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민승희2009.08.26
조회204

며칠 전 아내가 동네 학부형과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잠깐 들으니 요번 학부형 참관 수업은 가봐야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전업주부일 때도 안 가던 참관수업을 가려고 하는 게 좀 이상했습니다.
엄마들 치맛바람에 휩싸이기 싫다면서 학교에 잘 안 가던 아내여서 더 궁금했지요.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며칠 전 딸아이 짝꿍이 바뀌었는데
자폐증상이 조금 있는 친구와 짝꿍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보조 선생님이 없다는 걸 보니 그렇게 중증인 아이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사실 아들 녀석이라면 걱정도 안 했겠죠.


아들 녀석은 워낙 낙천적이고 사귐성이 좋아 머리 한 대 때리면서
“잘해줘라, 심통 부리지 말고.” 라고 한번 말해주면 그만인데
딸아이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자기 불만 사항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속으로 끙끙거리는 스타일이죠.
반면 공부에는 욕심이 있고 짝꿍에 신경을 쓰는 아이여서 약간 걱정이 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참관수업을 다녀온 아내를 통해 딸 아이 짝꿍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학습능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조용하고 착한 아이라고 말씀해주셨답니다.

짝꿍도 한 달에 한 번씩 바뀔 거라는 말씀도 해주시고,
우리 딸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모두
그 아이를 잘 대해주고 챙겨준다는 말씀도 하셨하더군요.

 

저녁에 딸아이에게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 짝궁 바뀌었다며, 맘에 드냐? ”
“ 별로···.”

 

시큰둥하게 대답하더군요.

 

“ 뭐가 별로야? ”
“ 너무 느려. ㅎㅎ”
“ 얼마나 느린데? ”
“ 음···예를 들면 선생님이 교과서 몇 쪽을 펴라 하면
   걔는 첫 장부터 아주 천천히 천천히 넘겨.
  그러다보니까 수업 다 끝날 때쯤에 그 페이지를 펴.”
“ 느리긴 느리구나.”
“ 겁나게 느려.”

 

잠시 뜸을 들이던 딸아이는

 

“ 그래서 요즘은 내가 책 펴주고 연필 챙겨주고 필기 도와주고 그래.”
“ 역시 우리 딸이구나, 장하다.”

 

라며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딸아이가

 

“ 아빠 나만 그런 거 아니고 우리 반 애들 다 걔한테 잘해줘.
  일부러 발표도 시켜주고 답도 가르쳐주고 서로 도와줄라 그래.”

 

요즘 초딩이란 단어로 아이들을 가끔 매도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아빠, 아빠 그런데 걔 수영 잘 한다.”

 

딸아이의 뜬금없는 얘기에

 

“ 수영 할 줄 안다고? ”
“ 아니, 우리 학교 대표야. 요번에 전국대회에 나간데.”

 

약간 벙찌더군요. 행동이 그렇게 느리다는 애가 수영선수라니. ㅎㅎ
다시 한 번 저의 편견에 일침을 가하더군요.
전 딸아이에게 짝꿍의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 네 짝꿍은 거북이네.”
“···”
“ 육지에서 겁나게 느린데 물에서는 누구보다 빠른 거북이.
   조오련보다 빠르다는 거북이. ㅎㅎ”

 

씽긋 웃던 딸아이가

 

“ 조오련이 누군데?”
“ 아,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수영 제일 잘한 사람이야.”
“ 박태환 보다 잘해?”
“ 음, 그건 잘 모르겠고, 하여간 헤엄쳐서 일본까지 간 사람이야.”
“ 에이, 뻥!!! ”

 

어슬렁거리던 아들 녀석 난데없이 끼어들더니

 

“ 니 짝꿍이 거북이 같이 생겼다고?”

 

하여간 멍한 녀석. ㅎㅎ
딸아이와 저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아들 녀석을 향해
‘그냥 들어가쇼’ 란 손짓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딸아이와 짝꿍 친구는 천생연분인 것 같습니다.
제 딸 별명이 ‘토끼’라서요.
애들이 자꾸 무를 주며 갈아보라고 해서 무 알레르기가 있는 딸···.ㅎㅎ
‘토끼와 거북이’ 환상의 짝꿍 맞겠죠. ㅎㅎ

-----------------------------------------------------------

[출처] 토끼와 거북이|작성자 나야나

http://blog.naver.com/agora_nayana/150068408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