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이상 필요없는 경찰인력을 줄이고... CCTV를 하나더 설치해야~

gfgf342009.11.21
조회894
cctv091120.gif (46k) ◀ 더이상 범죄예방용 CCTV 설치는 의무화해야~ 이제 더이상 필요없는 경찰인력을 줄이고... CCTV를 하나더 설치해야~ 범죄예방과 범죄자(단서) 검거... 더이상 완전범죄를 막는 길!!// 경찰 100명보다 CCTV한대가 더 효과적~!! 네이버 카페:http://cafe.naver.com/gfgf36 많은 응원바랍니다!!
 전설의 강력반장 고병천, 형사 인생 34년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 서울 서초경찰서 강력1반장 시절 지존파를 일망타진한 공로로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서 표창을 받는 고병천 전 경정. 평생을 강력범과 싸워온 그는 지금 병과 싸우고 있다. 지난 4월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 부위가 덧나 병세가 악화된 상태. 한창 시절 170㎝ 신장에 110㎏이 넘어가던 거구가 80㎏대로 빠졌다. 고씨는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연합뉴스]  

1994년 9월 20일. 추석 연휴의 마지막날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희대의 살인 집단인 지존파 7명의 수갑 찬 모습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이다. 그들은 평균 22세였다. 그런 그들이 스스로를 ‘악마의 대리인’이라고 불렀다. 오로지 살인을 하기 위해 아지트를 지었다. 아지트의 지하엔 사설 감옥과 시체 소각장까지 만들었다. 5명을 살해한 그들은 그곳에서 인육에 입을 대기까지 했다.

이런 지존파를 일망타진한 것이 고병천(60.사진) 전 경정이었다. 그가 지난달 정년퇴직했다. 34년을 경찰로 지내며 숱한 범죄와의 전쟁을 치른 ‘강력반 형사 고병천’은 이제 전설로 남게 됐다. 중앙SUNDAY가 그를 만났다. 그는 네 시간에 걸쳐 지존파 검거 뒷얘기부터 강력계 형사로서의 애환을 털어놓았다. 전설을 되짚어 보기에 네 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전설의 고병천 강력반장~

보름간 현장 뒤져 ‘라면땅’ 단서 찾아


그는 파출소(지구대) 순경으로 있다가 1년 만에 형사로 발탁된 케이스다. 고 전 경정이 경기도 수원의 한 지구대에서 순경으로 근무할 때다. 폭행 피해자가 들어왔는데 그가 사망하고 말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아프다고 신고했는데 파출소에서 제대로 조사해 주지 않았다”며 지구대에 책임을 물었다. 그는 형사도 아닌 순경 신분으로 혼자 수사를 시작했다. “그만둘 때 두더라도 사건은 내가 해결해야겠다”는 각오로 뛰었다. 고 순경은 3일 동안 밤낮 없이 피해자 주변을 조사해 범인을 잡았다. 순경이 잡은 범인을 인도받은 형사들은 머쓱해졌다. 이 일을 계기로 수원경찰서 형사계장이 그를 형사로 전격 발탁했다.

고 전 경정이 형사가 되자마자 가장 처음 해결한 사건이 70년대 후반 수원시 세류동 ‘여직공 살인 사건’이다. 20대 초반의 여자가 반라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수사는 열흘간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경찰들도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때 고 전 경정은 보름간 계속 현장으로 출근해 근처를 살폈다. 이번에도 ‘나 홀로 수사’였다. “열심히 뒤지다 보니 현장이란 게 커지더라고요. 처음엔 반경 500m, 그 다음엔 1㎞, 보름 지나니까 한 3㎞까지 조사하게 되더군요.” 그때 사건 현장 물가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먹다 남은 ‘라면땅’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걸로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먹을 것이 귀했던 당시 ‘라면땅’이 땅에 버려져 있는 게 이상했어요.” 범인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고 전 경정은 마을 가게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 구멍가게에서 20대 초반의 남자가 라면땅과 막걸리를 사간 사실이 드러났다. 그를 찾아갔다.

“용의자 집으로 찾아가 ‘어이 영철이(범인 이름)’ 하고 부르니까 ‘네’ 그러더라고요. 나오라니까 아무 소리 없이 따라 나와요. 그래서 나무 밑으로 데리고 가 귀싸대기를 때려 버렸지. ‘나쁜 놈의 새끼’라고 했더니 ‘(여직공이) 살았습니까’ 그러는 거야. ‘야, 인마 살았으니까 넌 줄 알고 왔지 어떻게 알고 와.’ 심리전이었죠. 그랬더니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어요. 사실상 자백을 받은 거죠. ‘공범은 어딨어?’ 하고 물었죠. 공범이 있는지 없는지 몰랐지만. 그랬더니 ‘오늘 전주 역전 옆 여인숙에서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고 해요. 그래서 공범까지 잡았죠.”

그날 그가 물가에 버려진 ‘라면땅’을 그냥 지나쳤다면 어땠을까. “영원한 미제로 남았겠죠. 저는 그 사건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느껴요. 현장은 정말 중요해요! 증거의 창고입니다!” 수사는 발·머리·육감,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세류동 여직공 사건을 해결한 게 그의 ‘발’ 덕분이었다면 지존파 검거 때는 그의 머리가 빛을 발했다.

‘콩나물’ 사러 가다 붙잡힌 지존파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지존파의 행동강령이었다. “그런데 주범 김현양이 서울에서 납치해 온 여자 L씨를 좋아하게 된 겁니다.” L씨는 지존파의 강요로 납치돼 온 사람을 살해해야 했다. 김현양은 L씨도 공범이 됐으니 살려두자고 주장했다. 반대하는 일당들과 주먹다짐까지 했다. 결국 김현양이 머리를 다쳐 병원에 가야 했고, L씨가 함께 병원에 갔다. “김현양이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는 바람에 L씨에게 도주의 기회가 왔죠.”

L씨는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와 서초경찰서를 찾아갔다. “처음엔 얘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얘가 무슨 약을 먹었나’ 싶었어요.”고 전 경정과 6명의 강력 1반 형사들은 L씨를 따라 전남 영광군에 있는 아지트로 내려갔다. 그는 섣불리 아지트를 덮치지 않았다.“아지트 밖에서 잡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아지트 안엔 다이너마이트 25개와 망원렌즈가 달린 장총 등 위험한 무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오전 6시. 지존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곱 명 중 두 명이 해장국을 끓이기 위해 콩나물을 사러 나서는 길이었다. 범인들의 차량을 미행하다 뒤에서 들이받았다. 그 자리에서 두 명을 잡았다.

다음은 유인작전이었다. “파출소에 가 아지트로 전화를 했죠. ‘교통사고가 나 두 명이 많이 다쳤다. 모두 광주로 후송했으니 파출소에 와 차를 찾아가라’고요.”지존파는 의심이 많았다. 파출소로 온 범인은 세 명. 한 명만 내려 상황을 살피는 사이 경찰이 덮쳤다. 차량 속 두 명은 도주하다 인근 주유소 담벼락을 들이받고 검거됐다. 아지트에 두 명만 남아 있을 때 비로소 총기를 발사하며 급습했다. 일망타진이었다.

“영광군으로 출동할 때 서장님한테도 ‘나를 믿어 달라. 범인 잡아 오겠다’고만 하고 사건 내용은 보고하지 않았어요. 보고했다면 워낙 큰 사건이라 대단위 작전이 이뤄지고, 사상자가 생겼겠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 지존파 김현양이 고병천 전 경정 앞에서 살인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서초서로 자수해 온 온보현. [중앙포토] 

수사 3박자는 발,머리,육감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죽이자’. 지존파의 슬로건이었다. 그만큼 사회에 품은 한이 컸다. 검거 후에도 그들은 “사회의 냉대를 되갚아 후련하다”며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다. “그쯤 되면 사이코패스 아닙니까?” 기자의 질문에 고 전 경정은 단호히 부인했다. “그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었어요. 우리 사회의 엄청난 상대적 빈곤이 괴물을 만든 겁니다.” 그는 ‘지존파’에 대해 “지금은 인간으로서의 연민이 더 크다”고 말했다.

사실 ‘지존파’와 ‘고병천’의 관계는 ‘붙잡은 자’와 ‘붙잡힌 자’ 이상이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지존파 일당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고병천’은 그들의 아버지였다. 사형 집행 직전 지존파 일당은 천주교 영세를 받았다. 그때 고 전 경정에게 자신들의 ‘대부(代父)’가 돼 달라고 부탁했고, 고 전 경정은 선뜻 수락했다. 세상에 대한 지존파의 증오가 사라진 것도 그때였다.

얼마 후 사형이 집행됐다. 더 이상 증오가 남아 있지 않은 지존파의 육신이었지만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었다. 고 전 경정은 그들을 검거한 손으로 마지막 가는 길을 돌보았다.“사형이 집행되고 나서 시체 인수가 안 됐어요. 가족이 인수를 거부한 거예요. 저희 집사람이 급히 달려가 시체를 인수해 천주교 공동묘지에 묻었죠.”

온보현, 찾아와 자수 “나 조사해보라”


요즘은 과학수사가 대세다. 그러나 그에겐 육감이 과학 못지않게 중요하다. 서초서 강력 1반장 시절 아버지가 칼에 십여 번 찔려 죽은 것을 일곱 살짜리 아들이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가까운 사람의 범행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원한 때문이 아니었으면 저렇게 여러 번 찌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주변 탐문 결과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동생이었다. 그를 불러 대뜸 “왜 죽였느냐”고 추궁했다.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왜 그랬느냐고 하니까 황당해하더라고요. 형사들 다 내보내고 둘만 남아 ‘이야기하지 않으면 여기서 못 나간다’고 했죠. 결국 8시간 만에 딱 무릎을 꿇더라고.”고 전 경정은 성칼럼니스트이자 유명 비뇨기과 여의사인 임필빈(재미)씨와도 친분이 깊다. 서초서 강력 1반장 시절 임씨의 동생이 유괴를 당했다. 고 전 경정이 이끄는 강력 1반이 범인을 잡고 무사히 동생을 구출한 인연 때문이다.


발과 머리·육감을 결합시켜 주는 고리는 ‘집념’이다. 물면 놓지 않는 그의 집념은 타고난 걸까.

"영화 '살인의 추억' 아세요?" 고 전 경정이 물었다. ‘살인의 추억’ 속 송강호의 실제 모델인 하승균 전 총경이 고 전 경정이 형사가 됐을 때 첫 반장이었다고 한다. 고 전 경정의 ‘물면 놓지 않는’ 수사 방식은 다름 아닌 하승균 전 총경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분은 사건을 접하면 ‘백(back)’ 하는 법이 없어요. 어떻게든 사건의 끝과 부딪치려고 하죠. 그분 밑에서 사건을 배울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90년대 서초서에서 강력반장을 할 때 그는 지존파를 포함해 매달 평균 20명 정도씩 검거했다고 한다. 10여 년간 줄잡아 2000명 안팎의 강력범을 교도소에 보낸 셈이다. 교도소에서 한때 ‘너도 고가(高哥)놈한테 잡혀 왔느냐’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단다. “저한테는 ‘책상 속에 들어간 사건’이 없었어요.” 자신의 손을 거친 사건 중 미제가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강력반 형사로 이름이 나다 보니 연쇄살인을 저지른 택시기사 온보현은 일부러 지존파를 잡은 고 전 경정을 찾아와 “나를 조사해 보라”고 버텨 섰다. “내가 지존파보다 더 강하니 비교해 보라고 하더군요. 그때 참 황당했죠. 얜 정말 사이코패스구나 싶었어요. 제가 조사하지 않고 그냥 용산서로 인계해 버렸지요.”

화성연쇄살인 수사 못해본 게 아쉬워


강력반 형사로 지내는 동안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추격전에서 가끔 고립되는 경우가 생겨요. 용산역에서 살인 혐의를 받던 조폭 두 명과 마주친 경험이 있지요. 놈들이 도망가 주었으면 했는데, 도망을 안 가더라고요. 그럴 땐 숨을 수도 없고…. 속으로 ‘지들이 설마 경찰관을 죽이겠느냐’고 판단하고 맞섰는데 내가 우세해지더라고.” 그는 유도 4단, 합기도 3단, 태권도 초단 등 무술 8단이다.

재직 시절 그는 한 달에 20일 정도는 집에 못 들어가고 사무실 책상 위에서 선잠을 자곤 했다. 그의 유일한 낙은 후배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 스폰서 없이 외상 술을 마시다 봉급 날 한꺼번에 갚곤 하는 선배를 후배들은 존경했다.


34년 경찰 생활 동안 가장 아쉬웠던 것이 뭔지 물었다.
“미제로 끝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못 만난 거요. 그런 사건을 접할 수 있다는 게 형사에겐 행운이거든요.” 평생 사건과 살았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사건에 목말라 했다.


강민석 기자, 배영경 인턴기자 ms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