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전 쌍둥이 아들을 둔 싱글녀입니다. 일본인 남편과의 결혼.언어부터 문화 그 외의 벽들을 감당하기엔 저는 너무 약했었나 봅니다.소중한 아이들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전 남편과 이혼했습니다. 타국에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게 쉽지많은 않았고,하루가 멀다하고 언어 공부에 스트레스는 쌓이고,그 옆에서 힘이 되어주길 바란 남편은 하루가 멀다하고 일에만 집중.친구 한명 없이 스스로 집에 틀어박혀 나다닐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결국 우울증이 왔습니다.그 와중에 생긴 우리 아이들. 당시에는 아이들 키울 자신도 없었고, 나 하나 감당 못하는데 아이들은 무슨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지울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임신을 하고부터 그 증상들은 더욱 심해졌고,남편 또한 그런 저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는지 이렇게 살아 뭐하냐고.아이들 가진 저에게 이혼하자는 말을 밥먹듯이 했어요. 친정 부모님 가슴에 피멍들게하고 한 결혼인데,부모님께 차마 하소연도 못하고 혼자 속만 태웠습니다.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도 그 생활엔 변함이 없었습니다.오히려 더 지옥같았다고 해야될까. 생각지도 않았던 쌍둥이들.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치이고, 퇴근하는 남편과 또 말다툼.아이들 또한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에서 제가 제대로 돌봐주지를 못했습니다.그렇게 어영부영 5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집에서 밥 차리고 청소기 돌리고, 빨래하고.그냥 그게 내 하루 생활이다 라는 생각뿐이였습니다. 밖으로 나가 걸어다니면 모두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잇는 느낌이 들었고,혼자 하루종일 집안에 박혀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어디에다 도움을 받는 것 조차도 포기했다고 해야되나. 그러다 하루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엄마를 봐도 본체만체, 선생님께서 오히려 무안해 하실 정도로아이들은 그냥 절 뒤로하고 자기들끼리 걸어갔습니다.그 모습을 보고있는데 어찌나 슬프고, 화도 나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그리고 집에 와 아이들에게 왜 엄마를 무시하고 갔냐고 물어보니다른 엄마들은 맨날 집에서 간식 해주고, 맨날 놀아주고 하는데엄마는 안그러니까 자기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할 말이 없어 챙피하다는 것이였습니다.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남편과 정리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일본어를 살려서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아이들을 거의 하루종일 어린이집에 맡겨놔야 했던 상황이였지만아이들에게 못줬던 사랑 많이 주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고,아이들도 차차 웃음을 찾아가고 밝은 모습으로 변해가는게 눈에 보였습니다. 아이들 일본어 안 잊어버리게 책이며, 비디오도 보여준 탓인지유치원가서 친구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주며 잘 논다는 선생님의 말에아이들이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이렇게 기쁜 행복을 왜 이제서야 안건지..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뒀던건지..후회가 드는 만큼 아이들에게 배로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틈틈히 기관 도움 받으면서 양육 방법들도 배우고 있고,심리적인 치료와 약물치료도 병행하면서 차차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일본에선 폭력적인 성격에 아이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고 합니다.아이들 또한 기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어가는 상태라고 합니다.엄마나 윗 어른들에게도 버릇없이 행동하고, 너 라고 부르는 등.하나씩 배워가고 고쳐나가고 있습니다.제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너무 가슴이 아팠지만,하루가 다르게 커가며 반듯해져가는 아이들을 보며 한편으론 또 가슴이 놓입니다. 변함없이 이렇게만 쭉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없는데로.그저 행복하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입니다.앞으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우리 예쁜 쌍둥이들 많이 격려해주세요.8
전 싱글맘입니다.
안녕하세요.
전 쌍둥이 아들을 둔 싱글녀입니다.
일본인 남편과의 결혼.
언어부터 문화 그 외의 벽들을 감당하기엔
저는 너무 약했었나 봅니다.
소중한 아이들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전 남편과 이혼했습니다.
타국에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게 쉽지많은 않았고,
하루가 멀다하고 언어 공부에 스트레스는 쌓이고,
그 옆에서 힘이 되어주길 바란 남편은 하루가 멀다하고 일에만 집중.
친구 한명 없이 스스로 집에 틀어박혀 나다닐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결국 우울증이 왔습니다.
그 와중에 생긴 우리 아이들.
당시에는 아이들 키울 자신도 없었고, 나 하나 감당 못하는데 아이들은 무슨
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지울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임신을 하고부터 그 증상들은 더욱 심해졌고,
남편 또한 그런 저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는지 이렇게 살아 뭐하냐고.
아이들 가진 저에게 이혼하자는 말을 밥먹듯이 했어요.
친정 부모님 가슴에 피멍들게하고 한 결혼인데,
부모님께 차마 하소연도 못하고 혼자 속만 태웠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도 그 생활엔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지옥같았다고 해야될까.
생각지도 않았던 쌍둥이들.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치이고, 퇴근하는 남편과 또 말다툼.
아이들 또한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에서 제가 제대로 돌봐주지를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5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집에서 밥 차리고 청소기 돌리고, 빨래하고.
그냥 그게 내 하루 생활이다 라는 생각뿐이였습니다.
밖으로 나가 걸어다니면 모두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잇는 느낌이 들었고,
혼자 하루종일 집안에 박혀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어디에다 도움을 받는 것 조차도 포기했다고 해야되나.
그러다 하루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엄마를 봐도 본체만체, 선생님께서 오히려 무안해 하실 정도로
아이들은 그냥 절 뒤로하고 자기들끼리 걸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있는데 어찌나 슬프고, 화도 나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 아이들에게 왜 엄마를 무시하고 갔냐고 물어보니
다른 엄마들은 맨날 집에서 간식 해주고, 맨날 놀아주고 하는데
엄마는 안그러니까 자기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할 말이 없어
챙피하다는 것이였습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남편과 정리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일본어를 살려서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거의 하루종일 어린이집에 맡겨놔야 했던 상황이였지만
아이들에게 못줬던 사랑 많이 주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고,
아이들도 차차 웃음을 찾아가고 밝은 모습으로 변해가는게 눈에 보였습니다.
아이들 일본어 안 잊어버리게 책이며, 비디오도 보여준 탓인지
유치원가서 친구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주며 잘 논다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이렇게 기쁜 행복을 왜 이제서야 안건지..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뒀던건지..
후회가 드는 만큼 아이들에게 배로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틈틈히 기관 도움 받으면서 양육 방법들도 배우고 있고,
심리적인 치료와 약물치료도 병행하면서 차차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일본에선 폭력적인 성격에 아이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이들 또한 기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어가는 상태라고 합니다.
엄마나 윗 어른들에게도 버릇없이 행동하고, 너 라고 부르는 등.
하나씩 배워가고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너무 가슴이 아팠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며 반듯해져가는 아이들을 보며 한편으론 또 가슴이 놓입니다.
변함없이 이렇게만 쭉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없는데로.
그저 행복하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입니다.
앞으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우리 예쁜 쌍둥이들 많이 격려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