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ie Ray Vaughan은 1956년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8살 때부터 garage band를 조직하여 음악 활동을 했을 정도의 대단한 기타 천재였다. 역시 유명한 기타리스트인 그의 형 Jimmie Vaughan의 영향을 받으며 어려서부터 기타리스트로서의 목표를 정한 그는 10대의 나이에 지역 클럽에서 연주했고, 17살 때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기타와 음악에만 전념한다.
70년대 중반 garage band의 수준을 넘어서서 Cobras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던 그는 75년 자신의 주도하에 Triple Threat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Lou Ann Barton(보컬), Jackie Newhouse(베이스), Chris Layton(드럼), Stevie Ray Vaughan(기타)의 라인업으로 짜여진 이들은 텍사스 클럽을 무대로 활동한다.
78년 보컬인 Barton이 그룹을 떠나자 이들은 그룹명을 Double Trouble로 바꾼다.(Stevie가 보컬까지 담당했다.) 블루스맨으로 이들의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던 Otis Rush의 곡이름에서 그룹명을 따온 이들은 이후 Stevie Ray Vaughan And Double Trouble을 정식 이름으로 하여 80년대 전체를 통해 블루스록을 중흥시킨 역사적인 밴드로 자리하게 된다.
텍사스 내에서 최고의 인기 밴드로 자리하기에 이른 이들은 82년 The Montreux Festival에 참여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공연을 지켜보았던 David Bowie, Jackson Brown과 같은 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앨범에 Stevie를 초대했고, 공연에 감명을 받은 John Hammond는 이들을 Epic과 계약시키기에 이른다.
Stevie Ray Vaughan이 이렇게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두 가지 요인으로 평가되어진다. 첫째로 기타리스트로서 가지고 있는 기술적인 능력이었다. Bending, Vibration Slide등과 같은 화려하고 힘있는 테크닉은 파괴력 있는 블루스로 승화되면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백인 기타리스트가 선보이는 이 감성 넘치는 블루스 연주는 같은 아티스트들 사이에서도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가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특정 장르로 규정짓기 어려운 그만의 독특한 음악 스타일이었다. 어린 시절 B.B.King, Albert King, Muddy Waters와 같은 블루스맨들의 음악을 듣고 자란 그의 음악적 근간은 블루스였고, 물론 그의 음악은 블루스가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단순한 블루스가 아닌 혼합된 형태의 블루스였다. Jimi Hendrix에서 시작된 블루스에 록을 결합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지닌 요소들을 혼합시켰다. 거기에 자신의 출신 지역인 텍사스주의 Country Rock의 느낌이 덧 입혀졌다.
이런 Stevie만이 해낼 수 있었던 뛰어난 능력은 83년 Stevie Ray Vaughan And Double Trouble의 데뷔 앨범에 큰 성공을 안겨다준다. 83년에는 Stevie가 참여한 두 개의 앨범이 거의 동시에 발표되었다. 그의 연주에 감동해 그에게 연주를 부탁했던 David Bowie의 [Let's Dance]가 발매되었고, 순수한 그의 밴드 Double Trouble과 함께 한 그들의 데뷔 앨범 [Texas Flood]가 발매되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David Bowie의 앨범보다 Double Trouble의 데뷔 앨범이 더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신예 밴드의 앨범은 차트 38위에 올랐고, 이런 Double Trouble의 성공은 Stevie가 David Bowie의 ‘나의 그룹에 들어오라’라는 제의를 거절할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후 10년 이들의 인기는 꾸준한 성공으로 이어졌다. 84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Couldn't Stand The Weather]는 조금 더 성공을 거두며 차트 31위에 올랐고, 85년 키보디스트 Reese Wynans를 멤버로 보강하여 발표한 [Soul To Soul] 역시 큰 성공을 거두어 차트 34위까지 오른다.
많은 천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즈음 Stevie도 술과 마약에 깊이 빠져 신체적, 정신적으로 허약해져 가고 있었지만 그의 천재성은 술과 마약을 물리치며 그에게 계속되는 인기 행진을 허락해준다. 86년 그는 [Live Alive]라는 더블 앨범을 발표했고 87년 미국 투어를 강행하였으며 88년 라이브 활동 중에 앨범 작업에 착수하여 89년 4번째 정규 앨범인 [In Step]을 발표한다. 이미 기타리스트로서 높은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었고,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었던 그의 앨범은 역시 큰 성공을 거두며 차트 33위에 올랐고, 6개월만에 골드 앨범을 따내며 그 해 Grammy를 거머쥐기에 이른다.
90년 Stevie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그의 형 Jimmie Vaughan과 듀엣 앨범 [Family Style]을 발표 한 후 다시 전미 투어 공연에 들어간다. Eric Clapton, Buddy Guy, Robert Clay, Jimmie Vaughan등의 쟁쟁한 블루스맨들과 함께 투어를 벌이던 그는 같은 해 Wisconsin의 Alpine Valley 공연 후 Chicago로 이동하던 도중 헬리콥터가 추락하여 사망하고 만다.
그의 죽음 이후 그와 그의 형이 듀엣으로 발표했던 [Family Style]은 차트 7위까지 올라가며 그가 생전에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대단한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후 Stevie의 진가는 음악계에서 지속적으로 거론되면서 지금까지도 많은 컴필레이션 앨범들이 꾸준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95년에는 Jimmie Vaughan이 Double Trouble을 이끌고 명 연주자들을 초대하여 Stevie Ray Vaughan 트리뷰트 공연을 펼쳤는데 B.B.King, Eric Clapton, Bonnie Raitt, Buddy Guy, Robert Clay, Dr.John, Art Nevill과 같은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Stevie의 곡들을 연주하고 노래하며 그의 음악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기타의 신" 자리는 에릭 클랩튼이아닌 바로그 S R V 이였을것이다.
Stevie Ray Vaughan
Stevie Ray Vaughan은 1956년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8살 때부터 garage band를 조직하여 음악 활동을 했을 정도의 대단한 기타 천재였다. 역시 유명한 기타리스트인 그의 형 Jimmie Vaughan의 영향을 받으며 어려서부터 기타리스트로서의 목표를 정한 그는 10대의 나이에 지역 클럽에서 연주했고, 17살 때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기타와 음악에만 전념한다.
70년대 중반 garage band의 수준을 넘어서서 Cobras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던 그는 75년 자신의 주도하에 Triple Threat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Lou Ann Barton(보컬), Jackie Newhouse(베이스), Chris Layton(드럼), Stevie Ray Vaughan(기타)의 라인업으로 짜여진 이들은 텍사스 클럽을 무대로 활동한다.
78년 보컬인 Barton이 그룹을 떠나자 이들은 그룹명을 Double Trouble로 바꾼다.(Stevie가 보컬까지 담당했다.) 블루스맨으로 이들의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던 Otis Rush의 곡이름에서 그룹명을 따온 이들은 이후 Stevie Ray Vaughan And Double Trouble을 정식 이름으로 하여 80년대 전체를 통해 블루스록을 중흥시킨 역사적인 밴드로 자리하게 된다.
텍사스 내에서 최고의 인기 밴드로 자리하기에 이른 이들은 82년 The Montreux Festival에 참여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공연을 지켜보았던 David Bowie, Jackson Brown과 같은 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앨범에 Stevie를 초대했고, 공연에 감명을 받은 John Hammond는 이들을 Epic과 계약시키기에 이른다.
Stevie Ray Vaughan이 이렇게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두 가지 요인으로 평가되어진다. 첫째로 기타리스트로서 가지고 있는 기술적인 능력이었다. Bending, Vibration Slide등과 같은 화려하고 힘있는 테크닉은 파괴력 있는 블루스로 승화되면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백인 기타리스트가 선보이는 이 감성 넘치는 블루스 연주는 같은 아티스트들 사이에서도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가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특정 장르로 규정짓기 어려운 그만의 독특한 음악 스타일이었다. 어린 시절 B.B.King, Albert King, Muddy Waters와 같은 블루스맨들의 음악을 듣고 자란 그의 음악적 근간은 블루스였고, 물론 그의 음악은 블루스가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단순한 블루스가 아닌 혼합된 형태의 블루스였다. Jimi Hendrix에서 시작된 블루스에 록을 결합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지닌 요소들을 혼합시켰다. 거기에 자신의 출신 지역인 텍사스주의 Country Rock의 느낌이 덧 입혀졌다.
이런 Stevie만이 해낼 수 있었던 뛰어난 능력은 83년 Stevie Ray Vaughan And Double Trouble의 데뷔 앨범에 큰 성공을 안겨다준다. 83년에는 Stevie가 참여한 두 개의 앨범이 거의 동시에 발표되었다. 그의 연주에 감동해 그에게 연주를 부탁했던 David Bowie의 [Let's Dance]가 발매되었고, 순수한 그의 밴드 Double Trouble과 함께 한 그들의 데뷔 앨범 [Texas Flood]가 발매되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David Bowie의 앨범보다 Double Trouble의 데뷔 앨범이 더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신예 밴드의 앨범은 차트 38위에 올랐고, 이런 Double Trouble의 성공은 Stevie가 David Bowie의 ‘나의 그룹에 들어오라’라는 제의를 거절할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후 10년 이들의 인기는 꾸준한 성공으로 이어졌다. 84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Couldn't Stand The Weather]는 조금 더 성공을 거두며 차트 31위에 올랐고, 85년 키보디스트 Reese Wynans를 멤버로 보강하여 발표한 [Soul To Soul] 역시 큰 성공을 거두어 차트 34위까지 오른다.
많은 천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즈음 Stevie도 술과 마약에 깊이 빠져 신체적, 정신적으로 허약해져 가고 있었지만 그의 천재성은 술과 마약을 물리치며 그에게 계속되는 인기 행진을 허락해준다. 86년 그는 [Live Alive]라는 더블 앨범을 발표했고 87년 미국 투어를 강행하였으며 88년 라이브 활동 중에 앨범 작업에 착수하여 89년 4번째 정규 앨범인 [In Step]을 발표한다. 이미 기타리스트로서 높은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었고,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었던 그의 앨범은 역시 큰 성공을 거두며 차트 33위에 올랐고, 6개월만에 골드 앨범을 따내며 그 해 Grammy를 거머쥐기에 이른다.
90년 Stevie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그의 형 Jimmie Vaughan과 듀엣 앨범 [Family Style]을 발표 한 후 다시 전미 투어 공연에 들어간다. Eric Clapton, Buddy Guy, Robert Clay, Jimmie Vaughan등의 쟁쟁한 블루스맨들과 함께 투어를 벌이던 그는 같은 해 Wisconsin의 Alpine Valley 공연 후 Chicago로 이동하던 도중 헬리콥터가 추락하여 사망하고 만다.
그의 죽음 이후 그와 그의 형이 듀엣으로 발표했던 [Family Style]은 차트 7위까지 올라가며 그가 생전에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대단한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후 Stevie의 진가는 음악계에서 지속적으로 거론되면서 지금까지도 많은 컴필레이션 앨범들이 꾸준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95년에는 Jimmie Vaughan이 Double Trouble을 이끌고 명 연주자들을 초대하여 Stevie Ray Vaughan 트리뷰트 공연을 펼쳤는데 B.B.King, Eric Clapton, Bonnie Raitt, Buddy Guy, Robert Clay, Dr.John, Art Nevill과 같은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Stevie의 곡들을 연주하고 노래하며 그의 음악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기타의 신" 자리는 에릭 클랩튼이아닌 바로그 S R V 이였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