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의 가을 풍경과 죽음.......

하얀손200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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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의 가을 풍경과 죽음.......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달리는 차창 밖으로 시원한 충주호가 펼쳐졌다. 호수는 맑고 푸른 가을 하늘과 하얀 구름을 거느리고 있었다. 2차선 도로를 따라 끝없이 크고 작은 마을들이 나타났다. 내가 시외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충청북도 충주시 제천군.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는 험준한 월악산이 소재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등산객과 여행객들이 찾는 송계 계곡과 동떨어진 낯선 곳이었다. 


이미 나는 등산객도 여행객도 아니었다. 나는 낯선 죽음의 문상객이었다. 아니, 문상객을 따라나선 추적자였다. 나의 여행 목적지를 바꿔놓은 그녀는 시외버스 안에서 옆자리의 노파와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었다. 노파가 그녀에게 무엇인가 건넨다. 삶은 고구마였다. 그러나 그녀는 손사래를 치면서 거부한다. 40년 전에, 그녀는 시아주버니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이 마을에 시집을 왔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젊은 새댁은 흰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감자와 고구마로 연명하며 산간에 논밭을 악착같이 일구었다. 조금씩 생활 형편이 좋아졌다. 그 사이에 아들과 딸도 낳았다. 성장한 아들은 서울에 가서 취직도 하고 결혼도 했다. 남편이 죽자 그녀는 논과 밭을 팔고 미련 없이 아들 내외가 살고 있는 서울로 떠났다.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은 이곳에 그녀를 불러들인 것은 망자(亡者)의 넋이었다.


그녀는 “그 양반은 강단이 있고 성실한 분이었지요. 그 많은 논과 밭을 혼자서 손수 다 만들어 놨는데, 그만 큰아들이 빚을 져서 남의 손에 경매로 몽땅 넘어가고 말았다지요?”라며 노파를 바라보며 물었다. 노파는 삶은 고구마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아직 손바닥만큼 땅은 남아 있는 모양인데, 큰아들이 여자를 잘못 얻어서 그랬다지?”라며 그녀에게 되물음을 했다. 그녀는 “여자를 잘못 얻으면 그 모양이 되지요.”라고 답한다.


나는 시외버스 안에서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일생과 죽음에 대해 듣고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6.25전쟁과 모진 가난을 견뎌왔던, 그 강인한 남자도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되었고, 작년엔 병원에서 위암 선고까지 받았다. 남자는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산속에 혼자 들어가 농약을 마셨다. 그의 시신은 동네 이장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소문은 마을에 퍼져나갔고, 그 소문을 듣고 그녀는 한 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산속의 마을인데도 넓은 논과 밭에 벼와 수수 그리고 콩과 율무 등 농작물들이 가을걷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렇게 익은 들판 한가운데, 우뚝 솟은 월악산은 빨간 능금과 함께 늦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산간지방에는 첫서리가 내렸다는 소식도 들렸다. 곧 낙엽이 곱게 물들어 떨어지고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저 세상 사람이 된 남자가 개간한 논과 밭에도 눈이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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