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배경우200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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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의 삶은 행위가치가 아닌 존재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우리의 뜻과 생각으로 행동하여 구원 받을 수 없고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뜻과 생각으로 지음 받은 형상이 됨으로서 구원 받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제멋대로인 고양이와 같은 모습이 아닌 제 역할을 할 준비가 된 빛과 소금 같은 물질적 존재로서의 모습을 갖춤에 그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서 겸허한 사람의 자신에 대한 존재가치는 동물성보다 사물성을 띈다. 운동성으로는 그 육체의 한계에 머무르나 부동성으로 하나님의 사용을 받아 무한의 가능성이 열리는 삶,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불교에서도 이런 부동성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나는 모태신앙(엄밀히 말하면 나는 창세전신앙이라고 함이 더 정확하다) 기독교인이지만 불교서적에서도 큰 공감의 정서적 도움을 많이 받아본 사람으로서 불교에 관한 긍정적인 기억이 많다. 그리스도를 부정한다면 그 부분에 관해서는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지만, 기독교를 종교행위로 여김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의 글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본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기타 종교들에서 이 부동성의 가치가 존중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 부동성의 가치는 분명 하나님 말씀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기독교인들이 다른 종교인들에게 본 받아야하는 값진 가치라 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의 가장 잘못된 생활태도가 바로 교회는 다니면서 하나님이 본 받지 말라고 하신 세상의 악한 것들도 다 하려고 지랄을 한다는 점이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그런 자신들의 헛점을 숨기려는 적반하장격 생사람들을 향한 공격으로서, 결코 죄가 아닌 음식과 술의 사용을 비판하며 정죄하는 그들의 비린내나는 바리새성향이야말로 그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대표적인 확증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예수를 향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 (마11:19)"이라고 비방한 이천 년 전의 낙오자들과 똑같은 모습이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2-24)"고 말씀하고 계시다. 하나님 믿으면서 돈 믿을 수 없다. 하나님 믿으면서 학벌 믿을 수 없다. 하나님 믿으면서 직분 믿을 수 없다. 하나님 믿으면서 사람을 의지할 수 없고, 하나님 믿으면서 남들처럼 세상의 가치를 따라갈 수 없다. 이게 다 하나님 말씀인데, 새벽기도 나가서 학교에 합격하게 해달라, 직장에 취직하게 해달라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 입장이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저기, 나 하나님인데?" "나한테 기도하는 거 맞어?" 하실 거다.

 

남보다 더 하는 게 결코 좋은 게 아니다. 오히려 모든 발전은 어떻게 덜 하면서 더 좋은 가치를 창출해내느냐에 달렸다. 이제야 조금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중요성도 이와 같은 전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진실로 모두의 생활에 유익이 된 위대한 발명들은 죄다 속세를 떠나 놀고먹는 모습의 사람들을 통해 창조되었다. 우리의 엄마들은 '더 많이'만을 추구하며 주변 가족들에게까지 그 헛된 가치를 강요해왔다. 그러나 정작 그 결과로 나타난 '더 많은' 범죄들을 '가장 많이' 비판한 것도 그들이다.

 

이제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우리들부터라도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를 믿어야한다. 어머니들이 그렇게 된 것이 어머니들만의 잘못일 수가 없는 건, 우리들조차 수많은 세월동안 그들을 신격화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뭔가 숨겨진 더 깊은 뜻이 있겠지, 어머니의 사랑이 어디가겠어?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그러다 우리 어머니들의 사랑은 정말 어디로 가버렸다. 뭔가 숨겨진 더 깊은 뜻은 그들에게서 기대할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기대해야하는 것이다. 그들은 여신이 아니고, 여종만도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 오랜 시간 그들의 여신적 모성애를 기대한 우리의 잘못된 믿음또한 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큰 부담이 되어왔다. 우리 엄마가 친척 얘기 하는 거 보면, 주여, 생각도 하기 싫고 안 하는 게 최선책이다. 이게 어디 우리 엄마뿐이겠는가? "속담을 말하는 자마다 네게 대하여 속담을 말하기를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 하리라 (겔16:44)" 하는 말씀만 보면 다음 세대의 앞날이 참 처량하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는 나 하나로도 충분한데,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많은 사람이 함께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의 변화를 간구한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21:22)" 그래서 우리는 기쁘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한다. 그의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는 결코 죽음을 보지 않는다. 온 천하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되는 영광을 모두가 속히 보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