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은돌이2009.09.20
조회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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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앙의 지평에서

"의심하는 것"의 반대의 개념은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다.

 

신앙을 하다보면 신앙하는 대상과 바른 신앙법

그리고 신앙인 스스로에게 의심을 가질 때가 참 많이 있다.

물론 의심을 해결하는 과정속에서

신앙인들을 우려하여 그들에게 요구되는 과업들이 있지만

 의심하는 것 자체는 나쁜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의심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2

의심은 진리에 대한 경외심의 한 표현이다.

진리에 대해 질문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진리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두려움을

부분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당당하게 믿어라. 랍벨. 홍종락역. 두란노. 참조하라)

 

물론 그렇다고 의심을 전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심 같이 의심하지 않는 상태는 의심

하는 상태보다 진일보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물위를  걷다가

풍랑을 보고 빠진 베드로처럼, 광야의 모세처럼

의심하는것이 바로 연약한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만들어져 가는 중에 있다.

이런 과정중에 의심이라는 것은 하나님편에서도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또한 바른 신자인가 하는것은

그가 심중에 어떠한 질문을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그 질문을 해결하는가를 보고 판별 할 수 있다.

질문에도 바른 질문과 그릇된 질문

생산적인 질문과 소비적인 질문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신앙의 암흑기였던 중세에 유행했던 질문 중

"하나님이 과연 들지 못하는 돌을 만들수 있는가"라는 것이 있었다.

이런 궤변적인 질문은 소비적 질문의 대표적인 예이다.

 

신앙에 대한 탐구심으로 인해 우리가 의심을 하게 되었다면

때론 골치아프지만 그러한 의심을 해결해가는 과정중에 있다면

우리는 신앙의 재도약을 희망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 자신의 끝없는 교제이자, 의무이자 권리이다.

 

가령, 존재하는 하나님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진정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의 사랑은 과연 어떤 것인가?  등의 질문은

성숙한 신앙인으로써 깊이 생각하기에 좋은 것들이다.

 

 

#4

의심은 적어도 두 가지의 바른 신앙의 경향성을 내포한다.

 

첫째는 불만족적인 경향이다. 의심자는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의심 자체에 도약을 향한 의지를 표현한다.

이는 성숙의 경향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의심자는 반드시 탐구심을 동반한다.

진리에 대한 끝없는 의심은 피조물로써

우리가 진리를 대하는 바른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둘째는 불완전적인 경향이다.

앞서 말했듯이 의심자는 무한한 진리 앞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겸손의 경향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5

진리는 그 정도와 특징에 있어서

인간에게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다.

그렇다면 진리에 대해 전혀 의심을 가지지 않는 자는

진리에 대한 탐구심이 없거나

진리를 국소적으로 이해하는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이다.

바울(행24:10v, 26:1v)과 어거스틴의 말처럼 변론하면서 복음을 명정하게하고

의심하는 가운데서 서로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구약의 선지자들로부터 이어오던 방식이다(사1:18v).

 

하나님에 대해, 말씀에 대해, 의심을 갖는 것은

사실 필연적인 것이다. 성경의 믿음의 선친들도

하나님께 끝없는 회의를 품고 의심했다.

심지어는 예수님도 그랬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여기에서 태클이 들어오면 곤란하다.

예수님의 회의는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주님의 회의는 교육적 측면의 회의이다.)

 

모두 그런 과정 가운데 빚어져가고

그러면서 연약한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6

언제나 중요한 것은 경향이다.

기어서라도 주님을 향하고 전진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연약한 피조물로써

영원하시고 무궁하시며 지혜와 명철이 한이없으신

세상의 유일한 창조자를 대하는 예의바른 태도이다.

 

신앙의 지평에서

"의심하는 것"의 반대의 개념은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행17:27v

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