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좋지도 않은 기억력에만 의지한 채 여행기를 작성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여행이란 걸 거창한 꿈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나는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일주일간 인터넷이며, 책이며 정보 구하기에 열을 올렸던 나는 최종 계획을 수립하고, 스스로의 유치한 자립심에 놀라 대단한 착각 속에 흐뭇함을 느꼈다.
해외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의지할 곳 없이 모든 일을 내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는 자부심에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미 지하철 노선을 외우고 있던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신쥬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쥬쿠는 생각보다 더 역동적인 도시였다. 서울의 대학로를 떠올리게 만드는 밤거리는 음악가들로 넘쳐났다. 그 당시 기타를 배우고 있던 나에게는 상당히 즐거운 눈요깃거리가 되어 주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거리 구경을 한답시고 한참을 돌아다녔던 나는 허기진 배를 참지 못하고 라면가게를 찾아 발길을 옮겼다.(일본 여행에 라면이 빠질 수 없지!) 한국에서 익히들었던 일본라면은 느끼한 국물에 밀가루맛 나는 면발을 휘휘저어 내어 놓는, 있던 입맛도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만 운이 좋았던건가? 살아생전(그다지 오래 살지도 않았지만) 내가 먹어본 라면 중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그때의 라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신라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일본라면의 팬이 되어버렸다.
이때부터 나의 정신나간 럭셔리 여행이 시작되었다. 무려 4000엔에 달하는 캡슐호텔을 잡아놓고 비싼 숙박비를 아꼈다며 좋아했다. 환율이 낮았으니 망정이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황당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잊을 수 없는 첫날밤은 나에게 또 한가지의 수치스러운 경험을 선사했다.
캠슐호텔 꼭대기 층에는 공중 목욕탕이 있는데 우리내 찜질방과 거의 흡사한 모습이다. 뜨거운 탕안에 잔뜩 얼어붙었던(꽤나 쌀쌀한 날씨였다.) 몸을 녹이던 나는 짧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맞은편 사우나실을 발견했다. 어쩐 일인지 그곳의 남자들은 모두 아랫도리를 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자슥들 부끄러븐가베.' 호기심에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남탕에 왠 젊은 아낙네들이 구석 한켠을 자리잡고 당당하게 앉아 있는 게 아닌가? 한 순간 뇌가 오작동을 일으켰는지 나는 내가 발가벗고 있다는 사실마저 까먹었고, 태연하게 사우나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저 가쓰나들이 뭘 잘못 뭇나? 와저래 실실 쪼개노?' 여자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당연하지 -_- ;;)로 킬킬거리며 삿대질을 하는 게 아닌가? '무슨 또라이들만 모아놨나?' 난 어이가 없어서 뻘쭘하게 앉아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무려 5분이 지나서야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다. 혼비백산 걸음아 날 살려라 뛰쳐나온 나는 다시는 그곳에서 사우나를 하지 않았다.(비록 두번밖에 가지 않았지만)
첫날밤 도쿄의 신고식은 끔찍했다. 아니, 끔찍하게 신선했다. 이런 작은 실수들 중 하나가 언젠가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최고의 추억거리가 될거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멋모르고 떠난 럭셔리(?) 일본여행 1 (나리타 → 신쥬쿠)
그다지 좋지도 않은 기억력에만 의지한 채 여행기를 작성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여행이란 걸 거창한 꿈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나는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일주일간 인터넷이며, 책이며 정보 구하기에 열을 올렸던 나는 최종 계획을 수립하고, 스스로의 유치한 자립심에 놀라 대단한 착각 속에 흐뭇함을 느꼈다.
해외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의지할 곳 없이 모든 일을 내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는 자부심에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미 지하철 노선을 외우고 있던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신쥬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쥬쿠는 생각보다 더 역동적인 도시였다. 서울의 대학로를 떠올리게 만드는 밤거리는 음악가들로 넘쳐났다. 그 당시 기타를 배우고 있던 나에게는 상당히 즐거운 눈요깃거리가 되어 주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거리 구경을 한답시고 한참을 돌아다녔던 나는 허기진 배를 참지 못하고 라면가게를 찾아 발길을 옮겼다.(일본 여행에 라면이 빠질 수 없지!) 한국에서 익히들었던 일본라면은 느끼한 국물에 밀가루맛 나는 면발을 휘휘저어 내어 놓는, 있던 입맛도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만 운이 좋았던건가? 살아생전(그다지 오래 살지도 않았지만) 내가 먹어본 라면 중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그때의 라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신라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일본라면의 팬이 되어버렸다.
이때부터 나의 정신나간 럭셔리 여행이 시작되었다. 무려 4000엔에 달하는 캡슐호텔을 잡아놓고 비싼 숙박비를 아꼈다며 좋아했다. 환율이 낮았으니 망정이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황당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잊을 수 없는 첫날밤은 나에게 또 한가지의 수치스러운 경험을 선사했다.
캠슐호텔 꼭대기 층에는 공중 목욕탕이 있는데 우리내 찜질방과 거의 흡사한 모습이다. 뜨거운 탕안에 잔뜩 얼어붙었던(꽤나 쌀쌀한 날씨였다.) 몸을 녹이던 나는 짧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맞은편 사우나실을 발견했다. 어쩐 일인지 그곳의 남자들은 모두 아랫도리를 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자슥들 부끄러븐가베.' 호기심에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남탕에 왠 젊은 아낙네들이 구석 한켠을 자리잡고 당당하게 앉아 있는 게 아닌가? 한 순간 뇌가 오작동을 일으켰는지 나는 내가 발가벗고 있다는 사실마저 까먹었고, 태연하게 사우나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저 가쓰나들이 뭘 잘못 뭇나? 와저래 실실 쪼개노?' 여자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당연하지 -_- ;;)로 킬킬거리며 삿대질을 하는 게 아닌가? '무슨 또라이들만 모아놨나?' 난 어이가 없어서 뻘쭘하게 앉아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무려 5분이 지나서야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다. 혼비백산 걸음아 날 살려라 뛰쳐나온 나는 다시는 그곳에서 사우나를 하지 않았다.(비록 두번밖에 가지 않았지만)
첫날밤 도쿄의 신고식은 끔찍했다. 아니, 끔찍하게 신선했다. 이런 작은 실수들 중 하나가 언젠가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최고의 추억거리가 될거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Bhagw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