다.
한국식 '유러피언 드림'을 꿈꾸며...
오늘 점심에는 보리밥을 맛있게 한다길래 한참 동안 안갔던 식당에 들렀다. 작년까지는 괜찮은 인테리어에 중국 손님들까지 많이 찾는 한국 식당이라 비싼 가격에 비해 맛도 떨어지고, 서비스도 별로라서 잘 찾지않던 식당이었더랬다. 오늘 가보니 손님도 많이 줄었고, 사장이 직접 서빙을 하면서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는 순서까지 안내하며, 질 좋은 서비스를 보이려는 '달라진 상황'이 역력했다.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으며, 사람과 사회도 큰 어려움과 고난을 당해봐야 이제까지 살던 방식과 패러다임을 바꾸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올해는 민주화와 저항의 상징이었던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들이 우리곁을 떠나셨고, 남은 자들에게는 '민주화' 세대 이후의 희망과 꿈을 구체화시켜야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 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을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더 이상 나은 사회로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결국 나의 몫이다."라는 노암 촘스키의 말과 김대중 선생의 "행동하는 양심", 노무현의 "바보정신"을 되새기며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한 소회를 풀어보고자 한다.
'제러미 리프킨'이 지은 <유러피언 드림>.삶을 추구할 가치가 있게 해주는 세련되고, 좀 구체적인 꿈을 찾는 이에게 더 없이 좋은 책같다. 저자는 미국 사람이며, 20여년간 미국과 유럽을 왕래하며,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와 그 한계를 넘어 유럽 사람들만의 꿈이 아닌 '유러피언 드림'을 제시한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생전에 읽으셨다는 책으로 알려져 많이 읽히고 있다고 하며, 내게는 <수소 혁명>, <소유의 종말>에 이어 세번째로 만났던 리프킨 씨의 책이다. 본문만 약 500쪽에 달해 끈기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저자가 파악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18세기 유럽의 합리주의 계몽 운동의 무한한 물질적 진보에 대한 비전과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사회에서 개인이 속박당하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것을 강조하며, 개인의 사리사욕에 대한 추구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동선이 증진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기독교적 선민의식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과 자원, 그리고 개척자 정신이 기저를 이룬다.
그런데, "개인 구매자와 판매자가 자신의 재산권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하는 속박 없는 시장이 아메리칸 드림을 실천하는 주된 무대"인, 자유롭고 정의로운 미국의 현실은 점점 삭막해져 가고 있다. 소득 불평등 및 빈곤층 지수가 선진국중 꼴찌 수준에 교도소에 수감된 인구만 200만을 넘는다. 의료보험에 가입 못하는 사람이 5,000만명에 육박하고 악마의 실제 존재를 믿는 사람이 68%(2003년쯤 기준)인 좀 기묘한 곳이다. "1990년대 말의 소위 '미국 경제 기적'은 허상인 것으로 판명되었고, 경기 팽창을 이끈 것은 비즈니스 통찰력이라기보다는 미국인들의 방만한 지출을 부추긴 신용카드, 할부 등 '소비자 신용'의 무절제한 확대"였다. 아마도 지금의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 및 경제 위기의 시발점은 여기에 있을 터이다.
경쟁과 효율의 극대화, 개인 책임, '개인의 자선'이라는 기독교적 개념에 기대는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인류가 추구할 만한 꿈이 아님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치면서, 현재 EU(유럽연합)가 추구하는 비전을 '유러피안 드림'으로 체계화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주요 흐름이다. 세계 1,2차 대전의 잿더미와 피비린내를 경험했던 유럽은 뿌리깊은 증오와 반목,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적 합의를 추진해 왔으며, EU는 공동체의 복지에 대한 '집단 책임'이라는 사회주의적 개념에 바탕을 두고, "균형잡힌 경제성장에 기초한.....지속 가능한 개발",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 "환경의 질적 향상과 보호"를 목표로 하며, 평화증진,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철폐, 남녀 평등, 세대간의 결속, 어린이 권리 보 호 등의 증진에서 꾸준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근대와 함께 태동한 근대적 의미의 민족국가는 국가의 주권을 신성시하고, 국가는 국가적 단위로 시장을 통합하여, 개인이 합법적으로 재산을 늘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여전히 배타적으로 행사되는 영토 범주의 주권은 각 국가들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만, EU는 경제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27개국 5억명의 사람들이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방대한 영역에 걸쳐 일정 정도 주권을 희생하면서 '공존과 공생', '삶의 질', 환경과 조화를 이룬 개발, 평화와 조화에 초점을 맞춘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한 여정에 참여하고 있는 거대한 '과정'이다. 따라서, '유러피언 드림'은 지역적인 유럽의 영토적 경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미치는 공동 위협에 협력적으로 대응하고, 글로벌화되고 있는 세계에서 방향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류가 '정의로운 전환'을 모색하는 데 강력한 비전이 될 만한 인류 공동의 꿈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새로운 여정에 필히 수반되는 폭풍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개인적 책임 의식이 강하지 않다면 '유러피언 드림'은 좌초하고 말 것이며, 어쩌면 더욱 극적이고 큰 재난을 가져오는 사건들이 발생해야만 지구상의 대다수 사람들이 도덕적 행위에 시스템적 사고방식을 도입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인류의 글로벌 의식과 집단지성으로 '보편적 인권'과 '생물권 보호',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하는 새로운 거대 담론이 절실한 시점이다.
얼마전 대만과 중국 남부를 강타했던 모라꼿 태풍은 당시 대만 주변의 해수 온도가 약 2도 가량 높아져있어 태풍이 머금은 수증기의 양이 많아진 것에 그 파괴력과 피해가 더 커졌고, 태풍을 많이 당해 본 대만 정부조차 예측할 수 없는 범위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동해안에 출몰하기 시작한 식인 상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 온도가 상승한 것에 원인이 있으며, 그리스의 대형 산불, 먹거리의 오염 등은 인류에게 닥칠 환경/기후/자연 재해가 더욱 거세질 것을 예고한다. 그에 더해, 신종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확산, 테러, 대량 기아, 세계적인 공황 등의 재앙이 오히려 인류를 고립, 외국 혐오증, 도덕성 붕괴, 그리고 모든 종류의 희생양에 대한 공격 등을 불러 현 문명의 더욱 야만적인 퇴조를 불러 올 수도 있다. 따라서,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보다는 증폭될 세계에서 살게 될 우리에게 '유러피언 드림'은 아직 달성된 현실은 아닌 것이다.
나에게 '유러피언 드림'은 '통합과 화합의 꿈'으로 읽히며, 개인이 감당할 만한 수준에서의 부단한 '실천'과 '타인의 고난에 대한 '공감'을 요구한다. '내가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도덕률을 생태계에까지 확장한다면, 모든 선하고, 좋은 실천들은 인류의 '공공선'을 확충하고, 더 나은 '삶의 질'과 '건강한 사회'를 추구하기 위한 통합적 비전이 되고, 우리의 조그마한 실천이라도 가치있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윤 아닌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 착한 소비, 생태적 귀농, 신재생 에너지 및 재활용, 친환경, 프로보노(pro bono) 운동, 풀뿌리 자치 공동체, 시민사회 기구에 대한 참여, 1% 나눔운동, 기부문화 확산, 어려운 이웃에 대한 배려 등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널려있으며, 그러한 개인이 많아진다면, 한국이 산업화, 민주화를 압축하여 달성했듯이 '조화로운 사회'도 압축하여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의 정부와 통치 행태는 민주화에 역행하며, 과거퇴행적이지만,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조화로운 사회'를 낳기 위한 産苦의 과정이며, 거대한 학습의 장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여전히 '선택'과 '행동'은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겠다. 그리고 우리의 실천은 "Better Than Nothing"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