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의 기술이다. 사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이 이별을 연습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별은 가장 어려운 놓아버리기의 연습으로 남는다. 너무나 어려워서 많은 이별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끝, 혹은 오랜 친구와의 이별처럼. 이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저절로 자기의 상황에 대해 반성해 보게 된다. 이별이 나의 생활환경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앞으로 어떤 이별이 다가오게 될까?나는 무엇과 이별하고 싶을까? 이별을 위한 적당한 시간은 언제가 될까? 더불어 중요한 것은 그것들과의 결말, 놓기, 그것들을 소화하는 작업 그리고 성공적인 이별을 통한 새로운 시작이다. 어떤 형태의 일상적인 중지, 실패도 이별만큼 깊은 반향을 우리 안에 남기지는 않는다. 심지어 모든 이별은 작은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 두려움은 너무나 깊이 스며들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통을 막으려 한다. 결말 이후에 더 이상 새로운 시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지된 순간에 꼼짝 않고 숨어버리거나, 삶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절망한다. 또 서로를 놓아 주지 않음으로써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과 지난 경험의 정리를 방해한다. 이별의 아픔을 막고 회피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어.”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면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어 줄게.” 이런 것을 흔히들 ‘좋은 이별’ 혹은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이별의 고통을 줄이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름트라우트 타르의 <버리는 기술> 중에서 아무리 오래 전부터 바라던 일이라고 해도 이별은 언제나 슬픈 거래요. 지금 혹시 누군가와 이별하셨습니까? 그럼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아파하세요.그것이 그 사랑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일입니다.
버리는 기술 - 이름트라우트 타르 -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의 기술이다.
사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이 이별을 연습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별은
가장 어려운 놓아버리기의 연습으로 남는다.
너무나 어려워서 많은 이별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끝, 혹은 오랜 친구와의 이별처럼.
이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저절로 자기의 상황에 대해 반성해 보게 된다.
이별이 나의 생활환경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앞으로 어떤 이별이 다가오게 될까?
나는 무엇과 이별하고 싶을까?
이별을 위한 적당한 시간은 언제가 될까?
더불어 중요한 것은 그것들과의 결말, 놓기, 그것들을 소화하는 작업
그리고 성공적인 이별을 통한 새로운 시작이다.
어떤 형태의 일상적인 중지, 실패도 이별만큼 깊은 반향을
우리 안에 남기지는 않는다.
심지어 모든 이별은 작은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려움은 너무나 깊이 스며들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통을 막으려 한다.
결말 이후에 더 이상 새로운 시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지된 순간에 꼼짝 않고 숨어버리거나,
삶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절망한다.
또 서로를 놓아 주지 않음으로써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과 지난 경험의 정리를 방해한다.
이별의 아픔을 막고 회피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어.”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면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어 줄게.”
이런 것을 흔히들 ‘좋은 이별’ 혹은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이별의 고통을 줄이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름트라우트 타르의 <버리는 기술> 중에서
아무리 오래 전부터 바라던 일이라고 해도
이별은 언제나 슬픈 거래요.
지금 혹시 누군가와 이별하셨습니까?
그럼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아파하세요.
그것이 그 사랑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