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타워 - 엄마와 나 때떄로 아버지

김승명200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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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타워 - 엄마와 나 때떄로 아버지

인간의 능력은 아직 무한한 가능성이 남겨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각각의 능력을 반이라도

활용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저마다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시험해 보려고

집밖으로 나가고 세상을 향해 질문하고 헤매고 다닌다.

 

하지만 그런 방황도 능력이다.

활에서 막 쏘아 올려진 화살처럼

얼마간은 똑바로 날아가기 때문에

나름대로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전체 능력의 1,2퍼센트만 쥐어짠다 해도

조금쯤은 괜찮은 인물이 될 것이다.

 

그런데 화살의 궤도가 호를 그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어디선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 이라는 것이 비어져 나온다.

몸이 여위도록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제 겨우 뛰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가 닿을 곳,

그 끝에 과연 '행복' 이 있을 것인가 하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능력이 성공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 이미 끝장이다.

 

인간의 능력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인간의 '감정' 이란 이미 오랜 옛날부터

그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취월장, 각종 도구가 발명되고

인간 장수의 비결도 발견되고, 우리는 과거 인류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멋진 생활' 을 하고 있다. 하지만

수천년전의 사상가와 철학자들이 남긴 말,

오랜옛날의 인간이 느꼈던 '감정' 이나 '행복' 에 관한 말이나

그 가치는 아직까지도 우스울 만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어떤 놀라운 도구를 소유하고

어떤 쾌적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어도

인간이 느끼는 것은 내내 마찬가지다.

 

감정의 받침접시에는 이미 가능성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앞으로도 영원히 자신의 잠재 능력을

남김없이 끌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행복' 이라는 해바라기 밭의 도깨비를 의식하는 그 순간부터

아직 보지 못한 자신의 능력 따위는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결국 파랑새는 내 집 새장 속에 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행복의 파랑새가

결국 내 집의 새장 속에 있었던 것처럼

'행복' 은 '가정' 에 있다.

 

이 법칙에서 인간은 도망칠 수 없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은 정말 재미도 없고

가능성도 의외성도 없는 생물이지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생물인 것이리라.

 

파랑새는 내 집안에 있다.

 

하지만 집안의 새장에 파랑새가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가정이 행복에 감싸이는 건 아니다.

가족 모두가 파랑새를 찾고 원하고 바란다면

저절로 '행복' 이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가족중에 한 사람이라도 불새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우선 그 사람의 귀에는 파랑새의 지저귐이 지겹게 들린다.

파랑새를 귀여워하는 여자와 아이들의 모습마저

한심하게 느껴진다.

 

불새를 잡기 위해서라면 파랑새의 깃털을 뽑아

구워먹는 것도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결국 까마귀 무리에 휩쓸린다.

 

5월에 어느 사람은 말했다.

 

도쿄에서 살다 보면 그런 뻔히 다 알만한 일을

이따금 알 수 없게 된다고,

그 사람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