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은 유라시아 각지에서 사절단과 선교사, 상인들이 모여드는 국제 외교. 무역의 중심지였다.
몽골의 지배력 덕분이기도 했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이교도나 이국 문화에 관대했던 몽골인의 포용력이 더 큰 이유였다. 1254년 프란체스코파 수도사 윌리엄이 4대 황제 몽케칸을 알현하고 "신의 말씀을 전하러 왔다"고 말했을 때
그는 불교도.이슬람교도.기독교도가 함께 하는 토론회에 초대됐다. 자유로운 발언이 보장됐으며 금기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말다툼을 일으킬 말은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신의 본질, 영혼, 선악 같은 문제들을 놓고 기나긴 토론이 이어졌다. 한 차례 토론이 끝나면 다음 토론을 준비하며 술을 마셨다. 취기가 오르면서 토론자들은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길 포기했다. 기독교도들은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을 암송했고 불교도들은 명상에 잠겼다. 상대를 개종시키지도 죽이지도 못한 채 토론회는 참가자들이 더 이상 토론할 수 없을 만큼 취했을 때 끝이 났다.
자칫 흑백 갈등으로 비화될 뻔하다. '백악관 맥주 파티'로 김빠지게(?) 끝난 미국 얘기를 신문에서 읽으며 퍼뜩 떠오른 게 이런 몽골식 갈등해소법이었다. 어찌 보면 미봉책일 뿐이었다. 몽골도 그랬고 미국도 같았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아니라 가연성 높은 뇌관을 잘 덮어 가린 거였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성숙한 자세였다. 금방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걸 아는 까닭이었다. 폭발할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몽골 조정은 특정 종교의 편을 들어줬을 때 다른 종교의 불만이 넘칠걸 알았다. 그래서 너희끼리 토론하되 싸우지만 말고 결론을 내라 주문한 거였다. 토론회에는 각 종교 동수로 구성된 심판관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결론 날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갈등을 키우지 않고 묻어 둘 수 있었다.
미국도 그랬다. 자기 집 잠긴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고 경찰에 연행된 데 분노한 흑인 교수나,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욕설을 들은 데 화가 난 백인 경찰이나 할 말이 있는 상황이었다. 경솔한 건 대통령의 입이었다. 선거 전이라면 흑인 표를 위해 경찰에 "어리석은 행동"이라 비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할 말은 아니었다. 대신 그에게는 잘못을 깨닫고 바로 사과할 줄 아는 현명함이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이 준 감동은 더 컸다. 사과하는 대통령에게 "맥주나 한잔 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경찰은 한번 만나보고 싶을 만큼 멋쟁이다. 자신을 두둔하다 돌아선 대통령의 제안에 조건없이 응한 교수 역시 멋을 아는 사람 아닌가.
이런 멋은 곧 존이구동(尊異求同)의 지혜에서 나온다. 종교 갈등처럼 흑백 갈등도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 휘발성 높은 갈등을 품고 가는 사회는 스스로 부싯돌을 멀리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차이 속에서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게 성숙한 사회다.
13세기 몽골 제국과 태평양 건너 미국 사회와 단순 비교하는 게 무리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극단적 갈등 구조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갈등이 점화되기만 하면 악에 받치도록 싸우고 또 싸운다. 대선처럼 명백한 결과에도 여전히 승복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고, 미디어산업법처럼 싸울 일도 아닌 걸로 극한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목숨이 오늘 낼 하는 회사에서 옛 동료가 원수 되도록 물어뜯고, 비정규직 서러운 일자들이 가을 은행잎처럼 날리는데 내가 옳다 너는 틀렸다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의 좌우 갈등도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좀 덮어둘 순 없는 건지. 서로 상처를 들쑤시지 말고 차이를 존중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볼 수는 없는 건지.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출구를 모색해볼 순 없는 건지. 말다툼할 말은 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면서 말이다.
이훈범의 시시각각- 몽골제국식 갈등치유법
몽골제국식 갈등 치유법
이훈범의 시시각각(時視各角)
몽골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은 유라시아 각지에서 사절단과 선교사, 상인들이 모여드는 국제 외교. 무역의 중심지였다.
몽골의 지배력 덕분이기도 했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이교도나 이국 문화에 관대했던 몽골인의 포용력이 더 큰 이유였다. 1254년 프란체스코파 수도사 윌리엄이 4대 황제 몽케칸을 알현하고 "신의 말씀을 전하러 왔다"고 말했을 때
그는 불교도.이슬람교도.기독교도가 함께 하는 토론회에 초대됐다. 자유로운 발언이 보장됐으며 금기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말다툼을 일으킬 말은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신의 본질, 영혼, 선악 같은 문제들을 놓고 기나긴 토론이 이어졌다. 한 차례 토론이 끝나면 다음 토론을 준비하며 술을 마셨다. 취기가 오르면서 토론자들은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길 포기했다. 기독교도들은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을 암송했고 불교도들은 명상에 잠겼다. 상대를 개종시키지도 죽이지도 못한 채 토론회는 참가자들이 더 이상 토론할 수 없을 만큼 취했을 때 끝이 났다.
자칫 흑백 갈등으로 비화될 뻔하다. '백악관 맥주 파티'로 김빠지게(?) 끝난 미국 얘기를 신문에서 읽으며 퍼뜩 떠오른 게 이런 몽골식 갈등해소법이었다. 어찌 보면 미봉책일 뿐이었다. 몽골도 그랬고 미국도 같았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아니라 가연성 높은 뇌관을 잘 덮어 가린 거였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성숙한 자세였다. 금방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걸 아는 까닭이었다. 폭발할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몽골 조정은 특정 종교의 편을 들어줬을 때 다른 종교의 불만이 넘칠걸 알았다. 그래서 너희끼리 토론하되 싸우지만 말고 결론을 내라 주문한 거였다. 토론회에는 각 종교 동수로 구성된 심판관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결론 날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갈등을 키우지 않고 묻어 둘 수 있었다.
미국도 그랬다. 자기 집 잠긴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고 경찰에 연행된 데 분노한 흑인 교수나,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욕설을 들은 데 화가 난 백인 경찰이나 할 말이 있는 상황이었다. 경솔한 건 대통령의 입이었다. 선거 전이라면 흑인 표를 위해 경찰에 "어리석은 행동"이라 비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할 말은 아니었다. 대신 그에게는 잘못을 깨닫고 바로 사과할 줄 아는 현명함이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이 준 감동은 더 컸다. 사과하는 대통령에게 "맥주나 한잔 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경찰은 한번 만나보고 싶을 만큼 멋쟁이다. 자신을 두둔하다 돌아선 대통령의 제안에 조건없이 응한 교수 역시 멋을 아는 사람 아닌가.
이런 멋은 곧 존이구동(尊異求同)의 지혜에서 나온다. 종교 갈등처럼 흑백 갈등도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 휘발성 높은 갈등을 품고 가는 사회는 스스로 부싯돌을 멀리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차이 속에서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게 성숙한 사회다.
13세기 몽골 제국과 태평양 건너 미국 사회와 단순 비교하는 게 무리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극단적 갈등 구조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갈등이 점화되기만 하면 악에 받치도록 싸우고 또 싸운다. 대선처럼 명백한 결과에도 여전히 승복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고, 미디어산업법처럼 싸울 일도 아닌 걸로 극한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목숨이 오늘 낼 하는 회사에서 옛 동료가 원수 되도록 물어뜯고, 비정규직 서러운 일자들이 가을 은행잎처럼 날리는데 내가 옳다 너는 틀렸다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의 좌우 갈등도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좀 덮어둘 순 없는 건지. 서로 상처를 들쑤시지 말고 차이를 존중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볼 수는 없는 건지.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출구를 모색해볼 순 없는 건지. 말다툼할 말은 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면서 말이다.
2009년 7월 29일 수요일. 중앙일보. 이훈범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