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거세를 허하라 - 안티크라이스트를 바라보는 시각 #1

박성호200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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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거세를 허하라 - 안티크라이스트를 바라보는 시각 #1

올해 깐느영화제의 화제작 중 하나인 안티크라이스트를 감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경로는 묻지 마시고.. -.-;

도입부에서 부터 '우리의 표현경계를 뛰어 넘어가는군~'이란 생각을 하며 감상을 시작하게 된 건 정말 오랫만의 일이었습니다. 퐁네프 이후였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제목에서부터 '뭔가 종교적 색채가 묻어나오는 건가?'라고 짐작을 해봤지만, 종교라는 녀석을 간과하는 저로썬 영상미와 스토리를 완성해 가는 개연성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종교를 거의 무시하지만, 간과라는 표현으로 대체 해봤습니다. ㅎㅎ 아직도 종교가 존재하고 있는걸 보면, 참 사람이란 미물은 소설을 좋아하긴 합니다. ㅋ 입증불가한 소설을 의지박약으로 인해 과신하는 자들과 그를 이용하려는 자들의 시장... 참 부정적이죠? ㅎ)

그리하야~ 크라이스트라는 부분은 버리고 스토리를 사~알~짝~ 스포이드로 찍어서 화선지에 뿌려봅니다. ^^;

색욕을 욕하지 마라. 생명의 근원이다.

갑작스레 화엄경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물론, 장선우 감독님의 '화엄경'중에 나왔기에 기억을 하고 있을 뿐이지요. -.-; 그런데 우리의 여주인공(이하 '이브'라 한다 - 참, 입법기술적인 표현입니다. ㅠ.ㅠ)은 색욕을 너무 탐하다 못해 대략 3~4살로 추정되는 자식의 추락사를 막지 못합니다. 결말부에 나오지만, 이브는 오르가슴에 이르고 있었던 통에 자식의 추락 따윈 챙기지 않은 것으로 확인이 됩니다.
여기서 화엄경의 구절이 되새김질 되었습니다. 색욕을 욕하지는 않겠는데(물론 범죄가 성립된다면, 응당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요? 여기선 화간을 전제로~), 생명이 버려지는 현실을 막지는 못했다는 것이 이브의 죄입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이브 역시 자식이 죽은 사실에 경악과 슬픔을 금치 못하며, 남편이면서 심리치료사로 추정되는 우리의 남주인공(이하 '아담'이라 한다)과 함께 슬픔을 치유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어디 그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옛말처럼 가슴에 묻으려 한들, 묻힐리 없는 일이겠지요. 아담은 이브를 보듬고, 아끼며, 에덴이라는 주제로 논문(아직 이 부분은 풀지 못한 것이라, 추가적인 세밀한 감상과 원본 시나리오가 필요할듯 합니다. -.-;)을 작성하는 이브를 위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 이상의 희생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여자의 거세를 허하라

사실, 종교적인 이야기를 배제하려니 대강의 스포일링 이후에 바로 결말로 이어집니다. ㅋ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는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이 아들에게 투영되는 과정을 그렸다면, '안티크라이스트'는 색욕을 추구하다 자식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한 어머니의 죄책감과 그 죄를 씻어내려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마더'에서는 아들에 대한 사랑을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강한 어머니였다면, '안티크라이스트'에서는 자식을 살려내지 못한 자신의 색욕과 남편의 색욕에 대한 원망과 죄책, 그리고 그를 씻기 위한 제2, 제3의 자식 생산(?) 노력, 그 노력이 또한 색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판단으로 인해 남편의 성기에 대한 훼손과 자신의 성기에 대한 거세까지...

색욕에 대한 욕구해소가 전제되지 않으면, 부부생활이 더 이상 의미없다는 표현으로써 '살아도 사는게 아니야~'라고 되뇌이는 어느 소설 속의 과부댁 표현처럼, 인간 생활에 적지 않은 시간의 소비와 더불어 체력적인 소모(?)가 수반되는 것이 '섹스'는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화간'이라더라도 생명을 경시하면서 까지 과도한 집착과 애착은 당연히 하지 말아야 겠죠? ^^

그래서 전 이브의 거세를 허하고 싶습니다. 본인은 살아도 사는게 아니겠지만, 머 생명을 잃는 정도는 아니니 말이지요. -.-;

끝으로 이야기를 요런 식(?)으로 풀어가다보니, 우리의 토종 에로영화 제목이 하나 생각나면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게 전해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애들은 재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