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잘못을 지금껏 살면서 쉼 없이 했겠지요? 그리고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반성을 했을겁니다. 그래서 용서를 받았을겁니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습니까? 진심인지 아닌지 본인 외에 알 길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본인 자신의 마음 외에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가 없는 거 맞겠지요? 나는 진심이라고 하는데 상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는데도 상대가 진심이 아니라고 하면 내 마음은 진심이 아니게 됩니까? 여러분은 살면서 수많은 기회를 기다립니다. 그 중 우리는 잘못을 했을 경우 죄값을 치루더라도 용서 받을 기회를 원합니다. 누구든 실수와 잘못을 범하기 때문이지요. 태어나서 1살때 철든 사람 봤습니까? 어쨌든 잘못을 범한 사람에게 다신 그러지 않음을 약속 받고 용서의 기회를 줍니다. 본인이 한번이라도 잘못해서 남에게 용서를 구걸 하던 때를 생각한다면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그 때를 생각해서 용서와 기회를 줘야 합니다. 상대방이 미안하다고 하는데도 매몰차게 구는 사람은 혹여 자신이 잘못을 하거들랑 상대방에게 용서따위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의 다음엔 분노와 비난이 있으나 그 것으로 끝나선 안되고 용서와 화해로 끝나야 합니다. 분명 좋게 끝내서 더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반목, 불화, 미움, 시기, 싸움, 대립, 매도 등을 일삼는 것은 본인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끝이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돌고 돌아 악순환이 될 뿐입니다. '악'을 '악'으로 대하면 '악'으로 돌아옵니다. 중국의 무술 영화를 본적 있으시지요? 어디서부터 시작인지는 모르나 자신의 가문을 쳐부순 원수에게 복수를 하러 상대방을 죽입니다. 그럼 그 상대방의 아들이 또 다시 복수를 하고 그럼 그 원수의 상대방의 아들의 아들이 다시 복수를 하고.. 이렇게 '복수'가 '복수'를 낳듯이 '악'은 '악'을 낳을 뿐입니다. "쟤가 나한테 xx한 짓 했으니까 yy할 꺼야." "쟤가 yy한 짓 했으니까 난 그럼 zz할거야." 이렇게 될 뿐입니다. 주위를 보십시요. 항상 웃으면서 상대를 용서하고 배려해주는 사람에게 친구가 많습니까 아니면 툭하면 남을 미워하고 시기해서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에게 친구가 많습니까? 친구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라도 어느 쪽이 더 좋습니까? 상대방이 사과를 하면 믿어주고 용서를 해줍시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누구든 죄없는 자가 나와서 돌로 쳐라." 이때는 모두들 양심은 있는지 그 누구도 치지 못했습니다만 요즘엔 얼굴이 안보이니 돌이 아니라 바위를 던질거 같군요. 잘못을 덜함과 더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법의 제재를 받는 것들은 기준이 있어 정해져 있습니다만 법의 제재는 받지 않으나 도덕의 규범 안에 있는 잘못들의 덜함과 더함의 기준이 있습니까? 본인의 잘못이 상대방이 한 잘못보다 작다고 생각합니까? 그래서 본인은 용서 받아도 되는데 상대방은 받으면 안된다는 겁니까? 그건 본인의 기준이지요. 그럼 누구의 기준을 따라야 합니까? 없습니다. 누구 하나도 정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이 무엇이관대 그 사람의 기준에 따라 세상 만사 모든 사람의 잘못의 덜함과 더함이 정해져야 합니까? 그러할진대 잘잘못의 크기를 따질 생각일랑 마시고 넓은 마음으로 용서를 베풀길 바랍니다. 최근 연예인들이 도마 위에 올라 난도질을 당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써 봅니다.
여러분 한 번 잘~ 생각 해 봅시다.
여러분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잘못을
지금껏 살면서 쉼 없이 했겠지요?
그리고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반성을 했을겁니다.
그래서 용서를 받았을겁니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습니까?
진심인지 아닌지 본인 외에 알 길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본인 자신의 마음 외에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가 없는 거 맞겠지요?
나는 진심이라고 하는데
상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는데도 상대가 진심이 아니라고 하면
내 마음은 진심이 아니게 됩니까?
여러분은 살면서 수많은 기회를 기다립니다.
그 중 우리는 잘못을 했을 경우
죄값을 치루더라도 용서 받을 기회를 원합니다.
누구든 실수와 잘못을 범하기 때문이지요.
태어나서 1살때 철든 사람 봤습니까?
어쨌든 잘못을 범한 사람에게 다신 그러지 않음을 약속 받고
용서의 기회를 줍니다.
본인이 한번이라도 잘못해서 남에게 용서를 구걸 하던 때를
생각한다면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그 때를 생각해서 용서와 기회를 줘야 합니다.
상대방이 미안하다고 하는데도
매몰차게 구는 사람은
혹여 자신이 잘못을 하거들랑 상대방에게 용서따위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의 다음엔 분노와 비난이 있으나
그 것으로 끝나선 안되고 용서와 화해로 끝나야 합니다.
분명 좋게 끝내서 더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반목, 불화, 미움, 시기, 싸움, 대립, 매도 등을 일삼는 것은
본인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끝이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돌고 돌아 악순환이 될 뿐입니다.
'악'을 '악'으로 대하면 '악'으로 돌아옵니다.
중국의 무술 영화를 본적 있으시지요?
어디서부터 시작인지는 모르나 자신의 가문을 쳐부순 원수에게
복수를 하러 상대방을 죽입니다.
그럼 그 상대방의 아들이 또 다시 복수를 하고
그럼 그 원수의 상대방의 아들의 아들이 다시 복수를 하고..
이렇게 '복수'가 '복수'를 낳듯이 '악'은 '악'을 낳을 뿐입니다.
"쟤가 나한테 xx한 짓 했으니까 yy할 꺼야."
"쟤가 yy한 짓 했으니까 난 그럼 zz할거야."
이렇게 될 뿐입니다.
주위를 보십시요.
항상 웃으면서 상대를 용서하고 배려해주는 사람에게
친구가 많습니까
아니면 툭하면 남을 미워하고 시기해서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에게 친구가 많습니까?
친구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라도 어느 쪽이 더 좋습니까?
상대방이 사과를 하면
믿어주고 용서를 해줍시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누구든 죄없는 자가 나와서 돌로 쳐라."
이때는 모두들 양심은 있는지
그 누구도 치지 못했습니다만
요즘엔 얼굴이 안보이니 돌이 아니라 바위를 던질거 같군요.
잘못을 덜함과 더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법의 제재를 받는 것들은 기준이 있어 정해져 있습니다만
법의 제재는 받지 않으나 도덕의 규범 안에 있는
잘못들의 덜함과 더함의 기준이 있습니까?
본인의 잘못이 상대방이 한 잘못보다 작다고 생각합니까?
그래서 본인은 용서 받아도 되는데
상대방은 받으면 안된다는 겁니까?
그건 본인의 기준이지요.
그럼 누구의 기준을 따라야 합니까?
없습니다. 누구 하나도 정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이 무엇이관대 그 사람의 기준에 따라
세상 만사 모든 사람의 잘못의 덜함과 더함이 정해져야 합니까?
그러할진대 잘잘못의 크기를 따질 생각일랑 마시고
넓은 마음으로 용서를 베풀길 바랍니다.
최근 연예인들이 도마 위에 올라 난도질을 당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