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5일 - 서울을 바다에 빠뜨리는 법

박웅호2009.10.31
조회117

  어늘 날 갑자기 친구가 내게 질문을 했다.

"야, 서울을 바다에 빠뜨리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이공계열로는 완전 꼴통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그걸 알 턱이 있나?

 

  허~ 참. 서울을 바다에 빠뜨린다?

  셈에는 전혀 자신이 없는 놈이니까 그냥 내가 배워먹은 대로 이 문제에 접근해 보기로 했다.

 

  우리나라 큰 도시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자를 쓰지 않고 우리말로 된 도시가 어디일까?

  바로 서울이다. 서울이라는 지명은 본래 서라벌에서 온 말이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

 

  통일 신라가 고려에게 패망하고 문화, 경제, 군사의 중심지가 개성 지방으로 넘어가게 되고 또 조선이 들어선 이후로 서라벌은 변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유독 이 서라벌이라는 지명만은 살아 남았다.

  서라벌이 신라 시대에는 어떤 식으로 읽혔을 지 정확하게 그 모습을 알아낼 수는 없지만, 보통은 '새라, 새불'등으로 읽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그와 비슷한 한자음을 가차하여 '徐羅伐'이라고 적었고 한자의 음만을 따서 읽는 방식이 널리 퍼지자 지금처럼 서라벌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 서울이라는 말의 ㅂ은 본래 ㅂ순경음으로 표기가 되었었다. 해체시로 유명한 저 황지우의 시 '徐伐, 셔발, 셔발, 서울, SEOUL'에서 그러한 음운의 내적재구 과정이 잘 드러나는데(여기서 쓴 ㅂ은 모두 ㅂ순경음) ㅂ순경음이 임진왜란 이후에 ㅗ/ㅜ로 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셔블>서울'로 변화했을 것이다.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이 대한민국의 수도를 뜻하는 말이 되었으니 이것은 곧 의미가 변화(이동)한 예라 할 수 있다.

 

  의미의 변화 양상에는 서라벌처럼 말과 대응되는 의미가 변화하는 의미의 이동이 있고, 또 의미가 더욱 커지는 확장, 의미가 쪼그라들어 버리는 축소의 세가지 양상이 존재한다. 가령, 지갑은 원래 종이로 만든 것만을 뜻하는 것이었으니 지금 천이나 가죽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니 의미의 확장이 되는 것이고, 사랑하다는 말은 원래 사랑하다, 생각하다의 의미를 가지던 것이 지금은 사랑하다는 의미로만 쓰이니 의미의 축소에 해당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서울을 바다에 빠뜨리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잘 생각해 보자. 아이들에게 물어보자.

  "미국의 서울이 어디지?" "워싱턴이요."

  "좋아 그럼 미국의 수도는 어디지?" "워싱턴이라고요."

  한국의 수도는 서울이고, 미국의 서울은 워싱턴이고 일본의 서울은 도쿄다.

  어느 순간부터 서울이라는 말은 수도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의미의 변화양상으로 보자면 이것은 지갑 같은 의미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본래는 신라의 수도 서라벌을 뜻하는 고유명사였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수도를 뜻하는 서울로 의미가 한 번 이동해 버리고 그 다음에는 국가의 수도를 뜻하는 것으로 의미의 확장이 일어난 것이다.

 

  좋아. 이제는 그 서울을 바다에 빠뜨릴 차례다.

 

  아이들에게 또 한 번 물어보자.

  "대한민국 관광의 수도가 어디지?"

  제주도, 울릉도, 독도, 경주, 고성, 속초 뭐 제멋대로의 대답이 쏟아진다.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며 목청 돋우며 싸움질을 한다.

  그러다 결국 아이들이 짚는 곳이 제주다.

  그럼 다시 물어보자.

  "대한민국 관광의 수도가 어디지?"

  "제주도~"

  "좋아, 그럼 대한민국 관광의 서울이 어디지?"

  "제주도."

  제주란다. 대한민국 관광의 서울이 제주도란다.

  휴~ 겨우겨우 서울을 바다에 빠뜨렸다.

 

  대한민국 관광의 서울이 제주라면, 제주는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니 잘 생각해보면 서울이 바다에 빠진 꼴이 아닌가?

  돈 한푼 안 들이고 서울을 바다에 빠뜨렸으니 나는 당당하게 그 친구에게 가서 그 대답은 0원이라고 해야하는건가?

 

  요새 사대강이니 살리기니 해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나로서는 셈조차 되지 않은 막대한 돈을 처들여서 도대체 얻으려고 하는 것이 뭔지조차도 셈이 되지 않는다.

  돈 한푼 안 들이고 제주도를 서울에 빠뜨리는 것과 그런 억소리 나는 돈을 처들이고 온 국가에 물길을 내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경제적인 것일까?

  이공계열로 꼴통인 나로서는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것에 앞서 경제를 우선시하는 지금의 이 나라에서 나 같이 허무맹랑한 사람은 당연히 환영받지 못할 거라는 걸 나도 잘 안다.

  그래도 나같이 이공계열 쪽으로는 꼴통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에게도 그게 얼마나 국가와 국민의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정도는 제대로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쓸데없이 광고 만드는 것에다 돈 처바르지 말고,

  돈 한푼 안 들이고도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방법은 찾아보면 참 많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서울을 바다에 빠뜨린다.

  허무맹랑하다고 하겠지.

  내가 그들을 허무맹랑한 놈들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이!

 

 "미국의 서울이 어디지?"

 "미국의 수도가 어디지?"

 미국에는 분명 수도가 있다. 미국에 서울은 없다.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미국의 서울이 워싱턴이라고 믿게 하는 것뿐이다. 미국에서도 서울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있다고 믿게끔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관광 수도가 제주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서울이 그런 식으로 바다에 빠진다는 것도 역시 중요한 일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것이다.

 

 사대강? 그걸 하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무엇이 과연 좋아지는 것일까?

 무엇을 믿어야 하는 걸까? 그 사람들 말을 순순히 다 믿어주기에 그들의 행보는 너무 아마추어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