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피검사를 하는데.. 제가 원하는것만큼 한 번에 좋아지기는 어렵지만.. 황달수치도 아주 조금 좋아지고 암모니아 수치도 많이 떨어졌다고 하셨어요.. 췌장수치가 좀 높아서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걱정할정도는 아니니 지켜보자고도 하셨구요..
그리고.. 리플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읽어봤어요..
근데 저.. 정말 아빠 팔아서 인생역전 하고싶은맘 단 1%도 없습니다.
아니..1%도 너무 많습니다.. 정말 제가 수술비 부풀려 인생역전 하고 싶었다면 이곳에 정보를 알려고 글을 올리지도 않았겠지요..
시간이 날때마다 인터넷으로도 여러가지 정보 얻지만 간이식을 받으신 분에 대한 이야기를 확실히 듣지 못해 비용이 어느 정도 드는지도..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기에 의사선생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썼을 뿐이에요..
리플에서 보고 수술비용이 몇억이 아니라 4,000만원에서 5,000만원 사이라는걸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주위분들이 매달 드는 약값도 엄청나다고들 하셔서.. 그 엄청나다는 정도가 사람마다 생각하는 생각 차이겠지만요..
물론 저도 착하질 못해서 좋은맘으로 넘겨버리면 그만이겠지만.. 다른사람에게 상처주는 말.. 지금으로서는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드네요..
절대적으로 금전적인 도움이나 다른 무언가를 바라고 글 올린거 아닙니다.
다만 혹시 간경화로 인해 작은 정보라도 하나 더 알고싶어 올린 글입니다. 오해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부탁드립니다.. (또한 글이 너무 길어진 점..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오늘도 퇴근후에 아빠에게 가봐야겠어요.. 무엇보다 긍정적인 힘이 제일 필요한 것 같네요..
정말 좋은 정보 알려주신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힘내라고 응원해주신분들 또한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방에사는 딸부자집 막내딸입니다.
인사는 이렇게 간단히 하고 보증으로 피해 보셨던 분들, 그리고 혹시나 간경화로 투병해보셨던분.. 완치하신 분이라면 꼭 좋은 정보 좀 알려주세요.. 그리고 혹시 간경화로 투병중이시던 분을 간호하셨던 분들의 작은 정보도 알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지금부터 저희 아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날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전하면 좋겠지만 조금 길어질지도 모르니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평소 아빠는 고집이 세시고 자존심이 강한 분이셨지만 정 만큼은 누구보다 많으셔서 항상 다른 사람과 본인의 가족과 친지 분들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깊으셨어요.
젊으신 시절부터 술을 좋아하시는 편이라 퇴근 후에도 집에서라도 간단히 항상 술을 드셨었습니다.
지금은 저는 결혼을 해 친정과 약 40분정도 걸리는 거리에 살고 있지만 친정집은 군 단위의 작은 곳입니다.
약 60여년을 그곳에서 나고 자라셨던 아빠는 몇년 전, 고향 후배분들과 함께 술자리에서 보증을 서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처음에는 거절을 하셨습니다.
며칠 뒤, 다른 후배에게 전화와가 "형님..저도 보증 서달라고 부탁을 계속 해서 그냥 서주려고 하는데.. 같이 서줍시다." 라는 전화가 걸려왔더랍니다.
그렇게 고집도 세셨던 분이.. 왜그렇게 그것에 마음이 약해지셨는지.. 약 2,000만원의 보증과 한 금융기관에 마이너스 통장 보증까지 서셨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합니다. 이자 꼬박꼬박 갚겠다며 걱정 말라던 그 집은.. 이자는 커녕 저희 아빠에게 보증 서달라고 얘기 하기 전부터 이미 합의이혼과 남아있는 재산은 모두 친척명의로 돌려놨었습니다.. 몇년이 지나고 안 사실이지만요..
처음엔 저희아빠가 보증 서준지도 몰랐습니다.
이자가 체납되고 원금은 10원도 갚지 않아..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후부터 집으로 독촉장이 날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저희집.. 여섯식구입니다. 60만원이라는 작은 월급으로 아빠와 엄마는 저희 네딸들을 다 키우셨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으시며 일을 하십니다. 약 20여년 간 60만원이라는 돈으로 직장을 다니셨습니다.
어릴 적, 이사를 자주 다녔던 때에는 이사 다니는게 마냥 좋았습니다. 언니와 내가 쓰는 방이 또 새로운 집에서 새롭게 생긴다는게 좋았나 봅니다. 그리고 트럭 대신 리어카에 짐을 한가득 싣고 몇번이고 왔다갔다 하는것이 그리도 신이났나 봅니다.
밤 늦은 시간까지 언니들이랑 짐싸고 엄마가 씽크대에 몰래 숨겨둔 라면 찾아먹는 것 또한 재미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이사를 갈 때마다 왜 항상 우리에게 미안해 하셨는지.. 그리고 이사는 내가 마냥 좋아했던것과는 반대로 아빠 엄마에게는 제대로된 내 집 하나 없이 매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정말 힘들었던 것이라는걸요..
초코파이나 오예스.. 라면은 씽크대 깊숙하게 숨겨져있던 간식이었습니다.
크게 아파서 밥을 못먹거나 우리 네 자매가 모두 모여있을 때 다같이 조금씩 나눠먹던 소중한 간식이었는데 그저 우연찮게 씽크대 열었다가 초코파이가 보이면 뭐가 그리 좋다고 몰래 그렇게 맛있게도 먹었을까요.. 엄마는 그 간식 마음껏 못주며 얼마나 가슴 아파 하셨을까요..
아빠가 보증을 섰을 당시, 아빠의 월급과는 상관없이 직장명, 그리고 20년을 겨우겨우 모아 19평의 작은 집, 그리고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아빠 명의로 사두셨던 아주 작은 거기에 제대로 된 농사도 짓지 못할 만큼의 작은 논과 밭..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도 제대로 기재 되있지 않았고 그저 사람 인감도장만 쾅쾅 찍어놓고 2천만원이라는 돈을 빌려준 그 금융기관에 대해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법무사 사무실에 이것저것 알아보러 다닐 때 법무사분께서 이야기 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에 주민등록번호도 제대로 기재안하고 보증인 세워주는 곳은 이곳 뿐일거라고.. 이렇게 허술하게 대출을 관리하니 피해자가 늘어난다며..
처음에 독촉장 한 두번 날라올때 그집에서는 이자며 원금이며 알아서 할 테니까 저희엄마에게 형수는 신경끄라며 알아서 한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이 흐르고, 최종적으로 집과 아빠 명의로 된 논과 밭을 경매에 넘긴다는 최종 독촉장이 날라왔습니다.
같이 보증을 서자며 말을 했던 그 후배분도 이미 모든 재산을 다른사람 명의로 바꿔놓은 후였고 그저 사람을 믿었던 저희 아빠과 식구들은.. 말그대로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었습니다.
아빠는 무조건 사람을 믿으라며..다 잘 해결될꺼라는 말씀을 하셨었고, 이미 그 후에는 남아있는 작은 재산이며 통장이며 다른사람 명의로 바꾸지 못하는 때였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 누구의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소중한 저희 아빠이고 가족이니까요.
결국 작년.. 법원으로 나오라는 통지서를 받고..엄마 그리고 작은언니..태어난지 한달도 채 되지않은 우리 조카.. 그리고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고 제가 바로 법원으로 갔습니다.
아..좀 늦었지만 저희 아빠가 보증을 서 준 그사람은 학생들 교복을 맞춰주는 복장사라는 가게를 하고 있었고 그의 부인은 바로 옆 상가에서 세탁소를 운영합니다.
그 아저씨는 자기가 다시 헐값에 경매를 받아주겠다며 친구를 한 명 데리고 오셨고, 우리 보는 앞에서 우리를 물먹였습니다.
서류를 늦게 써서.. 이미 다른 사람이 저희집과 논과 밭을 모두 사버렸다며 그렇게 먼저 차를 타고 나가버렸습니다.
조카를 안고있던 제가 뒤늦게 알고 뛰어 내려가봤지만 이미 사라진 후였습니다.
엄마와 언니 그리고 저.. 밖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20년동안 겨우겨우 모았던 돈으로 처음 마련한 작은 집.. 그게 눈 앞에서 그렇게 날아가 버렸습니다..
엄마는 집이라도 잡고 싶다며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셨고 제가 다시 법원으로 들어가 낙찰한 사람의 정보를 알고 싶다고 했지만 이름 외에는 가르쳐 드릴수가 없다며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큰아빠로부터 갑자기 연락을 받고 인근의 법무사 사무실을 찾았더니, 민사 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시간이 좀 걸리니 걱정말고 돌아가라는 말을 전해 들었고 그 다음날 법원에 전화해 알아보니 다행히 작은 논 하나만 경매에 넘어갔고 집과 다른 것들은 낙찰자가 없어서 그대로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금융기관에서 신용정보회사로 저희아빠의 보증건은 넘어갔고 그 뒤부터 매일 여기저기 알아보며 직접 찾아다니며 알아봤습니다.
신용정보회사..처음 가본 곳이었는데 들어서니 큰 쇼파에 덩치 큰 사람들이 앉아있고 여러대의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원금 2,000만원 이었던 금액이.. 이자를 몇년동안 단 10만원도 갚지않아.. 갚아야 할 돈은 4,400만원 이었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감면이 안되겠냐며 애원했지만.. 기간이 너무 오래되어 불가능하니 보름 후까지 절반 이상을 갚아야 그 다음 경매가 진행이 안된다는 말만 듣고 허무하게 나왔습니다.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해서든 절반 이상의 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신용정보회사에서는 저희쪽 사정도 잘 알겠으니 그 아저씨에게도 전화를 걸어 일단 1,000만원이라도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겠다고 했습니다.
10원한장 못내놓겠다던 복장사 아저씨도 며칠 뒤, 이게 다라며 큰소리치며 1,000만원을 갚으셨고 저희도 아빠 엄마가 모아두셨던 돈을 모두 털어 일단 돈을 갚았습니다.
법무사 사무실에 가서 알아보니 민사 소송은 그 아저씨에게만 걸 수 있는것이 아니라 함께 보증을 선 사람까지 모두 함께 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재산이 하나도 없는걸로 되어있어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보자며 말씀을 하셨고, 법원에서 두 차례 판결을 받았습니다.
복장사를 운영하시는 그 아저씨는 보증인이 아니므로 후에 다시 소송을 해야 한다기에 보증을 함께 섰던 그 후배분과 두 차례 판결에서 법원은 함께 보증을 선 것이 인정되기에 1차에 265만원을.. 2차에 700만원을 갚으라는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복장사를 운영하고 그의 부인은 바로 옆 상가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이자를 갚지않아 원금의 두배가 부풀어져 있는동안.. 그 집 식구들은 세탁소를 한칸 더 크게 확장운영 하였으며, 자식 세명다.. 등록금이 1년에 천만원도 넘는다는 사립대를 떳떳하게 보냈습니다.
엄마가 답답한 마음으로 세탁소에 찾아가 조금이라도 갚아나가자며 말씀하셨을 때, 그 미친자식은.. 저희 엄마에게 더 지껄여보라면서 징이랑 꽹과리를 가져다 줄 테니 더 크게 소리쳐 보라며 저희엄마를 한없이 비꼬았습니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조금 흥분된 말투로 말을 했더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시면서 "콱~" 이라는 말까지 내뱉기에.. 엄마가 어디 한 번 해보자고 때려보라고.. 지금 OO아빠가 몸이 어떤 줄 아냐고.. 사람이고 양심이 있으면 단돈 10만원이라도 조금씩 갚겠다는 말은 못할망정 어디다대고 욕이고 손을 올리냐고 말을 하자.. 꺼지라는 말만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형부랑 저희가 그 가게를 찾아갔지만 찾아갈때마다 신랑 없다는 말만 하는 그 부인에게.. 사람이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아무리 없이살고 남들만큼 못배워도 그렇게 무식하게 자기보다 손윗사람한테 말하는게 어딨냐고 하자.. 부인은 미안하다고 자기도 지겹고 힘들어서 못살겠다는 말만 했었습니다.
억울하고 서러웠습니다. 저도 아빠만큼 고집세고 성격있는데.. 더 크게 말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과 받아내지 못한 제가 미치도록 미웠습니다. 이놈의 멍청한 고집과 깡은 왜 이럴때 제대로 쓰지도 못하냐며 제 스스로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 후입니다.
가족들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빠는 그 힘든것을 술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술을 좋아하시는 아빠를 절대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아빠이고, 누가 뭐래도 저희집의 든든한 가장이시니까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저희집의 든든한 가장이신 아빠가.. 지금 아프십니다.
술을 드실때면 식사를 잘 하시지 않던게 쌓이고 쌓였나 봅니다.
왜 남자들은 살이 찌건 빠지건 배부터 나온다고 하잖아요.
저희아빠 마르신 체형이십니다. 평소 몸무게 65kg이상 넘지 않으셨는데.. 그런 아빠가 몸무게가 갑작스럽게 10kg이 넘게 빠지셨습니다.
정말이지 다리는..앙상할정도로 뼈만 남았는데..배는 여전히 불러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간이 좋지 않아 복수가 찬 것 같았지만 고집이 세신 아빠는 괜찮다며 병원가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아빠에게 화도 내보고 울며 매달려보고..우리랑 오래오래 행복하려면 병원가서 주사만 맞고 오자고 몇 십번이고 말했지만 괜찮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친정집 인근에서 막내언니가 간호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빠는 괜히 내 딸 일하는곳에 가서 딸 신경쓰이게 하고 싶지 않으시다며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 하셨습니다.
그러던 지난 2월.. 아빠는 너무 아프시다며..먼저 병원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곧바로 입원실을 알아보고 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간경화..아빠의 진단명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빠는 약 2주정도 입원치료를 하시고 차후 통원치료를 하셨습니다.
조금 좋아지신듯 하였고, 병원에서도 간암은 아니니 너무 걱정말라며.. 간경화라는게 완치는 힘들지만 더 악한 상황은 막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8월 4일.. 언니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빠의 2차 입원.. 이번에도 너무 아프다며 먼저 병원에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얼마나 아프셨으면.. 자식들이며 아내며 그렇게 울며 매달리며..병원에 가자고 설득했지만 그렇게 거부하시던 우리아빠가.. 얼마나 참기 힘드셨으면 병원에 가자고 하셨을까.. 너무 속상했습니다.
약 보름동안의 입원치료를 하시고 그렇게 퇴원 후, 아빠는 여느때처럼 일을 나가셨습니다. 이제 그만 쉬자며 말씀 드려봤지만 할 수 있을때까진 나가서 일을 하시겠다며 고집을 피우셨습니다.
퇴원 후 일주일.. 조금 무리하게 일을 하신다 싶어 주말이면 신랑과 함께가서 아빠일을 도와드렸습니다. 그리고 삼일 후.. 언니가 울며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가 이상하다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며 울었습니다.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몇시간째 앉아만 계신다며.. 늦은 시간 그 전화를 받고 엄마랑 통화를 하고.. 그 자리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병원에 가게되면 바로 연락하겠다던 언니의 전화를 받고.. 그렇게 새벽.. 상황이 급해 직장에 문자를 보내고 일곱시가 되지 않은 시간에 친정으로 급히 갔습니다.
제가 생각했던것보다 아빠는 훨씬 더.. 아파보이셨습니다.
헛것이 보이시는지 자꾸만 이불을 붙잡고 바지를 입겠다고 하셨고.. 마루에 서서 울고 있는 저를 다른사람 보듯 한참을 쳐다보셨습니다. 그 아프신 몸에도 출근하셔야 한다며 붙잡는 저에게 화를 내시고는 힘들고 귀찮아 죽겠으니 나를 좀 내버려두라며.. 그 말만 계속 되뇌이셨습니다. 신발을 신겠다고 하셨던 아빠는 제 신발에 한쪽발을 끼우시고는 한참을 또 서계셨습니다.
제가 "아빠.. 일하러갈거야? 천천히 신발신고 그럼 나랑 같이가요." 하면서 아빠 신발을 한짝 한짝 들고 천천히 아빠 발에 끼워드리자 아빠는 본인이 신발을 신었는데 왜 자꾸 또 신발 신기냐며 하셨습니다.
아빠를 차에 태우고 아무것도 못드셨으니 병원가서 주사 한대만 맞자고 말씀드렸지만 아빠는 시간이 늦어서 안된다며 무조건 직장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빠를 모시고 사무실에 들러 얘기를 하고 병원에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사무실로 아빠를 차에 태워 엄마와 언니와 아빠 그리고 저와 함께 사무실로향했습니다.
아빠는 화장지를 가지러 가신다며 종이가 쌓여있는 책장앞에서 한참을 두리번 거리셨고.. 배가 너무 고프다며 이것저것 먹을것을 달라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아빠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빠의 후배와 고모가 와서 아빠를 설득했습니다. 우리가 그러면 그럴수록 아빠는 더 힘들고 괴롭다며 좀 놔두라는 말은 계속하셨고 몇시간이 지난후.. 제가 살고 있는곳에서 제일 큰 병원은 접수가 지금은 안되냐고 저에게 물어보셨습니다.
급하게 아는 분들에게 연락을해, 사정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접수를 하고 바로 아빠를 차에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당장 입원을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고 간단한 검사뒤에 곧바로 입원실로 올라갔습니다. 아빠는 배가 고프시다며 밥을 먹자고 하셨고 지하 식당에 내려가 밥을 드시는데.. 헛숟가락질만 계속 하셨습니다.
우리가 챙겨드리려고.. "아빠..밥여기있잖아..여기.." 이러면 알았으니 좀 놔두라고 왜 나를 환자 취급 하냐며.. 민감하게 반응하셨고
입원실로 다시 올라가니.. 담당 의사선생님과 주치의 선생님이 자세한건 CT를 찍어봐야 알겠으나 간경화 합병증으로 인해 복수와 간성혼수 증세가 이미 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암모니아 수치가 올라가면 헛것이 보이고 헛것이 들리는 증상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날 링겔과 약을 복용하고 복수를 한 차례 빼냈습니다.
아빠의 몸무게는 당시 52kg... 아빠의 쇄골은 푹 파일대로 파였고 그 종아리에 걸음이라도 걸으시면 휘청휘청..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다음날 CT촬영결과.. 아빠의 간경화는 말기직전 상황이며 다행히 암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간경화로 올 수 있는 대표적인 합병증 세가지가 이미 모두 진행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첫번째는 복수.. 두번째는 간성혼수.. 세번째가 식도랑 위의 출혈..
엄마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낫겠냐며 물어보셨고 주치의 선생님은 평균적으로 복수가 차면 2년.. 식도 출혈까지 이미 진행되었다면 평균 수명은 1년 안으로 잡는다고 하셨고.. 완치는 불가능하며 더 나빠지지 않게 상태만 지속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이식은 대기도 너무 길고 설사 가족중에 맞는다고 하더라도 비용 부담이 너무 클거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빠는 세가지 합병증이 모두 온 건 알지 못하시며.. 복수와 간성혼수 증상만 알고 계십니다.
솔직히 마음같으면 당장이라도 우리가족 모두 검사해 간이식..해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부잣집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수술을 받는것만 몇역..그리고 수술후에도 한 달 약값만 해도 엄청나다는 말에 그저 눈물만 나옵니다.
주치의 선생님도 간 이식 수술은 권하지 않으시구요.
다행히 아빠의 상태는 처음 입원하신 날보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호전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도 다른 일을 하면서도.. 정신은 항상 멍해있습니다.
보증.. 저희가 빨리 알아보지 못한것도 큰 잘못이지만.. 지금은 그 보증보다는 아빠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셔서 오래오래 저희와 함께이셨으면 좋겠습니다.
간경화로 당뇨수치도 조절이 되지 않아 당이 없던 아빠가 지난 8월부터 갑작스럽게 당이 높아져 하루에도 다리며 이곳저곳 인슐린 주사까지 맞는 아빠를 보면.. 그저 눈물만 납니다.
인터넷도 찾아보고 주위에 아는분들께 도움도 청하지만.. 힘이 듭니다.
간경화 합병증으로 인해 이미 생일 달리하신 분들의 이야기.. 인터넷으로 검색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완치..바라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건강하신 모습으로 하루라도 더 오래 사셨으면 좋겠네요..
무슨 이야기를 쓴 건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작은 정보라도 좋으니.. 정말 작은 정보라도 이게좋다더라.. 저게 좋다더라.. 혹시라도 한 번이라도 들은 좋은 이야기..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물론 치료는 환자 본인과 가족들이 모두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는게 제일 좋겠지만, 아빠는 모든 상태에서 조금 지쳐계시는 듯 합니다.
보증에 이어 아빠의 간경화..아시는분 제발 좀 도와주세요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헤드라인에 뜬 제 글을 봤어요.
좋은정보 주신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정말 잊지 않을게요..
다행히 아빠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호전이 되어가신다고 하시네요..
매일 아침 피검사를 하는데.. 제가 원하는것만큼 한 번에 좋아지기는 어렵지만.. 황달수치도 아주 조금 좋아지고 암모니아 수치도 많이 떨어졌다고 하셨어요.. 췌장수치가 좀 높아서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걱정할정도는 아니니 지켜보자고도 하셨구요..
그리고.. 리플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읽어봤어요..
근데 저.. 정말 아빠 팔아서 인생역전 하고싶은맘 단 1%도 없습니다.
아니..1%도 너무 많습니다.. 정말 제가 수술비 부풀려 인생역전 하고 싶었다면 이곳에 정보를 알려고 글을 올리지도 않았겠지요..
시간이 날때마다 인터넷으로도 여러가지 정보 얻지만 간이식을 받으신 분에 대한 이야기를 확실히 듣지 못해 비용이 어느 정도 드는지도..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기에 의사선생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썼을 뿐이에요..
리플에서 보고 수술비용이 몇억이 아니라 4,000만원에서 5,000만원 사이라는걸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주위분들이 매달 드는 약값도 엄청나다고들 하셔서.. 그 엄청나다는 정도가 사람마다 생각하는 생각 차이겠지만요..
물론 저도 착하질 못해서 좋은맘으로 넘겨버리면 그만이겠지만.. 다른사람에게 상처주는 말.. 지금으로서는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드네요..
절대적으로 금전적인 도움이나 다른 무언가를 바라고 글 올린거 아닙니다.
다만 혹시 간경화로 인해 작은 정보라도 하나 더 알고싶어 올린 글입니다. 오해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부탁드립니다.. (또한 글이 너무 길어진 점..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오늘도 퇴근후에 아빠에게 가봐야겠어요.. 무엇보다 긍정적인 힘이 제일 필요한 것 같네요..
정말 좋은 정보 알려주신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힘내라고 응원해주신분들 또한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방에사는 딸부자집 막내딸입니다.
인사는 이렇게 간단히 하고 보증으로 피해 보셨던 분들, 그리고 혹시나 간경화로 투병해보셨던분.. 완치하신 분이라면 꼭 좋은 정보 좀 알려주세요.. 그리고 혹시 간경화로 투병중이시던 분을 간호하셨던 분들의 작은 정보도 알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지금부터 저희 아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날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전하면 좋겠지만 조금 길어질지도 모르니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평소 아빠는 고집이 세시고 자존심이 강한 분이셨지만 정 만큼은 누구보다 많으셔서 항상 다른 사람과 본인의 가족과 친지 분들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깊으셨어요.
젊으신 시절부터 술을 좋아하시는 편이라 퇴근 후에도 집에서라도 간단히 항상 술을 드셨었습니다.
지금은 저는 결혼을 해 친정과 약 40분정도 걸리는 거리에 살고 있지만 친정집은 군 단위의 작은 곳입니다.
약 60여년을 그곳에서 나고 자라셨던 아빠는 몇년 전, 고향 후배분들과 함께 술자리에서 보증을 서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처음에는 거절을 하셨습니다.
며칠 뒤, 다른 후배에게 전화와가 "형님..저도 보증 서달라고 부탁을 계속 해서 그냥 서주려고 하는데.. 같이 서줍시다." 라는 전화가 걸려왔더랍니다.
그렇게 고집도 세셨던 분이.. 왜그렇게 그것에 마음이 약해지셨는지.. 약 2,000만원의 보증과 한 금융기관에 마이너스 통장 보증까지 서셨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합니다. 이자 꼬박꼬박 갚겠다며 걱정 말라던 그 집은.. 이자는 커녕 저희 아빠에게 보증 서달라고 얘기 하기 전부터 이미 합의이혼과 남아있는 재산은 모두 친척명의로 돌려놨었습니다.. 몇년이 지나고 안 사실이지만요..
처음엔 저희아빠가 보증 서준지도 몰랐습니다.
이자가 체납되고 원금은 10원도 갚지 않아..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후부터 집으로 독촉장이 날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저희집.. 여섯식구입니다. 60만원이라는 작은 월급으로 아빠와 엄마는 저희 네딸들을 다 키우셨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으시며 일을 하십니다. 약 20여년 간 60만원이라는 돈으로 직장을 다니셨습니다.
어릴 적, 이사를 자주 다녔던 때에는 이사 다니는게 마냥 좋았습니다. 언니와 내가 쓰는 방이 또 새로운 집에서 새롭게 생긴다는게 좋았나 봅니다. 그리고 트럭 대신 리어카에 짐을 한가득 싣고 몇번이고 왔다갔다 하는것이 그리도 신이났나 봅니다.
밤 늦은 시간까지 언니들이랑 짐싸고 엄마가 씽크대에 몰래 숨겨둔 라면 찾아먹는 것 또한 재미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이사를 갈 때마다 왜 항상 우리에게 미안해 하셨는지.. 그리고 이사는 내가 마냥 좋아했던것과는 반대로 아빠 엄마에게는 제대로된 내 집 하나 없이 매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정말 힘들었던 것이라는걸요..
초코파이나 오예스.. 라면은 씽크대 깊숙하게 숨겨져있던 간식이었습니다.
크게 아파서 밥을 못먹거나 우리 네 자매가 모두 모여있을 때 다같이 조금씩 나눠먹던 소중한 간식이었는데 그저 우연찮게 씽크대 열었다가 초코파이가 보이면 뭐가 그리 좋다고 몰래 그렇게 맛있게도 먹었을까요.. 엄마는 그 간식 마음껏 못주며 얼마나 가슴 아파 하셨을까요..
아빠가 보증을 섰을 당시, 아빠의 월급과는 상관없이 직장명, 그리고 20년을 겨우겨우 모아 19평의 작은 집, 그리고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아빠 명의로 사두셨던 아주 작은 거기에 제대로 된 농사도 짓지 못할 만큼의 작은 논과 밭..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도 제대로 기재 되있지 않았고 그저 사람 인감도장만 쾅쾅 찍어놓고 2천만원이라는 돈을 빌려준 그 금융기관에 대해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법무사 사무실에 이것저것 알아보러 다닐 때 법무사분께서 이야기 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에 주민등록번호도 제대로 기재안하고 보증인 세워주는 곳은 이곳 뿐일거라고.. 이렇게 허술하게 대출을 관리하니 피해자가 늘어난다며..
처음에 독촉장 한 두번 날라올때 그집에서는 이자며 원금이며 알아서 할 테니까 저희엄마에게 형수는 신경끄라며 알아서 한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이 흐르고, 최종적으로 집과 아빠 명의로 된 논과 밭을 경매에 넘긴다는 최종 독촉장이 날라왔습니다.
같이 보증을 서자며 말을 했던 그 후배분도 이미 모든 재산을 다른사람 명의로 바꿔놓은 후였고 그저 사람을 믿었던 저희 아빠과 식구들은.. 말그대로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었습니다.
아빠는 무조건 사람을 믿으라며..다 잘 해결될꺼라는 말씀을 하셨었고, 이미 그 후에는 남아있는 작은 재산이며 통장이며 다른사람 명의로 바꾸지 못하는 때였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 누구의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소중한 저희 아빠이고 가족이니까요.
결국 작년.. 법원으로 나오라는 통지서를 받고..엄마 그리고 작은언니..태어난지 한달도 채 되지않은 우리 조카.. 그리고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고 제가 바로 법원으로 갔습니다.
아..좀 늦었지만 저희 아빠가 보증을 서 준 그사람은 학생들 교복을 맞춰주는 복장사라는 가게를 하고 있었고 그의 부인은 바로 옆 상가에서 세탁소를 운영합니다.
그 아저씨는 자기가 다시 헐값에 경매를 받아주겠다며 친구를 한 명 데리고 오셨고, 우리 보는 앞에서 우리를 물먹였습니다.
서류를 늦게 써서.. 이미 다른 사람이 저희집과 논과 밭을 모두 사버렸다며 그렇게 먼저 차를 타고 나가버렸습니다.
조카를 안고있던 제가 뒤늦게 알고 뛰어 내려가봤지만 이미 사라진 후였습니다.
엄마와 언니 그리고 저.. 밖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20년동안 겨우겨우 모았던 돈으로 처음 마련한 작은 집.. 그게 눈 앞에서 그렇게 날아가 버렸습니다..
엄마는 집이라도 잡고 싶다며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셨고 제가 다시 법원으로 들어가 낙찰한 사람의 정보를 알고 싶다고 했지만 이름 외에는 가르쳐 드릴수가 없다며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큰아빠로부터 갑자기 연락을 받고 인근의 법무사 사무실을 찾았더니, 민사 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시간이 좀 걸리니 걱정말고 돌아가라는 말을 전해 들었고 그 다음날 법원에 전화해 알아보니 다행히 작은 논 하나만 경매에 넘어갔고 집과 다른 것들은 낙찰자가 없어서 그대로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금융기관에서 신용정보회사로 저희아빠의 보증건은 넘어갔고 그 뒤부터 매일 여기저기 알아보며 직접 찾아다니며 알아봤습니다.
신용정보회사..처음 가본 곳이었는데 들어서니 큰 쇼파에 덩치 큰 사람들이 앉아있고 여러대의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원금 2,000만원 이었던 금액이.. 이자를 몇년동안 단 10만원도 갚지않아.. 갚아야 할 돈은 4,400만원 이었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감면이 안되겠냐며 애원했지만.. 기간이 너무 오래되어 불가능하니 보름 후까지 절반 이상을 갚아야 그 다음 경매가 진행이 안된다는 말만 듣고 허무하게 나왔습니다.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해서든 절반 이상의 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신용정보회사에서는 저희쪽 사정도 잘 알겠으니 그 아저씨에게도 전화를 걸어 일단 1,000만원이라도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겠다고 했습니다.
10원한장 못내놓겠다던 복장사 아저씨도 며칠 뒤, 이게 다라며 큰소리치며 1,000만원을 갚으셨고 저희도 아빠 엄마가 모아두셨던 돈을 모두 털어 일단 돈을 갚았습니다.
법무사 사무실에 가서 알아보니 민사 소송은 그 아저씨에게만 걸 수 있는것이 아니라 함께 보증을 선 사람까지 모두 함께 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재산이 하나도 없는걸로 되어있어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보자며 말씀을 하셨고, 법원에서 두 차례 판결을 받았습니다.
복장사를 운영하시는 그 아저씨는 보증인이 아니므로 후에 다시 소송을 해야 한다기에 보증을 함께 섰던 그 후배분과 두 차례 판결에서 법원은 함께 보증을 선 것이 인정되기에 1차에 265만원을.. 2차에 700만원을 갚으라는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복장사를 운영하고 그의 부인은 바로 옆 상가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이자를 갚지않아 원금의 두배가 부풀어져 있는동안.. 그 집 식구들은 세탁소를 한칸 더 크게 확장운영 하였으며, 자식 세명다.. 등록금이 1년에 천만원도 넘는다는 사립대를 떳떳하게 보냈습니다.
엄마가 답답한 마음으로 세탁소에 찾아가 조금이라도 갚아나가자며 말씀하셨을 때, 그 미친자식은.. 저희 엄마에게 더 지껄여보라면서 징이랑 꽹과리를 가져다 줄 테니 더 크게 소리쳐 보라며 저희엄마를 한없이 비꼬았습니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조금 흥분된 말투로 말을 했더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시면서 "콱~" 이라는 말까지 내뱉기에.. 엄마가 어디 한 번 해보자고 때려보라고.. 지금 OO아빠가 몸이 어떤 줄 아냐고.. 사람이고 양심이 있으면 단돈 10만원이라도 조금씩 갚겠다는 말은 못할망정 어디다대고 욕이고 손을 올리냐고 말을 하자.. 꺼지라는 말만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형부랑 저희가 그 가게를 찾아갔지만 찾아갈때마다 신랑 없다는 말만 하는 그 부인에게.. 사람이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아무리 없이살고 남들만큼 못배워도 그렇게 무식하게 자기보다 손윗사람한테 말하는게 어딨냐고 하자.. 부인은 미안하다고 자기도 지겹고 힘들어서 못살겠다는 말만 했었습니다.
억울하고 서러웠습니다. 저도 아빠만큼 고집세고 성격있는데.. 더 크게 말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과 받아내지 못한 제가 미치도록 미웠습니다. 이놈의 멍청한 고집과 깡은 왜 이럴때 제대로 쓰지도 못하냐며 제 스스로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 후입니다.
가족들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빠는 그 힘든것을 술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술을 좋아하시는 아빠를 절대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아빠이고, 누가 뭐래도 저희집의 든든한 가장이시니까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저희집의 든든한 가장이신 아빠가.. 지금 아프십니다.
술을 드실때면 식사를 잘 하시지 않던게 쌓이고 쌓였나 봅니다.
왜 남자들은 살이 찌건 빠지건 배부터 나온다고 하잖아요.
저희아빠 마르신 체형이십니다. 평소 몸무게 65kg이상 넘지 않으셨는데.. 그런 아빠가 몸무게가 갑작스럽게 10kg이 넘게 빠지셨습니다.
정말이지 다리는..앙상할정도로 뼈만 남았는데..배는 여전히 불러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간이 좋지 않아 복수가 찬 것 같았지만 고집이 세신 아빠는 괜찮다며 병원가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아빠에게 화도 내보고 울며 매달려보고..우리랑 오래오래 행복하려면 병원가서 주사만 맞고 오자고 몇 십번이고 말했지만 괜찮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친정집 인근에서 막내언니가 간호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빠는 괜히 내 딸 일하는곳에 가서 딸 신경쓰이게 하고 싶지 않으시다며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 하셨습니다.
그러던 지난 2월.. 아빠는 너무 아프시다며..먼저 병원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곧바로 입원실을 알아보고 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간경화..아빠의 진단명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빠는 약 2주정도 입원치료를 하시고 차후 통원치료를 하셨습니다.
조금 좋아지신듯 하였고, 병원에서도 간암은 아니니 너무 걱정말라며.. 간경화라는게 완치는 힘들지만 더 악한 상황은 막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8월 4일.. 언니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빠의 2차 입원.. 이번에도 너무 아프다며 먼저 병원에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얼마나 아프셨으면.. 자식들이며 아내며 그렇게 울며 매달리며..병원에 가자고 설득했지만 그렇게 거부하시던 우리아빠가.. 얼마나 참기 힘드셨으면 병원에 가자고 하셨을까.. 너무 속상했습니다.
약 보름동안의 입원치료를 하시고 그렇게 퇴원 후, 아빠는 여느때처럼 일을 나가셨습니다. 이제 그만 쉬자며 말씀 드려봤지만 할 수 있을때까진 나가서 일을 하시겠다며 고집을 피우셨습니다.
퇴원 후 일주일.. 조금 무리하게 일을 하신다 싶어 주말이면 신랑과 함께가서 아빠일을 도와드렸습니다. 그리고 삼일 후.. 언니가 울며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가 이상하다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며 울었습니다.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몇시간째 앉아만 계신다며.. 늦은 시간 그 전화를 받고 엄마랑 통화를 하고.. 그 자리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병원에 가게되면 바로 연락하겠다던 언니의 전화를 받고.. 그렇게 새벽.. 상황이 급해 직장에 문자를 보내고 일곱시가 되지 않은 시간에 친정으로 급히 갔습니다.
제가 생각했던것보다 아빠는 훨씬 더.. 아파보이셨습니다.
헛것이 보이시는지 자꾸만 이불을 붙잡고 바지를 입겠다고 하셨고.. 마루에 서서 울고 있는 저를 다른사람 보듯 한참을 쳐다보셨습니다. 그 아프신 몸에도 출근하셔야 한다며 붙잡는 저에게 화를 내시고는 힘들고 귀찮아 죽겠으니 나를 좀 내버려두라며.. 그 말만 계속 되뇌이셨습니다. 신발을 신겠다고 하셨던 아빠는 제 신발에 한쪽발을 끼우시고는 한참을 또 서계셨습니다.
제가 "아빠.. 일하러갈거야? 천천히 신발신고 그럼 나랑 같이가요." 하면서 아빠 신발을 한짝 한짝 들고 천천히 아빠 발에 끼워드리자 아빠는 본인이 신발을 신었는데 왜 자꾸 또 신발 신기냐며 하셨습니다.
아빠를 차에 태우고 아무것도 못드셨으니 병원가서 주사 한대만 맞자고 말씀드렸지만 아빠는 시간이 늦어서 안된다며 무조건 직장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빠를 모시고 사무실에 들러 얘기를 하고 병원에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사무실로 아빠를 차에 태워 엄마와 언니와 아빠 그리고 저와 함께 사무실로향했습니다.
아빠는 화장지를 가지러 가신다며 종이가 쌓여있는 책장앞에서 한참을 두리번 거리셨고.. 배가 너무 고프다며 이것저것 먹을것을 달라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아빠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빠의 후배와 고모가 와서 아빠를 설득했습니다. 우리가 그러면 그럴수록 아빠는 더 힘들고 괴롭다며 좀 놔두라는 말은 계속하셨고 몇시간이 지난후.. 제가 살고 있는곳에서 제일 큰 병원은 접수가 지금은 안되냐고 저에게 물어보셨습니다.
급하게 아는 분들에게 연락을해, 사정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접수를 하고 바로 아빠를 차에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당장 입원을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고 간단한 검사뒤에 곧바로 입원실로 올라갔습니다. 아빠는 배가 고프시다며 밥을 먹자고 하셨고 지하 식당에 내려가 밥을 드시는데.. 헛숟가락질만 계속 하셨습니다.
우리가 챙겨드리려고.. "아빠..밥여기있잖아..여기.." 이러면 알았으니 좀 놔두라고 왜 나를 환자 취급 하냐며.. 민감하게 반응하셨고
입원실로 다시 올라가니.. 담당 의사선생님과 주치의 선생님이 자세한건 CT를 찍어봐야 알겠으나 간경화 합병증으로 인해 복수와 간성혼수 증세가 이미 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암모니아 수치가 올라가면 헛것이 보이고 헛것이 들리는 증상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날 링겔과 약을 복용하고 복수를 한 차례 빼냈습니다.
아빠의 몸무게는 당시 52kg... 아빠의 쇄골은 푹 파일대로 파였고 그 종아리에 걸음이라도 걸으시면 휘청휘청..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다음날 CT촬영결과.. 아빠의 간경화는 말기직전 상황이며 다행히 암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간경화로 올 수 있는 대표적인 합병증 세가지가 이미 모두 진행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첫번째는 복수.. 두번째는 간성혼수.. 세번째가 식도랑 위의 출혈..
엄마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낫겠냐며 물어보셨고 주치의 선생님은 평균적으로 복수가 차면 2년.. 식도 출혈까지 이미 진행되었다면 평균 수명은 1년 안으로 잡는다고 하셨고.. 완치는 불가능하며 더 나빠지지 않게 상태만 지속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이식은 대기도 너무 길고 설사 가족중에 맞는다고 하더라도 비용 부담이 너무 클거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빠는 세가지 합병증이 모두 온 건 알지 못하시며.. 복수와 간성혼수 증상만 알고 계십니다.
솔직히 마음같으면 당장이라도 우리가족 모두 검사해 간이식..해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부잣집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수술을 받는것만 몇역..그리고 수술후에도 한 달 약값만 해도 엄청나다는 말에 그저 눈물만 나옵니다.
주치의 선생님도 간 이식 수술은 권하지 않으시구요.
다행히 아빠의 상태는 처음 입원하신 날보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호전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도 다른 일을 하면서도.. 정신은 항상 멍해있습니다.
보증.. 저희가 빨리 알아보지 못한것도 큰 잘못이지만.. 지금은 그 보증보다는 아빠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셔서 오래오래 저희와 함께이셨으면 좋겠습니다.
간경화로 당뇨수치도 조절이 되지 않아 당이 없던 아빠가 지난 8월부터 갑작스럽게 당이 높아져 하루에도 다리며 이곳저곳 인슐린 주사까지 맞는 아빠를 보면.. 그저 눈물만 납니다.
인터넷도 찾아보고 주위에 아는분들께 도움도 청하지만.. 힘이 듭니다.
간경화 합병증으로 인해 이미 생일 달리하신 분들의 이야기.. 인터넷으로 검색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완치..바라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건강하신 모습으로 하루라도 더 오래 사셨으면 좋겠네요..
무슨 이야기를 쓴 건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작은 정보라도 좋으니.. 정말 작은 정보라도 이게좋다더라.. 저게 좋다더라.. 혹시라도 한 번이라도 들은 좋은 이야기..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물론 치료는 환자 본인과 가족들이 모두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는게 제일 좋겠지만, 아빠는 모든 상태에서 조금 지쳐계시는 듯 합니다.
병원에서는 입원치료를 당분간 계속 해야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치료야 계속해서 좋아진다라면 얼마든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빠의 아프신 모습을 옆에서 매일 지켜보는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제발 작은 힘이라도 좋으니 좀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