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를 읽고 느꼈던 혼란을 기억한다. 나는 이 시대의 20대로서 88만원 세대라는 세대 규정에 동의한다. 당시 책에서 제시된 20대 계층 피라미드에서 내가 최하단에서 두번째쯤에 위치하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20대의 여성이며 ‘지잡대’ 출신에 지방연고자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 하단에는 다른 조건은 나와 동일하지만 고졸이나 전졸의 학력을 가진 이들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현재 사회에서의 위치를 포함시키면 이게 순식간에 역전된다. 우석훈의 분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삼성과 한전으로 대표되는 거대기업과 거대공기업에 근무하는 이들은 각종 고시를 패스한 자들과 소위 전문직이라 하는 '사'자 들과 함께 상위 5% 수준이라고 판단되며, 나는 현재 거기에 속해있다. 부모의 경제력과 자신이 속한 학군의 교육열에 따라 대학과 졸업 이후 사회에서의 위치마저 결정되는, 공고화된 학벌주의 시스템. 이런 곳에서 나란 존재는 별종에 가깝다. 이러다 보니 나는 스스로를 88만원 세대에 속하는 세대원으로 보면서도, 실제의 상황은 88만원 세대의 일반규정과 너무나 동떨어져있어 혼자 생각만으로 방황을 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신간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오히려 내게 더 큰 공감을 가져왔는데, 이는 20대를 비정규직 비율 및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88만원 세대'라고 규정지은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다각도로 조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판단한다.
특히나 현재의 20대를 '저격수'와 같다고 비유한 부분에 매우 공감했다. 혼자 고독하게 구석에 틀어박혀 목표물을 노리는 저격수의 모습은, 스펙 쌓기를 위해 남 돌아볼 여력 없이 혼자 매달리는 20대를 닮았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 중에서 오로지 자신이 목표하는 것 하나만을 노리고 그것만을 바라보는 저격수는, 꿈도 낭만도 잃어버린 채 취업을 향해 달려나가는 20대를 닮았다. 혹여 취업을 한다손 치더라도,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결혼과 출산과 집구하기 등의 문제가 새로운 조준목표로 나타날 뿐이다. 거기에 덧붙여진 약간의 위트는 때로 저격수에게는 망을 봐주거나 하는 등의 사람이 한 명쯤 붙기도 하는데, 그것은 여전히 다 큰 자식을 독립시키지 못한 채 지켜주는 엄마를 닮았다나. '쿨함'을 가장한 채 외로워하고, '연대'의 기회도 없었고, 연대라는 힘의 크기조차 모르고, '신자유주의'를 머리가 아닌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인 채, 오늘의 20대는 이 적자생존 시대를 살아간다.
- 우리, 혁명이란 걸 꿈꿀 수나 있을까
불 같은 애국심으로 떨쳐 일어났던 독립운동이든, 바리케이드를 쳤던 68혁명이든, 짱돌을 던졌던 6월 항쟁이든, 코르셋과 페티코트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코코 샤넬의 패션이든, 우리는 언젠가는 터지고야 마는 '혁명'의 마음을 안고 살았고 그것이 혁명이 되어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역사는 말한다. 그런데 지금, 혁명의 기운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세상인데도, 혁명의 작은 조각이나 실마리마저도 찾기 어렵다. 우석훈은 이 부분을 가장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직접 사회운동을 통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연대든, 우리동네 편의점 알바생 노조와 같은 연대든,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친구들을 믿고' 함께 혁명의 바람을 품어보라고 말한다. 전작에서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권했던 것보다 구체적이고 마음에 조금 더 와 닿는 제언이다. 물론, 실천을 어떻게 하게 될지는 나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도 한 때 혁명을 꿈꾸었다. 학보사에서 문화 피처 글을 주로 쓰다가, 학내 이슈를 쓰게 되면서 혁명을 꿈꾸었던가. 그래서 매년 총학생회 선거 때 자리를 바꾸어가며 이래저래 참여를 했었을 지도 모른다. 후보자 토론의 패널을 한 적도 있고 당선자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유권자운동도 해보고 후보자선거본부에서의 선거운동도 했으니.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꾸었던 혁명의 꿈은 아무래도 여성주의 실현이었을 것이다. 한량같이 놀던 대학 새내기 시절 우연히 만난 페미니스트 계간지 <IF>와의 만남이 그 시작. 용돈을 탈탈 털어 <IF>의 과월호를 모두 사서 읽어나가고, 거기서 알게 된 책을 읽고 사이트를 돌아다녀보고,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나고 행사에도 참여하고, 그것은 학교 내에서 학회를 만들고 대자보를 붙이고 인트라넷에 수많은 글을 올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결과는? 불만족. 무언가 해보는데도 전혀 변화라곤 찾을 수 없었으니 당연한 일. 물론 그것은 미숙한 활동방식을 가졌던 내 책임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세상이 꿈쩍 앉고 있는 돌덩이나 아무리 때려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벽처럼 느껴졌으니, 어쩌랴. 할 수 없는 일.
오랜만에 읽은 사회과학서적이 우석훈의 신간이라 반가웠다. 전작을 읽을 때에는 문체 때문인지 편집 때문인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좀 서걱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술술 잘도 읽히더라. 이미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된 저자와 독자와의 만남 덕일 수도 있고, 이전보다 20대와 많이 만나며 접점을 넓혀온 저자의 노력 덕분일 수도있다.
이 책에 추천사를 써주신 조한혜정 교수님의 글도 무척 반가웠다. 조한 교수님의 글은 언제나 그쯤의 나이나 지위를 가진 분들이 쓰는 여느 글보다 쉽고 재미 있고 새로운 깨달음도 톡톡 던져주어서 좋아하는데, 이렇게 만나고 보니 역시나 유쾌하다. 책 맨 뒤에 실린 대학생들의 글도 공감이 많이 되었다. 물론 그들이 현재의 대학생을, 20대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그 구성원들 중 얼마간의 소리라도, 아니라면 자기 자신의 이야기만이라도 담아내기 위해 애썼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나의 바람은, 너의 바람은, 곧 태풍으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책에서도 나오듯 혁명을 품은 마음으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도, 권력이라는 자들이 그것을 혁명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물 대포나 쏘아대는 시대다. 이런 시대의 혁명은 어찌해야 하는가. 하긴,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건 너무 빠른지도 모른다. 혁명, 이라는 걸 할지 말지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 시절이니.
그래서 나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혁명이라는 말보다 ‘바람’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결국 혁명의 시작은 ‘OO했으면 좋겠다’는, ‘OO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그렇게 같은 바람을 품은 사람들의 마음 사이에 바람이 흘러 다니다 보면, 결국 그것이 모여 거대한 회오리 바람이나 태풍으로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이제부터 친구들을 만나면 꼭 물어야지. 너의 바람은 무엇이냐고. 그것이 로또당첨이든 취업이든 내집마련이든 토익만점이든 결혼이든, 나는 한결같이 응원해주고 싶다. “파이팅! 잘 될 거야. 내가 함께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말해주어. 함께 할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사회, 우석훈)
- <88만원 세대>의 뒤를 잇는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88만원 세대>를 읽고 느꼈던 혼란을 기억한다. 나는 이 시대의 20대로서 88만원 세대라는 세대 규정에 동의한다. 당시 책에서 제시된 20대 계층 피라미드에서 내가 최하단에서 두번째쯤에 위치하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20대의 여성이며 ‘지잡대’ 출신에 지방연고자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 하단에는 다른 조건은 나와 동일하지만 고졸이나 전졸의 학력을 가진 이들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현재 사회에서의 위치를 포함시키면 이게 순식간에 역전된다. 우석훈의 분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삼성과 한전으로 대표되는 거대기업과 거대공기업에 근무하는 이들은 각종 고시를 패스한 자들과 소위 전문직이라 하는 '사'자 들과 함께 상위 5% 수준이라고 판단되며, 나는 현재 거기에 속해있다. 부모의 경제력과 자신이 속한 학군의 교육열에 따라 대학과 졸업 이후 사회에서의 위치마저 결정되는, 공고화된 학벌주의 시스템. 이런 곳에서 나란 존재는 별종에 가깝다. 이러다 보니 나는 스스로를 88만원 세대에 속하는 세대원으로 보면서도, 실제의 상황은 88만원 세대의 일반규정과 너무나 동떨어져있어 혼자 생각만으로 방황을 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신간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오히려 내게 더 큰 공감을 가져왔는데, 이는 20대를 비정규직 비율 및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88만원 세대'라고 규정지은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다각도로 조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판단한다.
특히나 현재의 20대를 '저격수'와 같다고 비유한 부분에 매우 공감했다. 혼자 고독하게 구석에 틀어박혀 목표물을 노리는 저격수의 모습은, 스펙 쌓기를 위해 남 돌아볼 여력 없이 혼자 매달리는 20대를 닮았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 중에서 오로지 자신이 목표하는 것 하나만을 노리고 그것만을 바라보는 저격수는, 꿈도 낭만도 잃어버린 채 취업을 향해 달려나가는 20대를 닮았다. 혹여 취업을 한다손 치더라도,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결혼과 출산과 집구하기 등의 문제가 새로운 조준목표로 나타날 뿐이다. 거기에 덧붙여진 약간의 위트는 때로 저격수에게는 망을 봐주거나 하는 등의 사람이 한 명쯤 붙기도 하는데, 그것은 여전히 다 큰 자식을 독립시키지 못한 채 지켜주는 엄마를 닮았다나. '쿨함'을 가장한 채 외로워하고, '연대'의 기회도 없었고, 연대라는 힘의 크기조차 모르고, '신자유주의'를 머리가 아닌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인 채, 오늘의 20대는 이 적자생존 시대를 살아간다.
- 우리, 혁명이란 걸 꿈꿀 수나 있을까
불 같은 애국심으로 떨쳐 일어났던 독립운동이든, 바리케이드를 쳤던 68혁명이든, 짱돌을 던졌던 6월 항쟁이든, 코르셋과 페티코트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코코 샤넬의 패션이든, 우리는 언젠가는 터지고야 마는 '혁명'의 마음을 안고 살았고 그것이 혁명이 되어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역사는 말한다. 그런데 지금, 혁명의 기운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세상인데도, 혁명의 작은 조각이나 실마리마저도 찾기 어렵다. 우석훈은 이 부분을 가장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직접 사회운동을 통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연대든, 우리동네 편의점 알바생 노조와 같은 연대든,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친구들을 믿고' 함께 혁명의 바람을 품어보라고 말한다. 전작에서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권했던 것보다 구체적이고 마음에 조금 더 와 닿는 제언이다. 물론, 실천을 어떻게 하게 될지는 나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도 한 때 혁명을 꿈꾸었다. 학보사에서 문화 피처 글을 주로 쓰다가, 학내 이슈를 쓰게 되면서 혁명을 꿈꾸었던가. 그래서 매년 총학생회 선거 때 자리를 바꾸어가며 이래저래 참여를 했었을 지도 모른다. 후보자 토론의 패널을 한 적도 있고 당선자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유권자운동도 해보고 후보자선거본부에서의 선거운동도 했으니.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꾸었던 혁명의 꿈은 아무래도 여성주의 실현이었을 것이다. 한량같이 놀던 대학 새내기 시절 우연히 만난 페미니스트 계간지 <IF>와의 만남이 그 시작. 용돈을 탈탈 털어 <IF>의 과월호를 모두 사서 읽어나가고, 거기서 알게 된 책을 읽고 사이트를 돌아다녀보고,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나고 행사에도 참여하고, 그것은 학교 내에서 학회를 만들고 대자보를 붙이고 인트라넷에 수많은 글을 올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결과는? 불만족. 무언가 해보는데도 전혀 변화라곤 찾을 수 없었으니 당연한 일. 물론 그것은 미숙한 활동방식을 가졌던 내 책임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세상이 꿈쩍 앉고 있는 돌덩이나 아무리 때려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벽처럼 느껴졌으니, 어쩌랴. 할 수 없는 일.
오랜만에 읽은 사회과학서적이 우석훈의 신간이라 반가웠다. 전작을 읽을 때에는 문체 때문인지 편집 때문인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좀 서걱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술술 잘도 읽히더라. 이미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된 저자와 독자와의 만남 덕일 수도 있고, 이전보다 20대와 많이 만나며 접점을 넓혀온 저자의 노력 덕분일 수도있다.
이 책에 추천사를 써주신 조한혜정 교수님의 글도 무척 반가웠다. 조한 교수님의 글은 언제나 그쯤의 나이나 지위를 가진 분들이 쓰는 여느 글보다 쉽고 재미 있고 새로운 깨달음도 톡톡 던져주어서 좋아하는데, 이렇게 만나고 보니 역시나 유쾌하다. 책 맨 뒤에 실린 대학생들의 글도 공감이 많이 되었다. 물론 그들이 현재의 대학생을, 20대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그 구성원들 중 얼마간의 소리라도, 아니라면 자기 자신의 이야기만이라도 담아내기 위해 애썼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나의 바람은, 너의 바람은, 곧 태풍으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책에서도 나오듯 혁명을 품은 마음으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도, 권력이라는 자들이 그것을 혁명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물 대포나 쏘아대는 시대다. 이런 시대의 혁명은 어찌해야 하는가. 하긴,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건 너무 빠른지도 모른다. 혁명, 이라는 걸 할지 말지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 시절이니.
그래서 나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혁명이라는 말보다 ‘바람’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결국 혁명의 시작은 ‘OO했으면 좋겠다’는, ‘OO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그렇게 같은 바람을 품은 사람들의 마음 사이에 바람이 흘러 다니다 보면, 결국 그것이 모여 거대한 회오리 바람이나 태풍으로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이제부터 친구들을 만나면 꼭 물어야지. 너의 바람은 무엇이냐고. 그것이 로또당첨이든 취업이든 내집마련이든 토익만점이든 결혼이든, 나는 한결같이 응원해주고 싶다. “파이팅! 잘 될 거야. 내가 함께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말해주어. 함께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