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삶에 울분이 터지는 이유는?

하얀손200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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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삶에 울분이 터지는 이유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한 손님은 17세 된 소녀가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무엇인가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소녀가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전문 ‘앵벌이꾼’인지 아닌지 의심도 했지만, 결국 그 소녀가 자신에게 내민 물건을 팔아주었다. 그는 “그 소녀가 진짜 가난했다면 절박함에 구걸하는 것이고, 가짜라면 정말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진짜이건 아니건 똑같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다.”라며 “가진 것이 많아도 남을 돕지 않는 사람은 가난하며, 가진 것이 없어도 남을 돕는 사람은 부자다.”라고 역설했다. 나는 그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을 받아 가슴이 벅차고, 나도 몰래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나는 ‘이런 따뜻한 마음이 개인적 동정론에 머물지 않고, 보다 체계적이고 결속된 제도의 힘으로 승화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처럼, 사랑도 뭉치면 강인해지고, 흩어지면 순간적인 개인의 만족으로 끝나는 버리게 된다는 떠올렸습니다. 옛날 중국의 한 관리는 백성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가뭄으로 굶주림에 고통을 받고, 설상가상으로 오랑캐들의 침략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관리는 굶주림에 힘이 없어 강을 건너지 못하는 백성들을 보고, 그는 강바닥에 엎드려 백성들이 자신의 등을 밟고 건너게 하였습니다. 


후세의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관리라고 칭송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공자는 “무릇 관리가 된 자가 구차한 그런 개인적 행동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사기보다는,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오랑캐의 침략을 당하지 않도록 대비를 잘 했어야 했다. 결코 그를 훌륭한 관리라고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우리들은 공자의 주장을 어떻게 적용시켜 생각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는 임금을 비롯한 중앙의 신료들이 모든 관리들을 발탁하고 뽑았지만,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들 모두가 임금이고, 중앙의 신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선거와 투표를 통해 나라의 인재들을 국민들이 직접 뽑고 선출하니까요. 과거에는 정치를 잘 하지 못하면 임금을 원망했지만, 이제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을 잘못 뽑은 국민의 책임 의식도 마땅히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맹목적인 불신과 추종의 극단으로 나뉘어, 가난한 이웃들에게 꿈과 희망을 빼앗거나 짓밟게 방치하는 사태가 만연해 있습니다. 가난한 한 소녀에게 개인적 동정심과 도움은 주지만, 정작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제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정치인들은 외면하고, 단순한 개인적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야망에 찬 정치인들을 뽑고 또 뽑아서,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고려 그리고 조선 초기 강성하고 부유했던 것은 주변국이었던 여진과 말갈 등 오랑캐 부족들도 배타적으로 하지 않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한 핏줄 한 민족조차 제대로 보듬지 못하고, 영토마저 두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과거 고구려와 고려 그리고 조선의 백성들처럼 문맹률도 없는 지식 정보화 시대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단순한 개인적 동정심의 차원을 뛰어넘어,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을 현대 정치판에 구현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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