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메이슨 수장

살리에르2009.09.07
조회1,226

카사노바는 남자를 지칭할까요?

춘향이는 여자를 지칭할까요?

 

어떨까요?

 

춘향이와 카사노바 - 내가 반한 인간 (1)


일편단심 요조숙녀 춘향이가 하필이면
천하제일 바람둥이 카사노바를 만나서
결혼을 하네 마네, 이혼을 하네 마네...
지지고 볶았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네...

뭐, 이런 내용을 기대하고,
제목 보고 클릭하셨다면,
당신은 대략 낚이신 겁니다. ㅡㅡ^


나름대로 선정적인 '한글 제목'으로 정했습니다만,
충분히 선정적인 지는 모르겠습니다. ㅡ.ㅡ

대부분 이런 경우 그렇듯이,
선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재미는 없고
읽기엔 딥따리 길기도 하거니와 피곤한 내용일 겁니다.
미리 자수하고 광명 찾을랍니다. 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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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건 불행하건,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재산이다.
삶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살 자격이 없다.
'삶'보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것은
그만큼 치욕이 삶을 시들게 하기 때문이다."

- G. G. Casanova


정절과 지조의 상징인 춘향이를 아십니까?
그리고,
바람둥이의 대명사 카사노바를 아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춘향이와 이태리의 카사노바의 공통점(?)을 아시겠습니까?

춘향이보다는 황진이나, 특히 어을우동이 적격 아니겠냐고요?
글쎄요,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 중
'증말 지대로' 알고 있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고 했던가...

저 먼 옛날의 장자(莊子)나,
저 멀리 물 건너 데카르트(Rene Descartes), 그리고
가까이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이미
오래 전에 여기에 대해 한두 마디씩 언급한 바 있지만,
이들을 들먹거리며 현학적으로 떠들어대느니,
춘향이와 카사노바만으로도
지금까지의 '이해'가 '오해'였음이,
적어도,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와 네트웍으로 대표되는 시대를 살면서
감각적 이미지만 중시하다 보면
외양이나 현상만 보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너무나도 진부해서 적어놓고 보는 것이
오히려 진기하게 여겨질 말일지라도
다시 한번 되새기자면,
껍데기만 보지 말고 본질을,
나무만 보지 말고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런 혜안(慧眼, insight)과 더불어
자신을 지극히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냉정한 여유도...



오늘 이 글의 주인공
카사노바(Giovanni G. Casanova 1725∼1798)...


그를, 아니 그의 이미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카사노바를
그저 "굴(oyster)이나 까먹던 바람둥이였다"고만 말하는 것은
헤밍웨이가
그저 "큐바에서 물고기나 잡던 낚시꾼일 뿐이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상갈의 기사(騎士)>를 참칭(僭稱)하였던
카사노바는 시인이었다.
학자였고, 저술가였다.
여행가였고, 주술가였다.
범죄자이기도 했다.
물론, 다들 아는 대로,
바람둥이기'도' 했다.


카사노바는
어려서부터 천재로 인정받을 만큼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수 천 편의 시를 외우고 있었고,
자기가 번역한 책의 원본도 모두 외우고 있었다.


카사노바는
저술가였다.

공상적인 소설 <이코사메론(1788)>을 저술했고,

--- 음, 짐작컨대 제목만으로 보자면,
같은 이태리 출신인 선배? 선조? 격인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패러디한 것 같음 ;
이태리어로 deca=10, icosa=20 이니까...
근데 카사노바의 <이코사메론>을 직접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그저 추측일 뿐임. 쩝 ---

그 외에도 산문을 비롯해서 방대한 양의 저작을 남겼고,
번역도 했다.
2,000여 편의 시를 썼고,
당시의 저명한 학자, 작가 등과도 직접 만나 토론하곤 했다.
프랑스의 최고 지성이라는 볼테르와도 3일간 토론을 벌였고,
J.J.루소 등과도 교류가 있었다.


카사노바는
여행가이자 방랑자였다.

보헤미아의 둑스성에서 발드슈타인 백작 집의 사서(司書)로서 죽을 때까지
50여 년에 걸쳐 출생지인 베네치아와 로마, 나폴리, 파리를 중심으로
콘스탄티노플, 빈, 런던, 페테르부르크, 마드리드, 모스크바까지
전 유럽을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다.


카사노바는
해군장교였고,
직업 노름꾼이었고,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해군장교로 대위였으며,
군복을 벗은 후에는 직업 노름꾼이 되었고,
도박을 하다가 홀라당 말아먹고는
카페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극장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되었다.
(그럼, 카사노바는 '카마에'??? ㅡ.ㅡ;)


카사노바는
주치의였다.

바이올린 연주자 시절,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베니스 상원의원이 쓰러졌다.
카사노바는 상원의원을 들처메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
의사가 처방을 하는데 그게 카사노바가 보기에는 엉터리였다.
카사노바가 직접 치료를 하여 상원의원은 회복이 되었다.
그래서 카사노바는 상원의원의 주치의가 되었다.


카사노바는
주술가였다.

카사노바의 카발(cabbala) 점은 유명했다.
어느 시골 귀족 처녀에게
"너는 프랑스 왕의 애첩이 된다."고 예언을 했고
그것이 실제 실현되기도 했다.
그의 점술을 받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카사노바는 상원의원의 양자가 될 수 있었다.


카사노바는
사기꾼이었다.

납과 창연(蒼鉛, bismuth)으로 혼합해서 수은의 양을 늘려서 팔아 먹곤 했다.
베네치아 피옴비 감옥에서 탈옥한 이후 수배자가 된 다음에도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각각 추방 명령을 받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도 투옥된 적이 있었다.
베네치아에서 탈옥해서 도망갈 때,
빈털털이로 떠돌아야 했을 때,
항상 사기를 쳐서 살아갈 수 있었다.
돈 많고 나이 든 귀부인을 등쳐서 몇십만 프랑을 챙기기도 했다.


카사노바는
사교계의 명사였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도시에 가더라도,
한 달 이내에 그곳의 사교계에 얼굴을 내밀었고,
사교계에서는 언제나 인기인으로서 부활을 했다.
많은 곳에서 카사노바는 미움을 받고 추방되고 투옥되기는 했어도,
또 다른 곳에서는 카사노바를 환영하고 접대했다.
군주, 귀족, 귀부인으로부터
문인, 자연과학자, 화가, 광대, 사기꾼, 방탕자, 하녀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사람과 사귀었고,
빈틈이 없는 재치와 삼갈 줄 모르는 언행, 그리고
폭넓은 교양을 무기로 자유방만한 생애를 보냈다.


카사노바는
재주꾼이었다.

카사노바가 어느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호텔 소믈리에(sommelier)로 변신해서 여자들의 호텔방에 들어갔다.
나중에 카사노바의 변장이었다는 것을 들은 여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닭고기도 솜씨있게 자르고, 접시도 재빠르게 바꾸어 주고...
아주 경력이 오래 된 소믈리에임에 틀림 없다."
카사노바는 소믈리에 노릇마저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다.


카사노바는
신비주의자였다.

프리메이슨 회원이었고, 프리메이슨 최고 책임자까지 올라갔다.


카사노바는
완벽주의자였다.

카사노바는 65세부터 회고록 집필을 시작했는데,
10년이 걸려서도 다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 10년간 50살까지의 인생밖에 서술하지 못하고 자서전을 미완으로 끝냈다.

카사노바는 언제, 누구와, 어디서 만나서, 어떤 대화를 했는지,
어디서 먹은 음식의 종류는 무엇이고 가짓수가 몇 가지였는지까지
모조리 서술하고 있다.
그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자기 인생의 모든 세세한 점을 다 적었으니,
10년동안 저술했어도 50세까지 밖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프랑스어로 쓰여진 카사노바 회상록(원제: <내 생애의 역사>)은
무려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카사노바 사후 160여 년이 지난 1960년에야 비로소 완본되었고,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이야드 총서에 속해 있다.
(플레이야드 총서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작가들의 전집이다.)

카사노바 회상록은
18세기 유럽 사회의 풍속과 생활상을 너무나도 자세히 묘사한
중요한 기록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카사노바는
바람둥이였다.

어떤 여자가 이 매력적인 남자를 내버려두겠으며 또 마다하랴.


그 다양한 인간의 면모,
한 가지 시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그 다재다능함,
그리고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 그 삶의 깊이.

그렇기에 내게는 카사노바가 이상적인 인간 모델 중 하나로 보여진다,
닮고 싶은... ㅡㅡㅋ
특히 몇 가지 '아주 사소한 단점'은 더 더욱 부럽... ㅡ.ㅡ;;;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인간을 연구하는 일이 제게는 가장 즐겁습니다."
- G. G. Casanova



뱀발 :

아무리 타이틀을 선정적으로 달았다고는 하지만,
전혀 없는 내용을 갖다 붙일 수는 없는 법.

'대체 제목의 춘향이는 어디 간겨? 왜 갖다 붙인겨?' 하고
궁금해 할 당신을 위해,
그리고 서두에서 언급한 춘향이와 카사노바의 공통점(?)에 대한
대답으로 덧붙입니다.


연전 어느 일간지에서 저 역시 우연히 보고는
제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고 스스로 쩍 팔렸던 이야기입니다.


"춘향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춘향이가 당대의 '욕쟁이'였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것은 <춘향전>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 Conundrum
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 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