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일본이라는 국호는 서기 662년 백제의 왕자(?)가 '왜구'들이 왕으로 추대하고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신사의 주인공(?)'으로 되어 신격화 되고 역사적으로 드러나는 '천지천황(天智天皇)'이 만들어내고 부른 국호이다.
물론 그가 왜구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정통왜구출신 인물인지 아니면 백제의 또 다른 방계의 왕자였는지는 일본 사학계 전체가 아주 튼튼한 벽(?)을 만들고 알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천지천황'에 의해 서기 666년 마침내 "일본(日本)"으로 국호로 나라의 명칭을 바꾸면서부터이다.
사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서기 665년까지는 아예 없던 나라였다.
그 이전에는 서기 496년 '왜구'인지 역시 백제의 왕손인지는 모르지만 '무열(武烈)'의 시기부터 '왜(倭)'라고 불리워지다가 그렇게 국호가 바뀐것이다.
그 496년 이전에는 아예 그냥 노략질 일삼던 '해적수준'의 토착민일 뿐이었다.
기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서기 496년을 전후하여 향후 660년 백제가 망하는 순간까지 한반도 남부에는 엄청나고도 무한한 격변의 시기가 동시에 일어난다.
그 격변의 시기를 개인적으로는 '한반도의 4국시대'라 보면 고구려,신라,백제,가야의 엄청난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고 보면 타당함이라 본다.
그 와중에 가야가 신라에 합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기 660년 '백제의 왕조 몰락(멸망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쫓겨남이라 보았음)'으로 인해 남은 백제의 왕족과 귀족은 애초 200년전인 496년 전후로 하여 지금의 일본땅의 거의 45%를 차지하는 제 2의 터전으로 이주하여 그를 기반으로 새로이 세상을 열었으니 이에 '천지천황'은 옛 백제라 하여 백명의 토호(지방 호족)로 이루어져 분열을 안은 나라가 아닌 태양처럼 빛이 되는 나라라 하여 '일본'으로 개명하였으며 서기 666년에는 '천지천황'에 의해 비로소 '일본'이라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그 지역 왜구의 토착인들 중 가장 강한 혈족인 덕천가문(德川家門=이 이름도 나중에 드러난 왜구의 역사조작가 그들이 붙인 이름임이라 분명치는 않음)과의 일본본토를 두고 거의 천년에 가까운 전쟁에 들어가게 되니 후에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백제의 혈족은 완전히 멸족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백제의 모든 것은 왜구들 가문인 '덕천가'의 것이 되며 현재에는 일본의 모든 사람들은 일본문화등이 다 자생한 것이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게 된다.
물론 몇 몇 지방의 전통이란 문화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문화란것도 1500년 넘어가는 게 없다.
그 덕천가문이 그렇게 백제의 혈족을 마침내 멸족에 이르게까지 시키고 완전한 왜구가 일본이 된 이유는 그들의 혼인풍습에서 그 연원을 짐작하게 된다.
왜구들의 혼인은 철저한 '가족혼'의 풍습이다.
가족혼이란
부부가 살다가 누가 하나 죽든지 하면 남은 사람이 그 가문의 수장이 되어 제 마음대로 가족 중 누구와도 혼인이 가능학 하는 풍습이다.
예를 들자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이렇게 네식구가 있는 경우
아버지가 죽으면 바로 어머니가 가장이 되면서 자신의 아들과의 결혼이 가능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인 아버지가 자신의 딸과 결혼도 가능한 것이 가족혼이다.
그러나 그 경우 아들을 너무 좋아하던 딸이라면 그 어머니를 죽이고서라도 다시 그 아들이며 오빠와 결혼이 가능하다.
이런 경우에는 가까운 혈족들 중 가장 큰 어른(나이가 많은 사람)의 결정이 있으면 그걸로 다 해결된다.
그렇게 '가족혼'으로 이어진 왜구의 끈질김에 백제의 혈족은 거의 천년에 가까운 기나긴 전쟁에서 패퇴하면서 완전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가족혼이라는 것이 백제의 후손들에게도 침투되며 백제의 혈들은 흐려져갔을것이다.
즉, 현재 일본이 자랑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문화란 것이 원래 백제의 것을 왜구들이 자기것으로 둔갑시킨것일뿐이다.
일본이 고유의 의상인 '기모노'도 원래 '백제'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무녀'들과 '신관'들이 입던 '제례의복'이 그 모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완벽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872년부터 시작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아니 왜구 역사조작가들의 획책에 의해 역사조작은 시작되었고
1945년 일본이 항복하는 시점까지 그들 왜구역사학자들에 의해 조작되어지고 변질되어버린 역사임을 또한 알지만, 그들 왜구역사학자들의 거의 80년 가까운 세월에 걸친 조작으로 현재의 그 누구도 이런 사실을 아예 없던 사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않음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도 거의가 다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일본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형편이 현실이다.
또한 안타까운점은 백제 혈족의 마지막이라 보는 북조씨(北條氏)의 몰락이다.
임진왜란 전가지 존재하던 일본의 남북전쟁(?)의 역사는 가히 관심이 간다.
지금도 일본에는 그 '북조씨(北條氏)'의 자락이 남아있지만, 과연 그들이 백제의 혈족인지 아니면 그들과 대립하던 '족리씨(足利氏)'가 백제의 혈족인지는 분명치가 않다는 점이다. 이 또한 '왜구역사학자'들의 조작된 힘에 근거한다.
이 글을 쓰는데 있어 일본말을 배제한 이유는 '왜구들에 의해 조작되고 변질된 현재의 일본말'은 아예 그 '존재 자체로써 의미가 없음'이라 보기에 굳이 이렇게 우리말로 썼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러면 과연 백제의 혈족은 이어졌을까?
그들은 어디에 있는것일까?
완전한 왜구의 역사에 흡수되었음이리라...
이는 참으로 아쉽고도 아쉬운 역사의 한 부분일것이다.
음...이 글에 딴지를 거는 분도 있으리라.
그리고 물론 우리나라 에도 '가족혼'보다는 조금 강도가 덜하긴 하지만, '씨족혼'이라는 것은 있었다. '씨족혼' 혹은 '혈족혼'이라 하여 8촌이내의 혈족끼리 결혼하는 풍습이 또한 존재는 했었지만, 그 시기는 우리가 아는 삼국시대가 끝나는 시점에서 거의 사라지고 통일신라 후반부터는 없어지게 된것으로 안다.
물론 그 끝자락이 조선조 중엽까지도 보이는 예는 있긴 하다.
이에 대한 연구도 있는 실정이다.
결국 우리가 아는 현재의 일본문화나 모든 일본에 관한것은 그들 백제의 것들이 '왜구역사학자'들에 의해 교묘히 변질되고 조작된것이리라.
만약 누군가 참으로 큰 힘-UN사무총장 반 기문님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분이 또 다시 대한민국에 태어난다면 세계의 외교력을 발휘해서 '일본황실 비밀서고'를 탐색하면 이 의문들은 족히 풀리리라 본다.
일본의 천황조차도 그 있는 위치조차 모르는 "일본비밀 황실서고"
아마도 그 "덕천가"라 불리는 "정통왜구"의 혈족들은 알고 있으리라 본다.
어쩌면 지금의 오끼나와 토착민들 중 한 부류이리라는 짐작은 된다.
이 부분은 너무도 왜구역사학자들의 철저함으로 감추어져 있어 알기 어렵다.
지금 이 글은 쓰는 이유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역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분들의 그동안의 성과를 토대를 나름 참고하여 썼으며 아울러 다시 한 번 정확한 역사의 해석에 힘쓰시는 그 분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작은 개인이 적는 마음의 글이다.
또 하나 개인적인 마음의 바람이 있다면
비록 가공의 인물이지만 '인디아나 존스'박사같은 역사를 제대로 밝히는 사람이 하루 속히 대한민국에도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결국 일본은 백제의 또 다른 모습.
원래 일본이라는 국호는 서기 662년 백제의 왕자(?)가 '왜구'들이 왕으로 추대하고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신사의 주인공(?)'으로 되어 신격화 되고 역사적으로 드러나는 '천지천황(天智天皇)'이 만들어내고 부른 국호이다.
물론 그가 왜구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정통왜구출신 인물인지 아니면 백제의 또 다른 방계의 왕자였는지는 일본 사학계 전체가 아주 튼튼한 벽(?)을 만들고 알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천지천황'에 의해 서기 666년 마침내 "일본(日本)"으로 국호로 나라의 명칭을 바꾸면서부터이다.
사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서기 665년까지는 아예 없던 나라였다.
그 이전에는 서기 496년 '왜구'인지 역시 백제의 왕손인지는 모르지만 '무열(武烈)'의 시기부터 '왜(倭)'라고 불리워지다가 그렇게 국호가 바뀐것이다.
그 496년 이전에는 아예 그냥 노략질 일삼던 '해적수준'의 토착민일 뿐이었다.
기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서기 496년을 전후하여 향후 660년 백제가 망하는 순간까지 한반도 남부에는 엄청나고도 무한한 격변의 시기가 동시에 일어난다.
그 격변의 시기를 개인적으로는 '한반도의 4국시대'라 보면 고구려,신라,백제,가야의 엄청난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고 보면 타당함이라 본다.
그 와중에 가야가 신라에 합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기 660년 '백제의 왕조 몰락(멸망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쫓겨남이라 보았음)'으로 인해 남은 백제의 왕족과 귀족은 애초 200년전인 496년 전후로 하여 지금의 일본땅의 거의 45%를 차지하는 제 2의 터전으로 이주하여 그를 기반으로 새로이 세상을 열었으니 이에 '천지천황'은 옛 백제라 하여 백명의 토호(지방 호족)로 이루어져 분열을 안은 나라가 아닌 태양처럼 빛이 되는 나라라 하여 '일본'으로 개명하였으며 서기 666년에는 '천지천황'에 의해 비로소 '일본'이라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그 지역 왜구의 토착인들 중 가장 강한 혈족인 덕천가문(德川家門=이 이름도 나중에 드러난 왜구의 역사조작가 그들이 붙인 이름임이라 분명치는 않음)과의 일본본토를 두고 거의 천년에 가까운 전쟁에 들어가게 되니 후에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백제의 혈족은 완전히 멸족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백제의 모든 것은 왜구들 가문인 '덕천가'의 것이 되며 현재에는 일본의 모든 사람들은 일본문화등이 다 자생한 것이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게 된다.
물론 몇 몇 지방의 전통이란 문화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문화란것도 1500년 넘어가는 게 없다.
그 덕천가문이 그렇게 백제의 혈족을 마침내 멸족에 이르게까지 시키고 완전한 왜구가 일본이 된 이유는 그들의 혼인풍습에서 그 연원을 짐작하게 된다.
왜구들의 혼인은 철저한 '가족혼'의 풍습이다.
가족혼이란
부부가 살다가 누가 하나 죽든지 하면 남은 사람이 그 가문의 수장이 되어 제 마음대로 가족 중 누구와도 혼인이 가능학 하는 풍습이다.
예를 들자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이렇게 네식구가 있는 경우
아버지가 죽으면 바로 어머니가 가장이 되면서 자신의 아들과의 결혼이 가능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인 아버지가 자신의 딸과 결혼도 가능한 것이 가족혼이다.
그러나 그 경우 아들을 너무 좋아하던 딸이라면 그 어머니를 죽이고서라도 다시 그 아들이며 오빠와 결혼이 가능하다.
이런 경우에는 가까운 혈족들 중 가장 큰 어른(나이가 많은 사람)의 결정이 있으면 그걸로 다 해결된다.
그렇게 '가족혼'으로 이어진 왜구의 끈질김에 백제의 혈족은 거의 천년에 가까운 기나긴 전쟁에서 패퇴하면서 완전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가족혼이라는 것이 백제의 후손들에게도 침투되며 백제의 혈들은 흐려져갔을것이다.
즉, 현재 일본이 자랑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문화란 것이 원래 백제의 것을 왜구들이 자기것으로 둔갑시킨것일뿐이다.
일본이 고유의 의상인 '기모노'도 원래 '백제'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무녀'들과 '신관'들이 입던 '제례의복'이 그 모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완벽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872년부터 시작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아니 왜구 역사조작가들의 획책에 의해 역사조작은 시작되었고
1945년 일본이 항복하는 시점까지 그들 왜구역사학자들에 의해 조작되어지고 변질되어버린 역사임을 또한 알지만, 그들 왜구역사학자들의 거의 80년 가까운 세월에 걸친 조작으로 현재의 그 누구도 이런 사실을 아예 없던 사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않음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도 거의가 다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일본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형편이 현실이다.
또한 안타까운점은 백제 혈족의 마지막이라 보는 북조씨(北條氏)의 몰락이다.
임진왜란 전가지 존재하던 일본의 남북전쟁(?)의 역사는 가히 관심이 간다.
지금도 일본에는 그 '북조씨(北條氏)'의 자락이 남아있지만, 과연 그들이 백제의 혈족인지 아니면 그들과 대립하던 '족리씨(足利氏)'가 백제의 혈족인지는 분명치가 않다는 점이다. 이 또한 '왜구역사학자'들의 조작된 힘에 근거한다.
이 글을 쓰는데 있어 일본말을 배제한 이유는 '왜구들에 의해 조작되고 변질된 현재의 일본말'은 아예 그 '존재 자체로써 의미가 없음'이라 보기에 굳이 이렇게 우리말로 썼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러면 과연 백제의 혈족은 이어졌을까?
그들은 어디에 있는것일까?
완전한 왜구의 역사에 흡수되었음이리라...
이는 참으로 아쉽고도 아쉬운 역사의 한 부분일것이다.
음...이 글에 딴지를 거는 분도 있으리라.
그리고 물론 우리나라 에도 '가족혼'보다는 조금 강도가 덜하긴 하지만, '씨족혼'이라는 것은 있었다. '씨족혼' 혹은 '혈족혼'이라 하여 8촌이내의 혈족끼리 결혼하는 풍습이 또한 존재는 했었지만, 그 시기는 우리가 아는 삼국시대가 끝나는 시점에서 거의 사라지고 통일신라 후반부터는 없어지게 된것으로 안다.
물론 그 끝자락이 조선조 중엽까지도 보이는 예는 있긴 하다.
이에 대한 연구도 있는 실정이다.
결국 우리가 아는 현재의 일본문화나 모든 일본에 관한것은 그들 백제의 것들이 '왜구역사학자'들에 의해 교묘히 변질되고 조작된것이리라.
만약 누군가 참으로 큰 힘-UN사무총장 반 기문님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분이 또 다시 대한민국에 태어난다면 세계의 외교력을 발휘해서 '일본황실 비밀서고'를 탐색하면 이 의문들은 족히 풀리리라 본다.
일본의 천황조차도 그 있는 위치조차 모르는 "일본비밀 황실서고"
아마도 그 "덕천가"라 불리는 "정통왜구"의 혈족들은 알고 있으리라 본다.
어쩌면 지금의 오끼나와 토착민들 중 한 부류이리라는 짐작은 된다.
이 부분은 너무도 왜구역사학자들의 철저함으로 감추어져 있어 알기 어렵다.
지금 이 글은 쓰는 이유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역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분들의 그동안의 성과를 토대를 나름 참고하여 썼으며 아울러 다시 한 번 정확한 역사의 해석에 힘쓰시는 그 분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작은 개인이 적는 마음의 글이다.
또 하나 개인적인 마음의 바람이 있다면
비록 가공의 인물이지만 '인디아나 존스'박사같은 역사를 제대로 밝히는 사람이 하루 속히 대한민국에도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