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ing & print

. 200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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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그리듯 잘 못 그리든, 상관없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대개 밑그림을 그리고, 선을 정리하고, 색을 칠하는 순서를 따른다. 유치원생의 주제를 알 수 없는 그림도, 전문가의 데생도, 그리고 유명한 화가의 작품도 그러하다.

밑그림을 통해 구도, 배치, 동작, 상황묘사 등등,

종이 전체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큰 그림도 구상한 것을 밑그림부터 시작해서 구체화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리 생각하고, 직접 그리고, 실수를 경험하고, 완성화한다.

그 과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점점 자신의 생각대로 (꼭 되지는 않을지라도) 뚜렷해져 가는 이미지를 접하면서 뿌듯함도 느끼곤 한다.

이게 그림의 과정이다.

종이 전체를 한번에 보면서, 종이 전체를 점차 완성시켜 간다. 밑그림도 없이 선을 고치고 색을 덧칠하는 과정도 없이 한번의 칠로 완성될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즉각적인 결과물을 출력해내는 데에 익숙하다.

많이 사용하는 A4부터, 건물 벽에 붙여지는 대형 인쇄물까지,

오늘날 대부분의 시각작품은 출력되어진다.

프린트는 빈 종이의 한쪽 끝에서부터 다른쪽 끝까지 한줄씩 완성된 이미지를 한번에 채워 간다.종이 전체를 한번에 보는 눈도, 종이에 뭔가가 그려지는 법은 없다.

물론 그 작업들을 위해 컴퓨터와 포토샵 등과 같은 도구가 사용되고, 가상의 도화지에 여러 이미지들을 배치해보기도 한다.

작업이 그만큼 단순화되고 빨라지고 많아졌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정성이 떨어지고 고뇌와 생각을 덜하게 되었다.

맘에 들지 않으면 금새 조금 바꿔볼 수 있다.

처음부터 새로 그리지 않아도 된다. 단지 이미지를 쉽게 더하거나 삭제하거나 교체하면 된다.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아도 된다.

큰 그림을 그려보는 능력이 필요 없고 과정을 깊이 생각하는 노력도 불필요하다.

그저 포토샵과 같은 tool을 잘 다루기만 해도 당장은 선호된다.

 

요리를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옷을 만드는 것도, 연구를 하거나, 운전 면허를 따거나, 의술과 법을 공부하는 것도,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목적의식을 상실하고 과정과 경험을 등한시하고 단지 즉각적이거나 빠른 결론을 내었을 때, 세상에서는 그것이 잘 팔리고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을지라도,

그 가운데 가장 크게 빠뜨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노력과 열정이 빠지고, 자신의 의견과 생각이 빠지고, 가치관이 빠지고, 결국 자신의 정체성이 그 속에는 없다.

바야흐로 technique와 skill이 계획하고 통찰하고 숙고하는 능력보다 중요시되는 사회이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를 이끌고, trend를 창출하고, 세상을 이끄는 사람은 언제나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세상은 지금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위대한 통찰력을 가진 누군가를 원한다.

 

'달인'이 되지 말고 '장인'이 되라.

잘 닦아진 기술의 이면에는

그만큼의 경험과 노력과 생각과 가치관과 정체성이 충분히 쌓여야 한다.

 

그림을 그려볼 텐가? 남이 만들어둔 tool(어쩌면 '틀')에 갖혀서 프린트 버튼을 누를 텐가?

 

 

출처 http://www.cyworld.com/mcury_old 작성자 이원섭 작성일 2009.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