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면 항상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친구가 있다.힘들었던 군대이야기, 아름다웠던 첫사랑이야기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술술 풀어놓는 것이다.내 얼굴을 빤히 보며 나의 허벅지를 자신의 왼손으로 툭툭 쳐가며 귀 기울여 보라고, 한번 들어보라고.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이미 수백번은 더 들었을법한 이야기다.그 친구는 술자리를 가질때마다다시 말하고 또 다시 말하고...마치 자신의 입에 ‘도돌이표’가 달린 것처럼나에게 말해왔던 것이다.생각해보면 친구는 므두셀라 증후군에 빠졌을지도 모른다.이 친구를 보면 로맹롤랑의 베토벤의 생애에 적혀있던 글귀가 떠오른다. "넋은 극진히도 기쁨을 요구하는 것이어서현실에서 그 기쁨을 찾지 못하면 그것을 스스로 창조해내지 않으면 안된다.현재가 너무도 참혹할 때 넋은 과거에서 그것을 찾는다."대충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던 걸로 기억한다.나 역시도 무척이나 동감하는 바이므로그 친구의 수없이 '반복되는, 따분한' 말을안쓰러운 표정을 하고 듣고 또 듣고, 듣는 ‘척’하는 것이다. 리히터의 슈베르트도 D.894 1악장에서 이런 ‘따분한’ 짓을 하고 있다.우선 7분 30초 동안 무척이나 아름다운, 꿈결을 거니는 듯한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다.마치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시키는 내 친구처럼.'아 이제 끝났다.' 싶은 순간 또 다시 그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돌아가완전히 똑같은 어조로 다시 한번 더 반복한다.꿈같은 추억이여 다시 한번이라는 느낌으로켐프가 4분내외로 연주한 부분을 리히터는 정확히 도돌이표를 지켜 느린 템포로 15분간 연주한다. 아름다운 과거에 집착하여 도돌이표를 넣은 슈베르트도,슈베르트가 지시한 그 거대한 도돌이표를 한치의 오차없이 지킨 리히터도 고집 있지 않은가?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듣는 척 할 필요는 없다. 자연스레 무한히 듣고 싶어진다.너무나도 절박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후 짧은 비통한 선율이 5분가량 연주되는데슈베르트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을 고려해 볼때그 선율은 너무나도 짧디 짧다.그 선율조차 처음의 아름다운 선율을 바탕으로 하기에 비통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그것은 아마도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이 끊임없이 현재의 상심한 넋에 손짓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또다시 6분간 처음의 선율을 약간 변형시킨 꿈결 같은, 몽환적인 선율이 또 나오고 악장은 조용히 마무리된다.그러니깐 슈베르트는 내 친구처럼 했던 이야기를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3번이나 악보에서 반복하고 있다. 도돌이표를 사용해서 말이다. “나도 이런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슈베르트와 리히터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또 듣고 싶어진다.미화된, 잘못 기억된 과거를 진실로 믿는듯한슈베르트의 순수하고 어리숙한 심성이그 '도돌이표'를 준수하는 바로 그 순간 슈베르트의 진심이 나에게 전해져온다.슈베르트와 리히터는 26분의 긴 연주 시간 내내대부분 미화된 과거 속에서 허우적대지만그들은 미화된 과거를 진실로 믿고 '두번 이야기'하기에 진정으로 나에게 느껴진다. 따라서 반복하지 않은 켐프의 연주, 도돌이표를 준수하지 않은 켐프의 연주는 싫다.아름다운 선율, 즉 과거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지 않는 삭막한 켐프는 싫다. 학생 하나가 그라나도스의 조곡을 연주하다가 반복부를 계속 치지 않고 그냥 중단해 버렸다. “뒤는 똑같아요.” 그녀는 그렇게 내뱉었다. [......] 페터는 짐짓 경악하는 표정을 짓더니 달려들었다. “똑같다고? 똑같다고? 이게 비디오 기계처럼 빨리 감기를 해버리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나요?그라나도스가 반복을 하라고 했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음악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유 말이에요. 반복부는 결코 ‘똑같은 게’ 아니에요. [......]” -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 사드 카하트/정영목역 276페이지.
도돌이표 예찬론
힘들었던 군대이야기, 아름다웠던 첫사랑이야기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술술 풀어놓는 것이다.
내 얼굴을 빤히 보며
나의 허벅지를 자신의 왼손으로 툭툭 쳐가며
귀 기울여 보라고, 한번 들어보라고.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이미 수백번은 더 들었을법한 이야기다.
그 친구는 술자리를 가질때마다
다시 말하고 또 다시 말하고...마치 자신의 입에 ‘도돌이표’가 달린 것처럼
나에게 말해왔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친구는 므두셀라 증후군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이 친구를 보면 로맹롤랑의 베토벤의 생애에 적혀있던 글귀가 떠오른다.
"넋은 극진히도 기쁨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현실에서 그 기쁨을 찾지 못하면 그것을 스스로 창조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가 너무도 참혹할 때 넋은 과거에서 그것을 찾는다."
대충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 역시도 무척이나 동감하는 바이므로
그 친구의 수없이 '반복되는, 따분한' 말을
안쓰러운 표정을 하고 듣고 또 듣고, 듣는 ‘척’하는 것이다.
리히터의 슈베르트도 D.894 1악장에서 이런 ‘따분한’ 짓을 하고 있다.
우선 7분 30초 동안 무척이나 아름다운, 꿈결을 거니는 듯한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다.
마치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시키는 내 친구처럼.
'아 이제 끝났다.' 싶은 순간 또 다시 그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돌아가
완전히 똑같은 어조로 다시 한번 더 반복한다.
꿈같은 추억이여 다시 한번이라는 느낌으로
켐프가 4분내외로 연주한 부분을 리히터는 정확히 도돌이표를 지켜 느린 템포로 15분간 연주한다.
아름다운 과거에 집착하여 도돌이표를 넣은 슈베르트도,
슈베르트가 지시한 그 거대한 도돌이표를 한치의 오차없이 지킨 리히터도 고집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듣는 척 할 필요는 없다. 자연스레 무한히 듣고 싶어진다.
너무나도 절박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후 짧은 비통한 선율이 5분가량 연주되는데
슈베르트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을 고려해 볼때
그 선율은 너무나도 짧디 짧다.
그 선율조차 처음의 아름다운 선율을 바탕으로 하기에 비통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이 끊임없이 현재의 상심한 넋에 손짓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또다시 6분간 처음의 선율을 약간 변형시킨 꿈결 같은, 몽환적인 선율이 또 나오고 악장은 조용히 마무리된다.
그러니깐 슈베르트는 내 친구처럼 했던 이야기를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3번이나 악보에서 반복하고 있다. 도돌이표를 사용해서 말이다.
“나도 이런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슈베르트와 리히터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또 듣고 싶어진다.
미화된, 잘못 기억된 과거를 진실로 믿는듯한
슈베르트의 순수하고 어리숙한 심성이
그 '도돌이표'를 준수하는 바로 그 순간 슈베르트의 진심이 나에게 전해져온다.
슈베르트와 리히터는 26분의 긴 연주 시간 내내
대부분 미화된 과거 속에서 허우적대지만
그들은 미화된 과거를 진실로 믿고 '두번 이야기'하기에 진정으로 나에게 느껴진다.
따라서 반복하지 않은 켐프의 연주, 도돌이표를 준수하지 않은 켐프의 연주는 싫다.
아름다운 선율, 즉 과거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지 않는 삭막한 켐프는 싫다.
학생 하나가 그라나도스의 조곡을 연주하다가 반복부를 계속 치지 않고 그냥 중단해 버렸다. “뒤는 똑같아요.” 그녀는 그렇게 내뱉었다.
[......] 페터는 짐짓 경악하는 표정을 짓더니 달려들었다.
“똑같다고? 똑같다고? 이게 비디오 기계처럼 빨리 감기를 해버리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라나도스가 반복을 하라고 했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음악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유 말이에요. 반복부는 결코 ‘똑같은 게’ 아니에요. [......]”
-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 사드 카하트/정영목역 276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