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서 숙녀로1

이노무시키200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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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첨 만난건 중1때였죠..

새로운 동기들은 각각의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다가 한결 같이 하는말..

"OO초등학교 A가 제일 이뿌다..."

그 소리에

"그럼 그 A는 내꺼다"

이렇게 말해 놓고 그녀와 동창생에게 그녀의 주소를 알아 내고는 편지를 썼죠..

단 3통안에 내 여자로 만들것이다...라는 장담안에..하하하하

첫번째 편지에 무시를 당했고, 2번째 편지에 반응이 왔고, 3번째 편지에 새로운 친구로 지네자고 하더군요..

 

우린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단 한번도 만나지는 못했었고 편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주고 받았고 온학교에 심지어는 선생님들까지도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풋사랑을 키워가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가 졸업한 선배와 사귄다는 소문을 믿은 나의 오해로 그녀와 이별을 했습니다

 

고입시험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0월에 교통사고로 누워있는 나를 병문안 온 친구들 사이에 그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를 알고 풋사랑같은 감정을 느끼면 지내온 2년여의 시간중에 가장 가까이에서 본 그녀의 모습은 참 청순했습니다.

그로부터 우린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보며 공부하고 이야기하고...마치 쑥스러워 말도 못하고 지나버린 지난 2년여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듯..

 

그러나 원하던 고교진학에 실패한 그녀는 저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저 또한 교통사고로 제대로 시험을 치룰수가 없었었죠) 그로인해 차츰 삐뚤어지기 시작한 그녀...

어느날 홀로 자취를 하겠다는 그녀와 반대를 하던 나와 심하게 다투었고 결국은 이별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학교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모른체하고..

바람결에 들려오는 그녀의 소식은 어느선배와 사귄다더라, 아니다 동기 누구랑 사귄다더라, 폭력써클에 가입했다더라, 매일 자취방에 남자들이 오간다더라...

참으로 서로를 할퀴는 그런 소리들 밖에 들리지 않고..

 

용기를 내어 1년이 지난 초겨울날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난 아직 널 생각하고 있어..널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널 보면 아직도 가슴이 아파..."

"...."

"내 미래를 꿈 꾼다면 꼭 너였으면 좋겠어.."

"...."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그후로 그녀에 대한 나쁜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서로를 어색하지 않은 모습으로 다정하게 점심을 먹으면서 미래를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을때 우리는 대입이라는 과제가 눈앞에 다가 왔습니다.

 

대입 공부에 몰두하던 제 귀는 듣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A..전에 너랑 헤어져 있을때 내랑 잠시 만났었는데 C랑, D랑 돌였어.."

"..."

 

참으로 많은 시간을 혼자서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때 조금이라도 내가 더 따뜻하게 위로했다면..

하는 후회가 돌덩이가 되어 내 가슴을 눌렀습니다..

허나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느낄까봐 많은 조심을 하고 두번다시 그런 아픔이 없기를 바라는 맘으로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애써 웃음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대입에 실패를 하고 재수를 준비하였고 전 휴학을 한체 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냥 대학과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아 조용히 재수를 준비하고 싶다는 핑게를 대고서 말입니다

그녀가 좀 더 입시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또 그녀와 같은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에..

 

1년이 흘러 그녀는 대학생이 되었고 전 군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군입대전 그녀의 1학기는 저로 시작해서 저로 끝이 날 정도로 매일같이 사랑을 이야기 했습니다.

10대의 풋사랑이 아닌 이제 성인의 사랑을..

입대전 둘만의 사랑여행을 다녀왔고 우리는 기다림에 대한 아무런 장담도 없이 홀로 입대를 했습니다.

 

해병신병교육대 내에서 가장 많은 편지와 소포를 받는 신병은 저였습니다.

자대배치를 받고 제 첫 면회신청자는 당연히 그녀 였습니다.

전입 6개월 미만자는 외박도 외출도 할 수없기에 작대기 하나인 저 자신이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육체적인 사랑보다는 그녀와 좀더 오랜시간을 할 수 없음이 더 원망스러웠습니다.

 

얼마후 동기생들보다 조금 늦게 4박 5일의 위로휴가를 가게 되었고, 모자란 시간을 아끼고 아껴서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서 가족 친지들은 다음 일병휴가때 오랜시간을 보내기로 하고서 대충 용돈만 받아챙기겨서 그녀에게로 달려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