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죽음은 ‘608일 사랑’의 끝이 아닌 출발이었다. 지난 1일 위암으로 요절한 영화배우 장진영(37)씨. 그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 연인 김영균(43·사진)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암이 그들을 갈라 놓았지만 그들은 ‘부부의 연’이란 사랑의 결실로 운명에 맞섰다.
장씨와 순애보로 대한민국을 촉촉이 적시고 있는 김씨가 5일 중앙SUNDAY와 단독으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의 차남인 그는 서울 경성고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김씨는 그동안 언론과 인터뷰를 고사해 왔다. 그러나 기자가 “많은 이가 두 사람의 사랑에 감동받고 있다”고 설득하자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는 기자와 고등학교 동창이다.
“지난해 1월 진영이랑 처음 만났을 때 내가 42세, 진영이가 36세였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운명적인 사람을 찾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일생에 있어 그런 사람이 한두 명 정도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랑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고 기다려 왔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야.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하며 있을 텐데 다만 못 찾을 뿐이지. 그러다 보니 운명적인 사랑을 찾지 못하고 결혼을 해 버려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많은 것 아닌가 생각해. 다행스럽게도 나는 42세에 그런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어.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보긴 그때가 처음이었어. 운명적인 ‘내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고.”
그러나 교제한 지 9개월 만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장씨가 암이란 진단이 나왔다. 김씨는 1년여의 투병 생활 내내 장씨의 곁을 지켰다. 그러곤 지난 7월 2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결혼한 이유에 대해 김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진영이의 병이 결코 나아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가 아니면 면사포를 씌워 줄 수 없었어. 결혼을 선물로 주고 싶었지.”
이미 연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던 김씨. 그래서 결혼을 마지막 선물로 주려 했으나 장씨는 자신이 그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 줄 몰랐다. 김씨가 장씨의 희망을 깰 수는 없었다. 김씨는 “오래전부터 너와 부부의 연을 맺는 게 나의 소원이었고 이제는 네가 답해 줄래”라는 말로 청혼했다. 장씨는 연인의 ‘소원’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결혼은 김씨에겐 소원이었고, 장씨에겐 ‘선물’이었다. 결혼식을 올린 뒤에도 장진영의 병세는 점점 나빠졌다. 귀국 후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김씨는 밤을 새워 가며 장씨의 병실을 지켰다. 기도도 수없이 했다고 한다.
“정말 기도 많이 했거든? 진영이만 살려 주면 나랑 안 살아도 좋다, 다른 사람이랑 사는 걸 봐도 좋고, 인연 끊어져도 좋다. 다만 진영이가 살 수 있게만 해 달라고….”
김씨는 장씨가 사망하기 나흘 전 혼인신고를 마쳤다. 법적으로도 두 사람은 완전한 부부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자신의 혼인신고를 세인이 곱지 않게 보는 것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단지 장씨와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인터뷰 도중 김씨는 여러 차례 눈물을 삼키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깊은 회한의 말을 되뇌었다.
(故장진영씨)기도할게.. 살기만 하면 헤어져도 좋아
그들에게 죽음은 ‘608일 사랑’의 끝이 아닌 출발이었다. 지난 1일 위암으로 요절한 영화배우 장진영(37)씨. 그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 연인 김영균(43·사진)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암이 그들을 갈라 놓았지만 그들은 ‘부부의 연’이란 사랑의 결실로 운명에 맞섰다.
장씨와 순애보로 대한민국을 촉촉이 적시고 있는 김씨가 5일 중앙SUNDAY와 단독으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의 차남인 그는 서울 경성고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김씨는 그동안 언론과 인터뷰를 고사해 왔다. 그러나 기자가 “많은 이가 두 사람의 사랑에 감동받고 있다”고 설득하자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는 기자와 고등학교 동창이다.
“지난해 1월 진영이랑 처음 만났을 때 내가 42세, 진영이가 36세였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운명적인 사람을 찾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일생에 있어 그런 사람이 한두 명 정도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랑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고 기다려 왔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야.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하며 있을 텐데 다만 못 찾을 뿐이지. 그러다 보니 운명적인 사랑을 찾지 못하고 결혼을 해 버려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많은 것 아닌가 생각해. 다행스럽게도 나는 42세에 그런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어.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보긴 그때가 처음이었어. 운명적인 ‘내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고.”
그러나 교제한 지 9개월 만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장씨가 암이란 진단이 나왔다. 김씨는 1년여의 투병 생활 내내 장씨의 곁을 지켰다. 그러곤 지난 7월 2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결혼한 이유에 대해 김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진영이의 병이 결코 나아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가 아니면 면사포를 씌워 줄 수 없었어. 결혼을 선물로 주고 싶었지.”
이미 연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던 김씨. 그래서 결혼을 마지막 선물로 주려 했으나 장씨는 자신이 그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 줄 몰랐다. 김씨가 장씨의 희망을 깰 수는 없었다. 김씨는 “오래전부터 너와 부부의 연을 맺는 게 나의 소원이었고 이제는 네가 답해 줄래”라는 말로 청혼했다. 장씨는 연인의 ‘소원’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결혼은 김씨에겐 소원이었고, 장씨에겐 ‘선물’이었다. 결혼식을 올린 뒤에도 장진영의 병세는 점점 나빠졌다. 귀국 후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김씨는 밤을 새워 가며 장씨의 병실을 지켰다. 기도도 수없이 했다고 한다.
“정말 기도 많이 했거든? 진영이만 살려 주면 나랑 안 살아도 좋다, 다른 사람이랑 사는 걸 봐도 좋고, 인연 끊어져도 좋다. 다만 진영이가 살 수 있게만 해 달라고….”
김씨는 장씨가 사망하기 나흘 전 혼인신고를 마쳤다. 법적으로도 두 사람은 완전한 부부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자신의 혼인신고를 세인이 곱지 않게 보는 것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단지 장씨와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인터뷰 도중 김씨는 여러 차례 눈물을 삼키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깊은 회한의 말을 되뇌었다.
“내 정성이 부족해서였겠지. 내 기도가 모자라서였겠지….”
강민석 기자
출처 중앙일보 / /
감동적이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