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알자스로렌)과 쾨니히스베르크(동프로이센) ~ 퍼 온 글

덮쳐보니 마누라200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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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스 로렌
스트라스부르(알자스로렌)과 쾨니히스베르크(동프로이센) ~ 퍼 온 글


알자스로렌의 주도 스트라스부르의 거리
 
알퐁소 도데의 '마지막수업'이라는 소설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프랑스의 알자스로렌(독일어로는 알사스-로트린겐)지방만큼 역사*문화적으로 특이한곳도 드물듯하다.  이곳에 사는사람들은 대부분 독일계로 주도인 스트라스부르(독일어로는 슈트라스부르크)를 비롯하여 베르크하임, 뮐하우젠등 독일식 지명이 다수남아있고 유명한 슈바이처박사나 금속활자의 구텐베르크도 이곳출신인데 분명 이곳은 프랑스땅이다.
 
그만큼 독일과 프랑스를 왔다갔다하던 땅인데...지리적으로도 독일과 국경지대인 이곳은 옛부터 지금은 독일땅인 자르-브뤼켄과 함께 자원의 보고로 유명해서 독일과 프랑스는 이땅을 두고 쟁탈전이 심하였다. 역사적으로 동프랑크왕국령으로 출발하여 신성로마제국령, 잠깐 프랑스땅이 됐다가 다시 합스부르크계열의 부르고뉴왕국땅도 됐다가, 원래의 신성로마제국의 일부로 다시돌아오고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키면서 프랑스영토로 편입시킨역사가 있다. 1871년 보불전쟁을 통해 다시 독일령이 되었다가 1918년 1차대전이 끝나고 다시 프랑스령이 된후 지금껏 프랑스땅으로
존속해오고 있다.
 
사실 보불전쟁이후의 내용을 담은 '마지막수업'에서는 더이상 프랑스어를 배우지못하는것을 내세워 알자스의 프랑스인들의 '나라잃은슬픔'을 대변하고자 했지만 본인이 볼때는 그것보다도 나폴레옹에 의해 강제 편입된후 프랑스혁명사상이 이들에게 녹아들어 반동적인 독일체재로의 회귀가 두려웠음이 분명했고 이것에 대한 거부반응이었지 '위대한 프랑스인'이 독일놈들에게 짓밟혀 자존심이 상한다는 감정은 아니었을듯하다.(그것도 비스마르크라는 철혈재상이 이끄는 독일인데..)  
 
1918년 1차대전이 끝난후 알자스로렌지방에서는 프랑스로 귀속될것인가 독일로 귀속될것인가를 결정하는 주민투표가 있었다. 투표결과 프랑스가 우세여서 결국 프랑스로 귀속되는데 이것도 보면 전쟁에 패해 완전히 거지꼴이 된 독일..그것도 보수반동적인 독일보다는 그래도 승전국인 프랑스로 귀속되는것이 여러모로 이익이므로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음에는 분명하다.
 
  
 
東 프로이센(東프러시아)
 
반면에 1918년 똑같이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독일령으로 귀속된땅이 있으니 지금의 폴란드 북부와 서부지방인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이다. 사실 동프로이센지방은 원주민이 있었지만 나라의 기틀을 갖추게된것은 독일의 동방개척덕분으로 주도인 쾨니히스베르크(現 칼리닌그라드)나 마리엔부르크(現 말보르크)는 독일기사단(흔히 말하는 튜튼기사단)이 황무지에 건립한 도시이다.
 
어쨌든 서유럽과 동유럽의 문화 및 사상차이는 20세기초에도 꽤 컸다는게 1918년 주민투표로 증명되는데 쾨니히스베르크에서 공부했던 유명한 독일수학자 오일러는 '함부르크와 뮌헨도 서로 힐난하며 이견이 큰데 동유럽과 서유럽은 오죽하겠는가'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쾨니히스베르크와 스트라스부르의 차이는...? 아무튼 독일내에서도 서로의 문화와 생각의 차이때문에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거지껍데기속에서 통합되지못하고 이나라 저나라에게 짓밟히고 살았는데 그것을 통합한것이 독일내에서도 변방인 프로이센이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2차대전말기에는 소련군이 '처음 만나는 독일땅'이라는 죄명(?)으로 말로 표현못한다는 소련군의 보복을 가장 호되게 당했고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영미연합군의 폭격기도 쾨니히스베르크를 수차례 강타했으니 과거 프로이센의 영광은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쾨니히스베르크는 오히려 다른것으로 더 유명하다. 단치히와 함께 한자동맹의 맹주도시중 하나였으며 독일철학자 칸트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살던곳이고 한붓그리기를 풀기위해 오일러,가우스등 유명수학자들이 들러붙은 프레겔강의 7개의 다리가 바로 그것이다.
 


스트라스부르(알자스로렌)과 쾨니히스베르크(동프로이센) ~ 퍼 온 글


불가능으로 알려진 프레겔강의 7개의 다리. 지정된 두장소를 7개의 다리를 한번씩만 지나가서 도착하게끔 하는...실제로 가능한줄알고 풀어보려했으나 좌절했음.
 
지금은 러시아땅이니 독일인들은 독일철학자의 묘에 참배하기위해 러시아땅으로 들어가야하는 참 뭐한 상황이 연출되고있다. 지금도 독일은 이곳을 쾨니히스베르크라 부르며 독일경제권으로 묶어두기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있지만 2차대전후 정책적으로 독일인을 추방하였기때문에 다른 동프로이센지방과는 달리 독일어가 거의 통하지않고 공산주의식 무미건조한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예전의 색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전쟁전에 그곳에 살다가 최근 방문한 어느 독일인은 그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니...대충 어떤지는 짐작이 갈듯~
 
스딸린이가 쾨니히스베르크를 칼리닌그라드로 개명하고 독일인을 내쫓아 철저히 소련식으로 만든것은 두번다시 독일놈들이 동쪽으로 처들어오지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방어막 + 경고장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독일기사단에게 혼쭐이 난바있으며 1차대전때는 타넨베르크의 수치를 겪고 2차대전때는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처참함을 경험했으니 동방진출의 상징과도 같은 이곳을 철저히 개조하고 지금도 다른 동프로이센지방은 폴란드로 넘어갔지만 쾨니히스베르크 만큼은 본토와 떨어진 섬모양이라도 러시아영토로 존속시켜둔걸보면 본인생각이 그다지 틀린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머 사정이야 어쨌든 한때 두도시 모두 독일땅이었지만 지금은 독일이 아닌 서로 다른 두나라..그것도 엄청 다른 두나라의 영토에 속해있으니 100년 사람들은 짐작이나 했을까?~ 하는 잡생각으로 기나긴 잡설을 끝내본다~ ㅎㅎ
 
 
출처:http://blog.naver.com/sarnhornst?Redirect=Log&logNo=20019256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