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저는 가난하지만 꿈을 잃지않는 고교 새내기입니다.제가 어렸을 적 저희 아버지께서는 사업을 하셨고,저희 어머니께서는 제가 유치원 다닐 때 부터저희 먹여살리고 아버지 밑천을 마련하시러 이리저리 돈을 구하곤 하셨고그것도 모잘라 한살배기 저희 어린 동생을 등에업고인천에서 부터 시흥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오가며친척분 식당에서 일자리를 구하여 허드렛일을 하셨습니다.그러던 어느날 IMF가 터졌습니다.저희 아버지께선 사업이 부도가 나셔서우리 가족은 살던 집을 접고제가 유치원을 졸업하자마자어머니께선 우리라도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교육을 시키셔야 한다며서울로 없는돈 마련해서 이사를 갔습니다.12평정도 되는 월세집을 마련햇는데 우리 4인 가족이 거기서 생활하였고아버지께선 직장을 다니셨고어머니께선 친척이 하던 문구점을 매달 얼마씩 주는 조건으로 운영하시며저희 뒷바라지 하시고 꼬박꼬박 교회에 헌금도내시며우리에게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꼭 도와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커왔습니다.(그래서 제가 지금 RCY활동으로 어려우신 어르신들 매주 주말 찾아뵙니다.)어른들에게도 맨날 인사를 하던 활기찬 아이로 생활하였습니다.문구점을 운영하실 때 우리어머니는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셨습니다.아버지께선 또다시 없는돈 잇는돈 구하러다니시며 사업을 다시시작하셨고문구점엔 도둑질을 하는 아이들도 들끓어 더더욱 힘들게 살았지만어머니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 혼내시지않고 아량을 베푸셨습니다.어머니는 도시락 반찬을 싸오시면 우리에게 꼭 맛난 반찬을 주셨고어머니는 홀로 서계시며 문구점에서 김치와 밥을 쭉 드셨습니다.(그래서 항상 어머니께선 입안이 헐어있엇나봐요.)제가 철이없어 그땐 반찬투정을 하곤 했지요.5학년이되니 저희아버지 사업도 이제 슬슬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고우리가족이 모두모여 외식이란것을 1달에 10번정도 다니곤했습니다.'이젠 우리 아파트에 사는거네!'저는 이런생각을 지니며 동네방네 자랑하고다녔죠.그치만 오래가진 못했습니다.5학년말 또다시 사업은 기울어지고 아파트는 이상향이 되었고어머니와 아버지는 계속 신용불량자이시며 빚독촉에 시달리셨습니다.그래도 저는 우리가족 언젠가 크게 성공할것이라고 믿던 저는 맨날 교회에서기도를 꼬박꼬박 하곤했어요.시간이지나 6학년이 되고담임선생님에게 첫날부터 찍혓다 라는걸 당햇죠.어머니께서 문구점 주인이라고.다른애들은 다 잘살고 변호사 이런분이셨거든요.그리고 그때 사춘기가 오자 저는 고스란히 상처로 남게되어성격이 소심해지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였습니다.그렇게 상처를 입고 졸업을 하였고중1이 되었을 때 빚독촉을 참지못하고친척의 도움을 받아 평택으로 내려와 20평남짓 되는 아파트에 전새를 내고 살았습니다.아파트에 사는게 저는 행복했었어요.아버지는 다시 직장과 사업을 반복하셨고돈을 버시게되어 대출을 다시받으시고30평넘는 큰집으로 전셋집을 마련하여 이사를 갔습니다.저는 중3생활을 마치고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입학식 전날 아버지와 찍은 사진, 시계, 디지털카메라이세가지를 받은 기억이후로 아버지와의 연락은 끊기게 되었고또다시 빚청구서가 날라왔습니다.아... 집이 또 사라지는 구나드라마에서 나오던거 우리집에서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더군요.어머니는 끝내 우셨습니다.아버지께서 도박에 손을 대셨고 친척들의 돈에도 손을 대셔서 그렇게 되었더라구요또 가스비 수도세 관리비 심지어 학원비 1년치가 밀렸고, 엄마 퇴직금에도 손대셨습니다.친척들에게 집문서가 넘어가고우리는 가구한번 새걸로 바꾸지못하고 혼수때 구입한 장농과우리 책상과 책꽂이 와 100만원이라는 돈으로 방을 구하며쫒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빚쟁이도 우리가 불쌍햇나봐요.집에서 쫒겨나기전에 가구를 가져가지도 않앗거든요.저 고등학교되서 꿋꿋하게 공부했습니다.'나 할수잇다 나 뭐든 할거다 나 .. 성공해서 우리가족 다시 뭉치게할것이고내가 기자가 되어 우리어머니 팔자도 펴드리고 내 꿈도 꼭 이룰 것이다.'친척들이 등을 돌립니다.저희가족 이제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습니다.저는 그대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가며공부를 하였고 끝내상위권의 성적을 도약하며 상위권들의 반에 들어 갔습니다.문제집 하나 살까말까.. 이런고민 한두번 해본적이 아닙니다.방학이 되었습니다.부끄럽지만 팬티 5장이 1달만에 구멍이나 너덜너덜해질정도로엉덩이에 치질이랑 변비가 생길정도로남들 놀러가지만 난 성공할 것이라고 하며 공부에 매진했습니다.근데 노력의 결과는 처참했습니다.지금 중간고사를 앞두고모의고사에서도 즐길때 즐기면서 과외다니고 학원다니는 애들저보다 훨씬 공부를 잘하고 쉽게 이해하더군요.'와...부럽다 쉽게이해하네 하지만 난 어렵게 공부한만큼 보람은내가 더 느낄꺼야'이런 생각 수백번 했습니다.학교에서도 문제를 푸는데 도무지 풀리질 않는거에요.아이들에게 뒤지지 않고 내꿈을 이룰려면우리가족 만날려면 이방법밖에없는데왜뜻대로 안되는지요.상위반친구들이 저를 보면 이럽니다.공부 열심히 노력해도 나보다 못하는 병신이라고넌 아예 공부 하지 않는게 낫다고 맨날 욕하는데요..저 그냥 웃어넘깁니다.속으로 울고싶은데 울지못하겠어요...슬럼프라지만...저 언제까지 아니 우리가족 언제까지 무너져야지다시 일어 설 수 있는거에요?저 이런상황에서 이겨내고 싶어요.세상이 공평하다고들 하지요..그치만 이건 아니잖아요...우리엄마 18년이라는 세월 힘들게 보내셨는데...우리가족 1년에 모여서 밥먹는것도 손으로 셀정도로 적었는데...활기차게 생활해도 마음하나 터놓고 믿을 사람 없는데...나 꼭 성공하고 싶어요그럴 확신이 생기는데....너무 너무... 힘드네요선생님 몇분은 사정을 대충 아시지만 저는 가난하다는걸 부끄러워하진 않지만말하긴 싫어요 그러면 동정을 받게되서 그것에 기댈꺼 뻔하니깐.나혼자서 이겨내고싶은데...어디 조언해주실분 없나요.?저 어떻하죠.?어머니께서 지금 하지정맥류에 걸리셔서 편찮으신데이글 보시면 더속상해하셔서 힘드실까봐조심히 글을 올리네요
노력해도 가난은 가난인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가난하지만 꿈을 잃지않는 고교 새내기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 저희 아버지께서는 사업을 하셨고,
저희 어머니께서는 제가 유치원 다닐 때 부터
저희 먹여살리고 아버지 밑천을 마련하시러 이리저리 돈을 구하곤 하셨고
그것도 모잘라 한살배기 저희 어린 동생을 등에업고
인천에서 부터 시흥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오가며
친척분 식당에서 일자리를 구하여 허드렛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IMF가 터졌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선 사업이 부도가 나셔서
우리 가족은 살던 집을 접고
제가 유치원을 졸업하자마자
어머니께선 우리라도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교육을 시키셔야 한다며
서울로 없는돈 마련해서 이사를 갔습니다.
12평정도 되는 월세집을 마련햇는데 우리 4인 가족이 거기서 생활하였고
아버지께선 직장을 다니셨고
어머니께선 친척이 하던 문구점을 매달 얼마씩 주는 조건으로 운영하시며
저희 뒷바라지 하시고 꼬박꼬박 교회에 헌금도내시며
우리에게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꼭 도와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커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RCY활동으로 어려우신 어르신들 매주 주말 찾아뵙니다.)
어른들에게도 맨날 인사를 하던 활기찬 아이로 생활하였습니다.
문구점을 운영하실 때 우리어머니는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셨습니다.
아버지께선 또다시 없는돈 잇는돈 구하러다니시며 사업을 다시시작하셨고
문구점엔 도둑질을 하는 아이들도 들끓어 더더욱 힘들게 살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 혼내시지않고 아량을 베푸셨습니다.
어머니는 도시락 반찬을 싸오시면 우리에게 꼭 맛난 반찬을 주셨고
어머니는 홀로 서계시며 문구점에서 김치와 밥을 쭉 드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어머니께선 입안이 헐어있엇나봐요.)
제가 철이없어 그땐 반찬투정을 하곤 했지요.
5학년이되니 저희아버지 사업도 이제 슬슬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고
우리가족이 모두모여 외식이란것을 1달에 10번정도 다니곤했습니다.
'이젠 우리 아파트에 사는거네!'
저는 이런생각을 지니며 동네방네 자랑하고다녔죠.
그치만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5학년말 또다시 사업은 기울어지고 아파트는 이상향이 되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계속 신용불량자이시며 빚독촉에 시달리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우리가족 언젠가 크게 성공할것이라고 믿던 저는 맨날 교회에서
기도를 꼬박꼬박 하곤했어요.
시간이지나 6학년이 되고
담임선생님에게 첫날부터 찍혓다 라는걸 당햇죠.
어머니께서 문구점 주인이라고.
다른애들은 다 잘살고 변호사 이런분이셨거든요.
그리고 그때 사춘기가 오자 저는 고스란히 상처로 남게되어
성격이 소심해지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상처를 입고 졸업을 하였고
중1이 되었을 때 빚독촉을 참지못하고
친척의 도움을 받아 평택으로 내려와 20평남짓 되는 아파트에 전새를 내고 살았습니다.
아파트에 사는게 저는 행복했었어요.
아버지는 다시 직장과 사업을 반복하셨고
돈을 버시게되어 대출을 다시받으시고
30평넘는 큰집으로 전셋집을 마련하여 이사를 갔습니다.
저는 중3생활을 마치고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
입학식 전날 아버지와 찍은 사진, 시계, 디지털카메라
이세가지를 받은 기억이후로 아버지와의 연락은 끊기게 되었고
또다시 빚청구서가 날라왔습니다.
아... 집이 또 사라지는 구나
드라마에서 나오던거 우리집에서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더군요.
어머니는 끝내 우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도박에 손을 대셨고 친척들의 돈에도 손을 대셔서 그렇게 되었더라구요
또 가스비 수도세 관리비 심지어 학원비 1년치가 밀렸고, 엄마 퇴직금에도 손대셨습니다.
친척들에게 집문서가 넘어가고
우리는 가구한번 새걸로 바꾸지못하고 혼수때 구입한 장농과
우리 책상과 책꽂이 와 100만원이라는 돈으로 방을 구하며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빚쟁이도 우리가 불쌍햇나봐요.
집에서 쫒겨나기전에 가구를 가져가지도 않앗거든요.
저 고등학교되서 꿋꿋하게 공부했습니다.
'나 할수잇다 나 뭐든 할거다 나 .. 성공해서 우리가족 다시 뭉치게할것이고
내가 기자가 되어 우리어머니 팔자도 펴드리고 내 꿈도 꼭 이룰 것이다.'
친척들이 등을 돌립니다.
저희가족 이제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습니다.
저는 그대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가며
공부를 하였고 끝내
상위권의 성적을 도약하며 상위권들의 반에 들어 갔습니다.
문제집 하나 살까말까.. 이런고민 한두번 해본적이 아닙니다.
방학이 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팬티 5장이 1달만에 구멍이나 너덜너덜해질정도로
엉덩이에 치질이랑 변비가 생길정도로
남들 놀러가지만 난 성공할 것이라고 하며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근데 노력의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지금 중간고사를 앞두고
모의고사에서도 즐길때 즐기면서 과외다니고 학원다니는 애들
저보다 훨씬 공부를 잘하고 쉽게 이해하더군요.
'와...부럽다 쉽게이해하네 하지만 난 어렵게 공부한만큼 보람은
내가 더 느낄꺼야'
이런 생각 수백번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문제를 푸는데 도무지 풀리질 않는거에요.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고 내꿈을 이룰려면
우리가족 만날려면 이방법밖에없는데
왜뜻대로 안되는지요.
상위반친구들이 저를 보면 이럽니다.
공부 열심히 노력해도 나보다 못하는 병신이라고
넌 아예 공부 하지 않는게 낫다고 맨날 욕하는데요..
저 그냥 웃어넘깁니다.
속으로 울고싶은데 울지못하겠어요...
슬럼프라지만...
저 언제까지 아니 우리가족 언제까지 무너져야지
다시 일어 설 수 있는거에요?
저 이런상황에서 이겨내고 싶어요.
세상이 공평하다고들 하지요..
그치만 이건 아니잖아요...
우리엄마 18년이라는 세월 힘들게 보내셨는데...
우리가족 1년에 모여서 밥먹는것도 손으로 셀정도로 적었는데...
활기차게 생활해도 마음하나 터놓고 믿을 사람 없는데...
나 꼭 성공하고 싶어요
그럴 확신이 생기는데....
너무 너무... 힘드네요
선생님 몇분은 사정을 대충 아시지만 저는 가난하다는걸 부끄러워하진 않지만
말하긴 싫어요 그러면 동정을 받게되서 그것에 기댈꺼 뻔하니깐.
나혼자서 이겨내고싶은데...
어디 조언해주실분 없나요.?
저 어떻하죠.?
어머니께서 지금 하지정맥류에 걸리셔서 편찮으신데
이글 보시면 더속상해하셔서 힘드실까봐
조심히 글을 올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