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도 이야기!

마불200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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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도이야기!

1972년도인가?

서울뚝섬에 물난리나고 리타호란 태풍이 세게 불었던

해 였던것같다.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집이 풍지박산이나

학업을 중단하고 일자리로 나선곳이 저 삼천포 굴양식장

현장감독이다.

통조림회사에 근무하던 고모부가 굴양식을 시작한다하여

무턱대고 같이 따라나선 곳이 삼천포 신수도 추섬 백사장이다.

달랑 텐트 하나 쳐놓고 굴양식에 설치할 로프더미랑 풀어놓고

일을 시작하였다.

바로 다음날 고모부는 서울 갔다온다며 먹을건 있냐고 물었다.

썩은 자존심에 다있다고 걱정 말라고 하였더니 무슨 사고가

났는지 보름이나 오지 않았다.

그 때 난 먹을거라곤 기실 집에서 가져온 고추장 한통이

전부 였다.

할수없이 낚시대로 고기를 잡아 요기를 때우곤 하였다.

한 며칠 굶었을때 멀리서 쳐다보니 남녀 쌍쌍이 백사장에

놀러와서 통닭을 뜯고 술을 마시다 실컷 놀다 가버렸다.

해질무렵 남겨진 닭찌꺼기랑 종이컵에 남은 술을 모두비워

한잔 들이켰다.

또 피다만 담배꽁초를 주어 한대 피우니 머리가 핑돌며

서울에 남은 병든 어머니와 동생들 걱정에 마음이

심란 하였다.

그러다 그다음날 부터는 일어나기 싫어 그냥 잠만 잤다.

오후 2시에 지나가는 엔젤호가 왜 자주 지나가는 건지

아니면 내가 며칠씩 잠을 자고 있는건지 이렇게 편안하게

자는것이 결국은 기력이 떨어져 굶어 죽는것인가 보다.

그때 만난 친구가 봉대다!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지만 언덕위에서 매일 밭일을 하면서도

백사장의 텐트를 유심히 본것이다.

사람이 있는것 같은데 며칠째 기척이 없어니 봉대가 내려와

굶어죽어가는 나를 발견하였고 집에서 뜨거운물과 미음을

가져와 나를 살린것이다.

그때 봉대는 보리쌀 두되를 주면서 밭에 고추를 뜯어

먹게해 고모부가 올때까지 먹고 지내라며 은혜를

베풀은것이다.

그때의 보리밥맛은 아침엔 풋고추 를 고추장에 찍어먹고

점심엔 풋고추를 썰어 비벼먹고 저녁엔 물에 말아 풋고추를

찍어먹고 맛있었다.

그뒤 고모부는 서울에서 보름후에 돌아오시면서 병원에

검사받고 다른일로 좀늦었다한다.

난 아무말 하지 않았다.

무슨일 있었는지 썩은 자존심에 아무런 말을 할수없었다.

난 바보! 그뒤 굴양식장에서 태풍대비를 한참할때다.

태풍이 온다하니까 먼저 갈매기가 사라져버렸고,

바다에는 배들도 없어져 폭풍전야를 느낄수있었다.

얼마뒤 고압선우는 소리같은 우웅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닷물이 누런색으로 변해지고 금새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바람이 몰아치고 산더미같은 파도가 덮치기 시작햇다.

쌓아놓은 로프더미를 파도에 휩쓸리지않게 하기위해

바위에 묶어놓은 줄이 끊어질까 혼자 잡고있었다.

그때 너무 큰 파도가 들이닥쳐 난 그만 무서워졌다.

결국 밤에 비바람을 맞으며 약1km정도를 달려가 섬 언덕위

해신당에 둘어간 뒤 지쳐 쓰러져 잠이들었다.

일어나니 벌써 밝은 아침이 왔고 추섬앞 해변가 양식장에는

사람들이 복구작업을 하고있었다.

여자들은 해변가에서 떠내려온 깊은바다의 조개랑 멍개들을

주워담고 있었다.

그때 정례라고 하는 한 처녀에가 수줍은 듯 큰 멍게를

하나주워 그릇에 담아 텐트앞에 놓아 놓고 도망쳤다.

그 뒤 한 이틀뒤 한창 파손된 굴 양식장의 라인을 백사장에서

복구작업을 하고 있을때 멀리서 하얀 보자기가 하나

떠내려 왔다.

난 그 보자기가 혹시나 밀수 배가 풍랑을 만나 흘려버린

돈 보따리가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만큼, 돈이 간절했다.

서울 뚝섬 단칸방에서 밀린 쌀값, 연탄값, 동생들 학비며,

기타 생활비등과 함께, 얼굴에 화상을 입고 빚쟁이에

시달릴 어머니의 얼굴이 어른거려 점심을 공용 막걸리로

때울 정도 였다.

양식장에 있는 하나짜리 노로 젖는 뎃마라는 쪽배를 타고

그 하얀 보따리 근처로 다가갔을때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건 떠내려온 시체 였던 것이다.

난 바로 해변으로 돌아와 동네 어른뻘 인 십장어른에게

알렸다.

그분은 오히려 어장에 시체가 떠내려오면 풍년이라며 길조라

좋은 일이라 한다.

그뒤 십장어른은 마을로 넘어가 소주 한병과 이불의 하얀천

그리고 쌀을 밥그릇에 조금담아 파견나온 초소 순경을

대동하고 돌아왔다.

우린 뎃마를 타고 시체가 걸린 근처로 다가갔다.

십장은 가져온 소주를 시체근처에 뿌린다.

나중에 알았지만 냄새를 없애고 소독하는 것이라한다.

그뒤 가져온 쌀을 밥그릇에담아 이불보에 말아 시체근처에

휙 돌리니 쌀알들이 시체주위로 떨어져내린다.

그건 고기들 보고 시체 뜯어먹지 말라고 먹이를 주는

것이라 한다.

그다음 십장은 로프로 고리를 만들더니 시체다리에 걸고

한편으로 그 끝을 내가 현장감독이며 책임자라고

내 허리끈에 묶어 버렸다.

시체가 끌려오는 묵직한 느낌이 부담스러워 뎃마위에

주저앉았다.

그때 순경은 변사체라며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자는 텐트옆에 두었다가 내일 처리하여야

한다고 한다.

난 밤에 잘 때 혼자 자므로 도저히 안된다며 건너편 추섬에

놓아두자고 순경에게 간청하였다.

추섬은 우리 해변에서 바로 보이는 무인도로 뱀이 많으며

물이빠질땐 걸어다닐수 있는 작은 돌이 많은 섬이다.

노를 저어 그 추섬 까지 가는데 도저히 바위들이 많고

물이 들어오고 있어 배를 댈수가 없었다.

할수없이 내려서 뒤에 시체를 끌고 물을 걸어가고 있을 때

뒤에서 파도가 쳐 시체가 내 다리를 스쳐버렸다.

난 놀라 뒤로 넘어지며 시체의 얼굴을 짚어버렸다!

그때의 그 미끈한 감각이 소름을 쫙 끼치게하여 놀라는

사이 넘어지면서 그만 눈도 없이 움푹한 시체의 얼굴을

손으로 눌려 버린것이다.

그러자 너무 놀라 난 배위로 정신없이 올라가 쓰러져버렸다.

깨어보니 그시체는 가마니로 덮어놓고 배는 우리 해변쪽으로

다가가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날보고 겁이 많다며 놀려대며 추섬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하며 다들 마을로 돌아가버렸다.

같이 고시공부하던 친구 세명이 놀러왔다 합격한 친구가

추섬 벼랑끝에 앉아 하모니카 불때 다른 친구들이 질투가

나 절벽에서 밀어 죽여 버렸단다.

그뒤 비오는 날이면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며 하모니카

귀신을 조심하란다.

또 인근 멸치막에서 키우던 개가 아침에 떠밀려온 시체를

뜯어 먹어버려 그개를 죽여 버렸단다.

그뒤부터 이 신수도 백사장에 그 개귀신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난다고 조심하란다.

양식장에 사람들은 다 떠나고 해는 저물어 가는데

그 귀신소리가 자꾸만 되새겨졌다.

내 텐트는 몽고형 군용텐트이다.

가끔씩 한뼘정도의 시커먼 지네가 나타나 야전침대속에

기어들어와 깜짝 놀래곤 한다.

텐트앞에 앉아 마산 백광소주 됫병짜리를 통째로

들이키면서 추섬을 바라보니 그 시체 덮은 누런

가마니짝이 또렷이 보인다.

그날이 유독 간만의 차가 심한 사리라 보름달은 휘엉청

뜨고 바닷물은 점점 텐트앞까지 쳐들어오며 바닷물속의

야광충들은 빛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밀려오는 바닷물을 보며 여기 물이 이렇게 밀려오면

저기 추섬 시체자리에도 바닷물이 밀려올거라 생각하였다.

금방이라도 시체가 시커먼 바닷물속에서 밀려 올것 같았다.

1되 짜리 백광소주를 다 들이 키고도 무서움이 스며든다.

도저히 여기에서 잠을 잘수 없어 산넘어 마을 쪽으로

달려가니 꼭 무언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만같고

무서움 에 노래를 소리를 막 지르며 마을 선창 주막집과

해신당에서 밤을 새웠다.

그 다음날이 내 생애 처음으로 신문기자와 인터뷰하고

내이름이 신문에 난 날이다.

경남매일 신문인가 익사체를 발견한 굴양식장 김모씨

말에 의하면 하는 그 김모씨가 바로나 인것이다.

그 신문조각을 꽤나 오래 지갑에 넣어 다니다 언젠가

잃어버렸다.

그뒤 추섬 그자리 옆에 가매장을 해놓은 이틀뒤

남해 이동면 교감부부가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익사체를 보더니 사모님이 쓰러져 버렸다.

바로 초등학교 5학년 아들 이었던 것이다.

태풍이 불기전 바람이 거칠때 바닷가에 꼬막을 주우러

갔다가 파도에 휩쓸렸던것이다.

반바지에 흰런닝셔츠를 입었고 하늘색 줄무니

바지주머니에는 꼬막이 3개 들어 있었다.

그러니 들이마신 공기로 부풀러 오른배가 흰런닝에 덮혀

멀리서보면 하얀보따리 같이 보였던것이다.

그때 그 교감내외분이 고맙다고 3천원을 주고 가셨다.

그날 1천원은 저금하고 나머지 돈으로 큰맘 먹고 우리

야키다마 통통배 기관장 익구를 꼬셔 삼천포에 나갔다.

매미집 작부 한명을 꼬셔 막걸리랑 생선회를 한 대야

된장에 무쳐 먼바다로 나갔다.

술마시고 고래 고래 소리 지르고 웃다가 울다가 실컷

놀다가 돌아 왔다.

이 신수도의 추섬앞 그백사장에서의 생활은

그런대로 편리하다.

화장실은 그냥 바다에 볼일보고 모래로 씻고 바닷물로

닦으면 끝이다.

다음날이면 깨끗이 없어진다.

바닷물에선 상처가 생겨도 소금물에 소독이되서 금방 낫는다.

또 빨래도 끈에 연결해서 바닷물에 던져놓으면

파도에 의해 자동 세탁되고 바위에 말려 놓으면 소독도

되고 마르면 탁탁 소금을 털어내면 깨끗해진다.

나중에 바닷물에 빨래하는 파란색깔의 빨래비누까지

나와서 정말 편리했다.

저녁이면 마을 총각 처녀들이 산다이 한다고 백사장에

놀러온다.

복판에 막걸리통이랑 대야에 굴양식장의 굴똥을 먹으로온

꽁치를 훌치기로 잡아 한 대야 된장에 무쳐놓고 돌아가며

노래부른다.

한명이 선창하면 다같이 박수치며 따라부른다.

하루일을 마치고 이렇게 놀면 정말 흥겹다.

가끔씩 술이 심해져 싸움이 일어나 많이도 맞고 싸움도

많이 배웠다.

당시 신수도는 하도 사건이 많고 거친곳이라 진주지검

땅이라 했단다.

특히 가슴에 해병대 문신을 왕창 새긴 강기식이가

주정하면 아무도 못말렸다.

보이는것마다 다들고 던지고 도끼를 들고 찍어려고

어찌나 설치던지 바닷물속으로 도망간적도 있다.

하지만 끝내는 술취한 기식이를 달밤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한번 때려눞힌적이 있었다.

모기를 피해 방파제에 누워있던 나를 발로 차며 비켜라고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인근 운동장에서 더이상 시달리며 지내기가 싫어 들어서자

마자 박치기로 그뒤 목을 졸라 엎어놓고 발로 밟아버렸다!

술 취한 인간이니 그 모양이지 그리곤 냎다 도망을 쳐버렸다!

그다음은 섬에서 지내기가 한결 편해졌다!

가끔 고기가 모자라면 군용잠바를 입고 색안경 하나끼고

멸치 삶는배에 쳐들어가서 잡어들을 한바케스 얻어오곤 했다.

또 저녁이면 간크게 삼천포까지 밤길에 1시간동안 노를 저어

여자애들과 극장구경을 갔다오곤했다.

섬생활에서 좀 여유가 생길때 봉대 장모가 밥을 해다 주었다.

그반찬이 청각국에 뱀알이라는 바위에 붙은 따개비 종류와

전복새끼 같은 금복을 까서 반찬을 해주니 그맛을 지금도

못잊는다.

30년이 지난 몇년전에 그섬을 가보았더니 많이 달라져 있었다!

추섬 백사장 앞에는 웬 화력 발전소가 눈에 보이고

그 백사장의 주인이 엣날에는 나였는데 백사장 유원지

아줌마가 여길 어떻게 오셨냐고?

당황한 내모습이 텐트자리로 발걸음을 돌리다가 축대밑에서

녹슨 펜치를 찾아냈다!

그게 나의 흔적이었고, 코컹컹이 에쁜처녀애가 나를위해

청자담배를 숨겨놓았던 그 축대!

보고 싶다! 근데 부산으로 시집갔단다!

봉대 장모는 건강하시게 아직도 잘지내시고 있었다.

나하고 연분이 있었던 선자라는 처녀애는 선창 횟집

여자의 올케가 되어 있었다.

아직도 내 생명의 은인 봉대라는 늙은친구와는

가끔씩 연락하며 회포를 나누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