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M 재범의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4년.힘든 시간을 겪고 4년만에 불꽃처럼 빛을 내다한순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 2PM재범.최근 박진영의 인터뷰를 빌리자면, 재범군은 과거에는 실제로 불량스럽고 삐딱한 아이였다.한국을 우습게보고 동료연습생을 우습게 보고, 회사 직원들을 우습게 보고, 심지어 자신까지도 우습게 보는 아이였다.그리고 연예인이라는 직업자체도 우습게 보는 것 같았으며 비보이를 훨씬 더 하고 싶어하는 그런 재범군이었다. 그런 삐딱한 재범군이 2PM의 리더가 되기까지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었다.삐딱하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중요시하고삐딱하지만, 감정에 충실하고삐딱하지만, 연습생 시절의 춤에 대한 열정은 그를 일찌감치 2pm의 멤버로 그리고 리더로 키우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재범군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애틋하다.그에게 있어서 사람은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가족과 가족이 아닌 사람으로...가끔 방소에 나와서 자신이 돈을 벌고 있는 이유를 물어오면멋진옷 좋은 차보다는 자신에게 소중한 가족을 위함이라고 말을 할 정도다. 가족이라는 순수함으로 가득차 있는 여린 마음을 어찌보면 춤으로 거칠게 표현하고, 강하게 보이기 위해 자신을 그렇게 포장했는지도 모른다. 재범군의 시애틀에 살던 시절 얘기를 해볼까 한다. 재범군의 집은 시애틀 근교에 있는 에드몬드라는 바닷가 근처의 전형적인 중산층 동네다.주차장은 5~10년된 차만 즐비하고, 집은 지은지가 40년이 넘었지만, 재범군이 태어날때부터 20여년을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재범군이 살았던 집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부유하지 않았다. 시애틀에 처음 왔을때, 재범군의 아버지가 재범군에게 음악공부를 할 수 있게 피아노를 사준다고 신문을 뒤적거리다 어떤 집에가서15년 이상된 야마하 전자피아노를 200달러 주고 샀다고 자랑하면서 끙끙거리고 가져왔다. 그런 피아노를 가지고 음악을 시작했던 재범군이었다. 그렇게 재범군은 음악을 좋아하고, 비보이에 열광하는 소년으로 자라났다. JYP연습생 입문.시애틀을 떠나 한국에서 모질게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고행과 좌절을 맛보며 몇 번이고 다시 시애틀에 돌아오려고 했다가도 마음을 고쳐먹고 계속 연습만 하면서 쌓아올린 투쟁의 시간이었다. 그가 연습생 시절 썻던 일기내용이다. 05.6.22나 한국에서 살고 싶어, 그냥 한 아이로써 한국에서 말야. 1년정도 여기에 살면서 어떤지 보고 싶어. 하지만 워싱턴에 돌아가고 싶어... 당장근데 한국에 1년정도 살고도 싶어. 난 10년간 일하면서 JYP와 함께 할 수 있지... 난 돈은 신경 안 쓸거야.명예도 .. 팬들... 그리고 뭐 그런 것들... 내가 목표로 하는게 아닌... 내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게 아닌 것들 말이야.하지만 내가 미국으로 돌아가면 내 삶은 더 힘들어 질거야.너도 알지... 가족과 나를 지탱해주는 친구들이 함께 해준다면 멋지겠지만, 나는 검정고시를 보고 전문대에 진학하고, 일반대학교로 편입.. 너무 힘들것 같아. 모르겠어... 한국을 떠난 것을 후회하게 될까? 아니면 여기에 머무른ㄷ고 할 때, 여기에 머물른 것을 후회하게 될까? 인생은 말로 표현하기엔 참 거시기해.. 05.6.30나 8년 계약을 하게 될 것 같아. 힘들겠지... 하지만 난 버터야 할 거야. 고난을 이겨내면 결국 성장하겠지.. 시간 지나면 순항하겠지. 예예...누가 돌아왔게 내가 왔다 다시 돌아왔다.7월2일 11시 40분 워싱턴에 정확히 도착한 시간이야... 보자 내가 네달동안 치열하게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 이거야. 힘들어도 이겨내고 성장하자... 근데 2월에 투덜거린건 기사화 하고 이런 내용은 있는지도 몰랐지? 기자들아 제발 직접 조사해서 기사좀 써... 재범군이 정상을 가도를 달리고 있을 지난 8월,부모님이 살고 있는 시애틀로 휴가를 갔다.말썽을 피우는 동생녀석에게 화가나 울며 꾸짖었던 말은 "나도 너처럼 친구들이랑 놀고싶고, 맥주도 마시고 싶고 그런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줄 아니? 엄마, 아빠, 그리고 너 호강시켜줄려고 그러는건데. 왜 이렇게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해" 였다. 가족을 그만큼이나 아꼈던 재범굼이었다. 까칠했던그리고 세상물정 몰랐던 어리기만했던 소년이었다. 박진영의 눈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처럼 투박하게만 보였던 재범군이연습생시절을 거치면서 얼굴 잘생겨서 뽑혔다고 놀리는 동료들을 껴안기 시작하고,회사 사람들과도 사적인 얘기를 주고 받으며, 자신의 일에 더 빠져드는 모습을 보며 2pm의 멤버로 그리고 2pm의 리더로 결정을 한다. 승승가도를 달렸던 지난 1년.아니, 1년도 아니다. 4년이라는 질기고도 긴 연습생 시절을 끝내고 세상에 나와 화려한 불꽃처럼 타올랐던 짧은 순간이불과 4일만에 그를 부모님이 있는 시애틀로 이끌게 했다. 87년생 올해나이 23살.어리다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그의 마지막모습일지도 모르는 지난번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가던 뒷 못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재범군이 떠나면서 박진영씨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메일 내용이라고 한다. I've been a little punk in the past. i just want to let you know it was a lifechanging experience. it made me much better, much stronger person andI'm thankful for everything you have done for me, real talk (예전에 저는 무척 버릇없는 아이였죠? 미안해요. 형때문에 삶에 대한 생각이많이 바뀌었어요. 전 예전보다 나은 사람이됫고, 또 강해졌어요. 그동안 날위해진심으로 해준것 정말 고마워요.) 8
2PM 재범의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4년.
2PM 재범의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4년.
힘든 시간을 겪고 4년만에 불꽃처럼 빛을 내다
한순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
2PM재범.
최근 박진영의 인터뷰를 빌리자면, 재범군은 과거에는 실제로 불량스럽고 삐딱한 아이였다.
한국을 우습게보고 동료연습생을 우습게 보고, 회사 직원들을 우습게 보고, 심지어 자신까지도 우습게 보는 아이였다.
그리고 연예인이라는 직업자체도 우습게 보는 것 같았으며 비보이를 훨씬 더 하고 싶어하는 그런 재범군이었다.
그런 삐딱한 재범군이 2PM의 리더가 되기까지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었다.
삐딱하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중요시하고
삐딱하지만, 감정에 충실하고
삐딱하지만, 연습생 시절의 춤에 대한 열정은
그를 일찌감치 2pm의 멤버로 그리고 리더로 키우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재범군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애틋하다.
그에게 있어서 사람은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가족과 가족이 아닌 사람으로...
가끔 방소에 나와서 자신이 돈을 벌고 있는 이유를 물어오면
멋진옷 좋은 차보다는 자신에게 소중한 가족을 위함이라고 말을 할 정도다.
가족이라는 순수함으로 가득차 있는 여린 마음을
어찌보면 춤으로 거칠게 표현하고, 강하게 보이기 위해 자신을 그렇게 포장했는지도 모른다.
재범군의 시애틀에 살던 시절 얘기를 해볼까 한다.
재범군의 집은 시애틀 근교에 있는 에드몬드라는 바닷가 근처의 전형적인 중산층 동네다.
주차장은 5~10년된 차만 즐비하고, 집은 지은지가 40년이 넘었지만,
재범군이 태어날때부터 20여년을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재범군이 살았던 집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부유하지 않았다.
시애틀에 처음 왔을때, 재범군의 아버지가 재범군에게 음악공부를 할 수 있게
피아노를 사준다고 신문을 뒤적거리다 어떤 집에가서
15년 이상된 야마하 전자피아노를 200달러 주고 샀다고 자랑하면서 끙끙거리고 가져왔다.
그런 피아노를 가지고 음악을
시작했던 재범군이었다.
그렇게 재범군은 음악을 좋아하고, 비보이에 열광하는 소년으로 자라났다.
JYP연습생 입문.
시애틀을 떠나 한국에서 모질게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고행과 좌절을 맛보며 몇 번이고 다시 시애틀에 돌아오려고 했다가도
마음을 고쳐먹고 계속 연습만 하면서 쌓아올린 투쟁의 시간이었다.
그가 연습생 시절 썻던 일기내용이다.
05.6.22
나 한국에서 살고 싶어, 그냥 한 아이로써 한국에서 말야. 1년정도 여기에 살면서 어떤지 보고 싶어.
하지만 워싱턴에 돌아가고 싶어... 당장
근데 한국에 1년정도 살고도 싶어. 난 10년간 일하면서 JYP와 함께 할 수 있지...
난 돈은 신경 안 쓸거야.
명예도 .. 팬들... 그리고 뭐 그런 것들... 내가 목표로 하는게 아닌...
내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게 아닌 것들 말이야.
하지만 내가 미국으로 돌아가면 내 삶은 더 힘들어 질거야.
너도 알지... 가족과 나를 지탱해주는 친구들이 함께 해준다면 멋지겠지만,
나는 검정고시를 보고 전문대에 진학하고, 일반대학교로 편입.. 너무
힘들것 같아. 모르겠어...
한국을 떠난 것을 후회하게 될까? 아니면 여기에 머무른ㄷ고 할 때,
여기에 머물른 것을 후회하게 될까?
인생은 말로 표현하기엔 참 거시기해..
05.6.30
나 8년 계약을 하게 될 것 같아. 힘들겠지... 하지만 난 버터야 할 거야.
고난을 이겨내면 결국 성장하겠지.. 시간 지나면 순항하겠지. 예예...
누가 돌아왔게 내가 왔다 다시 돌아왔다.
7월2일 11시 40분 워싱턴에 정확히 도착한 시간이야... 보자
내가 네달동안 치열하게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 이거야. 힘들어도 이겨내고 성장하자...
근데 2월에 투덜거린건 기사화 하고 이런 내용은
있는지도 몰랐지? 기자들아 제발 직접 조사해서 기사좀 써...
재범군이 정상을 가도를 달리고 있을 지난 8월,
부모님이 살고 있는 시애틀로 휴가를 갔다.
말썽을 피우는 동생녀석에게 화가나 울며 꾸짖었던 말은
"나도 너처럼 친구들이랑 놀고싶고, 맥주도 마시고 싶고 그런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줄 아니?
엄마, 아빠, 그리고 너 호강시켜줄려고 그러는건데. 왜 이렇게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해"
였다.
가족을 그만큼이나 아꼈던 재범굼이었다.
까칠했던
그리고 세상물정 몰랐던
어리기만했던 소년이었다.
박진영의 눈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처럼 투박하게만 보였던 재범군이
연습생시절을 거치면서 얼굴 잘생겨서 뽑혔다고 놀리는 동료들을 껴안기 시작하고,
회사 사람들과도 사적인 얘기를 주고 받으며, 자신의 일에 더 빠져드는 모습을 보며
2pm의 멤버로
그리고 2pm의 리더로 결정을 한다.
승승가도를 달렸던 지난 1년.
아니, 1년도 아니다.
4년이라는 질기고도 긴 연습생 시절을 끝내고 세상에 나와 화려한 불꽃처럼 타올랐던 짧은 순간이
불과 4일만에 그를 부모님이 있는 시애틀로 이끌게 했다.
87년생 올해나이 23살.
어리다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의 마지막모습일지도 모르는 지난번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가던 뒷 못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재범군이 떠나면서 박진영씨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메일 내용이라고 한다.
I've been a little punk in the past. i just want to let you know it was a life
changing experience. it made me much better, much stronger person and
I'm thankful for everything you have done for me, real talk
(예전에 저는 무척 버릇없는 아이였죠? 미안해요. 형때문에 삶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전 예전보다 나은 사람이됫고, 또 강해졌어요. 그동안 날위해
진심으로 해준것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