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나는 고교 2년과 3년간의 봄방학에,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특별히 중병은 아니고 단순한 난치성 궤양 치료를 위한 입원이었기 때문에 식사 제한이나 운동 제한도 있는 것이 아니고 꽤 자유로운 입원 생활을 보냈다. 평소 없던 여유가 생겨 반쯤 즐기기도 했다.
다만, 내가 다니고 있었던 고등학교가 학구 내 탑의 진학교였기 때문에 숙제의 양이 굉장해서 이 점만은 꽤나 고생해야 됐다. 밤에 공부가 더 잘되는 타입이지만 9시 소등이니까 병실에서는 오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하의 자판기 코너를 자주 활용했다.
낮에는 매점과 식당이 근처에 인접하고 있는 일도 있어 활기가 느껴지는 있는 거기도, 밤이 되면 전기도 떨어져 자판기의 빛만 비춰 진다. 뭔가 몽환적인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공부에는 조금 어둡지만 거기가 좋다고 생각했다.
거기가 시작이었다.
장면 2. 만남.
밤 9시 정도에 내려 갔다가 11시정도 돌아온다. 그런 느낌으로 2, 3일 경과했을 때, 언제나 나의 10 m 정도 옆 의자에 앉아 음료를 마시거나 하면서 계속 앉아 있는 여자 아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키는 상당히 작아서 140 cm 정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인가하고 생각했다. 언제나 내가 공부를 시작하고 10분 정도 뒤에 와서, 내가 돌아갈 때도 거기에 있었다.
몇일이 지난 날, 어쩐지 신경이 쓰여 이야기를 걸어 보았다.
나 "이봐." 여자 아이 "?" 나 "여기, 매일 오는 거야?" 여자 아이 "병실에 있는 게 싫어서 가능한 한 여기에 있어. 그렇지만 낮에는 나가지 못하게 하니까... 그쪽도 언제나 여기 있지요?" 나 "여기 분위기가 마음에 드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숙제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지만." 여자 아이 "공부, 잘 해?" 나 "음? 아무튼... 일단 00고이고, 제법 윗 랭크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여자 아이 "머리 좋은 거 같네." 나 "너는...중학생?" 여자 아이 "그렇게 보여? 이렇게 작지만 나 지금 고2. 내년에는 3학년." 나 "진짜냐?! 동갑이잖아 !!"
확실히는 기억하진 않지만 대체로 이런 느낌이었다. 가장 놀란 건 역시 연령이었다. 어떻게 봐도 최대로 쳐서 중 3 정도였기 때문에... 그렇지만 어투나 분위기는 나보다 어른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장면 3. 기억
그 날부터 자연스럽게 내가 공부하고 있는 옆에는 그 아이가 앉는 형태의 구도가 되었다. 딱히 무언가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옆에 있는 것 만으로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흔히 있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어느사이엔가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어째서 입원하고 있어?"
가벼운 투로 물어 보았다. 대답은 매정했다.
"심장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아무런 생각없이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있는건가, 뭘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대답에 조금 동요했다. 고등학교도 거의 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살았다는 거 같다.
그녀의 병은 대동맥판 협착증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몇번이나 수술했지만, 또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 같다.
(이맘때 쯤 그녀의 이름이 지혜라는것을 알게되었다.)
지혜 "이번은 죽을지도 몰라"
이번에는 꽤 동요했다. 그렇다고 할까 벌써 달관한 느낌의 말투 때문에, 슬퍼졌다. 그 때는 나는 너무나 미숙했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지혜 "모레가 수술이니까."
그렇게 말한 그녀는 드물게 먼저 돌아갔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층은 3층. 흉부 심장외과 병동. 왠지 모르게, 그날 밤 조금 울었다.
장면 4. 편지
다음날은 하루종일 고민했다. 지혜가 없게 되는 것이 무서웠다. 단 2주간 정도 함께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도 좋아하게 된것일까...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하고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날의 밤, 나는 지혜에게 고백하기로 마음 먹었다. 만일, 정말로 만분의 일로 지혜에게 큰일이 생기기 전에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나는 초조해 졌다. 결국 다음날의 아침에 3층에 갔다. 그렇지만 간호사에게 수술 직전이니까 만날 수 없다고 제지 당했다.
나는 간호사에게 받은 메모지로 편지를 썼다. 좋아한다, 는 내용을 가득 담아.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면 부끄럽기 때문에 꼼꼼하게 접었다.
그것을 건네달라고 부탁했다.
장면 5. 답장
그리고 몇일이나 혼자서 지하에서 보내야 했다. 숙제는 이미 예전에 끝나버려 아무것도 할 게 없었지만 이전의 지혜와 같이 음료 마시던 곳에 마냥 앉아 있었다.
결과는 무서워서 물어 볼 수 없었고, 물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수술은 성공했다. 수술로부터 5일 정도 지나 휠체어에 타고 지하에 간호사와 같이 내려 왔을 때는 진짜 울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지혜가 억지를 부려 지하에 가는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채 편지만을 주고 돌아갔다.
「당신의 마음, 확실히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고백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용모이니까 꺼려지기도 했고 내가 피했던것도 있었고, 그런 것 생각한 적도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수술이 무서워졌습니다. 처음으로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직 완고하게 살아 있습니다. 마취으로 깨었을 때는 정말로 기뻤어요.
그렇지만 나는 길게 살 수 없습니다. 내일 죽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영리하니까 그거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만약
그래도 좋다면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내가 또 지하에 가면 언제나 처럼 있어줘.」
장면 6. 결심
그 무렵부터 내 안에서 한 가지 생각이 구체화 되었다.
젊음의 무모라고 말해야할까, 「의사가 되자. 그래서 지혜의 병을 완치 시키자」 나는 정말 진지하게 나의 진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직 진로는 확실히 결정하지 않았고 다행이도 나는 이과였다. 하지만 아무리 상위 클래스의 고등학교라고 해도, 여태까지 성실하게 공부하지 않았던 나에게 의대는 뜬구름을 잡는 위치에 있었다.
다음날부터 맹렬한 기세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낮에도. 밤에도. 지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지하에 올 수 없었지만, 나는 퇴원할 때까지 지하에서 계속 공부했다.
시업식으로부터 10일 정도 지나 퇴원할 때에는 처음으로 지혜의 병실에 가, 문병하러 올 것을 약속했다.
그 후, 학교의 수업도 성실하게 듣게 되었고, 제대로 예습 복습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5시간 공부하면서 노력했다. 토요일은 될 수 있는 한 지혜를 만나러 갔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었다.
주위의 친구가 달라졌다고 할 정도로, 이전의 나와는 달랐다. 사람은 목표가 생기면 이렇게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놀았던 반동은 컸다. 10월의 시점에서 4등급의 저조한 판정. 담임으로부터「너무 무리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말을 들었다.
분했다.
그렇지만 토요일에 지혜를 만날 때마다 그 주의 피로가 리셋 된 것 같아 좋았다. 모의 시험 같은 걸로 만날 수 없게 되면 상당히 괴로웠다. 덧붙여서, 지혜는 12월 무렵에 일시 자택 요양에 들어갔다. 지혜의 집과 나의 집은 비교적 가까운 곳이었지만 내가 바빴으니까... 그다지 만날 수 없었다.
장면 7. 행복....?
합격했다. xx대학 부속 의학부(즉, 지혜가 있던 병원의 의학부)였고, 나중에 공표된 최저점에서 턱걸이로 걸렸다. 드라마같지만, 정말로 기적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사실은, 합격할 때까지는 지혜에게 진로는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말하고 나니 굉장히 기뻐해 주었다.
덧붙여서, 이 때 처음으로 키스 했다
대학생활은 무지무지하게 힘들긴 하였지만 충실히 하였다. 컨디션이 무너져 입원하고 있는 지혜의 병실에 강의의 짬 동안 만나러 갈 수도 있고, 같이 점심을 먹거나, 휠체어로 산책을 하거나 할 수 있었다.
몇번이나 지혜가 위험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상당히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장면 8. 고백
그 무렵은 지혜의 키도 150 cm 정도가 겨우 된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 어리게 보이기 때문에 내가 친척의 오빠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교제하기 시작해 벌써 4년.
내가 대학교 3 학년 마지막이었던 무렵 돌연 지혜가 이런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혜 "언제까지 나와 함께 있는 거야?" 나 "갑자기 왜 그래?" 지혜 "그렇지만 나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자꾸만 너에게 피해만 끼쳐."
이 말을 하며 지혜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나 "그것은 각오 하고 있어..." 지혜 "...거기에 ....거기에 나... 실은 터너 증후군이야......."
저능하지만 의학생인 이상 나도 터너 증후군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인간의 성별 결정은 2개의 염색체로 결정되고 있어, 남자는 XY, 여자는 XX로 결정된다. 하지만 타나 증후군은 여성이지만 염색체가 X 한 개 밖에 없다.
지혜의 경우는 모자이크라고 말해지는, 터너 증후군 독특한 특징이 거의 없고 외관도 보통인 타입이었다.
다만 터너 증후군의 증상인, 저신장-2차 성징을 볼 수 없다는 것. 그녀가 이상하게 어려보였던 건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합병증으로 따라 오는 것이 대동맥판 협착증. 터너 증후군의 경우 심장병의 합병증이 많다.
그리고,
난자를 만들 수 없다.
지혜 "그...아이...도 낳을 수 없고...." 나 "응...뭐 놀랐지만... 나는 의사가 되려고 생각했을 때로부터 쭉 너와 함께 있으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혜 ".......그거.." 나 "...뜻하지 않게 프로포즈가 되어 버렸네." 지혜 "정말로.. 괜찮아?" 나 "나는 너와 진짜 언제나 함께이고 싶어. 아무튼 곧바로는 안 되겠지, 일단 졸업해야 되니까."
지혜는 그대로 울었고 내가 껴안아 병실까지 데리고 들어와야했었다.
장면 9. 결혼
내가 의대생이 된지 6년째가 되면서, 그녀의 심장도 노력했다. 그렇지만 한 번 큰 발작이 오면 위험한 상황도 자주 있었다. 나는 흉부 심장외과로 전공을 굳혔다. 그리고 무사 졸업. 국가고시도 통과했다.
졸업식의 다음날에 지혜의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러 갔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처음에는 강하게 반대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 에게 짐을 지울 수 없다, 라든가의 말을 들었었지만, 계속해서 이야기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지혜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감정이 너무 복받쳐 상세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가지 말한 것 같다. 그리고 허락을 받았다. 그녀와 나는 둘이서 울었다.
나의 어머니는 역시나 시원스럽게 승락.
"니가 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그것이 올바른 거야."
라고 말해 주셨다.
급료는 거의 의료비로 전용했기 때문에,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행복했다.
그녀는 그다지 무리 하지 않을 정도의 가사도 가능했다.
하지만 역시 입원하는 날이 집에 있는 날보다 많았다. 나는 연수의로서 대학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빈 시간에는 언제나 만날 수 있었다. 연수의는 대학에 있을때보다 큰 일이 많았지만 힘내는 수 밖에 없었다.
연수의 2년째 여름부터는 지혜의 컨디션도 좋아졌고, 처음으로 집에서 1년을 넘길 수 있었다. 병원에서 가까운 좁은 아파트였지만, 집에 돌아가면 빛이 켜져 있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꼈다.
장면 10 . 위기
3월, 이제 연수의도 거의 끝나가고 있을 때 지혜가 집에서 쓰러졌다. 나는 회진중이었지만, 그녀의 주치의. 즉, 나의 상사와 함께 구급실에 달려왔다.
긴급 수술이 필요했다. 설령 의사라 해도 가족은 수술실에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몇 시간이나 수술실의 앞에서 계속 기다렸다.
그녀의 상태는 간신히 안정되었다. 그렇지만 이제 병원밖으로는 나갈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여러 가지 문헌이나 논문을 찾아 보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외국으로 나가 최고 수준의 의료 시술을 받는다 해도 언제까지 이 상태가 유지될지 모른다.
둘이서 서로 이야기한 결과, 마지막까지 처음 두 명이 만났고,
지금 우리가 있는 여기, 이 병원에 있기로 결정했다.
"미안해요, 신혼 여행도 갈 수 없게 되서"
지혜는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가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있는 곳이 나에게 있어 세계에서 가장 좋은 휴양지니까."
그래서 허세를 부려보았다. 조금 목이 메였다.
그녀는 평상시와 같은 병실에, 매일 같은 파자마차림으로 있었다.
흉부 심장외과의 선생님 쪽이나 그 병동의 간호사들도 그녀가 나의 신부라는 걸 알고 있었던 터라 모두가 언제나 나에게 반동정으로 혹은 반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11월이 지나 상태가 더욱 악화된 지혜는 ICU에 들어갔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이러한 환자가 ICU로부터 살아 나오는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주치의도 나와 이야기를 할 때에 나를 제대로 보지 못 하게 되었다.
나는 자신의 무력함을 실감하고 울었다.
그녀를 완치 시키기 위해 의사가 되었는데 목표는 달성하지 못 하게 되었다.
장면 11. 안녕
그리고 2008년 4월
그녀는, 나와 ICU의 기계에 둘러싸인 채 마침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떠났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역시 막상 때가 되니 너무 괴로웠다 몇일간은 정말 폐인 상태였다. 장례식도 그다지 기억나질 않는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 1주일 정도 지나, 상사로부터 지혜의 편지를 건네받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면 건네달라고 부탁받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것을 읽으면서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역시 슬퍼하는 얼굴일까...? 직접 말하는 것은 역시 부끄럽기 때문에 그 때와 같이 편지입니다. 미안해요.
우리가 처음으로 만나, 함께 보내 온 이 병원에서 일생을 마치게 된 것은 어느 의미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나날이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이제 볼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면 매우 슬프지만요. 그 때의 당신의 편지로 나는 살아가는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당신과 공유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모자란 나를 아내로 삼아 주어 고마워요.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은 이런 편지뿐이지만, 가끔씩은 나를 생각해 주세요.
손수건을 준비하세요
지금부터 약 10년전의 이야기.
장면 1. 시작
1998년, 나는 고교 2년과 3년간의 봄방학에,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특별히 중병은 아니고 단순한 난치성 궤양 치료를 위한 입원이었기 때문에 식사 제한이나 운동 제한도 있는 것이 아니고 꽤 자유로운 입원 생활을 보냈다.
평소 없던 여유가 생겨 반쯤 즐기기도 했다.
다만, 내가 다니고 있었던 고등학교가 학구 내 탑의 진학교였기 때문에 숙제의 양이 굉장해서 이 점만은 꽤나 고생해야 됐다.
밤에 공부가 더 잘되는 타입이지만 9시 소등이니까 병실에서는 오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하의 자판기 코너를 자주 활용했다.
낮에는 매점과 식당이 근처에 인접하고 있는 일도 있어 활기가 느껴지는 있는 거기도, 밤이 되면 전기도 떨어져 자판기의 빛만 비춰 진다.
뭔가 몽환적인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공부에는 조금 어둡지만 거기가 좋다고 생각했다.
거기가 시작이었다.
장면 2. 만남.
밤 9시 정도에 내려 갔다가 11시정도 돌아온다.
그런 느낌으로 2, 3일 경과했을 때, 언제나 나의 10 m 정도 옆 의자에 앉아 음료를 마시거나 하면서 계속 앉아 있는 여자 아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키는 상당히 작아서 140 cm 정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인가하고 생각했다.
언제나 내가 공부를 시작하고 10분 정도 뒤에 와서, 내가 돌아갈 때도 거기에 있었다.
몇일이 지난 날, 어쩐지 신경이 쓰여 이야기를 걸어 보았다.
나 "이봐."
여자 아이 "?"
나 "여기, 매일 오는 거야?"
여자 아이 "병실에 있는 게 싫어서 가능한 한 여기에 있어.
그렇지만 낮에는 나가지 못하게 하니까... 그쪽도 언제나 여기 있지요?"
나 "여기 분위기가 마음에 드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숙제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지만."
여자 아이 "공부, 잘 해?"
나 "음? 아무튼... 일단 00고이고, 제법 윗 랭크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여자 아이 "머리 좋은 거 같네."
나 "너는...중학생?"
여자 아이 "그렇게 보여? 이렇게 작지만 나 지금 고2. 내년에는 3학년."
나 "진짜냐?! 동갑이잖아 !!"
확실히는 기억하진 않지만 대체로 이런 느낌이었다.
가장 놀란 건 역시 연령이었다. 어떻게 봐도 최대로 쳐서 중 3 정도였기 때문에...
그렇지만 어투나 분위기는 나보다 어른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장면 3. 기억
그 날부터 자연스럽게 내가 공부하고 있는 옆에는 그 아이가 앉는 형태의 구도가 되었다.
딱히 무언가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옆에 있는 것 만으로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흔히 있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어느사이엔가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어째서 입원하고 있어?"
가벼운 투로 물어 보았다.
대답은 매정했다.
"심장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아무런 생각없이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있는건가, 뭘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대답에 조금 동요했다.
고등학교도 거의 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살았다는 거 같다.
그녀의 병은 대동맥판 협착증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몇번이나 수술했지만, 또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 같다.
(이맘때 쯤 그녀의 이름이 지혜라는것을 알게되었다.)
지혜 "이번은 죽을지도 몰라"
이번에는 꽤 동요했다.
그렇다고 할까 벌써 달관한 느낌의 말투 때문에, 슬퍼졌다.
그 때는 나는 너무나 미숙했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지혜 "모레가 수술이니까."
그렇게 말한 그녀는 드물게 먼저 돌아갔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층은 3층.
흉부 심장외과 병동.
왠지 모르게, 그날 밤 조금 울었다.
장면 4. 편지
다음날은 하루종일 고민했다.
지혜가 없게 되는 것이 무서웠다.
단 2주간 정도 함께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도 좋아하게 된것일까...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하고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날의 밤, 나는 지혜에게 고백하기로 마음 먹었다.
만일, 정말로 만분의 일로 지혜에게 큰일이 생기기 전에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나는 초조해 졌다.
결국 다음날의 아침에 3층에 갔다.
그렇지만 간호사에게 수술 직전이니까 만날 수 없다고 제지 당했다.
나는 간호사에게 받은 메모지로 편지를 썼다.
좋아한다, 는 내용을 가득 담아.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면 부끄럽기 때문에 꼼꼼하게 접었다.
그것을 건네달라고 부탁했다.
장면 5. 답장
그리고 몇일이나 혼자서 지하에서 보내야 했다.
숙제는 이미 예전에 끝나버려 아무것도 할 게 없었지만
이전의 지혜와 같이 음료 마시던 곳에 마냥 앉아 있었다.
결과는 무서워서 물어 볼 수 없었고,
물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수술은 성공했다.
수술로부터 5일 정도 지나 휠체어에 타고 지하에 간호사와 같이 내려 왔을 때는 진짜 울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지혜가 억지를 부려 지하에 가는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채 편지만을 주고 돌아갔다.
「당신의 마음, 확실히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고백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용모이니까 꺼려지기도 했고 내가 피했던것도 있었고,
그런 것 생각한 적도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수술이 무서워졌습니다.
처음으로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직 완고하게 살아 있습니다.
마취으로 깨었을 때는 정말로 기뻤어요.
그렇지만 나는 길게 살 수 없습니다.
내일 죽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영리하니까 그거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만약
그래도 좋다면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내가 또 지하에 가면 언제나 처럼 있어줘.」
장면 6. 결심
그 무렵부터 내 안에서 한 가지 생각이 구체화 되었다.
젊음의 무모라고 말해야할까,
「의사가 되자. 그래서 지혜의 병을 완치 시키자」
나는 정말 진지하게 나의 진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직 진로는 확실히 결정하지 않았고 다행이도 나는 이과였다.
하지만 아무리 상위 클래스의 고등학교라고 해도, 여태까지 성실하게 공부하지 않았던 나에게 의대는 뜬구름을 잡는 위치에 있었다.
다음날부터 맹렬한 기세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낮에도. 밤에도.
지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지하에 올 수 없었지만, 나는 퇴원할 때까지 지하에서 계속 공부했다.
시업식으로부터 10일 정도 지나 퇴원할 때에는 처음으로 지혜의 병실에 가, 문병하러 올 것을 약속했다.
그 후,
학교의 수업도 성실하게 듣게 되었고, 제대로 예습 복습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5시간 공부하면서 노력했다.
토요일은 될 수 있는 한 지혜를 만나러 갔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었다.
주위의 친구가 달라졌다고 할 정도로, 이전의 나와는 달랐다.
사람은 목표가 생기면 이렇게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놀았던 반동은 컸다.
10월의 시점에서 4등급의 저조한 판정.
담임으로부터「너무 무리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말을 들었다.
분했다.
그렇지만 토요일에 지혜를 만날 때마다 그 주의 피로가 리셋 된 것 같아 좋았다.
모의 시험 같은 걸로 만날 수 없게 되면 상당히 괴로웠다.
덧붙여서, 지혜는 12월 무렵에 일시 자택 요양에 들어갔다.
지혜의 집과 나의 집은 비교적 가까운 곳이었지만 내가 바빴으니까... 그다지 만날 수 없었다.
장면 7. 행복....?
합격했다.
xx대학 부속 의학부(즉, 지혜가 있던 병원의 의학부)였고,
나중에 공표된 최저점에서 턱걸이로 걸렸다.
드라마같지만, 정말로 기적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사실은, 합격할 때까지는 지혜에게 진로는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말하고 나니 굉장히 기뻐해 주었다.
덧붙여서, 이 때 처음으로 키스 했다
대학생활은 무지무지하게 힘들긴 하였지만 충실히 하였다. 컨디션이 무너져 입원하고 있는 지혜의 병실에 강의의 짬 동안 만나러 갈 수도 있고,
같이 점심을 먹거나, 휠체어로 산책을 하거나 할 수 있었다.
몇번이나 지혜가 위험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상당히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장면 8. 고백
그 무렵은 지혜의 키도 150 cm 정도가 겨우 된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 어리게 보이기 때문에 내가 친척의 오빠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교제하기 시작해 벌써 4년.
내가 대학교 3 학년 마지막이었던 무렵
돌연 지혜가 이런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혜 "언제까지 나와 함께 있는 거야?"
나 "갑자기 왜 그래?"
지혜 "그렇지만 나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자꾸만 너에게 피해만 끼쳐."
이 말을 하며 지혜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나 "그것은 각오 하고 있어..."
지혜 "...거기에 ....거기에 나... 실은 터너 증후군이야......."
저능하지만 의학생인 이상 나도 터너 증후군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인간의 성별 결정은 2개의 염색체로 결정되고 있어, 남자는 XY, 여자는 XX로 결정된다.
하지만 타나 증후군은 여성이지만 염색체가 X 한 개 밖에 없다.
지혜의 경우는 모자이크라고 말해지는,
터너 증후군 독특한 특징이 거의 없고 외관도 보통인 타입이었다.
다만 터너 증후군의 증상인, 저신장-2차 성징을 볼 수 없다는 것.
그녀가 이상하게 어려보였던 건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합병증으로 따라 오는 것이 대동맥판 협착증.
터너 증후군의 경우 심장병의 합병증이 많다.
그리고,
난자를 만들 수 없다.
지혜 "그...아이...도 낳을 수 없고...."
나 "응...뭐 놀랐지만... 나는 의사가 되려고 생각했을 때로부터 쭉 너와 함께 있으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혜 ".......그거.."
나 "...뜻하지 않게 프로포즈가 되어 버렸네."
지혜 "정말로.. 괜찮아?"
나 "나는 너와 진짜 언제나 함께이고 싶어. 아무튼 곧바로는 안 되겠지, 일단 졸업해야 되니까."
지혜는 그대로 울었고 내가 껴안아 병실까지 데리고 들어와야했었다.
장면 9. 결혼
내가 의대생이 된지 6년째가 되면서, 그녀의 심장도 노력했다.
그렇지만 한 번 큰 발작이 오면 위험한 상황도 자주 있었다.
나는 흉부 심장외과로 전공을 굳혔다.
그리고 무사 졸업. 국가고시도 통과했다.
졸업식의 다음날에 지혜의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러 갔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처음에는 강하게 반대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 에게 짐을 지울 수 없다, 라든가의 말을 들었었지만, 계속해서 이야기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지혜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감정이 너무 복받쳐 상세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가지 말한 것 같다.
그리고 허락을 받았다. 그녀와 나는 둘이서 울었다.
나의 어머니는 역시나 시원스럽게 승락.
"니가 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그것이 올바른 거야."
라고 말해 주셨다.
급료는 거의 의료비로 전용했기 때문에,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행복했다.
그녀는 그다지 무리 하지 않을 정도의 가사도 가능했다.
하지만 역시 입원하는 날이 집에 있는 날보다 많았다.
나는 연수의로서 대학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빈 시간에는 언제나 만날 수 있었다.
연수의는 대학에 있을때보다 큰 일이 많았지만 힘내는 수 밖에 없었다.
연수의 2년째 여름부터는 지혜의 컨디션도 좋아졌고, 처음으로 집에서 1년을 넘길 수 있었다.
병원에서 가까운 좁은 아파트였지만, 집에 돌아가면 빛이 켜져 있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꼈다.
장면 10 . 위기
3월, 이제 연수의도 거의 끝나가고 있을 때 지혜가 집에서 쓰러졌다.
나는 회진중이었지만, 그녀의 주치의. 즉, 나의 상사와 함께 구급실에 달려왔다.
긴급 수술이 필요했다.
설령 의사라 해도 가족은 수술실에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몇 시간이나 수술실의 앞에서 계속 기다렸다.
그녀의 상태는 간신히 안정되었다.
그렇지만 이제 병원밖으로는 나갈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여러 가지 문헌이나 논문을 찾아 보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외국으로 나가 최고 수준의 의료 시술을 받는다 해도 언제까지 이 상태가 유지될지 모른다.
둘이서 서로 이야기한 결과, 마지막까지 처음 두 명이 만났고,
지금 우리가 있는 여기, 이 병원에 있기로 결정했다.
"미안해요, 신혼 여행도 갈 수 없게 되서"
지혜는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가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있는 곳이 나에게 있어 세계에서 가장 좋은 휴양지니까."
그래서 허세를 부려보았다.
조금 목이 메였다.
그녀는 평상시와 같은 병실에, 매일 같은 파자마차림으로 있었다.
흉부 심장외과의 선생님 쪽이나 그 병동의 간호사들도 그녀가 나의 신부라는 걸 알고 있었던 터라
모두가 언제나 나에게 반동정으로 혹은 반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11월이 지나 상태가 더욱 악화된 지혜는 ICU에 들어갔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이러한 환자가 ICU로부터 살아 나오는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주치의도 나와 이야기를 할 때에 나를 제대로 보지 못 하게 되었다.
나는 자신의 무력함을 실감하고 울었다.
그녀를 완치 시키기 위해 의사가 되었는데 목표는 달성하지 못 하게 되었다.
장면 11. 안녕
그리고 2008년 4월
그녀는,
나와 ICU의 기계에 둘러싸인 채 마침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떠났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역시 막상 때가 되니 너무 괴로웠다
몇일간은 정말 폐인 상태였다.
장례식도 그다지 기억나질 않는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 1주일 정도 지나, 상사로부터 지혜의 편지를 건네받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면 건네달라고 부탁받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것을 읽으면서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역시 슬퍼하는 얼굴일까...?
직접 말하는 것은 역시 부끄럽기 때문에 그 때와 같이 편지입니다.
미안해요.
우리가 처음으로 만나,
함께 보내 온 이 병원에서 일생을 마치게 된 것은 어느 의미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나날이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이제 볼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면 매우 슬프지만요.
그 때의 당신의 편지로 나는 살아가는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당신과 공유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모자란 나를 아내로 삼아 주어 고마워요.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은 이런 편지뿐이지만, 가끔씩은 나를 생각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나는 앞으로도 쭉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또 그 밖에 좋은 사람이 생기게 되면,
그 사람을 소중히 해 주세요.
가장 사랑하는 당신에게
지혜」
편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written by J-Dog
2009.04.19 늦은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