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글은 경기도 화성경찰서에 올린글을 전국 곳곳에 띄우는 글입니다... 많은 양해바랍니다...
수사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사건의 범인은 반드시 내손으로 잡는다...!! - 화성경찰서,
화성연쇄살인사건(86. 9. 15. ~ 91. 4. 3)
아래 조광식 ~전수원강력형사 님의 말이 맞다면.... 그 때 수원에서 검거된 범인을 기소유예로 풀려주지 안았다면... 7차, 8차, 9차 화성연쇄희생자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아~ 글이 좀 길지만, 끝까지 읽어보십시오... 화성연쇄살인범인은 나왔습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종합 화성사건의 부검 결과...!!
최종적인 사망 원인은 액살(縊殺, 목을졸라죽임) 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현장에는 피해자의 소지품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는데, 열무와 고추를 팔아 장만한 몇 푼의 돈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의 몇 가지 특징들은 이후의 사건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나게 된다.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분석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선 사건이 발생한 곳은 인가가 없는 모퉁이 길이었다. 피해자는 그 길을 이른 아침에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범인이 피해자를 풀밭으로 끌고 들어가 옷을 벗기고 추행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반항하는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소지품을 뒤져 돈을 챙겨 달아난 것이었다. 우선 피해자의 하의를 벗겨 다리를 X자 형태로 만든 후 복부에 밀착시킨 점이 특이했다. 그리고 사체 주위에는 질액과 보자기 3개, 붉은 고추, 베지밀병 1개 등이 흩어져 있었다. 또한 피해자가 범행을 당하는 동안 구역질을 하면서 쏟아낸 위장의 내용물이 일부 풀밭에 묻어 있었다. 한 노인의 너무나 급작스럽고도 몸서리쳐지는 추행, 육체의 안과 밖이 뒤집어지는 최악의 고통스런 죽음이 그렇게 풀밭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ㅡ ㅡ ㅡ !! 네이버블로그 - 화성연쇄살인 사건담당 형사의 비망록(책) 중에서...
사진:네이버블로그
88년 9월 16일 태안읍 진안리 박모양은 다른범인으로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제외,
수원 김이순 (19세)양 사건
희생자의 이름은 김이순, 당시 19세의 꽃다운 여고 3년생이자 예비 대학생이었다. 사건 발생일은 198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날 김이순 양은 오빠가 사온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가족들과 함께 먹지 않고 혼자 먹었다고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다. 엄마의 꾸중에 마음이 상한 김이순 양은 '죽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 뒤 사체로 발견된 것이었다. 김이순 양의 어머니는 딸의 말이 두고두고 귓가에 맴돌았을 것이다. 죽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던 딸이 정말로 논 한가운데에서 사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이순 양은 서울 가톨릭대학교 간호학과에 응시해 합격통지서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합격통지서를 내보이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딸의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혀 김이순 양의 어머니는 좀처럼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잠깐 야단을 친 것이 이처럼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기에, 어머니는 두고두고 가슴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후회스럽기만 했다. 부검 결과 김이순 양 역시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성폭행 사실도 확인되었다. 김이순 양이 사고를 당한 때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이제 막 대학 입학을 앞둔 김이순 양으로서는 기분이 들떠 있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엄마에게 꾸중을 들은 터라 더욱 화가 났을 수도 있다. 그리고 화를 참지 못해 집을 뛰쳐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집 밖을 배회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었고, 그러다 그만 범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 순간 범인은 김이순 양을 납치하여 논으로 끌고가 성폭행을 한 후 살해한 것으로 보였다. 현장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변 일부와 모발및 음모 몇 점이 채취되었다. 이를 토대로 혈액형을 검사해 본 결과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나는 화성사건을 수사하는 동안에도 혹시 범인이 수원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 김이순 양 사건을 계기로 보다 확신을 갖게 되었다. 범인은 김이순 양이 살던 수원시 화서동 내지는 고등동 일대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으로 믿어졌다.
범인은 화성이 아니라 수원 사람이었다
화성사건은 1차 이완이 할머니를 제외한 피해자 모두가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범인에게 납치되어 피살됐다. 대부분이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중에 범인의 눈에 띄었으며, 6차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 박은수 씨가 우산을 들고 남편을 마중하러 가다가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범인에게 납치되었다. 다만 유일한 생존자인 김모 여인과 이번 수원에서 발생한 김이순 양 사건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김모 여인의 경우 화성에서 사건이 발생했지만 어쨌든 유일한 생존자이므로 9차 화성사건 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김이순 양의 경우는 사건 발생 지역이 화성이 아닌 수원이므로 역시 9차 화성사건 안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어쨌든 이 같은 이유로 인해 화성사건은 생존자 김모 여인과 이번 김이순 양을 제외한 총 아홉 건이다. 그리고 이 아홉 건의 사건 대부분이 버스정류장과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앞서 말한 범인의 거주 지역에 대한 내 생각에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나는 앞서 범인이 수원시 화서동 내지는 고등동 일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단지 김이순 양이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즉, 화성사건 대부분이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범인 역시 버스를 타고 그곳에서 내렸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버스에서 내린 뒤 그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지나가는 여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버스와 관련된 좀더 자세한 얘기는 뒤에서 다시 하기로 하겠다. 어쨌든 화성에서 발생한 사건과 이번 김이순 양 사건은 그 수법이 비슷하여 동일범에 의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 역시 화성의 수사본부에서 범인 검거에 나서야 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나는 김이순 양 사건과 관련해서 상부에 보고를 한 후 수원에 있는 한 파출소에 독자적인 수사본부를 차렸다. 그리고 형사들에게 사건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화성사건과 유사하지만 발생 장소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한편, 이 사건이 우리의 관할이라는 점도 주지시켰다. 경기도경에도 마찬가지로 발생 장소의 다른 점을들어 자체수사를 하겠다고 보고를 올렸다. 그 때문에 김이순 양 사건은 화성 수사본부 대신 수원경찰서에서 맡게 되었다. 물론 나는 이 사건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저지른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독자적인 수사를 결심하고 별도의 수사팀까지 구성하며 사건 해결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개인의 욕심 때문에 스스로의 선택을 뒤집고, 범인이 수원까지 따라와서 내민 도전장을 거부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만다. 무슨 말로도 변명하기 어렵고, 기억조차 괴로운 그 일을 지금 다시 상기하려니 새삼 고통이 폐부를 찢는 듯 느껴진다. 무거운 마음으로 당시의 일을 회상해 보기로 한다.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 화성연쇄살인에서 제외된 수원사건,
7차 - 안희순(54세) 여인사건 1988년 9월 7일 저녁...
범인은 안모 여인을 살해하고 사건현장에서 풀밭을 걸어 수원행 버스를 탔다...
1988년 9월 7일 오후 8시 50분경 운전기사인 강원태 씨는 발안읍 소재지 버스터미널에서 손님 8~9명을 태우고 출발했다. 그리고 안희순 씨 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지나 400~500미터 정도 진행하고 있을 때 논길 쪽에서 젊은 남자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왼쪽 손에는 옷을 들고 있었다. 강원태 씨는 젊은 남자를 발견하고 버스를 세웠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탄 남자는 비어 있던 맨 앞자리에 앉았다. 강원태 씨가 이처럼 당시의 상황을 정화히 기억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결국 그 이유 때문에 강원태 씨는 범인의 인상착의 및 특징까지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강원태 씨뿐 아니라 버스에 동승했던 안내양 엄모 양까지도 그 이유 때문에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있었다.
버스에 탔던 남자는 나이가 25~27세쯤 되어 보였다. 키는 168센티미터 전후로 남자 키로는 작은 편이었다.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어깨가 약간 구부정했기 때문에 더욱 왜소해 보였다. 머리 모양은 당시 방위병 정도의 짧은 상고머리였고, 눈이 날카롭고 코가 오똑했다. 그리고 얼굴까지 갸름한 편이어서 전체적인 인상은 차가웠다. 이처럼 목격자가 비교적 그 남자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말다툼 때문이었다. 운전기사인 강원태 씨와 젊은 남자는 수원까지 오는 동안 서너 번 말다툼을 했던 것이다.
다툼의 원인은 이랬다. 남자는 버스 앞좌석에 앉자마자 왼쪽 발을 운전석 옆에 있는 보닛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강원태 씨가 남자에게 발을 치우라고 요구했다. "보닛은 운전수의 밥그릇이니까 어서 발을 내려놓으세요!" 강원태 씨의 말에 남자는 천천히 발을 내려놓았다. 그 때 강원태 씨는 남자의 운동화가 젖어 있는 것을 보았으며, 바지 역시 무릎까지 젖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틀림없이 풀숲을 헤치고 지나갈 때 이슬에 젖은 것으로 추정된다. 남자는 보닛에서 발을 내려놓은 뒤 강원태 씨에게 담뱃불을 빌렸다. 그리고는 담배를 입에 문채 불이 꺼지지 않도록 양손으로 감싸 쥐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때 강원태 씨는 남자의 오른손 둘째손가락에 작은 흉터가 있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시계를 찬 왼손 손목에는 밤알 크기 정도의 문신 혹은 점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의 진술을 강원태 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목격자(버스운전기사, 안내양)들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7차 사건수사 당시 몽타주 수배전단지,
사진=화성연쇄살인범의 최근 몽타주 - empas 검색, 나이:40대중반 키:165~170cm 특징:왼쪽손목에문신
지난 1988년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비슷한 여고생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조광식 씨는 당시 풀려났던 두 용의자들이 화성 사건의 범인이라고 믿고있다,
지난 3월 30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4월 2일)를 3일 앞두고 <일요신문>으로 제보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자신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누구라는 확신이 있으며 그 중 한 명은 죽었지만 공범은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제보자는 지난 1987년 12월 24일 화서 전철역 부근 논에서 발생한 김 아무개 양(당시 19세) 살인 사건을 수사했던 조광식 씨(53). 이 사건은 수원 지역에서 발생, 10건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피해자가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당해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이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보고 있다(<일요신문> 724호 4월 5일자).
제보자인 조 씨는 당시 이 사건의 용의자를 고문해 사망하게 했다는 혐의로 직위 해제되고 2년6월형을 선고받아 교도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수사했던 용의자들을 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고문 형사’로 여론의 심판대에 올라 대대적인 비난을 받았던 그가 지금까지도 이들을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조 씨는 지금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자료 수집은 물론 4권 분량의 노트에 당시 사건을 기록하고 있었다.
지난 1988년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비슷한 여고생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조광식 씨는 당시 풀려났던 두 용의자들이 화성사건의 범인이라고 믿고 있다.
스스로의 불명예를 조금이라도 씻어보려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집념이 지나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거쳐간 수많은 전·현직 형사들이 그러하듯 그의 눈빛에서 그 이상의 집념을 읽을 수 있었다. 조 씨의 주장을 검증해 본다.
김 아무개 양의 사체가 발견된 것은 지난 1988년 1월 4일 오전 11시 30분경이었다. 화서 전철역 부근 논에서 볏짚으로 가려져 있던 것을 논 주인 김 아무개 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김 양의 사체는 엎드린 상태로 양손이 스타킹으로 결박당해 있었으며 팬티로 재갈이 물려 있었다. 또 하의가 벗겨진 채였으며 폭행으로 얼굴이 부어있었다. 부검 결과 성폭행을 당한 후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1987년 5월 2일 발생한 사건까지 이미 여섯차례 발생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행수법과 아주 흡사한 사건이었다.
당시 수원 모 여고 3년생이었던 김 양은 1987년 12월 24일 저녁, 어머니와 다툰 후 외출한 것으로 알려졌고 사체 부검결과 이날 밤 11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M 씨와 J 씨(당시 모두 20대 초반)를 지목했다. 탐문 수사 결과 M 씨와 J 씨가 사건 당일 밤 사체가 발견된 장소 부근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용의자 M 씨는 1월 6일 수원시 화서동 자신의 집에서 친구 2명과 함께 있다 연행됐으며 J 씨는 수원 집을 떠나 용인 외삼촌 집에 가 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경찰의 추궁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당시 경찰은 뛸 듯이 기뻤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용의자 M 씨가 얼마 후 뇌부종으로 인해 뇌사 상태에 빠졌고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후배 형사의 구타 사실이 밝혀져 조 씨는 후배 형사와 함께 구속돼 버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체적인 증거품도 찾아내지 못하자 결국 검찰도 그들의 자백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려 J 씨도 기소 유예로 풀려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씨가 아직도 이들이 범인이라고 주장하고있는 근거는 이렇다.
“조사 과정에서 몇 차례 때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에게 허위 자백을 유도하지는 않았다. 백지를 주고 현장 약도와 사체를 숨긴 곳을 그려보라고 했을 때 이들은 정확히 그 지점을 그리기까지 했다. 또 김 양의 사체에서 나온 범인의 혈흔과현장에서 발견된 대변의 분석결과 B형이었다. 이는 M 씨와 J 씨의 혈액형과 일치했다. ”
이밖에 화성군에 은둔 중이었던 이들의 친구 차 아무개 씨를 추궁한 결과 M 씨가 차 씨에게“사람을 죽였다. 수원을 떠나겠다”며 자신이 즐겨 입던 빨간색 점퍼를 입으라고 했다는 진술도 확보했었다는 것이다. 조 씨는 “왜 하필 사건 발생 후인 12월 27일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겠냐”며 이 사건과의 연관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조 씨가 이들이 단지 김 양살해 사건뿐만 아니라 화성연쇄살인사건과도 연관돼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은 잔인한 범행 수법도 일치하는 데다 당시 이들에게 들었던 진술 내용 때문이다.
“지나가는 말로 화성에는 어떻게 갔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J 씨가 기찻길로 갔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가면 검문에 걸릴 일이 없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수원에서 일어난 살해 사건을 빨리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그 후 피해자 대부분이 기찻길 부근에서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그냥 넘어간 것이 큰 실수였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조 씨에 따르면 이들은 인근 야산에 땅굴을 파놓고 집을 나와 그곳에서 지내곤 했는데 그 안에는 본드와 침낭, 라면 등이 갖춰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이들이 환각 상태에서 정신이상자들의 범행처럼 잔인했던 연쇄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평소 칼을 소지하고 다니면서 부녀자들을 희롱해 왔는데 김 양을 살해할 당시에도 칼로 위협해 끌고 갔다는 진술과 함께 이 칼을 증거품으로 확보했다는 것이다.
화서역 부근에서 숨진 김 양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시계가 없어졌다는 점도 M 씨와 J 씨를 의심하게 된 부분이다. 조 씨는 “당시에는 휴대폰도 없을 때라 시계가 필요하던 시기였는데 김양은 물론 연쇄 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시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며 “M 씨를 경찰로 연행하기 전 집 앞에서 잠복을 하다 M 씨의 집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찬장 그릇 안에 여자 시계 줄이 몇 개 담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이후 M 씨를 조사하면서 이시계 줄을 찾으러 갔었는데 이미 치운상태였다는 것.
결과적으로 조 씨는 결정적인 증거품을 찾지 못했고 M 씨가 뇌사 상태에 빠지면서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가 벼렸다.
조 씨는 당시 고문 문제와 관련해서도“뇌사의 원인이 구타는 아니었다. 1월 8일 M 씨를 연행해 사체 발견 장소에서 없어진 피해자의 손목시계를 찾으러 가던 중 M 씨가 도주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후배 형사가 수갑이 채워진 M 씨를 밀쳤는데 M 씨가 뒤로 넘어지면서 언덕에서 굴러 머리를 부딪쳤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아무 이상이 없는 줄 알고 경찰서로 끌고 왔는데 다음 날부터 구토를 하기 시작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후 조 씨는 11년 동안 몸담았던 경찰직을 떠나 교도소에 수감됐다. 담당의가“뇌부종은 구르거나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친 것이 원인”이라는 소견을 냈지만 혐의를 완전히 벗지 못해 이례적으로 무거운 2년6개월의 형을 살았다. 조 씨는“담당 검사가‘너희가 재수 없게 됐다. 잠잠해지면 나가라’고까지 했다”고 주장하며 “당시는 6·29 선언 이후였고 박종철 사건 1주기 직후였던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감방에서 1년 가까이 독방 생활을 하기도 했던 조 씨가 수감 이후에도 사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은 같은 교도소에 수감됐던 전과 5범 김 아무개 씨가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 씨가 어떤 사건 때문에 수감됐는지를 알고 있던 김 씨는 당시 공범으로 지목됐던 J 씨와 같이 수원교도소 미결수 방에서 생활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J 씨와 M 씨는 살인 사건 용의자로 잡힌 뒤 조사를 받던 중 특수 절도 혐의가 밝혀져 이 사건과는 별개로 구속된 바 있다.
조 씨가 김 씨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J 씨가 같은 방에 들어 왔기에 함께 수감돼 있던 사람들이 어떤 죄로 들어왔냐고 물었고 이에 J 씨가 김 양을 살해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먼저 M 씨가 김 양을 성폭행했고 자신은 김 양이 생리 중이어서 성폭행을 하지 못했다고. 이후 피가 묻은 자신의 속옷과 각목은 불에 태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이들이“M 씨가 죽었으니 너는 경찰이 폭행을 해서 허위 진술을 했다고 하라”고 조언까지 했다는 것. 이 이야기를 들은 조 씨는 김 씨의 진술서를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교도소 안이라 성사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출소한 뒤에도 조 씨는 틈틈이 J 씨의 행방을 찾았다. 조 씨는 J 씨가 기소유예로 풀려난 뒤인 88년 2월 바로 입대를 했던 것까지는 알아냈지만,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화성 연쇄살인의 7차 사건은 88년 9월 7일 화성시 팔탄읍 가재리에서 일어났다. 용의자를 본 유일한 목격자가 나타난 사건이었다. 키는 168cm 정도, 머리는 짧은 상고 머리였으며 눈이 날카롭고 코가 오뚝해 인상이 차갑다는 것이 목격자의 진술이었다. 그리고 화성 연쇄살인은 91년 4월 3일까지 계속됐다.
조 씨는 “최근까지도 J 씨의 소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 같은 이름이 몇 명밖에 되지 않으며 화성연쇄살인사건 발생지였던 태안읍이나 화서동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주민으로 등록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조 씨는 인터뷰를 끝내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화서역 살인 사건 이후 세월이 20년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함께 수감됐던 후배 형사 중 한 명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고, 나 역시 그 사건 이후로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허송세월하다 현재는 경비지도자 자격증을 따 새 삶을 계획하고 있다. 확실한 물증 없이 지금까지도 M 씨와 J 씨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말하는 나는 또 다른 죗값을 치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겁도 나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나 ‘이제 공시시효도 끝났으니 터놓고 한번 진실을 밝혀보자’고 말하고 싶다. ”
먼저, 사진과 글이 좀 험해 화성연쇄살인사건수사(책)내용 중 일부만 올립니다... 전체를 보시고 싶으시면 분은 개인적으로 메일 주십시오...!! 전체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E-mail : gfgf34@hanmail.net
실종 이윤희 님의 기사를 검색하다가 화성연쇄살인사건(86. 9. 15. ~ 91. 4. 3)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참고만 하려했는데....
네이버블로그에 기록되어 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 담당하시던 형사님께서 쓰신 책내용...
2003년 9월 1일자에 글올리신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당시엔 멀리 화성지방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구나~ 그냥 흘러들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이제야 화성살인사건을 진실을 접하게되었습니다...
먼저, 고인(화성연쇄살인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검색 : 화성 연쇄 살인 오늘 공소시효 만료 [YTN TV 2005-11-14]
[앵커멘트]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됐던 90년 화성 여중생 살인 사건이 오늘로써 공소시효가 끝나게 됩니다.
9번의 살인사건에 모두 9명이 희생됐지만 수사는 오리무중입니다.
김세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 90년 11월 15일 경기도 화성에 사는 여중생 13살 김 모 양이 태안읍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됩니다.
4년전 인근 들판에서 71살 이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된 이후 9번 째 희생자입니다.
이 9번째 살인사건이 오늘로써 꼭 15년이 됐습니다.
더불어 이 사건에 대한 살인죄 공소 시효도 끝나 범인을 붙잡아도 죄를 물을 수 없게 됐습니다.
또 내년 4월 2일이면 마지막 10번째 희생자인 권 모 씨 피살사건도 시효도 만료됩니다.
이로써 화성시 태안읍을 중심으로 반경 3km 안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사건이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동안 경찰은 연인원 205만명을 동원해 용의자 2만여명을 조사했습니다.
또 4만여명의 지문을 대조했지만 범인이 170cm의 키에 마른 체형으로 B형 혈액형을 가졌을 것이라는 것만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최근 화성경찰서 지구대 안에 설치했던 수사본부를 철수한 뒤 전담반을 꾸려 근근히 수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제보 등도 없는 상태에서 수사는 지지부진 한 채 장기 미제로 남게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YTN 김세호입니다.
ㅡ ㅡ ㅡ ㅡ !!
이제 사건공소시효도 지났지만...
화성 흉악사건의 범인은 결코!! 검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사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사건의 범인은 반드시 내손으로 잡는다...!!
대한민국 강력계형사 님들의 건투를 빕니다... 악!
다름아니고,
두(화성형사, 수원형사) 글을 읽다가... 공통점이 발견되어 글올립니다...!!
개인생각이지만, 위 두 형사님의 글이 맞다면...!! 범인은 나왔는데 요........!! 경찰에서도 담당수사관 님들의 글을 읽었을텐데 요? 왜? 사건수사를 하지않는건지 요?
위 ~전수원형사 님 글이 맞는지 확인은 해보셔야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화성은 끝나지않았다... 2003년 9월 8일 책저자 화성담당 형사님과 ~전수원(조광식)형사 님과 대면해 범인이 맞는지 대조해보아야 하지않을까 요? 그리고, 수사 때 작성한 몽타주 사진을 보여 그 때 j씨가 맞는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해도 기억속에 특징은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몽타주 사진이 정확(목격자진술)한건 아니라해도 특징은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버스기사 님이 말한 손에 흉터가 있었던 지..... 가능하다면 당시 목격자 버스기사님과 안내양을 불러 다시한번 확인을...
공소시효는 만료되었지만? 세상을 불안해 떨게했던 흉악범인은 꼭!! 잡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에서는 끝났더라도 국민의 심판은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수원(조광식)형사 님과 화성(하승균)담당형사 님과 만나게하시어...
당시 수원용의자가 화성용의자가 맞는지 확인해야할 것입니다!!
아직도 국민들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찾고있습니다...!!
국민들에게 화성연쇄살인사건용의자의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글을 읽는 전국의 국민, 기자 님들께서도 도와주십시오... 나?홀로 싸우기엔 힘이모자랍니 다....... 국민과 경찰이 하나되어 싸운다면 결코!! 완전범죄는 없습니다!! 끝까지 추적해서라도 사건의 범인은 검거해야합니다...!!
또, 불행의 희생자가 나타나기전에 막아야합니다!!
미약하지만, 2004년 10월 화성여대생 피살사건과 연류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수법이 틀리다고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시간(나이)이 흘러 범행 수법을 다르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수법만이 같은 범행이라고 생각하지않습니다... 참고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06년 8월 30일 전주에서~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생존의 희망이 사라지지만, 모두 아직 실종 이윤희 님을 버리지말아주십시오!!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악마J)을 찾다! ▶ 2006. 08. 30 최초의
먼저, 이글은 경기도 화성경찰서에 올린글을 전국 곳곳에 띄우는 글입니다...
많은 양해바랍니다...
수사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사건의 범인은 반드시 내손으로 잡는다...!! - 화성경찰서,
화성연쇄살인사건(86. 9. 15. ~ 91. 4. 3)
아래 조광식 ~전수원강력형사 님의 말이 맞다면....
그 때 수원에서 검거된 범인을 기소유예로 풀려주지 안았다면...
7차, 8차, 9차 화성연쇄희생자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아~
글이 좀 길지만, 끝까지 읽어보십시오...
화성연쇄살인범인은 나왔습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종합 화성사건의 부검 결과...!!
최종적인 사망 원인은 액살(縊殺, 목을졸라죽임)
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현장에는 피해자의 소지품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는데,
열무와 고추를 팔아 장만한 몇 푼의 돈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의 몇 가지 특징들은 이후의 사건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나게 된다.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분석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선 사건이 발생한 곳은 인가가 없는 모퉁이 길이었다.
피해자는 그 길을 이른 아침에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범인이 피해자를 풀밭으로 끌고 들어가 옷을 벗기고
추행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반항하는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소지품을 뒤져 돈을 챙겨 달아난 것이었다.
우선 피해자의 하의를 벗겨 다리를 X자 형태로 만든 후 복부에 밀착시킨
점이 특이했다. 그리고 사체 주위에는 질액과 보자기 3개, 붉은 고추,
베지밀병 1개 등이 흩어져 있었다. 또한 피해자가 범행을 당하는 동안
구역질을 하면서 쏟아낸 위장의 내용물이 일부 풀밭에 묻어 있었다.
한 노인의 너무나 급작스럽고도 몸서리쳐지는 추행, 육체의 안과 밖이
뒤집어지는 최악의 고통스런 죽음이 그렇게 풀밭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ㅡ ㅡ ㅡ !! 네이버블로그 - 화성연쇄살인 사건담당 형사의 비망록(책) 중에서...
사진:네이버블로그
88년 9월 16일 태안읍 진안리 박모양은 다른범인으로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제외,
수원 김이순 (19세)양 사건
희생자의 이름은 김이순, 당시 19세의 꽃다운 여고 3년생이자 예비 대학생이었다.
사건 발생일은 198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날 김이순 양은 오빠가 사온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가족들과 함께 먹지 않고
혼자 먹었다고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다. 엄마의 꾸중에 마음이 상한 김이순 양은
'죽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 뒤 사체로 발견된 것이었다.
김이순 양의 어머니는 딸의 말이 두고두고 귓가에 맴돌았을 것이다.
죽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던 딸이 정말로 논 한가운데에서
사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이순 양은 서울 가톨릭대학교 간호학과에 응시해 합격통지서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합격통지서를 내보이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딸의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혀 김이순 양의 어머니는 좀처럼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잠깐 야단을 친 것이 이처럼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기에,
어머니는 두고두고 가슴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후회스럽기만 했다.
부검 결과 김이순 양 역시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성폭행 사실도 확인되었다.
김이순 양이 사고를 당한 때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이제 막 대학 입학을 앞둔 김이순 양으로서는 기분이 들떠 있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엄마에게 꾸중을 들은 터라 더욱 화가 났을 수도 있다.
그리고 화를 참지 못해 집을 뛰쳐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집 밖을 배회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었고,
그러다 그만 범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 순간 범인은 김이순 양을 납치하여
논으로 끌고가 성폭행을 한 후 살해한 것으로 보였다.
현장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변 일부와 모발및 음모 몇 점이 채취되었다.
이를 토대로 혈액형을 검사해 본 결과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나는 화성사건을 수사하는 동안에도 혹시 범인이 수원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 김이순 양 사건을 계기로 보다 확신을 갖게 되었다.
범인은 김이순 양이 살던 수원시 화서동 내지는 고등동 일대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으로 믿어졌다.
범인은 화성이 아니라 수원 사람이었다
화성사건은 1차 이완이 할머니를 제외한 피해자 모두가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범인에게 납치되어 피살됐다.
대부분이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중에 범인의 눈에 띄었으며,
6차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 박은수 씨가 우산을 들고 남편을 마중하러
가다가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범인에게 납치되었다.
다만 유일한 생존자인 김모 여인과 이번 수원에서 발생한 김이순 양
사건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김모 여인의 경우 화성에서 사건이 발생했지만 어쨌든 유일한 생존자이므로
9차 화성사건 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김이순 양의 경우는 사건 발생 지역이 화성이 아닌 수원이므로
역시 9차 화성사건 안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어쨌든 이 같은 이유로 인해 화성사건은 생존자 김모 여인과
이번 김이순 양을 제외한 총 아홉 건이다.
그리고 이 아홉 건의 사건 대부분이 버스정류장과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앞서 말한 범인의 거주 지역에 대한 내 생각에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나는 앞서 범인이 수원시 화서동 내지는 고등동 일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단지 김이순 양이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즉, 화성사건 대부분이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범인 역시
버스를 타고 그곳에서 내렸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버스에서 내린 뒤 그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지나가는 여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버스와 관련된 좀더 자세한 얘기는 뒤에서 다시 하기로 하겠다.
어쨌든 화성에서 발생한 사건과 이번 김이순 양 사건은 그 수법이 비슷하여
동일범에 의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 역시 화성의 수사본부에서 범인 검거에 나서야 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나는 김이순 양 사건과 관련해서 상부에 보고를 한 후 수원에 있는
한 파출소에 독자적인 수사본부를 차렸다.
그리고 형사들에게 사건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화성사건과 유사하지만 발생 장소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한편,
이 사건이 우리의 관할이라는 점도 주지시켰다.
경기도경에도 마찬가지로 발생 장소의 다른 점을들어 자체수사를
하겠다고 보고를 올렸다.
그 때문에 김이순 양 사건은 화성 수사본부 대신 수원경찰서에서 맡게 되었다.
물론 나는 이 사건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저지른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독자적인 수사를 결심하고 별도의 수사팀까지 구성하며 사건 해결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개인의 욕심 때문에 스스로의 선택을 뒤집고,
범인이 수원까지 따라와서 내민 도전장을 거부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만다.
무슨 말로도 변명하기 어렵고, 기억조차 괴로운 그 일을 지금 다시 상기하려니
새삼 고통이 폐부를 찢는 듯 느껴진다.
무거운 마음으로 당시의 일을 회상해 보기로 한다.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 화성연쇄살인에서 제외된 수원사건,
7차 - 안희순(54세) 여인사건 1988년 9월 7일 저녁...
범인은 안모 여인을 살해하고 사건현장에서 풀밭을 걸어 수원행 버스를 탔다...
1988년 9월 7일 오후 8시 50분경 운전기사인 강원태 씨는 발안읍 소재지
버스터미널에서 손님 8~9명을 태우고 출발했다.
그리고 안희순 씨 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지나 400~500미터 정도 진행하고
있을 때 논길 쪽에서 젊은 남자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왼쪽 손에는 옷을 들고 있었다.
강원태 씨는 젊은 남자를 발견하고 버스를 세웠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탄 남자는 비어 있던 맨 앞자리에 앉았다.
강원태 씨가 이처럼 당시의 상황을 정화히 기억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결국 그 이유 때문에 강원태 씨는 범인의 인상착의 및 특징까지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강원태 씨뿐 아니라 버스에 동승했던 안내양 엄모 양까지도
그 이유 때문에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있었다.
버스에 탔던 남자는 나이가 25~27세쯤 되어 보였다.
키는 168센티미터 전후로 남자 키로는 작은 편이었다.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어깨가 약간 구부정했기 때문에 더욱 왜소해 보였다.
머리 모양은 당시 방위병 정도의 짧은 상고머리였고,
눈이 날카롭고 코가 오똑했다.
그리고 얼굴까지 갸름한 편이어서 전체적인 인상은 차가웠다.
이처럼 목격자가 비교적 그 남자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말다툼 때문이었다.
운전기사인 강원태 씨와 젊은 남자는 수원까지 오는 동안 서너 번
말다툼을 했던 것이다.
다툼의 원인은 이랬다. 남자는 버스 앞좌석에 앉자마자 왼쪽 발을
운전석 옆에 있는 보닛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강원태 씨가 남자에게 발을 치우라고 요구했다.
"보닛은 운전수의 밥그릇이니까 어서 발을 내려놓으세요!"
강원태 씨의 말에 남자는 천천히 발을 내려놓았다.
그 때 강원태 씨는 남자의 운동화가 젖어 있는 것을 보았으며,
바지 역시 무릎까지 젖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틀림없이 풀숲을 헤치고 지나갈 때 이슬에 젖은 것으로 추정된다.
남자는 보닛에서 발을 내려놓은 뒤 강원태 씨에게 담뱃불을 빌렸다.
그리고는 담배를 입에 문채 불이 꺼지지 않도록 양손으로 감싸 쥐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때 강원태 씨는 남자의 오른손 둘째손가락에 작은 흉터가 있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시계를 찬 왼손 손목에는 밤알 크기 정도의 문신 혹은 점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의 진술을 강원태 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목격자(버스운전기사, 안내양)들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7차 사건수사 당시 몽타주 수배전단지,
사진=화성연쇄살인범의 최근 몽타주 - empas 검색,
나이:40대중반 키:165~170cm 특징:왼쪽손목에문신
ㅡ ㅡ ㅡ ㅡ ㅡ ㅡ 이상!! 네이버 블로그 화성연쇄살인사건 책자내용 중...!! 2006/04/03
당시1987년 12월 24일... 수원 김이순(19세)양 사건 담당 형사
지난 1988년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비슷한 여고생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조광식 씨는
당시 풀려났던 두 용의자들이 화성 사건의 범인이라고 믿고있다,
지난 3월 30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4월 2일)를 3일 앞두고
<일요신문>으로 제보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자신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누구라는 확신이 있으며 그 중 한 명은 죽었지만 공범은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제보자는 지난 1987년 12월 24일 화서 전철역 부근 논에서 발생한
김 아무개 양(당시 19세) 살인 사건을 수사했던 조광식 씨(53). 이 사건은
수원 지역에서 발생, 10건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피해자가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당해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이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보고 있다(<일요신문> 724호 4월 5일자).
제보자인 조 씨는 당시 이 사건의 용의자를 고문해 사망하게 했다는
혐의로 직위 해제되고 2년6월형을 선고받아 교도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수사했던 용의자들을 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고문 형사’로 여론의 심판대에 올라 대대적인 비난을 받았던
그가 지금까지도 이들을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조 씨는 지금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자료 수집은 물론 4권 분량의
노트에 당시 사건을 기록하고 있었다.
지난 1988년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비슷한 여고생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조광식 씨는 당시 풀려났던 두 용의자들이 화성사건의 범인이라고 믿고 있다.
스스로의 불명예를 조금이라도 씻어보려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집념이
지나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거쳐간 수많은 전·현직 형사들이
그러하듯 그의 눈빛에서 그 이상의 집념을 읽을 수 있었다.
조 씨의 주장을 검증해 본다.
김 아무개 양의 사체가 발견된 것은 지난 1988년 1월 4일 오전 11시 30분경이었다.
화서 전철역 부근 논에서 볏짚으로 가려져 있던 것을 논 주인 김 아무개 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김 양의 사체는 엎드린 상태로 양손이 스타킹으로 결박당해 있었으며 팬티로
재갈이 물려 있었다. 또 하의가 벗겨진 채였으며 폭행으로 얼굴이 부어있었다.
부검 결과 성폭행을 당한 후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1987년 5월 2일 발생한 사건까지 이미 여섯차례 발생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행수법과 아주 흡사한 사건이었다.
당시 수원 모 여고 3년생이었던 김 양은 1987년 12월 24일 저녁,
어머니와 다툰 후 외출한 것으로 알려졌고 사체 부검결과 이날 밤 11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M 씨와 J 씨(당시 모두 20대 초반)를
지목했다.
탐문 수사 결과 M 씨와 J 씨가 사건 당일 밤 사체가 발견된 장소 부근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용의자 M 씨는 1월 6일
수원시 화서동 자신의 집에서 친구 2명과 함께 있다 연행됐으며 J 씨는
수원 집을 떠나 용인 외삼촌 집에 가 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경찰의 추궁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당시 경찰은 뛸 듯이 기뻤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용의자 M 씨가 얼마 후 뇌부종으로 인해 뇌사 상태에 빠졌고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후배 형사의 구타 사실이 밝혀져 조 씨는 후배 형사와 함께
구속돼 버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체적인 증거품도 찾아내지 못하자 결국 검찰도 그들의 자백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려 J 씨도 기소 유예로 풀려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씨가 아직도 이들이 범인이라고 주장하고있는 근거는 이렇다.
“조사 과정에서 몇 차례 때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에게 허위 자백을 유도하지는 않았다. 백지를 주고 현장 약도와 사체를
숨긴 곳을 그려보라고 했을 때 이들은 정확히 그 지점을 그리기까지 했다.
또 김 양의 사체에서 나온 범인의 혈흔과현장에서 발견된 대변의 분석결과
B형이었다. 이는 M 씨와 J 씨의 혈액형과 일치했다. ”
이밖에 화성군에 은둔 중이었던 이들의 친구 차 아무개 씨를 추궁한 결과
M 씨가 차 씨에게“사람을 죽였다.
수원을 떠나겠다”며 자신이 즐겨 입던 빨간색 점퍼를 입으라고 했다는
진술도 확보했었다는 것이다.
조 씨는 “왜 하필 사건 발생 후인 12월 27일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겠냐”며
이 사건과의 연관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조 씨가 이들이 단지 김 양살해 사건뿐만 아니라 화성연쇄살인사건과도 연관돼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은 잔인한 범행 수법도 일치하는 데다 당시 이들에게
들었던 진술 내용 때문이다.
“지나가는 말로 화성에는 어떻게 갔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J 씨가
기찻길로 갔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가면 검문에 걸릴 일이 없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수원에서 일어난 살해 사건을 빨리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그 후 피해자 대부분이 기찻길 부근에서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그냥 넘어간 것이 큰 실수였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조 씨에 따르면 이들은 인근 야산에 땅굴을 파놓고 집을 나와 그곳에서
지내곤 했는데 그 안에는 본드와 침낭, 라면 등이 갖춰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이들이 환각 상태에서 정신이상자들의 범행처럼 잔인했던
연쇄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평소 칼을 소지하고 다니면서 부녀자들을 희롱해 왔는데 김 양을 살해할
당시에도 칼로 위협해 끌고 갔다는 진술과 함께
이 칼을 증거품으로 확보했다는 것이다.
화서역 부근에서 숨진 김 양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시계가 없어졌다는
점도 M 씨와 J 씨를 의심하게 된 부분이다.
조 씨는 “당시에는 휴대폰도 없을 때라 시계가 필요하던 시기였는데 김양은
물론 연쇄 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시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며
“M 씨를 경찰로 연행하기 전 집 앞에서 잠복을 하다 M 씨의 집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찬장 그릇 안에 여자 시계 줄이 몇 개 담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이후 M 씨를 조사하면서 이시계 줄을 찾으러 갔었는데 이미 치운상태였다는 것.
결과적으로 조 씨는 결정적인 증거품을 찾지 못했고 M 씨가 뇌사 상태에
빠지면서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가 벼렸다.
조 씨는 당시 고문 문제와 관련해서도“뇌사의 원인이 구타는 아니었다.
1월 8일 M 씨를 연행해 사체 발견 장소에서 없어진 피해자의 손목시계를
찾으러 가던 중 M 씨가 도주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후배 형사가 수갑이
채워진 M 씨를 밀쳤는데 M 씨가 뒤로 넘어지면서 언덕에서 굴러 머리를
부딪쳤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아무 이상이 없는 줄 알고 경찰서로 끌고 왔는데 다음 날부터 구토를
하기 시작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후 조 씨는 11년 동안 몸담았던 경찰직을 떠나 교도소에 수감됐다.
담당의가“뇌부종은 구르거나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친 것이 원인”이라는
소견을 냈지만 혐의를 완전히 벗지 못해 이례적으로 무거운 2년6개월의
형을 살았다. 조 씨는“담당 검사가‘너희가 재수 없게 됐다.
잠잠해지면 나가라’고까지 했다”고 주장하며
“당시는 6·29 선언 이후였고 박종철 사건 1주기 직후였던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감방에서 1년 가까이 독방 생활을 하기도 했던 조 씨가
수감 이후에도 사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은 같은 교도소에
수감됐던 전과 5범 김 아무개 씨가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 씨가 어떤 사건 때문에 수감됐는지를 알고 있던 김 씨는 당시 공범으로
지목됐던 J 씨와 같이 수원교도소 미결수 방에서 생활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J 씨와 M 씨는 살인 사건 용의자로 잡힌 뒤
조사를 받던 중 특수 절도 혐의가 밝혀져 이 사건과는 별개로 구속된 바 있다.
조 씨가 김 씨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J 씨가 같은 방에 들어 왔기에 함께
수감돼 있던 사람들이 어떤 죄로 들어왔냐고 물었고 이에 J 씨가 김 양을
살해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먼저 M 씨가 김 양을 성폭행했고 자신은 김 양이 생리 중이어서 성폭행을
하지 못했다고.
이후 피가 묻은 자신의 속옷과 각목은 불에 태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이들이“M 씨가 죽었으니 너는 경찰이 폭행을 해서 허위 진술을
했다고 하라”고 조언까지 했다는 것.
이 이야기를 들은 조 씨는 김 씨의 진술서를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교도소 안이라 성사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출소한 뒤에도 조 씨는 틈틈이 J 씨의 행방을 찾았다.
조 씨는 J 씨가 기소유예로 풀려난 뒤인 88년 2월 바로 입대를
했던 것까지는 알아냈지만,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화성 연쇄살인의 7차 사건은 88년 9월 7일 화성시 팔탄읍 가재리에서 일어났다.
용의자를 본 유일한 목격자가 나타난 사건이었다.
키는 168cm 정도, 머리는 짧은 상고 머리였으며 눈이 날카롭고 코가 오뚝해
인상이 차갑다는 것이 목격자의 진술이었다.
그리고 화성 연쇄살인은 91년 4월 3일까지 계속됐다.
조 씨는 “최근까지도 J 씨의 소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 같은 이름이 몇 명밖에 되지 않으며
화성연쇄살인사건 발생지였던 태안읍이나 화서동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주민으로 등록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조 씨는 인터뷰를 끝내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화서역 살인 사건 이후 세월이 20년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함께 수감됐던 후배 형사 중 한 명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고,
나 역시 그 사건 이후로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허송세월하다 현재는
경비지도자 자격증을 따 새 삶을 계획하고 있다. 확실한 물증 없이
지금까지도 M 씨와 J 씨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말하는 나는 또 다른
죗값을 치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겁도 나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나 ‘이제 공시시효도 끝났으니 터놓고
한번 진실을 밝혀보자’고 말하고 싶다. ”
ㅡ ㅡ ㅡ ㅡ ㅡ ㅡ 이상!! 출처: 네이버블로그<일요신문> 2006/04/17 에서...
안녕하십니까?
먼저, 사진과 글이 좀 험해 화성연쇄살인사건수사(책)내용 중 일부만 올립니다...
전체를 보시고 싶으시면 분은 개인적으로 메일 주십시오...!!
전체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E-mail : gfgf34@hanmail.net
실종 이윤희 님의 기사를 검색하다가 화성연쇄살인사건(86. 9. 15. ~ 91. 4. 3)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참고만 하려했는데....
네이버블로그에 기록되어 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 담당하시던 형사님께서 쓰신 책내용...
2003년 9월 1일자에 글올리신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당시엔 멀리 화성지방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구나~ 그냥 흘러들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이제야 화성살인사건을 진실을 접하게되었습니다...
먼저, 고인(화성연쇄살인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앵커멘트]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됐던 90년 화성 여중생 살인 사건이 오늘로써 공소시효가 끝나게 됩니다.
9번의 살인사건에 모두 9명이 희생됐지만 수사는 오리무중입니다.
김세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 90년 11월 15일 경기도 화성에 사는 여중생 13살 김 모 양이 태안읍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됩니다.
4년전 인근 들판에서 71살 이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된 이후 9번 째 희생자입니다.
이 9번째 살인사건이 오늘로써 꼭 15년이 됐습니다.
더불어 이 사건에 대한 살인죄 공소 시효도 끝나 범인을 붙잡아도 죄를 물을 수 없게 됐습니다.
또 내년 4월 2일이면 마지막 10번째 희생자인 권 모 씨 피살사건도 시효도 만료됩니다.
이로써 화성시 태안읍을 중심으로 반경 3km 안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사건이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동안 경찰은 연인원 205만명을 동원해 용의자 2만여명을 조사했습니다.
또 4만여명의 지문을 대조했지만 범인이 170cm의 키에 마른 체형으로 B형 혈액형을 가졌을 것이라는 것만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최근 화성경찰서 지구대 안에 설치했던 수사본부를 철수한 뒤 전담반을 꾸려 근근히 수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제보 등도 없는 상태에서 수사는 지지부진 한 채 장기 미제로 남게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YTN 김세호입니다.
ㅡ ㅡ ㅡ ㅡ !!
이제 사건공소시효도 지났지만...
화성 흉악사건의 범인은 결코!! 검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사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사건의 범인은 반드시 내손으로 잡는다...!!
대한민국 강력계형사 님들의 건투를 빕니다... 악!
다름아니고,
두(화성형사, 수원형사) 글을 읽다가... 공통점이 발견되어 글올립니다...!!
개인생각이지만,
위 두 형사님의 글이 맞다면...!!
범인은 나왔는데 요........!!
경찰에서도 담당수사관 님들의 글을 읽었을텐데 요?
왜? 사건수사를 하지않는건지 요?
위 ~전수원형사 님 글이 맞는지 확인은 해보셔야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화성은 끝나지않았다... 2003년 9월 8일 책저자 화성담당 형사님과
~전수원(조광식)형사 님과 대면해 범인이 맞는지 대조해보아야 하지않을까 요?
그리고, 수사 때 작성한 몽타주 사진을 보여 그 때 j씨가 맞는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해도 기억속에 특징은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몽타주 사진이 정확(목격자진술)한건 아니라해도 특징은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버스기사 님이 말한 손에 흉터가 있었던 지.....
가능하다면 당시 목격자 버스기사님과 안내양을 불러 다시한번 확인을...
공소시효는 만료되었지만?
세상을 불안해 떨게했던 흉악범인은 꼭!! 잡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에서는 끝났더라도 국민의 심판은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수원(조광식)형사 님과 화성(하승균)담당형사 님과 만나게하시어...
당시 수원용의자가 화성용의자가 맞는지 확인해야할 것입니다!!
아직도 국민들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찾고있습니다...!!
국민들에게 화성연쇄살인사건용의자의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글을 읽는 전국의 국민, 기자 님들께서도 도와주십시오...
나?홀로 싸우기엔 힘이모자랍니 다.......
국민과 경찰이 하나되어 싸운다면 결코!! 완전범죄는 없습니다!!
끝까지 추적해서라도 사건의 범인은 검거해야합니다...!!
또, 불행의 희생자가 나타나기전에 막아야합니다!!
미약하지만, 2004년 10월 화성여대생 피살사건과 연류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수법이 틀리다고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시간(나이)이 흘러 범행 수법을 다르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수법만이 같은 범행이라고 생각하지않습니다...
참고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06년 8월 30일 전주에서~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생존의 희망이 사라지지만,
모두 아직 실종 이윤희 님을 버리지말아주십시오!!
꼭!! 다시 가족의 품으로 학교로 돌아기길........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안되면 될 때까지~ 악!
▲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 금곡리 사 204~
참고, 네이버 실종 전주여대생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gfgf36
법으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범인(악마)을 용서한다지만,
진실은 밝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여론)의 관심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다음 불행의 희생자를 막습니다!!
많은 응원주십시오!!
전북지방경찰청,
http://www.jbpolice.go.kr/sub3_1/list.html?tablename=wish
덕진경찰서,
http://jjdj.jbpolice.go.kr/
경기지방경찰청,
http://www.ggpolice.go.kr/join/join01.asp
화성동부경찰서,
http://hsdb.ggpolice.go.kr/join/join01.asp
뉴스추적,
http://wizard2.sbs.co.kr/resource/template/contents/tpl_iframetype.jsp?vProgId=1000120&vVodId=V0000010097&vMenuId=100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