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내부의 외인부대들..

덮쳐보니 마누라200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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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는 다양한 외국인 의용부대(Freikorps/Free Corps)와 징집병력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나 영국과는 달리 해외식민지가 없었던 독일은 이들을 이용하여 부족한 병력을 메웠다고 한다.

특히 독일의 친위대(Schutzstaffel)소속 무장전투집단으로서 무장친위대(Waffen-SS, Heinrich Luitpold Himmler/하인리히 힘러)는 반공산주의자를 중심으로 의용군단(Freikorps)을 창설하는데 종전 무렵에는 무장친위대의 약60% 병력이 독일인이 아닌 외국인이었다고 한다.



# 벨기에 발로니군단은 독일점령지 벨기에의 나찌주의 정당 '렉시스트당'을 중심으로 조직된 부대로 반공산주의운동의 일환으로 동부전선에 참전한다.  1943년 육군에서 무장친위대(Waffen-SS)로 소속이 바뀌면서 '제28의용기갑척탄병사단'으로 개칭된다.




 






# 무장친위대 자유인도의용여단 (Indische Freiwilligen Legion der Waffen-SS) ; 전쟁포로가 되었던 영국군 소속 인도병사를 주축으로 창설된 부대로 독일육군소속으로 창설되어 무장친위대(Waffen-SS)로 소속이 이관되었다.








 



# 프랑스 의용군단 (French Wehrmacht troops) '대볼세비즘 프랑스 의용군단(LVF)'은 주로 전직 프랑스군 장병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2,500여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1941년 10월 동부전선에 투입되어 주로 러시아 빨치산 토벌임무를 수행하였다.  1944년 9월 무장친위대(Waffen-SS) '제33사단 사를마뉴'로 개편되었다.






 



# '독일 육군 제288특수부대' ; 영국 식민지 였던 이라크에서 모집한 '아랍인부대'로 1942년 3월 창설되었고, 같은해 10월 "자유아랍 기갑척탄병 연대'로 개편되었다.  2,000여명으로 구성된 이 부대의 소대장 이상 지휘관은 독일군 장교였으며 북아프리카의 흑인병사들도 있었다.

# 영국자유군단 (British Free Corps(BFC, Britisches Freikorps)) ; 영국 및 영연방국가 시민들로 구성된 부대로 30명 내외의 인원으로 독일의 선전용으로 존재하였다 (미국자유군단 '조지워싱턴 여단' 또한 5명 내외의 병력이었다고 한다)



# 자유러시아군 (Russkaia Osvoditelnated Armiia, ROA)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된 소련군 포로중에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약 150만명의 병력이 독일군에 지원한다.  레닌그라드전투에서 포로가 된 '안드레이 A. 블라소프'장군의 지휘를 받은 이들은 독일군과 소련군으로 부터 버림받는 처지의 불행한 군대였다.

# 동방군단 (Ost Truppen, 오스트 트루펜, "Eastern Legion") 은 초기 자유러시아군 (ROA) 지원병 중에서 아시아계 '투르크스탄; 터키인'와 코카서스계로 구성된 부대로 1941년부터 독일군에 편입되어 6개 여단으로 구성되어 운용되었다.  이들는 소규모 단위로 분산되어 유럽전선 전역에서 전투를 수행했다




# 발트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쿠아니아'의용군은 1943년 무장친위대에 편입되지만 이후 1944년 1월 친독일계 괴뢰정부의 정부군으로 선언되어 "독일과 대등한 우방국 군대"가 되었다.

# 코사크기병대(Cossack cavalry troops)는 러시아 들판과 발칸반도의 산악지대에서 높은 전과를 올려 독일군내에서 상당한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어 독특한 복장으로 복무를 하였다.

# 우크라이나 의용군은 전쟁초기 약 18만명으로 구성되었고 주로 소련군의 위장, 적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해 독일군에 협력하였으나 결국 우크라이나 해방군은 되질 못했다.




# 노르망디의 조선인 (장웅진 지음) / 1944년 6월 노르망디에서 포로가 된 한국계 독일군 병사







British Free Corps(BFC, Britisches Freikorps)



Ostbataillon (동방군단)




무슬림으로 구성된 독일군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항복한 이후 약 9만명의 이탈리아군이 독일군에 합류한다.  이 중에서 약 5만명은 대공포요원으로 독일공군에 근무하고 약 2만명은 무장친위대에 '폴고레'사단 및 '넴보'공수사단 출신자 들은 독일공군 제4공수사단에서 복무하였다고 한다.


 


PS. 2차 대전 초기만 해도 유럽의 신흥강국인 나치 독일은 그야말로 떠오르는 별이었다..


 실제로 독일의 나치즘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으며 무서운 기세로 유럽을 장악해 가던 독일군에 자발적으로 참가한 이들도 꽤 되었다..


 특히 소비에트(구 소련)에서 가장 많은 수의 지원병들이 속출했는데 그건 당시 소련의 철권통치자 스탈린의 오랜 숙청과 공포정치에 의해 가족과 친지 이웃을 잃은 수많은 반 스탈린 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련을 점령했을 때 너무 많은 독일군 지원자들이 몰려와서 독일군의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이를데 없었다..


 민족과 성향별로 너무 차이가 많이 나는 각양각색의 소련인 지원병들은 소규모 단위로 떼어져서 분산배치되었다..


 위의 거의 모든 외인부대들은 결국 대전 당시에는 독일군의 보조세력으로 소모품 취급을 당했으며 대전 후에는 국가와 민족의 배신자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비록 나치 독일이 패망하긴 했지만 이런 각양각색의 성향을 지녔던 외인부대들을 모두 단순한 배신자로 단정짓기에는 무리라고 본다..


 그들 중에는 구 제국주의 국가들(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식민지 출신인들도 상당수 있었으며 나름대로 나치독일의 편에서는 것이 자국과 자민족의 독립에 도움되고 승산이 있다고 평가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해외식민지가 거의 전무했던 독일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세력들을 이용했을 뿐이었겠지만 그렇다고 이용당한 이들도 무작정 나치독일에 대한 단순한 협조자로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나치독일을 이용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까..


 


 일반화의 오류란 것이있다..


 어떤 단체나 집단을 전반적인 성향이나 그것을 구성하는 다수의 성향만 가지고 모두다 똑같은 것으로 단정지어버릴 수는 없다..


 비록 나치독일이 인종청소나 반대세력에 대한 끔찍한 탄압 등 많은 범죄를 자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시 나치 독일의 모든 구성원들을 똑같은 성향으로 분류하고 비난 만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따지고 보면 제국주의 식민지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독일이든 연합국이든 별 차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오히려 새로이 일어나서 기존 제국주의 국가들을 무너뜨리는 독일이야말로 약소민족들에게 구원자로 보였을지 모른다..


 비록 독일이 패망했기 때문에 독일측에 붙었던 외인부대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승자와 패자가 바뀌었다면 또 어땠을지 모른다..


 그들은 독일의 도움을 받아 민족의 독립 염원을 달성하면서 지금 자국 독립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을런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