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시집살이, 돌아온 건 문전박대

다죽여버리고싶다2009.10.08
조회4,093

안녕하세요.

저는 27세로 올해 결혼 2년 10개월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쓸 글은 아주아주 길지만 능력껏 요점만 전달하도록 해볼게요.

부디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시친결 선배님들의 조언을 부탁드려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쓸 글의 요지는 친정엄마의 처우를 어떻게 해볼까 하는 것 입니다.

제목처럼 26년동안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며 손아래 시동생들 모두 출가시키고, 대단한 성격의 시모 모시며 구박의 구박을 이기고 지금까지 모시고 살았더니, 돌아가시자 맨몸으로 나가랍니다.

그 과정에서 줄줄이 비엔나를 늘어뜨려 놓을 사연이 깁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엄마는 20살 때 아버지께 겁탈당하다시피 저를 임신하시고 할머니 손에 끌려 잘난 저희 친정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1세에 저를 낳으셔서 올해 47세이십니다. (아버진 58개띠)

흔히들 말하는 경상도의 종친중의 종가, 제 남동생이 8대 종손입니다.

그런데 하는 짓들을 보면 전혀 양반이 아닙니다.

 

최초 발단은 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 번 시집가셨다가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소박을 맞고 동구녘 밖에 서있는 것을 할아버지가 보쌈해오셨다 합니다. 그 길로 아버지를 비롯, 삼촌 셋과 고모(막내)까지 다섯을 낳으셨지만 재가로 온 할머니를 탐탁치 않게 여기셨던 증조모께서 날이면 날마다 구박과 패악을 일삼으셨죠. 30년대 시집살이 말 안해도 뻔하죠.

여러 집안 어른들의 이야기, 일명 할머니의 '무용담 일대기'를 듣고 있으면 여장부도 이런 여장부가 없습니다. 도박과 술로 일생을 탕진하는 할아버지 덕에 가장노릇을 하며 온갖 행상을 다 다니셨는데, 무뢰배들에게 겁탈 당할 위기가 오자 '한 놈만 고자 만들겠다. 누가 먼저 오겠느냐'며 식칼을 빼들고 맞서 싸우셨다 합니다. 그러한 성격이십니다. 평생을 본인의 총기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사셨기에 나이가 들수록 편협해지셨고, 제가 고등학교에 갈 무렵에는 소위말하는 치매끼와 양극성 장애처럼 행동하셨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21세에 저를 낳고 거의 연년생으로 남동생까지 낳고는 공장에 취직하면서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때 제 고모가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합니다. 하루 14시간 공장에서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하고 돌아오면 여지없이 퍼부어지는 할머니의 악담, 아버지의 주사, 행패... 제 어린 날은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합니다. 제 나이 7살에 그 어린 저를 앉혀놓고 '니 어미가 동네 어귀에서 웬 중늙은이와 바람나서 붙어먹고 있는 것을 내가 잡아왔다. 천하에 더러운 년이다. 너는 니 어미 닮지 마라'라고 날이면 날마다 엄마에 대한 험담으로 저를 세뇌시켰고, 덕분에 유아기와 청소년기의 저는 정서적으로 '부모'가 없었습니다.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어디 7살 짜리를 앉혀놓고 저런 소릴 한단 말입니까?

놀다가 할머니가 정한 통금시간인 5시를 넘기면 정말 팬티하나 없이 내쫓겨서 엄마가 퇴근하고 올 때까지 대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그 과정에서 저는 이름도 모를 무수한 사람들에게 추행을 당했고 지금까지도 트라우마입니다.). 손목시계도 없이 5시가 언젠줄 알고 맞춰서 오나요... 한마디로 나가서 놀지 말라는거지요. 집안일 하라는 겁니다.

철저하게 편집적으로 통제를 하셨습니다. (이미 돌아가셨지만, 전 정말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제게 했던 것이 정말로 양육이었는지... 혹시 사육은 아니었는지.)

 

결국 국민학교를 들어가기도 전부터 집안일을 배웠습니다. 학교에 들어가 고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좋으니 그때부터 별로 터치를 안하더군요. 그래서 더더욱 기를 쓰고 공부했지만 고등학교를 안 보낼려고 하더군요.... 산업체고교를 가랍니다. (돈 벌어 집에 부치라는 거죠.) 그래서 학교 마치면 횟집,해물탕집 서빙이며 설거지며 온갖 알바를 했습니다. 제 손으로 벌어 다니면서도 딱 한 번이지만 고교때는 전교1등도 해보았습니다. 2등급 이하 받아본 기억도 없습니다. in서울 내로라 하는 대학에 수시도 붙었지만 돌아오는 건 매타작이었습니다. 고등학교까지는 네 맘대로 했지만 그렇겐 안된다는 겁니다. 졸업하고 돈 벌어오라는 겁니다. 고모를 좀 본받으라고.

 

고모는 저랑 13살밖에 차이가 안납니다. 역시나 할머니의 이상한 가정교육으로 인해 편협하고 양극성장애를 가진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 고모는 산업체고교를 가서, 3년간 안먹고 안 입고 공부해서 모은 돈으로 친정집을 샀다고 합니다. 분명히 대단합니다. 그건 인정합니다. 비록 쓰레기 같은 집이긴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와 같이 엄마를 못살게 굴며 천하에 둘도 없는 개나리로 만드는데 일조한 장본인입니다. 둘이 성격이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 부분에서 용서할 수가 없죠.

제가 결혼할 때도, 자기들이 강원도에서 내려와서 제 결혼식에 '참석'해 줬으면 엄마가 차비정돈 챙겨줘야 하는데 안했다는 겁니다... 저한테 전화와서 악다구니를 하더군요. 눈에 띄면 저를 찢어죽여버린대요.

 

아무리 엄마가 얼만큼 잘못을 했던지간에 본인도 엄마밥을 먹고 컸고, 자기 오빠가 짐승이하의 짓을 하는데도 저희를 버리지 않고, 14시간의 중노동으로 번 돈을 이런 집구석에 갖다바쳤습니다. 그렇게 버텨온 26년입니다. 식구들 간에 별것 아닌 것으로도 원수되기 십상이지만 도대체가 이놈의 집구석은 무언갈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없습니다. 강아지는 그냥 강아지고, 늑대새끼이거나 이리새끼일 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자신의 가치가 어떻던, 제 미래성 따위는 눈꼽만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밥 안 차린다고 초6이던 저를 압력밥솥으로 지지질 않나,

중2때 할머니가 쓰러졌는데 당시 기말고사기간이어서 친구집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쓰러질 때 넌 잘난 공부나 하고 있냐며 하수구에다 원산폭격 시키질 않나,

고교 때는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인가? 그런 프로그램에 기고해서 집 좀 바꾸게 할 생각도 없다며 공부만 잘했지 눈도 꿈쩍안하는 나쁜년이라며 건 한달을 타박하질 않나,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점은,

지금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엄마의 처우를 어떻게 해야할지 말씀으로 도움을 받고파서 적는 것인데.... 친정식구들의 성격적인 부분을 이해시키는 전제를 깔면서도 저는 제 얘기밖에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어린 시절의 저에게서 '엄마'를 빼앗아가버린 저 짐승들 때문에 정서적으로 엄마와의 유대가 그렇게 깊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들의 인격적, 성격적 상태를 설명하려면 제 경험으로 밖에 얘기를 해줄 수가 없어요.... 왜냐면, 고교 이전에는 그들이 엄마를 대하는 방식이 나쁜 것인줄도 몰라서 주의깊게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모든 집이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곤 자기 조카, 자기 손녀에게도 저런 식으로 대하는 논리를 가진 사람들이 엄마는 어떻게 대할 지 뻔히 알고 있다는 겁니다.

 

할머니가 7월 말에 돌아가셨는데, 종친 할아버지들이 장례가 끝난 후 저희집에 모였습니다. 결론은... 지금까지 처럼 엄마가 제사를 모시면 친정의 집을 엄마명의로 해주겠다는 거였습니다. 엄마로서는 아무리 고모가 샀어도 이제껏 그 집에 살고 있었던 것은 엄마와 할머니였고, 생활비로 꾸린 것은 엄마였기에 그게 당연했으니까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느꼈지요. 그건 종친 할아버지가 '제안'할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당연'한 거니까요.

 

그때는 그렇게 하던 사람들이 추석을 기점으로 아주 난리 쌩 부르스를 쳐놨나 봅니다.

엄마도 내 성격을 아니까 말을 안해요. 오늘 알았습니다.

삼촌들이 제사 가져가고, 엄마는 집안에 발붙이지 말라고 했다네요.

엄마가 2년전 요양보호사를 취득하셔서 지긋지긋한 공장생활을 벗어나 간병인을 하고 계신데, 24시간 상주로 합니다. 이미 집밖에 있는 상황인데 집안에 발붙이지 말라는건 그대로 나가서 다신 이 집구석에 들어오지 말라는 겁니다.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에 대해 아마 읽으신 분들은 엄마에게 뭔가 문제가 있겠느니 할 겁니다.

예, 저희 엄마 문제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체장애와 정상인의 경계에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잘 못알아들을 뿐더러 식물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밥얘기를 한다던가... 대화할 때 답답한 부분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오랜생활 시집살이의 정서적인 학대와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사람이 무뎌진 것 같습니다.

여기 뒤에 어느 분... 시모는 손주가 구개열인 것이 부끄러워 지워라 하셨다지요?

저희 할머니 딴에는 엄마가 느리고 답답하고 물러터진 면이 '병신'으로 보여서 부끄러웠던 겁니다. 그래서 닥달하고 야단치고 했던 것인데 손아래 시동생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양쪽을 똑같이 생각하고 판단한게 아니라 할머니에게 받은 정서교육 그대~로 물려받아 같이 학대했던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언젠가 SOS에서 아이가 할머니와 같이 엄마를 공격하는 것 보고 정말이지 놀랐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런 상황에 '그래도 지네들이 날 내쫓진 못하겠지'라며 그냥 그러고 있습니다. 저는 답답해서 미치겠고요.

신랑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얘기를 했더니 신랑이 전화를 하더군요. 그냥 우리랑 살자고. 엄마는 요지부동입니다. 물론 사위보기 부끄럽고, 우리한테 짐 될까봐 그러는 건 알지요. 하지만 신경쓰면서 제가 이제껏 지식으로 누르면서 꾹꾹 눌러참으며 스스로 타이르던 분노와 역겨움이 더 힘듭니다.

이해하려고 심리학 공부도 해봤지만 머리보단 가슴으로 먼저 느끼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 그게 안되더군요.

그리고 어차피 엄마 직업이 이제는 간병인이라 환자 한 번 맡으면 한달씩 집에 안들어오시는데... 같이 살아도 별로 부딪힐 일 없을거 같아요. 따로 방을 얻어주면 좋겠지만.... 서울에 20평짜리 아파트 전세 사는 저희로서도 딱히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지금 친정식구들을 법적으로 대처할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고 있습니다.

엄마가 아버지와 이혼하신지 10년은 되셨지만 어쨌든 사실혼관계를 유지하셨고, 아버지도 그 패악의 끝에 신부전을 얻어 이틀에 한 번 투석을 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본인 죄값은 자기가 치르고 있는 중이죠. 플러스 알파, 할머니의 이상한 정서교육으로 인해 아버지도 정신분열(장애인 판정받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날 방황을 많이 했고 술먹고 행패를 부렸죠. 그 과정에서 형제들 눈 밖에 나서 엄마가 고스란히 화살받이가 된 겁니다.

 

2년 전, 가장 막내 숙부는 나름 대기업에서 정리해고 당하면서 퇴직금으로 1억 좀 넘게 받았다 합니다. 그 돈으로 할머니 편하게 모시게끔 집을 보수한다던가(친정 집이 완전 푸세식에 슬레이트 집입니다. 그래도 2천이 채 안든다 함) 그러한 방법은 강구하지 않고, 30년만에 처음만난 국민학교 동창에겐 4천씩이나 간단히 빌려주고.....(먹고 튀었다 함 ㅋㅋ)

도대체 그들이 노모를 '맡긴'게 아니라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부부가 평균미달로 허덕일 때 자기들은 그 미달인 부부에게 노모 맡겨놓고 자기 삶을 살다가, 이제 노모 가셨으니 필요없는 떨거지는 꺼져라, 이겁니까?

 

철이 들어 대학 다니고, 공부할 때는 이런 것들이 창피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저 짐승들이 창피해 할 순서인 것 같습니다.

 

우선 제가 엄마를 어떻게 해야할지... 제 생각처럼 같이 사는 게 방법인지...

저희 신랑은 어차피 같은 지방에 살고 있으면 결국 또 부딪히는데 차라리 올라오시는게 방법인거 같다고 합니다. 저도 찬성이고요.

쓰다보니 격분해서 하소연도 섞였는데요, 지금은 제가 객관적으로 쓸 수 있는 정신이 안되네요. 부디 읽으시는 분들이 추려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