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대신 피를 빨고 자란 아이

날마다감동200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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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대신 피를 빨고 자란 아이

 


 

 

 

지난해 저의 어머님은 76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젊은 시절 농촌의 고된 노동으로, 병을 얻게 되었고,

그 병으로 인해 6년 남짓 고생하시다 돌아 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항상 “미안하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제가 어릴 땐, 필요한 학용품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셨고,

나이가 들어서는 벌어 놓은 것이 없어, 자식들 고생시킨다며, “미안하다” 자책하셨습니다.

또 병을 얻어 누워 계실 때는, 짐이 된다며 “미안하다” 하셨습니다.
제가 자식으로서 은혜 입은 바가 더 크고, 갚아야 할 빚이 더 많은데 말입니다.

 

일본에서 폭발사고로 한 팔을 잃으신 아버지를 만나,

8명 대식구 양식도 되지 않는 농사마저 어머니 없이는 지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6. 25 전쟁시 피신해 있는 땅굴이 폭격으로 내려앉는 바람에

허리를 다쳐, 평생을 허리 한번 곳곳하게 펴는 게 소원이라시던 그런 어머니였습니다.

꾸부정하고 야윈 몸으로 3남 3녀 육남매의 끼니 걱정으로,

한 여름 뙤약 빛 아래, 남의 무논 바닥에 엎드려 지심(잡초의 경상도 사투리) 뽑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적에 ‘젖’ 이 아니라 어머니의 ‘피’ 를 먹고 자랐습니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농번기에는 아버지의 부족한 일손을 돕고,

농한기에는 비단을 팔러 타 지방으로 가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물론 젖먹이인 저를 떼어 놓고 가셨다고 합니다.

무거운 비단을 머리에 이고 충청도, 강원도 오지(奧地) 시골마을을 찾아다니며 비단을 팔았는데,

아기인 나까지 등에 업으면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에 남겨진 저는 어머니의 젖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입이 유난히 짧아 우유조차도 잘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먹는 것이라곤 흰죽에서 우러난 국물뿐이라,

엉덩이에 살이 없어 제대로 앉을 수 조차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빈 젖을 물려주면 하염없이 빨다 잠이 들곤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장사 갔다 돌아오는 날이면,

저는 하루 종일 어머니의 젖을 빨았다고 합니다.

당시 어머니는 객지의 힘든 장사일로 야위어 젖이 전혀 나오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너무 젖을 빨아대서 어머니의 젖꼭지가 헤져 피가 나와도

어린 저는 그 ‘피’ 를 ‘젖’ 으로 알고 계속 빨아 먹었습니다.
장사 때문에 오래 떨어져 있던 어머니는 제가 너무나 안스러워 젖이 아니라,

 피를 빨고 있는데도 떼지 않으시고 계속 물렸던 것입니다.


자기 살을 먹여 새끼 물고기를 키우는 가시고기처럼,

어머니의 부족한 ‘젖’ 을 ‘피(血)’로서 대신 한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 중생은 윤회(輪回)한다고 합니다.
다시금 어머니와 인연(因緣)을 맺고 싶습니다.
‘한 점 구름’이라도 되어 한 여름 뙤약 빛 아래 지심뽑는 어머님께

시원한 그늘이라도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출처 : http://cafe.naver.com/uldo/676  <날마다 감동 날마다 행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