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의 축제를 구경나온 아이와 경찰관의 모습. 허리를 숙이고 따뜻한 눈길로 아이를 바라보는 경찰과 아이의 천사같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세상이 이러한 아름다운 순간들로 가득차 있으면 좋으련만...
여기 또 한명의 귀여운 아기의 모습이 있다. 코소보 국경지대에 있던 이 아기와 어머니는 세노코스 난민캠프로에 막 도착했다. 깊게 패인 어머니의 주름살에 드리워진 전쟁과 가난의 아픔을... 이 아기는 커가면서 절실히 느낄것이다.
아!...드디어 난민 캠프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아버지는 좀 더 안전한 난민캠프로 딸을 보내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을 보내야만 하는 주위의 모든 어머니,아버지들은 지금 너무도 슬프다.
난민캠프에 수많은 난민을 태운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 주위는 행여나 어머니가 있을까...아버지가 있을까...누이가 있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먼저 도착한 난민들로 둘러 쌓인다.
알바니아 국경으로 향하는 피난민들의 눈물. 수십년 전 남쪽으로 피난을 가야했던 우리의 조상들도 저런 슬픔을 겪었으리라.
알바니아 난민촌에서 어느 수녀가 식량을 나눠주고 있다. 신앙이 위대해 보이는 순간은 감동적인 연설을 했을 때도 아니요, 죽어가던 이가 기적적으로 되살아 났을 때도 아니다. 그것은 말로만 하는 신앙이 아닌 행동하는 신앙일 때이다.
아이 만이라도 살려야 겠다는 사람들...
가족의 죽음은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슬픔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 보다 그가 죽어야만 했던 아픈 현실이 더욱 슬픈 것이다..
베트남 국립경찰 대장이 한 사이공 분자를 권총으로 처형하는 순간이다. 정의도 목적도 모호한 부패한 전쟁의 단면이다.
고엽제는 베트남의 원시 정글을 파괴했다. 그리고 이후 수많은 고엽제 환자가 죽고 지금도 고통 받고 있다.
베트남 공군의 무차별 공습에 거리로 뛰쳐나와 도망가는 아이들... 벌거벚고도 무조건 뛰어야만 하는것... 이것이 전쟁이다.
베트남 포로수용소에서 갖은 고문과 수모를 겪은 미군 중령이 꿈에도 그리던
가족과 상봉하는 순간이다 . 남편과 아버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가족들의 표정을 상상해 보라... 드디어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고... 중령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큰딸,작은딸,아내,막내아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그의 품으로 달려든다.
미군 폭격기의 공습 속에서 한 베트남 어머니는 자식들을 데리고 강을 건넌다. 어머니가 위대한 이유는 모성애라는 초능력 때문이다. 사진을 촬영한 일본인 종군기자는 이 사진으로 그 해 퓰리쳐상의 주인공이 된다. 이후 이 모자의 근황이 궁금해진 종군기자는 사방팔방을 돌며 이들을 찿았다. 결국 이 베트남 어머니에게 퓰리쳐 상금과 1년치의 생활비를 주었다고 한다. 사진에 나타난 모성애 만큼이나 휴머니티가 느껴지는 기자이다.
전몰장병의 날... 남편을 잃은 여인은 통곡한다...
식량을 배급 받으로 가던 수단의 한 소녀가 결국은 지쳐 주저앉고 만다. 뒤에 있는 독수리는 소녀가 어서 죽음을 맞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은 기자는 촬영하기 전에 먼저 소녀를 구했어야 했다는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베트남 여인의 모성애를 찍은 일본인 기자와는 사뭇 대조 되는 경우다. 결국 이 사진기자는 33살의 나이로 자살했다. 그리고 수단은 아직도 기아에 허덕인다...
˚ 。˚▶ 。˚ 가슴 아픈 사진
<펌>퓰리처상 수상작 .....중복사진도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의 축제를 구경나온 아이와 경찰관의 모습.
허리를 숙이고 따뜻한 눈길로 아이를 바라보는 경찰과
아이의 천사같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세상이 이러한 아름다운 순간들로 가득차 있으면 좋으련만...
여기 또 한명의 귀여운 아기의 모습이 있다.
코소보 국경지대에 있던 이 아기와 어머니는 세노코스 난민캠프로에 막 도착했다.
깊게 패인 어머니의 주름살에 드리워진 전쟁과 가난의 아픔을...
이 아기는 커가면서 절실히 느낄것이다.
아!...드디어 난민 캠프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아버지는 좀 더 안전한 난민캠프로 딸을 보내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을 보내야만 하는 주위의 모든 어머니,아버지들은 지금 너무도 슬프다.
난민캠프에 수많은 난민을 태운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 주위는 행여나 어머니가 있을까...아버지가 있을까...누이가 있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먼저 도착한 난민들로 둘러 쌓인다.
알바니아 국경으로 향하는 피난민들의 눈물.
수십년 전 남쪽으로 피난을 가야했던 우리의 조상들도 저런 슬픔을 겪었으리라.
알바니아 난민촌에서 어느 수녀가 식량을 나눠주고 있다.
신앙이 위대해 보이는 순간은 감동적인 연설을 했을 때도 아니요,
죽어가던 이가 기적적으로 되살아 났을 때도 아니다.
그것은 말로만 하는 신앙이 아닌 행동하는 신앙일 때이다.
아이 만이라도 살려야 겠다는 사람들...
가족의 죽음은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슬픔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 보다 그가 죽어야만 했던 아픈 현실이 더욱 슬픈 것이다..
베트남 국립경찰 대장이 한 사이공 분자를 권총으로 처형하는 순간이다.
정의도 목적도 모호한 부패한 전쟁의 단면이다.
고엽제는 베트남의 원시 정글을 파괴했다.
그리고 이후 수많은 고엽제 환자가 죽고 지금도 고통 받고 있다.
베트남 공군의 무차별 공습에 거리로 뛰쳐나와 도망가는 아이들...
벌거벚고도 무조건 뛰어야만 하는것...
이것이 전쟁이다.
베트남 포로수용소에서 갖은 고문과 수모를 겪은 미군 중령이 꿈에도 그리던 가족과 상봉하는 순간이다 .
남편과 아버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가족들의 표정을 상상해 보라...
드디어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고...
중령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큰딸,작은딸,아내,막내아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그의 품으로 달려든다.
미군 폭격기의 공습 속에서 한 베트남 어머니는 자식들을 데리고 강을 건넌다.
어머니가 위대한 이유는 모성애라는 초능력 때문이다.
사진을 촬영한 일본인 종군기자는 이 사진으로 그 해 퓰리쳐상의 주인공이 된다.
이후 이 모자의 근황이 궁금해진 종군기자는 사방팔방을 돌며 이들을 찿았다.
결국 이 베트남 어머니에게 퓰리쳐 상금과 1년치의 생활비를 주었다고 한다.
사진에 나타난 모성애 만큼이나 휴머니티가 느껴지는 기자이다.
전몰장병의 날...
남편을 잃은 여인은 통곡한다...
식량을 배급 받으로 가던 수단의 한 소녀가 결국은 지쳐 주저앉고 만다.
뒤에 있는 독수리는 소녀가 어서 죽음을 맞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은 기자는 촬영하기 전에 먼저 소녀를 구했어야 했다는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베트남 여인의 모성애를 찍은 일본인 기자와는 사뭇 대조 되는 경우다.
결국 이 사진기자는 33살의 나이로 자살했다.
그리고 수단은 아직도 기아에 허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