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환 일행이 조폭들을 따라 차를 구하러 간 사이, 남은 일행인 재복-서영 커플과 태완, 그리고 꼬맹이 나라와 나영은 편의점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특히 큰 상처를 입은 뒤인 재복은 그 누구보다도 휴식이 필요한 상태였다. 태완과 재복의 여자친구인 서영은 삐뚤빼뚤 흉하게 봉합된 재복이의 팔을 보며 안심 반 걱정 반인 얼굴로 재복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나영의 옆에 앉아, 먼발치서 안색이 창백해진 재복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라가 나영에게 물었다.
태완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옆에 내팽겨쳐놓았던 배낭을 직 끌어당긴 뒤 기다랗게 둘둘 말린 무언가를 꺼냈다. 진환의 집에서 농성중이었을 때 구호물자로 내려온 박스 안에 들어있던 수도권에서 휴전선까지를 아우르는 지도였다.
"뭐.. 차이는 없네. 굳이 책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을까.."
"자, 여기 물."
"고마워."
태완이 양 손에 지도와 책을 각각 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서영이 재복에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순간 열린 채 벌어져있는 태완의 배낭에서 또 하나의 작은 지도가 굴러나오자 재복은 물을 마시려다 말고 그것을 집어들었다. 역시 구호물자에 섞여 있었던 연합군의 남진계획도였다.
"..빨리 좀 쳐 내려오지 뭔 한달이나 시간을 끄는거야.."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역시 다친 사람 입장으로선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도 그럴것이 나라가 멀쩡한 상태였으면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재복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치지 않은 팔로 남진계획도를 들고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계획도의 기본적인 모습은 일반 전국지도와 비슷했다. 그러나 군데군데 사태의 밀집지역으로 예상되는 부근이 확대되어 있고, 날짜에 따른 진군정도가 붉은 선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 확실히 군 목적으로 쓰이는 지도다 라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가 대문을 열고 나오며 소리를 치기가 무섭게, 몸을 숙이고 애꾸의 몸을 먹고 있던 리스너가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내빼었다. 나는 그가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쇠로 만들어진 좁은 대문을 가리고 있는 돌벽이 리스너가 휘두른 손톱의 속도를 줄여줘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까가강
이어서 놈이 다른 손으로 휘두른 손톱은 철 대문을 가르고 들어가 한순간 굉장한 양의 불꽃을 만들어내었다. 조폭은 기겁을 하며 계단 위로 마구 뛰어올라가며 소리쳤다.
"이.. 이게 뭐야! 야 너네들! 좀 도와줘!"
소리지르면 죽어요 라고 소리쳐 알려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카하악!"
리스너는 잠깐 동작을 멈추고 소리를 감지하는 듯 했다. 지금이 살아날 수 있는 기회지만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으.. 으으! 너희들 뭐하는거야! 그 놈 뒤에 서 있으면서.."
"께아아아악!"
그의 목소리를 감지한 리스너는 손톱을 늘어뜨리고 그에게 달려올라갔다. 실로 엄청난 속도였다. 늘어뜨린 손톱이 벽에 갈리며 까가가각 하는 괴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와아악!"
생각할 겨를도 없었는지, 그는 소리를 지르며 계단의 난간을 넘어 아래로 뛰어내렸다. 리스너는 그대로 계단을 박차고 나가 허공에 손톱을 마구 휘두르더니 건물 너머로 떨어졌다.
잠깐 리스너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기가 무섭게 수정형이 헉 하고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때다! 빨리! 차로 가 빨리 빨리!"
"아.. 네!"
"씨바.. 죽는 줄 알았네."
대문 근처에 서 있던 수정형과 윤호는 바로 차 쪽으로 뛰어갔다. 수정형이 받은 열쇠는 꾸러미가 아니라 단지 한 개의 키. 덕분에 여타 공포영화 등에서 주인공들을 피말리게 하던 열쇠꾸러미를 뒤지는 상황 같은 것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형이 번개같은 속도로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시동을 거는데 대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쿨럭.. 사.. 살려줘! 같이 가!"
윤호는 이미 차 문을 열고 들어간 상태. 나는 트렁크 쪽으로 다가가다 그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급한 김에 잊어버렸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물론 방금 리스너를 피해 뛰어내린 조폭. 나는 곧바로 달려나가려 했으나 그가 재복이를 짓밟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순간적으로 발을 멈추었다.
그는 급하게 뛰어내려 어딘가가 잘못되었는지 대문 안 쪽에서 엎드린 채 힘겹게 일어서고 있었다. 저 사람을 구해야 하나? 근데 구한다고 우리와 같이 있게 해 줄것도 아닌데, 어떻게..
"신발! 좀 도와.. 콜록! 도와달라.."
푸칵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대문 안 쪽 어두운 곳에서 올라온 손톱에 배가 꿰뚫렸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담을 넘어온 리스너가 그의 등에 손톱을 꽂아넣은 것이다.
"컥.. 커거.."
그는 천천히 고개를 틀어 뒤를 쳐다보려 했다. 그런데 다시 한번 퍼걱 하는 소리가 나며 그의 배를 뚫고 또다른 손톱이 올라왔다. 다른 쪽 손의 손톱을 박아넣은 모양이었다.
"꺼어어.. 개.. 가튼.. 신발.. 꿀럭.."
촤하하아악
"욱!"
꼭 홀린 것 처럼 리스너의 학살을 쳐다보고 있던 나는 다음 장면을 보고 한순간 뇌가 들썩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돌렸다.
배를 찢었어!
리스너는 등 쪽에서 박아넣은 두 손을 양 옆으로 벌리며 그의 하반신을 두 갈래로 찢어버렸고, 동시에 조폭의 명치 아래쪽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와 함께 동앗줄 더미 같은 장기들이 주루루룩 쏟아져나왔다. 하반신에 입은 상처로는 즉사하지 않는 인간의 빌어먹을 신체구조 때문에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을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며 눈을 까뒤집고 혀를 빼물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까오오오오오!!"
마치 '내가 잡았다!' 라고 외치는 듯 한, 리스너의 이상한 괴성. 놈의 아래에는 하반신이 나누어진 채 상체가 찢어져 폐가 다 드러나 양 팔을 부들부들 떨며 죽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조폭이 피의 바다에 빠져 달빛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심하게 게워내며 차 쪽으로 달려갔다.
"우웨억.."
나는 다시 한번 토를 쏟아내며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차.. 시동 꺼요. 차.."
"응?"
"차 시동 꺼요, 빨리!"
"응? 아, 알았어."
푸드득
굳이 서로 말을 주고받을 것도 없었다. 지금 차 소리가 나면 리스너가 따라올 것이다 라는 뜻이 내 말과 행동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의 최대목적인 차를 손에 넣었고, 차 안에 있음으로써 우리가 내는 소리가 어느 정도 차단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윤호가 내게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물었다.
"리스너.. 뒤에 있냐."
"응. 돌아와서 그 조폭을.."
"..그럼 지금 차는 못 몰겠네."
윤호는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뒷 창문 쪽으로 고개를 빼고 뒤를 쳐다보았다. 리스너는 아직 대문 안에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놀고 있는건지 우리의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놈의 청력이 얼마나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목소리만 듣고도 그 사람에게 정확하게 다가가 손톱을 꽂아넣는 것으로 봐서 그 청력은 인간의 영역을 훨씬 넘어선다고 해도 될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차 안에 있는 우리라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차를 뺄수도 없다.
떠들지도 못한다.
차 안에 있어야 한다.
제길, 뭘 어쩌라고.
나는 한숨을 폭 내쉬며 몸에서 힘을 뺐다. 조금 정신이 돌아오자 금방 눈앞에서 참혹하게 죽은 조폭의 모습이 떠올랐다. 좀 편하게 있고 싶지만 무서워서 의자도 뒤로 못 눕히겠다.
지금 우리가 급히 출발한다 해도, 놈의 속도는 무시할 만한 속도가 아니다. 게다가 여기서 편의점까지는 차로 이동하면 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다. 놈은 백퍼센트 따라올 것이다. 그렇다고 큰 길 쪽으로 나가 빙빙 돌면서 놈을 따돌린다 한들, 다른 좀비들에게 쫓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리스너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사냥을 멈추지만, 다른 놈들은 일단 기척이 느껴지면 끝장을 보고 마니.. 오히려 더 위험하다.
[루카] (좀비물) 살기위해 뛰어라! (27)The Listener
연재물 끝~~ 까지 올립니다~ ㅋㅋ
또 연재되면 올리겠습니당~ 그럼 뿅 ! ㅋㅋㅋ
출처 : 웃대 ^-^
"괜찮아?"
"으음.. 참을 만 해."
"진환이 야매수술이 니 상처 덧나게나 하면 안 되는데."
진환 일행이 조폭들을 따라 차를 구하러 간 사이, 남은 일행인 재복-서영 커플과 태완, 그리고 꼬맹이 나라와 나영은 편의점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특히 큰 상처를 입은 뒤인 재복은 그 누구보다도 휴식이 필요한 상태였다. 태완과 재복의 여자친구인 서영은 삐뚤빼뚤 흉하게 봉합된 재복이의 팔을 보며 안심 반 걱정 반인 얼굴로 재복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나영의 옆에 앉아, 먼발치서 안색이 창백해진 재복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라가 나영에게 물었다.
"아까 아저씨들은 누구야..? 왜 다들 싸워?"
"으응, 아무 것도 아니야."
"저 오빠는? 팔 아프겠다.."
"괜찮아, 나라야. 괜찮을 거야."
나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침입자들과의 사투가 있었을 때, 어린 나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일행들의 뒤에서 보호받은 채 겁에 질려 떨고만 있었을 뿐. 폭풍같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라에게 남은 것은 그저 불안한 마음 뿐이었다.
친절한 동료들과 이 지옥같은 곳을 헤쳐나가며, 적은 그저 좀비들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나영에게도 방금 전 일어난 일은 너무도 황당했고 당황스러웠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도와야 할 상황에서 서로를 물어뜯다니.. 인간은 이리도 더러운 생물이었던가?
"자기야, 뭐 먹고 싶은거 없어?"
괜찮다는 말을 연발하고는 있지만 딱 보기에도 매우 힘겨워보이는 자기 남자친구를 앞에 두고도 맘이 편할 여자는 없다. 서영은 재복이가 당장 베이징 카오야가 먹고 싶다고 해도 구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얼굴로 재복이를 쳐다보며 그의 이마를 쓸어올려주었다.
재복은 숨을 짧게 몰아쉬며 잠깐 땅을 쳐다보고 있다가 서영에게 말했다.
"괜찮아.. 물이나 좀 갖다줄래."
"물? 알았어."
서영은 재복의 말을 듣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달려갔다. 저편에서 벌컥 하며 냉장고의 문의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재복이 옆에 앉아서 지도책을 읽고 있는 태완에게 물었다.
"진환이랑 윤호랑.. 다들 잘 하고 있을까."
"잘 할거야. 수정형도 갔으니까 뭐. 차 구하면 뒤로는 시간문제지."
태완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옆에 내팽겨쳐놓았던 배낭을 직 끌어당긴 뒤 기다랗게 둘둘 말린 무언가를 꺼냈다. 진환의 집에서 농성중이었을 때 구호물자로 내려온 박스 안에 들어있던 수도권에서 휴전선까지를 아우르는 지도였다.
"뭐.. 차이는 없네. 굳이 책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을까.."
"자, 여기 물."
"고마워."
태완이 양 손에 지도와 책을 각각 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서영이 재복에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순간 열린 채 벌어져있는 태완의 배낭에서 또 하나의 작은 지도가 굴러나오자 재복은 물을 마시려다 말고 그것을 집어들었다. 역시 구호물자에 섞여 있었던 연합군의 남진계획도였다.
"..빨리 좀 쳐 내려오지 뭔 한달이나 시간을 끄는거야.."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역시 다친 사람 입장으로선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도 그럴것이 나라가 멀쩡한 상태였으면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재복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치지 않은 팔로 남진계획도를 들고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계획도의 기본적인 모습은 일반 전국지도와 비슷했다. 그러나 군데군데 사태의 밀집지역으로 예상되는 부근이 확대되어 있고, 날짜에 따른 진군정도가 붉은 선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 확실히 군 목적으로 쓰이는 지도다 라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재복은 지도를 땅에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붉은 선들을 죽 그어 내리며 날짜를 확인했다.
"9월 25일.. 중부제압.."
재복이 가리키고 있는 붉은 선은 서울특별시의 아래쪽에 간신히 걸쳐져 있었고, 그 끝에는 9/25 라는 숫자가 쓰여져 있었다. 물론 그건 날짜를 가리키는 숫자였다. 그 선의 밑으로는 붉은 색의 화살표가 세 개, 남쪽을 향하는 방향으로 그려져 있었다.
지도는 화살표와 선의 연속이었다. 선들은 보통 한 개의 도 간격으로 나 있었고, 예상기간은 보통 1주 반 정도씩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제주도는.. 포함되어 있지 않나?"
재복의 혼잣말대로, 제주도까지는 진군 예상도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진군은 인천 즈음에서부터 시작해, 서울특별시 아래를 제압한 뒤엔 서해쪽에서도 진군을 시작,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진군양상은 부채꼴을 이루어 마지막엔 부산으로 몰아치는 양상을 띄고 있었다.
"아직도 한참 남았지, 응."
태완은 자기가 보던 지도를 옆에 내려두고 재복의 어깨너머로 진군예상도를 바라보며 한 마디를 던졌다. 재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진군예상도를 접어내렸다. 순간 다친 팔이 시큰거리는 걸 느끼며 재복은 이를 악물었다.
"재복아.. 팔은 괜찮아?"
서영이 물병의 뚜껑을 따고 재복에게 권하고 있을 무렵 나영이 나라를 이끌고 다가와 물었다. 재복은 한 손으로 물병을 받아들고 조금씩 물을 마시며 말했다.
"네.. 꼬매고 나니까 벌어진 데가 가려져서 조금 덜 아픈 것 같기도 해요. 더 아픈 것 같기도 하고. 하하."
"난 그거 못 기다려."
"응?"
서영이가 한 마디를 던지자 태완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그녀는 지도를 가리키며 외쳤다.
"이거 말야! 빨리빨리 내려오지 왜 그런데? 우리 자기 팔 이상해지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진환이랑 얘들은 또 왜 안와?"
"그러게."
재복은 다친 팔을 살짝 감싸쥐며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뭐 잘못 된 건 아니겠지?"
----------------------------------------------------------------------------------------------------
쩝쩝 쩝 쩝-
후륵 후르륵
놈은 흡사 사마귀가 사냥감을 머리부터 씹어먹는 것 처럼, 애꾸의 몸뚱이 중 목이 사라진 쪽에 흉칙한 머리를 들이대고 마구 씹어먹으며- 가끔은 뭔가를 후루룩 빨아 삼키며 식사를 즐기고 있다.
눈 앞에서 정신없이 만찬을 즐기고 있는 최강의 변형좀비, 리스너.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잔혹한 장면을 감상하고 있었다.
"..."
인간은 무언가를 '모르기' 때문에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내가 만약 지금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이 놈에 대해선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단지 놈은 청력에 의지해 움직이고, 군부대 하나를 상대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 밖에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숨도 쉬지 말고 죽은듯이 있는 것.
"무슨 소리야? 이게.. 어.. 어? 이게 뭐야!"
순간 우리가 지키고 있던 정적을 무색하게 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아까 계단춤에서 윤호와 함께 나의 구출 때문에 다투었던 조폭이었다. 대문 안에 있었던 채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저 괴물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쿠하가가가!"
그가 대문을 열고 나오며 소리를 치기가 무섭게, 몸을 숙이고 애꾸의 몸을 먹고 있던 리스너가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내빼었다. 나는 그가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쇠로 만들어진 좁은 대문을 가리고 있는 돌벽이 리스너가 휘두른 손톱의 속도를 줄여줘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까가강
이어서 놈이 다른 손으로 휘두른 손톱은 철 대문을 가르고 들어가 한순간 굉장한 양의 불꽃을 만들어내었다. 조폭은 기겁을 하며 계단 위로 마구 뛰어올라가며 소리쳤다.
"이.. 이게 뭐야! 야 너네들! 좀 도와줘!"
소리지르면 죽어요 라고 소리쳐 알려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카하악!"
리스너는 잠깐 동작을 멈추고 소리를 감지하는 듯 했다. 지금이 살아날 수 있는 기회지만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으.. 으으! 너희들 뭐하는거야! 그 놈 뒤에 서 있으면서.."
"께아아아악!"
그의 목소리를 감지한 리스너는 손톱을 늘어뜨리고 그에게 달려올라갔다. 실로 엄청난 속도였다. 늘어뜨린 손톱이 벽에 갈리며 까가가각 하는 괴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와아악!"
생각할 겨를도 없었는지, 그는 소리를 지르며 계단의 난간을 넘어 아래로 뛰어내렸다. 리스너는 그대로 계단을 박차고 나가 허공에 손톱을 마구 휘두르더니 건물 너머로 떨어졌다.
잠깐 리스너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기가 무섭게 수정형이 헉 하고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때다! 빨리! 차로 가 빨리 빨리!"
"아.. 네!"
"씨바.. 죽는 줄 알았네."
대문 근처에 서 있던 수정형과 윤호는 바로 차 쪽으로 뛰어갔다. 수정형이 받은 열쇠는 꾸러미가 아니라 단지 한 개의 키. 덕분에 여타 공포영화 등에서 주인공들을 피말리게 하던 열쇠꾸러미를 뒤지는 상황 같은 것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형이 번개같은 속도로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시동을 거는데 대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쿨럭.. 사.. 살려줘! 같이 가!"
윤호는 이미 차 문을 열고 들어간 상태. 나는 트렁크 쪽으로 다가가다 그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급한 김에 잊어버렸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물론 방금 리스너를 피해 뛰어내린 조폭. 나는 곧바로 달려나가려 했으나 그가 재복이를 짓밟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순간적으로 발을 멈추었다.
그는 급하게 뛰어내려 어딘가가 잘못되었는지 대문 안 쪽에서 엎드린 채 힘겹게 일어서고 있었다. 저 사람을 구해야 하나? 근데 구한다고 우리와 같이 있게 해 줄것도 아닌데, 어떻게..
"신발! 좀 도와.. 콜록! 도와달라.."
푸칵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대문 안 쪽 어두운 곳에서 올라온 손톱에 배가 꿰뚫렸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담을 넘어온 리스너가 그의 등에 손톱을 꽂아넣은 것이다.
"컥.. 커거.."
그는 천천히 고개를 틀어 뒤를 쳐다보려 했다. 그런데 다시 한번 퍼걱 하는 소리가 나며 그의 배를 뚫고 또다른 손톱이 올라왔다. 다른 쪽 손의 손톱을 박아넣은 모양이었다.
"꺼어어.. 개.. 가튼.. 신발.. 꿀럭.."
촤하하아악
"욱!"
꼭 홀린 것 처럼 리스너의 학살을 쳐다보고 있던 나는 다음 장면을 보고 한순간 뇌가 들썩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돌렸다.
배를 찢었어!
리스너는 등 쪽에서 박아넣은 두 손을 양 옆으로 벌리며 그의 하반신을 두 갈래로 찢어버렸고, 동시에 조폭의 명치 아래쪽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와 함께 동앗줄 더미 같은 장기들이 주루루룩 쏟아져나왔다. 하반신에 입은 상처로는 즉사하지 않는 인간의 빌어먹을 신체구조 때문에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을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며 눈을 까뒤집고 혀를 빼물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까오오오오오!!"
마치 '내가 잡았다!' 라고 외치는 듯 한, 리스너의 이상한 괴성. 놈의 아래에는 하반신이 나누어진 채 상체가 찢어져 폐가 다 드러나 양 팔을 부들부들 떨며 죽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조폭이 피의 바다에 빠져 달빛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심하게 게워내며 차 쪽으로 달려갔다.
"우웨억.."
나는 다시 한번 토를 쏟아내며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차.. 시동 꺼요. 차.."
"응?"
"차 시동 꺼요, 빨리!"
"응? 아, 알았어."
푸드득
굳이 서로 말을 주고받을 것도 없었다. 지금 차 소리가 나면 리스너가 따라올 것이다 라는 뜻이 내 말과 행동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의 최대목적인 차를 손에 넣었고, 차 안에 있음으로써 우리가 내는 소리가 어느 정도 차단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윤호가 내게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물었다.
"리스너.. 뒤에 있냐."
"응. 돌아와서 그 조폭을.."
"..그럼 지금 차는 못 몰겠네."
윤호는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뒷 창문 쪽으로 고개를 빼고 뒤를 쳐다보았다. 리스너는 아직 대문 안에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놀고 있는건지 우리의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놈의 청력이 얼마나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목소리만 듣고도 그 사람에게 정확하게 다가가 손톱을 꽂아넣는 것으로 봐서 그 청력은 인간의 영역을 훨씬 넘어선다고 해도 될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차 안에 있는 우리라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차를 뺄수도 없다.
떠들지도 못한다.
차 안에 있어야 한다.
제길, 뭘 어쩌라고.
나는 한숨을 폭 내쉬며 몸에서 힘을 뺐다. 조금 정신이 돌아오자 금방 눈앞에서 참혹하게 죽은 조폭의 모습이 떠올랐다. 좀 편하게 있고 싶지만 무서워서 의자도 뒤로 못 눕히겠다.
지금 우리가 급히 출발한다 해도, 놈의 속도는 무시할 만한 속도가 아니다. 게다가 여기서 편의점까지는 차로 이동하면 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다. 놈은 백퍼센트 따라올 것이다. 그렇다고 큰 길 쪽으로 나가 빙빙 돌면서 놈을 따돌린다 한들, 다른 좀비들에게 쫓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리스너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사냥을 멈추지만, 다른 놈들은 일단 기척이 느껴지면 끝장을 보고 마니.. 오히려 더 위험하다.
그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나.
우리는 차 안에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쥐죽은 듯이 시트에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1분 1초가 너무도 길게 느껴진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막막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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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위해 뛰어라>
1ȭ : http://pann.nate.com/b200004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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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ȭ : http://pann.nate.com/b200008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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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ȭ : http://pann.nate.com/b200012362
9ȭ : http://pann.nate.com/b200012371
10ȭ : http://pann.nate.com/b200012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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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ȭ : http://pann.nate.com/b200028797
22ȭ : http://pann.nate.com/b200028807
23ȭ : http://pann.nate.com/b200039615
24ȭ : http://pann.nate.com/b200071103
25ȭ : http://pann.nate.com/b200125372
26ȭ : http://pann.nate.com/b200175716
외전 - 1화 : http://pann.nate.com/b200012428
외전 - 2화 : http://pann.nate.com/b200015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