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이야기

munhak79200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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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힘들어지는 한살 더하기 한살 더하기를 견디지 못하여 술에 겨운 하루를 보내고 어둔 길로 돌아오는 그 끝에 병든 사자마냥 거대히 쇼파에 기대어 TV야구 중계를 보고 있는 당신을 그저, 그저 한없이 바라본다. 바라보며 생각하고, 그 생각의 끝에서 난......... 오늘에서야 비로소 당신에게 여지껏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당신과 나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부잣집 외동아들로 태어나 몇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그와 더불어 하늘보다도 높았던 당신의 자존심도 어느덧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훌쩍 커버려 이젠 당신의 통제권을 벗어나 버린 아들 3명과 한 평생 미안한 맘 뿐인 아내........... 이 속에서 아버지 당신은 여전히 침묵한다. 따스함과 다정스러움엔 아직 서툰 당신은 항상 침묵해 왔다 과외한번 하지 않았던 첫째 녀석이 처음 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무서웠던 나에게 둘째 녀석이 난생처음 반항이란걸 했을때도, 언제나 어린애 같던 셋째 녀석이 입대한다고 마지막 절을 했을 때도, 이제서야 조금씩 황혼의 낭만을 함께 즐기려 했던 아내가 생사를 건 수술을 해야 한다며 병원측에서 내미는 동의서에 서명을 할 때도 당신은 오직 침묵, 침묵 뿐이였다. 요즘은 당신도 힘이 드시는지 이런 말씀을 하곤 하신다. "이젠 살아갈 날이 지난 시간보다 많이 짧아졌다. 그러나 돌아보니 모든게 서툴었던 기간이였다. 여지껏 친구에게 거하게 한 턱 낸 적도 없이 가족외식 한번 맘 놓고 한 적도 없이 그렇게 밤낮이 바뀐 채로 달려왔는데 남은 건 고작 24평의 집 한채뿐이구나....." 그리곤 남들이 모두 잠든 새벽 2시 넘은 이제서야 들어와 아까 봤던 야구중계를 또다시 보고 있다. 상처입은 거대한 맹수처럼 힘없는 표정으로 쇼파에 기댄채 축 늘어진 한 손엔 리모콘을 움켜지고 이미 승부난 승부를 보고 있다. 난 당신이 왜 롯데 야구 하나에 흥분하는지를 안다. 초조하게 연신 담배를 태우며, 오늘 나온 선발투수가 몇 점을 내주는지를 지켜보는 당신의 모습을 난 알고 있다. 그것이 당신의 또다른 침묵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이미 자식 놈들의 일에 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남들처럼 함께 저녁을 즐길수 없는 아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야구를 시청하듯 바라만 보는 것이라는 걸. 롯데를 응원하듯, 맘 속으로 소망하고 간절히 바래보는 것. 그것 뿐이라는 걸 당신은 서서히 깨닫고 있는 듯 하다. 내가 수술을 끝내고 마취에 취해 있을 때 밤 9시가 넘어 저녁도 거르시고 찾아와 어둔 병실에서 내 손을 잡고 안쓰러운 눈빛, 미안한 눈빛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었던 그 밤을 잠든 척 하고 있었지만 난 알고 있었다.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울리는 야속한 주문 전화로 돌아설 때, 몇 걸음 되지도 않는 병실 문까지 몇번을 돌아보고, 그것으로도 아쉬워, 못내 아쉬워 한참을 지켜보다 돌아선 당신의 그 뒷모습을 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내 모습을 보기까지 얼마나 초조했었는지를 손을 잡은 당신의 몸에서 베어 나오는 담배 냄새로 난 알고 있었다. 당신은 여전히 서툴러 침묵할 뿐이였지만 세상 그 어느 막내녀석보다 난 당신을 잘 알고 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애정표현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빵 몇 만원치 사오는 것이 전부인 당신에게 그 때의 침묵이란 응급차에 실려와 수술을 끝내고 누워있는 자식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관심이였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두꺼운 당신의 손에서 난 느끼고 있었다. 남자가 성인이 되어간다는 건 아버지를 나와 똑같은, 한없이 약한 존재임을 인식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난 아직도 어린애에 불과하다. 지금의 난 당신처럼 강인한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갓난애기였던 녀석들이 학교를 가고, 사춘기란 걸 겪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여자로 인해 고민하고, 나보다 많은 돈을 벌어오고 있는 이 과정과 다방 한 쪽 구석에서 가슴설레며 수줍은 데이트를 하고, 새빨간 입술과 잘룩하게 볼륨있던 몸매가 더없이 매력적이였던 그녀가, 뱃살이 나오고, 나보다 주름도 많이 생기고, 비가 오면 지난 수술 휴유증으로 밤을 지내며 아파하고 흰 머리를 감추려 염색을 하고 있는 지금의 이 모든 과정을 난 당신만큼 담대히 받아들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간이 흘러 내가 당신의 모습이 되었을 때 난 당신처럼 집안 가장 어린 막내 녀석이 지금의 나의 위치에서 내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할 만큼 위대한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직도 모르는 듯하다. 당신의 인생이 얼마나 극적이고, 그 속에서 지금껏 얼마나 충실한 가장이였으며, 한 여자에게 얼마나 믿음직한 남자였으며, 바라보며 커오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얼굴이였던가를...... 세월이 흘러 내 아들의 아들의 아들에게도 변하지 않을 이 단 하나의 진실을 당신은 모르는 듯 하다. 나는 지금 당신과 같이 어제 저녁에 했던 롯데 야구 중계를 다시 보러 간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경기이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봤던 경기이지만, 다시금 당신과 나 우리 둘은 공 하나 하나에 흥분할 것이다. 그건 단순히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할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야구를 통해 나를 바라보고, 응원해 주고, 나는 야구를 통해 당신을 보고, 소리없는 그 응원을 느낄, 지상 유일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쉽사리 잡히지 않는 나의 이상과 나에게도 서서히 다가오는 한 가정의 가장이란 위치와 알아 갈수록 힘이 드는 세상에서 살아남기와 오늘처럼 공부조차 하기 싫은 날 속에선 당신과 야구 경기를 보는 것도 괜찮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듯 힘에 겨운 나에게 자식을 향한 당신의 그 위대한 응원을 지금껏 그래왔듯이 침묵을 통해 보여 주는 것도 괜찮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마! 뭐 그리 풀 죽어 있냐...짜식.....동현아! 롯데가 안타를 친다....나는 너를 믿는다. 잘 해 낼 것이란 걸 믿는다. 4번 타자가 홈런을 친다.....넌 나의 아들이다.....힘내라..." 그리고 난 지금 오늘만큼은 썩어빠진 공부란 굴레를 벗어나 모든 것을 잊고 당신과 같이 어제 했던 롯데 야구 중계를 보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