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6년 당의 조인사 등 28장수가 거란을 공격했으나 전멸하고 대장군은 포로가 되었다. 이후 거란은 유주 성 주민을 도살하였다.
697년 왕효걸, 소굉휘가 당군 17만을 이끌고 거란을 공격하였으나 동협석 낭떠러지에서 왕효걸이 떨어져 죽고 거의 몰살당했다.
다시 무의종,누사덕이 20만 병사로 거란을 쳤으나 싸우기도 전에 하남으로 퇴각하였고 북경등 여러 성이 그대로 약탈당했다.
698년 이경현이 18만대군으로 토번과 청해에서 싸워 참패하고 아예 돌아오지도 못했다.
무측천시대: "돌궐이 조,정 지역에서 남녀 8-9만을 빼앗아 모두 묻어버리고, 사람과 가축, 금은화폐, 자녀를 모두 빼앗았다. 당나라 장수는 쳐다만 볼 뿐 감히 싸우려 하지 못했다.
중종: 돌궐의 공격으로 패배하여 죽은 자가 수만명이었다.
710년 문성공주를 토번에 진공으로 바쳤으며
711년 전략적 요충지인 하서구곡을 토번에 할양하였다. "토번은 구곡을 얻었고, 그 땅이 비옥하여, 병사를 주둔시키고 목축을 하엿다. 그리고 당나라의 국경과 가까워, 이 때부터 병사를 이끌고 자주 침입하였다."
745년 현종은 거란에게 화친공주를 보냈으나 모두 살해당하였다. 당나라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현종은 남조에게도 두 번 패하여 각각 6만명, 7만명이 죽었다.
755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다.
763년 광서의 소수민족인 서원족이 호남 도주성을 점령하고 1만명을 포로로 잡아갔으며 다음해 다시 영주와 소주를 격파하였다.
당군은 연나라에게도 연패하여 회흘에게 군대를 빌리는대가로 매일 양200두,소20두,쌀40곡을 상납한다. 그러고도 낙양성이 3일간 노략질당해 미녀와 재산이 모두 약탈당했다. 성선사와 백마사 두개의 누각에 피난한 사람1만명도 불에 타죽는다.
또한 숙종은 매년 견2만필을 회흘에게 진공하고 친딸 영국공주를 회흘의 60세된 늙은 칸에게 첩으로 보낸다.
763년 토번이 장안을 점령하자 대종은 섬주로 피난갔으며 토번이 종실 이승굉을 황제로 앉혔다. 하서,농우등 50개군,6개진을 차지했고 100만명을 노예로 삼았다.
783년 당은 당번청수맹약을 체결하여 농남의 여러 군현이 토번 영토가 되었다.
787년 토번은 다시 침공하여 1만명을 노예로 삼는다. 토번군이 한 협곡을 통과할때 포로들에게 동쪽을 향하여 절을 하고 부모의 고향에 이별을 고하도록 했다. 역사서에는 이때 수백 명이 통곡하다가 혼절했으며,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덩치만 큰 외국한테 빌빌거린 노예 국가
패배와 치욕의 당나라 전쟁사. by mariaet.
당태조 이연: 돌궐에게 조공바쳤고 부족하면 돌궐이 직접와서 약탈해갔다.
당나라 기록은 "돌골이 (조공이 아닌) 상사(윗나라가 아랫나라에 내리는것)을 바쳤다"
이세민:돌궐군이 장안성에 접근하자 돌궐에 진공, 금은보화를 바치기로 성하지맹을 맺었다. 이세민 스스로 위수의 치욕이라 말한 바 있다.
670년 토번이 귀자,우전,언기,소륵을 빼앗자 설인귀의 10만대군이 진공하였으나 대비천에서 대패하였다.
696년 당의 조인사 등 28장수가 거란을 공격했으나 전멸하고 대장군은 포로가 되었다. 이후 거란은 유주 성 주민을 도살하였다.
697년 왕효걸, 소굉휘가 당군 17만을 이끌고 거란을 공격하였으나 동협석 낭떠러지에서 왕효걸이 떨어져 죽고 거의 몰살당했다.
다시 무의종,누사덕이 20만 병사로 거란을 쳤으나 싸우기도 전에 하남으로 퇴각하였고 북경등 여러 성이 그대로 약탈당했다.
698년 이경현이 18만대군으로 토번과 청해에서 싸워 참패하고 아예 돌아오지도 못했다.
무측천시대: "돌궐이 조,정 지역에서 남녀 8-9만을 빼앗아 모두 묻어버리고, 사람과 가축, 금은화폐, 자녀를 모두 빼앗았다. 당나라 장수는 쳐다만 볼 뿐 감히 싸우려 하지 못했다.
중종: 돌궐의 공격으로 패배하여 죽은 자가 수만명이었다.
710년 문성공주를 토번에 진공으로 바쳤으며
711년 전략적 요충지인 하서구곡을 토번에 할양하였다.
"토번은 구곡을 얻었고, 그 땅이 비옥하여, 병사를 주둔시키고 목축을 하엿다. 그리고 당나라의 국경과 가까워, 이 때부터 병사를 이끌고 자주 침입하였다."
745년 현종은 거란에게 화친공주를 보냈으나 모두 살해당하였다. 당나라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현종은 남조에게도 두 번 패하여 각각 6만명, 7만명이 죽었다.
755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다.
763년 광서의 소수민족인 서원족이 호남 도주성을 점령하고 1만명을 포로로 잡아갔으며 다음해 다시 영주와 소주를 격파하였다.
당군은 연나라에게도 연패하여 회흘에게 군대를 빌리는대가로 매일 양200두,소20두,쌀40곡을 상납한다. 그러고도 낙양성이 3일간 노략질당해 미녀와 재산이 모두 약탈당했다. 성선사와 백마사 두개의 누각에 피난한 사람1만명도 불에 타죽는다.
또한 숙종은 매년 견2만필을 회흘에게 진공하고 친딸 영국공주를 회흘의 60세된 늙은 칸에게 첩으로 보낸다.
763년 토번이 장안을 점령하자 대종은 섬주로 피난갔으며 토번이 종실 이승굉을 황제로 앉혔다. 하서,농우등 50개군,6개진을 차지했고 100만명을 노예로 삼았다.
783년 당은 당번청수맹약을 체결하여 농남의 여러 군현이 토번 영토가 되었다.
787년 토번은 다시 침공하여 1만명을 노예로 삼는다. 토번군이 한 협곡을 통과할때 포로들에게 동쪽을 향하여 절을 하고 부모의 고향에 이별을 고하도록 했다. 역사서에는 이때 수백 명이 통곡하다가 혼절했으며,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831년 남조는 사천의 성도성을 함락시키고 수만명을 노예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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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타이틀
1) 세계에서 황제가 자기딸 이민족의 첩으로 가장 많이 바친 나라
2) 귀족안위를 위해 자국여성과 비단을 외국군에게 사정하며 바친 나라
3) 자국인이 100만명 노예 되어도 빌빌거리던 나라
4) 이긴건 과대포장 하면서 실제로 대부분 이민족 도움없으면 발린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