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어르신

박성건200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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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북에서 오신 할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분은 스무 살 때 이북에서 남쪽으로 피난을 오신 분이셨습니다. 한 세월을 고생하며 피난민이란 외면 속에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시고 군 생활을 마치자마자 북아현동 굴다리에서 3년간 장사를 하며 기반을 잡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처음에는 정말 고생이 많았소. 남들이 피난민~ 피난민~ 하면서 놀리는데, 정말 힘듭디다. 고향을 떠나온 것도 서러움 이였지만, 당시 배운 게 없던 나에겐 그냥 노력하는 게 살 수 있는 길이란 생각뿐이었지..’

‘어르신 정말 고생하셨네요. 그래도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오신 것만으로도 훌륭해 보이십니다.’

 

저의 말에 살며시 웃음 짓는 어르신의 미소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오신 세월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님은 이곳에서 52년을 사신 분이시라고 합니다. 본인 말로는 예수쟁이는 아니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네요. 그 분은 쌀장사로 10억이 넘는 돈을 모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늘 같은 모습이시지요.

 

‘내가 한 때는 100키로가 넘었던 사람이요. 동네에서 씨름장사로도 많이 나갔지. 지금이야. 서오릉 고개 쪽이 포장이 돼 있어서 별 어려움이 없지만, 나 때만해도 작은 달구지 하나가 지날 만큼의 작은 돌길이었소. 그 고개가 얼마나 높았던지. 내가 소를 끌고 갈현동 쪽으로 쌀을 나르는데, 열 가마 이상을 못 싣고 다녔다니까. 정말 고생 많이 했어.’

 

지금은 왕복 8차선 도로가 된 서오릉 쪽 고갯길이 당시에는 작은 돌 길이었다네요. 지금이야 좋은 차도 있고, 길도 좋아져서 많은 차들이 물건을 실어 나르지만, 당시에는 소가 끌지 못할 만큼 험한 곳이었다는 사실이 참 재밌었습니다.

 

‘목사양반, 우리 손녀가 지금 법대생이야. 지금 대학교 2학년이데, 그 녀석 고시원에서 나오지를 않는다는구려. 여기 와도 만날 책만 보니 얼마나 대견한지 몰라.’

 

손녀 자랑을 하시느라 얼굴이 밝으신 어르신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어르신~ 그러니 오래사세요. 앞으로 손녀분이 판사가 되는 것도 보셔야지요.’

‘그래야 할 텐데.. 지금도 다리가 너무 아파. 지금 내 나이가 여든이 넘었소. 이젠 요 앞을 움직이는 것도 힘이 들어...’

‘그래도 어르신 정정해 보이세요.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손녀분이 큰 힘이 될 겁니다. 성경에 보면 100살 넘게 산 사람도 많이 있어요. 므두셀라라는 양반은 900세가 넘게 사셨다네요. 그 분들에 비해선 아직 어르신께선 청춘이시니 조금씩 운동하시면서 건강 챙기시면 손녀 분 판사가 뭡니까? 증손자까지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오래오래 사세요.’

‘허허 고맙구려. 목사님께서 그리 이야기해 주시니. 내가 아주 오래 살 것 같아. 목사양반도 바쁘실 텐데. 가끔씩 와서 늙은이한테  재밌는 외국사람 이야기도 해주시고 고맙소. 그런데 참 그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

 

 

 

 

 

작은 구멍가게를 하셔서 어렵게만 사시는 줄만 알았는데, 참 훌륭한 삶을 살아오신 할아버님이셨습니다.

작은 부분이지만, 하나님의 복음이 어른신의 삶을 더욱 더 평안케 하시길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