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머리카락을 뽑으면서.......

하얀손200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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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머리카락을 뽑으면서.......


최근 나는 불자(佛者)도 아니지만(기독교인도 아님), 불경(佛經)과 씨름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내용이 심오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책에 대한 욕심이 많은 나로서도 이 책은 쉽게 책장을 넘기고 싶지 않은 책이다.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생각하고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불현듯, 나는 책을 읽으며 무궁무진한 진리와 오묘한 맛을 되새길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감사한다.


기특한(?) 이런 생각을 또 접하게 된 것은, 어젯밤 우연히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니, 앞집에 살고 있는 총각이 말끔한 차림으로 외출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계를 확인하니 밤 12시인데, 이 시각에 그는 무엇을 위한 외출을 하는 것일까? 본의 아니게 나는 그 총각의 이웃으로 그를 어린 시절부터 관찰하고 있어서, 오늘밤도 광란의 쾌락으로 밤을 보내기 위해 외출하는 것이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일찍이 그는 책과는 담장을 높이 쌓고, 어려서부터 불량한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으슥한 곳만 찾아다니며 술과 담배를 배웠다. 안 되는 잎은 싹부터 안다고 했던가. 한마디로 애초의 싹이 노란 친구였다. 어린 시절의 그는 키도 작았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변변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성장하면서 제법 키도 크고, 얼굴도 말끔하게 변모했다. 오늘 그의 옷차림을 보니, 노란 가죽점퍼에 청바지 그리고 검은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외모만으로 보면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한 것처럼 몰라보게 많이 변함)였다.


그러나 나는 실소(失笑)를 금지 못했다. 그는 젊음과 한껏 멋을 부린 옷차림으로 걸어가고 있었으나, 마치 텅 빈 수레가 자갈길을 뒤뚱거리며 가듯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뒤에 그의 모습은 어떠할까? 불현듯, 나의 머릿속에는 어떤 여류 시인의 작품 <흰 머리를 뽑으며>란 시가 떠올랐다. 작가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뭇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매우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세월은 그녀를 빗겨가지 못하고, 머리에 돋아난 흰 머리를 발견하고, 그녀는 놀란 심경을 시로 옮겨 놓았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세월의 풍상(風霜)에도 씻겨 내려가지 않는 여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보통의 여인네라면 드러내지 않고, 깊이 감추고 싶은 자신의 ‘흰 머리’를 소재로, 그녀는 인간의 삶에 대한 솔직한 내면을 펼쳐 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그녀가 솔직한 내면의 세계를 펼칠 수 있었던 용기는, 오랜 독서와 사색 그리고 부단한 창작에 대한 열정과 신뢰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터럭[毛] 하나만 뽑으면, 세상이 이롭게 될지라도, 그것을 아끼는 궁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의 그녀의 작품에 대한 칭찬은 과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아직 나는 나이에 비하여 염려할 바는 아니나, 멀지 않은 날에, 나도 흰 머리에 검은 염색약을 덧칠하거나, 흰 머리를 뽑게 될 것이다. 여성들이 정성껏 화장을 하듯이, 젊은 시절에 정성껏 독서와 사색을 통해서 내면을 연마하지 않는다면, 곧 사라질 젊음을 대체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찾아 간직할 것인가? 최근 의료기술의 발달로 외모는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교체할 수 있을지 모르나, 독서와 사색을 통한 내면의 아름다움은, 결코 금전적인 문제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청년들은, 마냥 젊음이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오늘밤도 음주와 춤 그리고 시시껄렁한 농담과 음담패설로 광란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무리 술을 마셨더라도, 정해진 새벽의 시간에 반드시 일어나 책을 펼쳤던 선인(先人)들. 그들은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책속에 살아있어,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나도 이와 같이 그들처럼 죽어도 죽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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